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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전문 평론지 <지금, 만화> 발전을 위한 제언

평론은 독자와의 중요한 소통 방식이다. 만화와 웹툰이 단순한 콘텐츠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즐겁고, 슬프고, 감동받았던 순간들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 만화평론 비평지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2025-01-09 백종성

만화전문 평론지 <지금, 만화> 발전을 위한 제언

평론의 영향력?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은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극찬에 가까운 평론에 힘입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가 됐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2014)에서는 주인공이 유명한 요리 평론가의 방문에 대비해 분주하게 요리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평론가의 혹평으로 결국 직업을 잃게 된다. 우리가 다양한 기사 혹은 미디어를 통해 접한 평론의 세계는 굉장히 냉혹하며 작품 및 작가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영화 평론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영화 선택 시 관객은 관객 평가를 51.5%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네티즌 평가를 37.8%로 고려하는 반면, 영화 평론가 평가는 6.3%로 비교적 낮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 연구에 의하면 전문가 평점은 상업성 영화에 대해 유의성이 없고, 예술성 영화에만 전문가 평점이 유의한 결과를 보였다.(선주, 전문가 평가가 영화흥행성과에 미치는 영향력: 2013년 한국개봉영화의 증거, 문화경제연구, 2014) 대중들은 전문가의 평론을 읽는 것 보다는 콘텐츠 그 자체에서 느끼는 다양한 관점의 재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것 같다. 이는 만화∙웹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만화 평론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독자들은 평론을 통해 무엇을 기대할까? 한국 만화 평론은 그동안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한국만화평론이 걸어온 길

  학술적 관점에서 최초의 만화평론을 1927년 권구현의 <신문삽화 만평>에서 만화를 소개하던 글로 본다.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만화를 소개하는 글들이 실렸지만 만화 부흥기에 본격적으로 만화 평론이 등장한 것은 1991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에 만화평론 부문이 신설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겠다. 당시 첫 번째 신춘문예에 손상익 평론가가 당선되면서 국내 만화 1호 평론가가 탄생했고 손상익은 한국 만화 평론에 많은 관심을 갖고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만화문화연구원을 설립하고  코코리 뷰라는 비평지를 발간했다. 이후 우리만화연대, 한국만화가협회 등의 만화 협단체에서 소식지 형식의 책자들을 비정기적으로 출간했고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부천만화정보센터, 거북이북스, 만화문화연구소 등에서 코믹타운크리틱엠, 오즈, 보고, 팝툰, 엇지, 만화비평, <만화규장각 웹진> 등의 기사 혹은 평론을 실은 잡지와 웹진이 탄생되었다. 2018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지금, 만화가 발간 되었고 2024년 한국최초의 사단법인인 (사)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가 출범한 후 <위클리툰>을 통해 다양한 평론을 게재하고 있다.

만화전문 평론지 <지금, 만화>의 발간

  웹툰의 꾸준한 성장에 힘입어 만화전문 평론지가 필요하다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2018년에 본격적인 지원을 받는 지금, 만화가 발간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용역사업으로 시작된 지금, 만화지금만화발간위원회를 구성하여 전문적인 편집회의를 통해 주제를 선정하고 필진을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발간되었다. 초대 발간위원장은 서울아카데미 박인하 이사장이 맡았으며 이후 한국만화정책연구소 김종옥 소장, 중부대학교 김신 교수,  KAC한국예술원 조익상 교수가 발간위원장을 이어 받았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총 3개의 수행기관에서 지금, 만화 용역사업을 수행했는데 먼저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거북이북스가 《지금, 만화》를 비매품으로 출간한다. 이후 2020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 용역사업이 이관되면서 2023년까지 팬덤북스가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2024년부터 국제예술기획이 수행기관으로 선정되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금만화발간위원회를 통해 발간이 되는 평론지이지만 위원장에 따라, 혹은 수행기관에 따라 그 색깔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금, 만화》는 두 번의 작은 변화가 있었다.

  거북이북스가 출간한 《지금, 만화1~5호(편집장 위근우 외)는 만화와 젠더, 10대와 만화, 장르와 다양성, 웹툰과 드라마, 웹툰과 플랫폼 등을 주제로 기획되었었다. ‘cover story’, ‘critique’, ‘notice’, ‘isseu’, ‘interview’, ‘essay’, ‘pick’, ‘kocca news’ 등의 메뉴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흥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첫 번째 만화 평론지로서 그간 다루고 싶었던 큰 틀의 주제들을 바탕으로 접근한 것이 특징이다. 팬덤북스에서 출간한 6~21호는 기존의 구성을 이어가면서 ‘이럴 땐 이런 만화’, ‘만화 속 인생 명대사 명장면’, ‘만화 vs 드라마’, ‘만화 vs 영화’, ‘지금, 만화책’ 등 보다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키워드를 넣어 구성했다. 또한 재난, 젠더, 무협, 로맨스, BL, 미스터리, 에로티시즘, 논픽션, 부조리, 웹소설, 사회적 다양성, IT, 인공지능 등 다양한 장르를 중심으로 작품을 폭넓게 비평하거나 당시 주목할 만한 사회적, 기술적 이슈를 중심으로 접근했다. 6~21호를 기획한 박세현 편집장은 만화를 좋아하는 만화 비평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진들을 섭외하여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만화를 어렵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에세이를 읽듯이 만화를 읽고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평론지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22~24호는 어린이, 청년, 중년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세대별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했다.

만화전문 평론지 <지금, 만화> 발전을 위한 제언

  《지금, 만화》제 20호에는 20호 발간 기념 대담이 실렸다. 박세현 책임 편집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는 역대 발간위원장들이 참석했다. 대담을 통해 지난 20호를 돌아보며 만화전문 평론지로서 《지금, 만화》가 갖는 의의, 기획 의도,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등에 대해 언급했다. 대담을 요약하자면 《지금, 만화》가 만화전문 평론지이자 계간지로서 한국 만화 평론계에 큰 자취를 남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들 이견이 없었다. 또한 신인만화평론공모전을 통해 많은 신인 평론가들을 배출했다는 점, 신인 평론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부재했던 만화에 대한 다양한 키워드들을 다뤘고 기획 기사, 비평과 리뷰, 칼럼 등 <만화규장각 웹진>의 메뉴와 일부 차별화되는 메뉴를 구성했다는 점, 매 호마다 흥미로운 주제를 활용하여 전체적으로 잘 정돈하여 잡지가 아닌 단행본을 보는 재미를 줬다는 점, 독자들에게 편하게 읽히는 대중적인 평론지라는 점 등이 장점으로 언급되었다. 반대로 비슷한 연유가 단점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온라인 웹진과 유사한 지점들이 있고 주제를 넓혀갈수록 전문 필진을 찾기 어려웠던 점, 메타적인 비평과 밀도 높은 평론이 적었었다는 점, 비평이 조심스러워 거침없고 날선 평론을 보기 어려웠다는 점 등을 단점으로 꼽았다.

  지금, 만화》가 출간된 2018년을 전후로 만화 웹툰 산업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미리 보기, 기다리면 무료 등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적인 안착, 노블코믹스의 흥행과 폭발적 성장, 이로 인한 스튜디오 중심 제작 시스템의 변화, 해외 시장 개척, OTT와의 좋은 궁합 등 웹툰 생태계는 크게 성장했다. 이로 인해 웹툰 기업에 큰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스튜디오가 생겼으며 50여 개의 대학에 웹툰 관련 전공이 신설되는 등 그야말로 만화 웹툰의 전성기가 온 것만 같다. 최근 들어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전성기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하다. 거기에 더해 비평과 평론도 다채롭게 채워졌다. 《지금, 만화》를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그간 목말라 왔던 만화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는 많이 다룬 듯하다. 앞으로 《지금, 만화》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 미약하게나마 의견을 보태보자면 《지금, 만화는 지금까지 대중적인 길을 잘 걸어왔다고 사료된다. 만화를 연구하며 영화, 소설 등의 작법서를 봐야 했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장르별 정리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참고와 공부가 되었다. 이제 기본적인 주제를 어느 정도 다룬 지금, 만화 평론이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던 길을 갈 수 있는 채비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평론지는 작품을 감상한 독자들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제는 보다 심도 있고 밀도 높은 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독자층이 많아지고 있다고 본다. 꼭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글만이 재미있는 글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지적 만족감을 채워주는 글이 재밌는 글이 될 수 있다. 지적 만족감이라는 것은 어려운 글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본 작품에서 해결되지 않던 다양한 궁금증들이 해소되었을때, 생각지도 못했던 관점으로 바라본 글을 봤을 때 신선한 자극과 지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비평의 비중이 보다 더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필진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원고료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다. 만화 평론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공개되는 글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한편의 밀도 높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참고 서적과 다양한 관점, 시간이 필요하다. 전체적인 원고료 상승이 어렵다면 일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원고에 따라 차등 지원해 주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겠다.

가며

  2024년, 한국에서 최초로 사단법인 만화평론협회인 (사)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가 설립되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벌써 80여 명의 만화 평론가들이 협회에 가입했고 지금, 만화》를 비롯해 웹진 <만화규장각 웹진>, <위클리툰>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평론을 게재하고 있다. 과거 소수의 평론가들이 고군분투하던 시대에 비교하면 굉장한 숫자다. 지금, 만화를 통해 꾸준히 진행한 신인 평론가 공모전이 큰 역할을 했고 많은 대학에서 배출한 만화 연구자들 역시 평론을 위해 모였다.  과거에 비할 수 없이 많아진 만화전문 평론가들은 각자의 다양한 관점을 갖고 만화를 평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진흥기관에서 지원하는 유일한 만화전문 평론지 지금, 만화는 지금 계속해서 나아가고 발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 만화》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창간호에서 중요하게 언급한 지금, 여기에 있는 만화, 동시대성과 통시성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사회적 이슈, 다양성 주요한 장르를 분석했고 리얼리즘, 에로티시즘 등 다양성과 금기에 접근하고자 했다. 평론은 독자와의 중요한 소통 방식이다. 만화와 웹툰이 단순한 콘텐츠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즐겁고, 슬프고, 감동받았던 순간들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 만화평론 비평지의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참고문헌

권선주, 전문가 평가가 영화흥행성과에 미치는 영향력: 2013년 한국개봉영화의 증거, 문화경제연구, 2014

필진이미지

백종성

현) 국립목포대학교 뉴아트영상애니메이션전공 교수
전) 배재대학교 아트앤웹툰학부 교수
전) 호남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