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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국웹툰은 위기인가?

한국 웹툰 산업은 일시적인 성장 둔화를 겪고 있지만, 글로벌 확장과 IP 다각화를 통해 성숙기로 나아가는 전환점에 있다.

2025-06-06 이현석

[그럼 한국 웹툰은 위기인가?]

0. 위기라고 그런다. 정말인가?

지금 2025년 한국 만화 업계에 있어서, 가장 중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웹툰이다. 2010년 중반부터 급속히 보급된 스마트 폰 독서에 최적화된 만화 형식. 한국이 가장 선진적인 실험을 통해 체제 구축에 성공한 매체. 웹툰이다. 큰 광명을 누리던 웹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온다.

정말 웹툰은 위기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1. 전환기의 웹툰, 코로나 버블의 종언

한국 웹툰 산업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것은 맞다고 본다. 지난 몇 년간 웹툰은 K-콘텐츠 성공 신화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최근, 여기에 제동이 걸렸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온다. 수치를 보자.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42.5%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 웹툰 시장은 202321,890억 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성장률은 19.7%로 크게 둔화했다. 과거 40~60%대의 폭발적 성장에서 10% 후반대로 떨어진 것이다. 일부에서는 2022년을 정점으로 시장 규모 자체가 줄었다고 말한다. 유저들 웹툰 소비 패턴 변화도 눈에 띈다. 국내 주요 웹툰 플랫폼의 월평균 총 이용 시간은 202311,210만 시간에서 20249,950만 시간 미만으로 11% 줄어들었다. '1회 이상' 웹툰을 이용하는 비율도 202269%에서 202362.8%6.2%포인트 하락했다.

이런 축소 경향, 경기 악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크게 지적되는 부분은 숏폼 영상 콘텐츠의 부상이 있다. 이른바 쇼츠 영상. 2024년의 웹툰 PD 전략 학회 자료를 보자면, 웹툰의 본격적 하향 시기는 2022년 후반부터 2023년 경이다. 이른바 쇼츠 영상 서비스를 SNS 각 매체가 적극적으로 도입할 때다. 틱톡의 국내 월간 총 이용 시간은 5년 전보다 3배 이상 증가했고, 유튜브 역시 '쇼츠' 기능 강화로 이용 시간이 크게 늘었다. 즉각적인 재미와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이용자들의 취향 변화가 상대적으로 긴 호흡의 웹툰 서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유튜브 쇼츠(202112)와 인스타 릴스(20212) 국내 서비스가 시작되고 이들 쇼츠 소비 시간과 웹툰 소비 시간이 일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웹툰을 소비하는 젊은 층이 쇼츠 등의 미디어로 유입되는 것이다.

공급 과잉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국내 유통 웹툰 수는 202212,273개에서 20232139개로 64.1% 급증했다. 상당수는 제작회사, 스튜디오 체제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이다. 스튜디오 작품들은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이유로, 특정 장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특정 장르 작품 공급이 많아지고 이것이 소위 말하는 카니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카니발 현상은 한정된 시장 안의 파이를 너무 많은 작품이 자잘하게 나누어 가지는 현상이다.

필자 개인으로는, 이러한 현상들 전반이 역시 무려 34개월간 계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콘텐츠 수요 폭발 때문에 벌어진 왜곡 현상의 일종으로 본다. , 시장이 과도하게 팽창되었다가 정상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 일본에서 거론된 [만화 위기론], 그것을 타파한 수퍼 아이피들의 등장

일본 만화 업계는 2025년 지금, 3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2024, 일본 출판시장은 7,043억 엔, 7조 시장으로 성장했다. 7년 연속으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고 난 다음에도 계속 안정적인 시장 추세를 보인다. 특히 전자 서적 분야 성장이 현저하다. 전자 서적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3%5,122억 엔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일본도 종이 출판만화 시장은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가는 중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와, 전자 서적 매출이 수치에 반영되기 전까지 일본 만화시장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는가? 일본 만화 업계가 큰 위기에 처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1995년 일본의 만화시장 규모는 5,864억 엔. 이후 주요 잡지 간행 부수가 추락에 가까운 감소세를 보이면서, 시장 규모도 크게 줄어들어 갔다. 2013, 일본의 만화시장 규모는 3,669억 엔 규모까지 감소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의 경우, 1995년 전성기에 월간 공칭 부수 650만 부를 자랑했다. 그러나, 수퍼 IP라 불리는 [드래곤 볼][슬램덩크]의 연재 종료 이후, 끝없는 부수 감소를 경험한다. 2024년에 이미 주간 100만 부 수준으로 감소했다. 다른 잡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때 일본 주요 만화 출판사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위기감이 존재했다.

원인은 명약관화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한 정보가치 변화다. 휴대폰에서 데이터 통신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잡지나 신문을 통해서 매일매일의 정보를 돈 주고 사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 닥친 거대한 잡지 불황에서 각 일본 회사는 자구책을 찾았다. 전자잡지를 창간했다. 이전에는 100만 부씩 팔리는 것을 전제로 한 만화잡지를 10만 부 전후를 목표로 잡아 10개를 만들어 보는 다품종소량생산 전략을 택해보았다. 잡지 숫자가 늘어나자, 한국에서 작가와 작품을 본격적으로 영입하는 일도 일어난다.

일본 만화 위기론은, 그리고 일본 사회 전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1980년대 2번째 일본 만화 황금기의 폭발적 팽창 이후의 성숙 기조에서 파악해야 한다. 일본 만화 산업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장르지 창간 붐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확장된다. 이전까지는 소년/소년 만화잡지 일변도였다. 소년잡지에 거친 폭력이나 짙은 사회적 메시지, 성애묘사가 들어간 작품들이 실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들 작품을 수용할 청년지, 성인지가 속속 창간되어 이들 수요를 흡수한 것이다. 이때 일본 만화는 폭과 깊이를 더하였다. 이러한 80년대의 폭발적인 성장을 당연하듯이 받아들이던 사람들에게,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추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일본 만화 산업은 과도한 과열기를 지나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당시 일본 만화업계의 위기는 결정적인 위기로 번지지는 않았다. 표에서 보이듯이 노란색 부분의 [단행본] 판매량이 건재했다. 일본 만화업계는 사회상의 변화에 맞춰서 대중수요에 맞춘 작품을 꾸준히 내놓아, 시장을 유지하였다. 예로 소년 점프 자체는 잡지 부수가 급격히 추락해 갔지만,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로 대표되는 새로운 작품군을 내놓아 [슬램덩크][드래곤 볼] 이후의 매출을 유지하게 하였다.

 

1) 일본 만화 시장의 변화에 대한 그래프. 초록색은 만화잡지, 노란색은 만화 단행본, 보라색이 전자 서적 매출이다.

 

일본 주간 소년점프의 잡지 간행 부수 추이. 매년 부수가 격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작품을 새로운 매체에서 만들어 낸다는 전략도 적중했다. 슈에이샤는 전통적인 출판만화 제작과 유통의 강자였지만, 앱에서의 만화 제작과 유통을 생각하고 [점프 플러스]라는 새 매체를 런칭한다. 이후 점프 플러스 지면에서 [스파이 패밀리][괴수8] [단다단]과 같은 새로운 경향에 발맞춘 유력 콘텐츠가 탄생하고 일본 만화 산업 안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라인업을 구축하게 되었다.

지금 아무도 일본 만화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위기론이 타파된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시장 전체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수퍼 아이피 들이 등장했고, 이들 작품으로부터 창출된 부가가치가 거대했기 때문이다. [귀멸의 칼날] [최애의 아이] [체인소 맨] [주술회전][블루 록] [진격의 거인] 등의 작품이 속속 등장했다. 단적인 예가 작품 [귀멸의 칼날]이 있다. 2020년 한 해 8,234만 부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321억 엔의 흥행 수입을 올린다. 일본 시장만큼, 위기론은 대작 작품의 부재에서 등장한다고 웅변해 주는 곳은 없다고 말해도 될 지경이다.


3. 한국 웹툰 성숙기에 대한 힌트, 글로벌 진출과 IP 다각화

다시 한국 웹툰 산업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모든 지표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해외 시장에서는 여전히 한국 웹툰의 인기가 높다. 2023년 기준 웹툰 수출에서 일본이 40.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북미(19.7%), 중화권(15.6%) 등이 뒤를 이었다. 네이버웹툰의 일본 시장 성장이 국내 시장 침체를 상쇄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일본에서의 웹툰 시장은 날로 성장 중이다. 그리고 이 웹툰 전체 매출의 90% 가까이 한국산 수출 웹툰이 점하고 있다. 일본의 만화시장은 당연히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이다. 이 시장 안에서 한국 웹툰은 이미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IP 다각화 노력도 활발하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마, 게임 등 2차 콘텐츠 시장이 성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웹툰 원작 드라마가 비IP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경향을 보인다. 네이버웹툰은 2023년에만 30개 이상의 연재 웹툰에 대한 영상화 작업을 진행했다. 상기했던, 일본에서 거론되던 만화 위기를 불식시킨 작품들의 등장. 여기에는 애니메이션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귀멸의 칼날]은 애니메이션 방영 전, 단행본 누적 발행 부수가 350만 부 정도로 준수한 성적의 타이틀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성공 후, 8개월 만에 누적 발행 부수 2,500만 부를 돌파한다. 이와 같은 애니화를 통한 부스팅 효과로 수퍼 아이피로 인식된 또 다른 작품에는 [강철의 연금술사]가 있다. 필자는 한국 웹툰이 세계적으로 결정적인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퀄리티의 장편 텔레비전 방송용 애니메이션 등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주장해 왔다. 2024년에 이것이 실현되었다. 바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이 등장한 것이다. 해당 작품은 거대한 히트를 기록하면서, 단순히 웹툰 판매로만 얻어지는 매출을 크게 넘어서는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애니만이 아니라 넷마블이 제작한 게임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한국 웹툰 콘텐츠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중이다. 물론 게임 업계도 웹툰과 같은 원천콘텐츠 개발에 대해서 크게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로는 한국 웹툰의 본격적인 시장 창출은 이제부터일지도 모른다.


4. 물론 과제는 많다

먼저 방대한 해적판 시장에 대한 대책 마련이다. 2023년에만 해도 웹툰 불법 복제로 인한 피해 규모는 4,465억 엔에 달한다. 한국 웹툰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수록 불법 복제와 해적판 유통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남미 지역에서의 무단 번역·유통은 정당한 수익 창출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다. 강력한 저작권 보호 체계와 국제적 공조를 통한 대응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는, 장르 쏠림 현상. 현재 한국 웹툰 시장은 로맨스, 판타지, 액션 등 특정 장르에 편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에 대해서, 심도를 갖춘 프로듀서가 작품들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설계할 필요성이 날로 올라가고 있다. , 매체에 독자를 유인하는 작품군/애니메이션화 등으로 수퍼 아이피로 육성할 텐트폴 작품군/전혀 다른 그림체와 스타일을 가진 신인 작품군 등으로 세분화하고 작품을 육성하고 배급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셋째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장르 개발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공은 한국 웹툰의 애니메이션화와 부가가치 창출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이것이 2, 3차로 더 확장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귀멸의 칼날]처럼 전 연령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그리고 애니메이션 매체에 최적화된 액션과 연출이 가능한 장르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5. 닫으면서

현재 한국 웹툰이 겪고 있는 성장률 둔화는 위기가 아니라 성숙기로의 자연스러운 전환 과정이다. 일본 만화 산업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오히려 더 견고한 산업 기반을 구축했듯이, 한국 웹툰 역시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과열된 성장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일본 웹툰 시장의 90% 가까이 한국산 수출 웹툰이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인 일본에서 한국 웹툰이 일상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한국 웹툰의 글로벌 경쟁력이 이미 입증되었음을 의미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영화, 게임의 성공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동시 성공은 한국 웹툰이 단순한 만화를 넘어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IP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네이버웹툰이 2023년에만 30개 이상의 연재 웹툰에 대한 영상화 작업을 진행한 것처럼, IP 다각화는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한국 웹툰은 위기에 처한 것이라는 의견들은 성급해 보인다. 1년 뒤 웹툰 시장은 사라지는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자취를 감추는가? 누구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위기인가? 오히려 성장통을 겪으며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는 전환기에 있다.

숏폼 콘텐츠의 부상, 공급 과잉 문제, 그리고 앞서 언급한 해적판과 장르 쏠림 등의 과제들은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는 성장하는 산업이 필연적으로 겪는 과정이며, 극복 가능한 도전들이다.

필진이미지

이현석

레드세븐 대표
前 엘세븐 대표
前 스퀘어에닉스 만화 기획·편집자
만화스토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