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되어 시대를 직면하는 여자 (1)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중심으로
서문. 시대의 보편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은 독자에게 작품의 시대상을 드러낸다. 돈이 많고 혼자 사는 남자라면 결혼을 해야 한다. 누구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말 영국이다. 그 시대에는 성별의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이 문장을 통해 현대의 독자는 가부장제의 위선을 관철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라고 말하며 정상성을 강조하는 듯한 문장은 가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듯,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혹은 그 시대에 쓰인 작품은)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보편적 질서를 드러낸다. 작품은 작가의 시선에 따라 그 질서에 반기를 들거나 풍자하기도 하며, 체제에 순종하기도 한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여성학을 중심으로 시대극 작품을 분석했을 때 두드러진다. 여성들은 여러 시대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어떤 작품 속 여성들은 도구로 기능한다. 남성 주인공의 동생이나 아내, 혹은 어머니로 등장하여 그들의 결핍이나 동기가 되는 역할을 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어떤 작품에서는 여성들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주체적으로 욕망하고 선택하는 모습을 보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이끈다. 이는 작품의 배경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지만, 작가의 가치관과 집필 시기에 의해서도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배경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다.
시대극 작품 세계의 여성 인권은 현대보다 뒤떨어진다. 과거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따라 여성 인물의 캐릭터성은 크게 달라진다. 시대적 한계를 핑계로 여성을 대상화할 것인지, 여성이 그 한계에 부딪히고 소리치게 할 것인지는 작가의 몫이다. 동시에 작가가 작품을 집필한 시대 사회상의 몫이기도 하다. 시대극 여성 주인공의 능동성은 당대를 살아가던 여성을 구현해 낸다. 즉, 역사 속에 지워진 여성 개인을 픽션으로 불러낸다.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1970년대에 그려진 만화다. 70년대 작가가 바라본 18세기 프랑스는 어떠했을까. 또, 어떤 여성 인물을 내세웠을까. 이 작품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1. 왕자가 필요 없는 장미, 오스칼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는 작품을 끌어나가는 주인공이다. 또 다른 주인공 마리에 비해 능동적이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대자 폴리냑 부인이나 잔느와 대립한다. 대부분의 사건과 갈등에서 오스칼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한다. 그는 페르젠을 짝사랑하다가 작중 후반부에서는 앙드레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아준다. 파리 빈민가에서 살던 로자리를 거두어 주고, 흑기사 사건을 겪으면서 가난한 민중의 현실을 깨닫고 고뇌한다. 결국 오스칼은 민중의 편에서 싸우며 그들과 함께 바스티유를 함락시키고 숨을 거둔다. 작가는 여성 인권이 현저히 낮았던 18세기 프랑스에서 주인공에게 능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남장여자’라는 장치를 활용한다.
오스칼은 여성인데도 남성의 것으로 통용되는 ‘오스칼’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인 자르제 장군이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것에 한탄하다가 막내딸인 오스칼을 아들로 키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덕분에 오스칼은 당시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던 것들을 영위한다. 바지를 입고 검술을 익힌다. 총을 쏘고 말을 타기도 한다. 근위대장이 되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호위한다. 작가는 이 장치를 통해 오스칼을 전통적인 성역할 규범에서 탈피시키며 주인공의 주체성을 확보한다.

△이케다 리요코,「베르사유의 장미」7권, (대원씨아이, 2009), 231p.
군인이라는 오스칼의 직책은 작품의 주요 스토리와 맞물린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위로서 그를 지킨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을 만나며 부패한 귀족 사회에 회의를 느낀다. 이는 마리를 가까이서 지키는 호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설정이다. ‘호위’라는 것은 육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리가 진정한 프랑스의 왕비가 될 수 있도록 영혼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오스칼은 마리의 안위를 걱정하며 신하로서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마리는 본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오스칼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실존 인물인 동시에 프랑스 혁명의 중심인물이다. 또한, 오스칼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살아왔던 환경도 살아가는 상황도 비슷한 동시에 다르다. 마리는 오스트리아에서 공주로 태어나 말괄량이로 자랐다. 11세에 프랑스 왕태자비로 거론이 되면서 마리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왕비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어머니와 이별하고 프랑스로 넘어와 정식 결혼을 한다.
아버지에 의해 군인의 삶을 살게 된 오스칼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왕비로 살게 된 마리. 둘 다 신분제 사회에서 기득권층으로 많은 것들을 누려왔다. 게다가 양육자에 의해 삶의 방향이 결정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마리는 작품 내내 순진한 태도를 유지하며 사치로 외로움을 달랜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지위가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라고 믿는다. 평민 의원을 ‘천하고 난폭하다’라고 정의하기까지 한다. 이 믿음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변화하지 않는다.
반면, 오스칼은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라고 명령하는 왕실의 명령을 거스르고 시민의 편에 선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과 함께 시민을 돕는다. 마리와 오스칼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오스칼은 바스티유를 함락시킨 후 눈을 감는다. 마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혁명을 살아낸 오스칼, 그리고 혁명으로 사라진 마리. 두 사람은 혁명과 죽음이라는 필연적 사건과 운명을 공유하지만, 동시에 대비된다.
작가가 오스칼에게 군복을 입히고 칼을 쥐여 준 이유, 그리고 그에게 왕비의 호위 역할을 부여한 이유는 작품 후반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오스칼과 마리, 두 주인공은 프랑스 혁명을 피해 갈 수 없다. 역사적 사건을 개인이 (그것도 혁명을 왕비와 귀족이) 회피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직면해야 하는 문제다.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고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던 오스칼은 복종을 거부하고, 스스로 사유하며 시민의 편에 서기를 ‘선택’한다. 인형 같았던 오스칼이 주체성을 되찾는 순간이다.
2. 왕비의 호위에서 혁명가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는 인물의 내면 변화이며 곧 이야기의 핵심 뼈대이자 주제가 된다. 스토리 작법서 『이야기의 핵심』(리비 호커, 한스미디어)에서는 캐릭터 아크라는 개념을 ‘감정과 정신 면에서 인물의 성격이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변화하는 성장의 흐름’이라고 설명한다. 오스칼은 마지막 순간까지 검과 총을 들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군신이다. 다만, 왕비를 호위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 위해서가 아닌,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오스칼의 ‘캐릭터 아크’다.
작중 초중반부 오스칼은 주체적인 동시에 수동적인 인물이다. 이 무슨 궤변인가 싶지만 오스칼이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게 설계되었다. 자르제 장군은 오스칼에게 ‘남자’로서의 삶을 강요한다. 오스칼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당시 귀족 남성들이 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오스칼은 같은 시대에 사는 다른 여성에 비해 규율과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묶여 사는 삶을 살게 된다. 자르제 장군에게, 그리고 자르제 가문이 충성을 바치는 왕실에. 여기서 오스칼이라는 캐릭터에게 결핍이 부여된다. 여성이지만 사회가 보편적으로 남성성이라 여기는 요소를 따르며 사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 심지어 오스칼은 페르젠 앞에 남성성을 답습한 모습으로 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에 괴로워한다. 장식 인형이라며 그를 비하하는 베르날의 말에 충격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오스칼도 변화한다. 귀족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로자리와 흑기사이자 신문기자였던 베르날을 만난다. 어린 나이에 귀족 사회의 위선에 희생된 샤를로트를 만난다. 혁명가 생쥐스트와 로베스 피에르를 만나고 병사 아랑과 그의 동생 디안느를 만난다. 많은 이들을 만나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오스칼의 세상에는 균열이 간다. 오스칼은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호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던 시절로, 아버지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점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결국 오스칼은 위병대 부하들과 함께 바스티유를 함락한다. 이것이 오스칼의 변화, 즉 캐릭터 아크다. 근위대에서 위병대로, 그리고 혁명가로 성장한다.

△혁명에 참전하는 오스칼, 이케다 리요코,「베르사유의 장미」7권, (대원씨아이, 2009), 90p.
3. 왕자가 되어 시대를 직면하는 여자
순정만화의 주요 타깃은 어린 여성이고, 그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여성 주인공은 독자층이 이입하기에 편하도록 평범하거나 만만하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은 ‘백마 탄 왕자’여야 한다. 독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므로. 이는 오늘날의 로맨스 플롯을 차용한 웹툰이나 웹소설에도 어느 정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왕자님’이란 무엇일까. 바로 구원이다.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 앞에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세주다. 그렇다면 오스칼은 어떠한가? 그에게는 왕자가 없다.
오스칼은 페르젠을 사랑하지만 어디까지나 짝사랑일 뿐이다. 게다가 페르젠은 여느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처럼 오스칼을 구원하거나 구애하지도 않는다. 제로델이나 아랑과도 키스를 나누기는 하지만, 그들과 맺어지지도 않는다. 페르젠과 제로델은 군복을 입은 오스칼에게 연민을 보낸다. 심지어 제로델은 오스칼에게 청혼하기 위해 오스칼이 아닌 자르제 장군을 찾아간다. 또한, 아랑은 오스칼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여자라는 이유로 대장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오만을 보인다. 그들은 오스칼을 구원하기는커녕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앙드레는 오스칼의 구원인가. 그럴 수 없다. 앙드레는 정의를 위해 뛰어드는 오스칼에게 조력자가 되어주지만, 구원자가 되지는 못한다. 그와 오스칼이 맺어진다면 오히려 오스칼의 걸림돌이 된다. 당시 사회는 귀족 여자와 평민 남자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스칼은 자신이 앙드레를 사랑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가 작품 후반에서야 그의 마음을 받아준다. 백마도 없고 왕자도 아닌 하인을 자신의 사랑으로 선택한다. 오스칼에게 왕자는 필요하지 않다.
오스칼을 구원하는 것은 왕자가 아니다. 오스칼 자신이다. 루소, 볼테르의 도서를 찾아 읽은 것도, 회의장 평민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푸이에 장군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체포당한 것도, 아랑 일행을 구하기 위해 로자리와 베르날에게 향한 것도 오스칼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그는 그렇게 왕실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하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난다. 그는 당당히 시민의 편에 선다. 사회가 요구하는 귀족 여성의 삶이 아닌 군인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자신을 구한다. 그는 그렇게 왕자가 된다.
4.1970년대 일본과 18세기 프랑스, 그리고 욕망하는 장미들
디즈니 플러스는 2020년경 「피터팬」, 「아기 코끼리 덤보」 등 고전 작품에 인종차별 경고 문구를 붙이고 7세 미만의 아동이 시청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고전 명작’이라고 명명되는 작품들에서는 대부분 구시대적인 표현과 장면이 등장한다. 고전의 숙명이다. 그때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던 것이 현대에서는 최선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전이 있기에 현재의 창작물도 존재하는 것이다. 시대착오적 내용이나 발언이 나온다고 고전을 배척하기보다는 작품의 한계성을 비판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1970년대 일본, 여성 작가의 시선이 담긴 18세기 프랑스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을까. 2020년대 현대인의 시선에서 오스칼을 향한 앙드레의 사랑은 문제적이다. 앙드레는 오스칼에게 자신의 마음을 받아달라며 그를 덮친다. 이 과정에서 오스칼의 상의가 찢어진다. 심지어는 그는 오스칼과 자신의 신분 차이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면서 오스칼을 살해하고 자살할 계획을 꾸민다. 와인에 독을 타서 오스칼에게 건넨다. 오스칼은 독잔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입에 대려고 하고, 앙드레는 와인잔을 깨버린다. 사랑이 아닌 집착과 폭력이다.
작중 곳곳에는 여성 혐오적이고 구시대적인 표현이 존재한다. 18세기 프랑스라는 시대적 배경만으로도 충분히 성차별적이다. 거기에 1970년대의 시선이 가미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작품을 소비할 때 도덕적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마리의 왕태자비 시절을 담은 1권에서는 마리와 뒤바리 부인의 외적 갈등이 사건을 빚는다. 베르사유에서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 수가 없다. 마리는 뒤바리 부인이 매춘부 출신이자 국왕의 애첩이라는 이유로 그를 혐오하고 병풍 대하듯 무시해 버린다.

△ 이케다 리요코,「베르사유의 장미」1권, (대원씨아이, 2009), 150p.
문제는 뒤바리 부인이 ‘창녀’였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점이다. 마리는 뒤바리 부인에게 인사를 건네며 ‘왕태자비가 창녀에게 패배했다’라며 눈물을 흘리고, 오스칼은 마리가 진정한 여왕이라며 감탄한다. 이 작품에서 뒤바리 부인은 평면적이고 성적으로 타락했으며 왕을 유혹하여 권력을 쟁취하는 악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뒤바리 부인 사건에서 아델라이데, 빅토와르, 소피는 ‘올드 미스’로 지칭된다.
물론, 구시대적인 장면이 앙드레의 구애나 뒤바리 부인 사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리의 친구가 되어 권력을 얻은 폴리냑 부인이 오스칼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자 오스칼은 그를 비웃는다. 그리고 갱년기가 온 것이냐고 묻는다. 폴리냑 부인은 발끈한다. 여성을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혹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하하는 것은 여성이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해야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개인을 향한 도발을 넘어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
작품에 나온 다른 여성 혐오 표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여성이 나이 드는 것,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것, 여성이 순결을 지키지 않는 것. 이것들은 결코 비난받을 이유가 될 수 없다. 1970년대의 한계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놓을 수도 있다. ‘18세기 프랑스라면 여성 인권이 훨씬 낮았을 때인데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그렇다. 배경은 18세기다. 하지만 1970년대의 창작물이며, 2020년대까지도 독자에게 소비되는 작품이다.
작가는 역사와 허구를 매개체로 독자에게 현재를 보게 만든다. 최소한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피력하는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서는 어두운 시대에서도 작은 불꽃이 되는 주인공들처럼 살아가라는 교훈을 전하기도 한다. 그 말은 즉, 시대극이라는 이유로 여성 혐오 표현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의견은 궤변이라는 것이다. 허울 좋은 핑계다. 그것은 그저 창작자의 무지이며, 이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독자의 게으른 시선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여성 인물들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하며 성장하거나 부서진다. 본 작품에서는 오스칼 이외에도 여러 여성이 등장한다. 실존 인물도 있으며 가상 인물도 존재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삶을 살며 무언가를 욕망한다. 로자리는 폴리냑 백작 부인이 어머니를 마차에 치여 죽도록 내버려두자 복수를 꿈꾼다. 오스칼을 짝사랑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잔느는 로자리의 이복자매지만 전혀 다른 목표를 지닌 인물이다. 최후까지 돈을 갈망한다. 작품에서 가장 사치와 허영만을 좇는 악인이라고 정의 내려도 과언이 아니다. 폴리냑 백작 부인 역시 잔느와 비슷한 결을 가졌다. 사치와 권력을 탐하며 오스칼을 위험에 몰아넣는 안타고니스트다.
또한, 작품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변론한다. 마리는 작품 내내 정치적 희생양인 동시에 가해자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역사 속 여성혐오를 재현한다. 파리 시민은 국왕보다 왕비에게 더 많은 분노를 배설한다. 성난 군중들이 마리를 지칭하는 단어는 ‘매춘부’, ‘오스트리아 여자’ 등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이라는 마리의 정체성은 물어뜯기 좋은 먹잇감이 된다.
작가는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행해졌던 마녀사냥을 구현하면서도 마리를 평면적인 피해자만으로 그리지 않는다. 마리는 끊임없이 사랑 때문에 갈등하고 갈망한다. 마리는 페르젠을 사랑하는 자신과 왕비로서의 자신을 사이에 두고 혼돈에 빠진다. 작가는 사랑을 두고 치열하게 내적 갈등을 벌이는 모습을 통해 개인으로서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주목한다.
결론. 혁명의 소용돌이에 뛰어든 오스칼
본 작품은 왕비를 지키는 호위가 민중의 편에 서는 과정을 명징한 캐릭터 아크로 표현하고 독자를 설득한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순정 만화답게 사랑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오스칼이 혁명가가 되는 여정이다. 오스칼은 작중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절망한다. 파리 시민의 현실을 알려주는 로자리, 베르날, 아랑 등을 만나기도 한다. 여러 난관을 겪고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며 혁명에 뛰어들 것을 ‘선택’한다.
작가는 오스칼 옆에 백마 탄 왕자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스칼이 직접 백마를 타고 군대를 이끌도록 만든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과 남장여자라는 만화적 상상력을 결합한다. 그 결과, 작품은 균열을 낸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남성보다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낯선 존재인 오스칼을 개입시킨다. 오스칼은 ‘정상성’의 규범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그런 오스칼을 보며 누군가는 동경하고 누군가는 무시하며 또 누군가는 연민한다. 오스칼은 많은 차별과 억압을 감내한다. 오스칼은 귀족 사회의 이방인인 셈이다.
그러므로 오스칼은 다른 귀족들에 비해 파리 시민의 비참한 현실을 쉽게 깨달았다. 귀족으로서 자신이 누려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귀족이라는 사실에 수치를 느낀다. 오스칼은 ‘비정상’이기 때문에 파리 시민의 처지에 쉽게 공명한다. 오스칼 역시 소외와 부조리를 경험했으므로. 이러한 시각에서 작품을 볼 때 오스칼이 프랑스 혁명에 참여하는 것은 필연이다.
이렇듯 시대극 장르 여성 주인공의 능동성은 당대를 살아가던 여성을 구현해 낸다. 즉, 역사 속에 지워진 여성 개인을 픽션으로 불러낸다. 로자리가 가난한 프랑스 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듯, 오스칼은 프랑스 혁명에 뛰어들었던 민중을 대표한다. 더 세부적으로 보자면, 프랑스 혁명에 참여한 여성을 상징한다.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뮤지컬과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 재탄생되었다. 성 역할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오스칼의 행보는 현시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신분제 사회는 철폐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기득권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단언컨대 인류 역사상 특권층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는 없다. 이 작품은 사회의 부패를 비판하고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18세기의 이야기가 1970년대에 쓰인 것이고, 50년의 세월을 넘어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작가 이케다 리요코는 시대의 보편화된 ‘정상성’에 반기를 들고 소수자성을 가진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비주류 오스칼의 저항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격랑의 시대, 오스칼은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몸을 내던진다.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기꺼이 부서지기를 택한다. 시대에 복종하지 않고 오스칼답게 죽는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구원하고 비로소 왕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