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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2009년은 땡땡tintin이 에게 위험한 한해가 될 것 인가?

땡땡(tintin)의 원작자인 에르제(Herge)의 탄생 백주년이였던 2007년은 그의 팬들에게는 대단한 해였다. 각종 전시회와 기념사업이 줄을 이었고, 필립 고당(Philippe goddin)이 쓴 에르제전기를 비롯해서 브뤼셀 출신의 이 거장에 대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

2008-07-01 박경은

땡땡(tintin)의 원작자인 에르제(Herge, 본명George Remi)의 탄생 백주년이였던 2007년은 그의 팬들에게는 대단한 해였다. 각종 전시회와 기념사업이 줄을 이었고, 필립 고당(Philippe goddin)이 쓴 에르제전기를 비롯해서 브뤼셀 출신의 이 거장에 대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에르제 미술관 건립소식과 탄생백주년 즈음에 발표된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 잭슨에 의한 땡땡의 영화화 소식일 것이다.

땡땡 이미지
땡땡 이미지

하지만 이 두 사업이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에르제의 포괄적인 권리상속자인 미망인의 새 남편 닉 로드웰(Nick rodwell)이 기획한 이 사업들은 에르제의 판권 소유자들에게는 일종의 전쟁의 선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일은 1983년 에르제가 사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생전에 에르제는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그의 작품을 출간한 출판사 카스테르만(Casterman)과 잡지사 르 롬바으(Le lombard)간의 경쟁을 끌어낼 수 있었다. 르 롬바으 사는 땡땡의 2차 생산물과 자회사인 광고 에이전시 피블리아으(Publiart)를 통한 땡땡Tintin의 광고를 담당하고 있었다. 한편 르 롬바으사의 또다른 자회사인 벨비지옹(Belvision)사는 땡땡이의 영화화 판권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에르제는 땡땡이에 대한 2차 판권의 사용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앙굴렘에 있는 에르제의 기념상
앙굴렘에 있는 에르제의 기념상

작품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상속권은 그의 생전에도 문제였지만 그의 사후에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판매전략의 부재, 난립하는 회사들간의 무분별한 사용, 무차별적인 사용허가 면제 계약 등의 문제가 생겨났고, 땡땡이의 지속적인 저작권 관리가 보장되지 못했다.
방송국이자 애니매이션 제작사인 까날 쁠뤼스(Canalplus)로부터 방송권 재구입을 시도했을때, 에르제의 미망인이 관리하던 Fondation Herge와 에르제 생전에 경영에 대해 조언했던 알랑 바랑이 운영하는 Tintin licencing과의 분쟁은 저작권을 둘러싼 복잡한 사정을 짐작케 해주는 사건이였다. (에르제 사후에 에르제의 자문역인 알랑 바랑(Alain Baran)은 Tintin licencing을 설립했고, 에르제의 미망인인 파니 헤미(Fanny Remi)는 Fondation Herge를 설립하는데, Fondation Herge는 저작인격권 (moral rights)만 소유하고 있었을뿐 실질적인 권리는 Tintin licencing이 거의 소유하고 있었다. Tintin licencing은 까날 쁠뤼스(Canalplus)에 팔려나가고 ,이후 Fondation Herge가 Tintin licencing을 1억 3천 2백만 벨기에 프랑에 다시 사들인 이후 믈랑사으 Moulinsart SA로 이름을 바꾼다.)
1983년에 이미 스필버그는 탕탕에 관심을 가졌고 , 저작권의 일부를 사들이고 싶어했지만 ,구체적인 실행에 이룰수가 없었다. 시장의 요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잡지인 <르 주그날 드 탕탕Le journal de Tintin> 역시 지속적으로 출간될수 없었고 , 몰락은 시작되었다.

닉 로드웰의 출현과 함께 저작권 문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는1990년대 초반에 런던에서 땡땡의 기념품점을 운영했던 사람이었다. 에르제의 미망인이자 전권 상속자인 파니 헤미(Fanny Remi)는 그의 역동적인 이미지와 매력에 반했고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른다. 결혼식을 올린 얼마후에 닉 로드웰은 부인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다. 그가 처음에 한일은 70여개 회사에서 사용되고 있던 탕탕의 사용허가에 대한 관리를 시작하는 것이였다. 한때 탕탕 기념품점을 운영했던 로드웰은, 자신도 면허생산을 하는 회사들의 근시안적인 태도와 보잘것없는 상행위 행태의 희생자였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모든 권리를 한 회사로 모으고 자신의 모든것의 생산을 직접 관리감독 해 나갔다. 수많은 면허생산 계약이 정지되면서, 수십년동안 탕탕의 파생상품을 만들면서 운영돼왔던 많은 회사들이 그의 적이 되었고. 그 중 몇몇은 파산에 이르기까지 한다.

18년 동안 이어진 로드웰의 이런한 조처들 때문에 믈랑사으사는 땡땡에 관한 새로운 서적들의 독점적지위를 갖는 출판사가 되고, 경쟁사들은 물랑사으사의 제한적인 조항들 때문에 에르제의 이미지 사용에 관해 심한 제약을 받게 된다.
뒤이어 로드웰은 수차례의 유명잡지사의 땡땡에 관한 특집기사들을 앞세운 멋진 전시회들을 열었고, 벨기에와 영국에서는 땡땡 뮤지컬이 공연되었다. 의류와 캐릭터 상품 등 땡땡을 모티브로 한 고급상품들을 판매되었고, 100주년을 기점으로 브뤼셀 근처의 대학촌인 루방라 뇌브(Louvain le neuve)에 에르제 미술관의 건립이 시작된다. 특히 그는 할리우드의 보증수표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피터잭슨과의 세편의 땡땡의 모험 영화화에 관한 사인을 얻어낸다.

벨기에에 들어설 에르제 미술관의 모형
벨기에에 들어설 에르제 미술관의 모형

에르제 미술관의 설립을 알리는 기사
에르제 미술관의 설립을 알리는 기사

그러나 이런 성공 뒤에는 항상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만약에 스필버그에 의한 영화화가 실패하거나, 더 심각하게 스필버그가 땡땡의 세계를 왜곡할 경우, 20년 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로드웰의 공든탑은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로드웰은 땡땡의 모든 판권을 거대 미디어 그룹에 넘겨버릴 수도 있고 그것을 막을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다가올 2년간은 땡땡의 운명에 굉장히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