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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무엇이 프랑스에서 망가를 팔리게 만드는가?

7월초 파리 근교의 빌빵뜨(villepinte)에서는 망가와 일본문화상품들을 소개하는 일본엑스포가 열렸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많은 관램객들이 몰려들었다. 프랑스에서 소극적으로 소개되던 망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만화영화 아키라가 소개된 이후부터이다. 1990년부터...

2008-08-01 박경은

7월초 파리 근교의 빌빵뜨(villepinte)에서는 망가와 일본문화상품들을 소개하는 일본엑스포가 열렸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많은 관램객들이 몰려들었다. 필자도 거리에서 일본엑스포에서 나눠주는 종이가방을 들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청소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을 정도였다. 서점의 망가코너에는 항상 쭈그리고 앉아 망가를 읽어대는 청소년들이 있다.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망가는 프랑스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망가관련행사가 줄을 잇고 각종 도서전이나 만화페스티발 등에서도 중요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만화 3권중 1권이 망가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망가가 프랑스에서 이렇게 큰 성공을 이룰수 있었을까 ? 이번달 프랑스의 만화전문지 zoo에는 무엇이 프랑스 독자들을 망가로 이끄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망가의 성공요인을 살펴보자.

2007년 일본 엑스포의 포스터
2007년 일본 엑스포의 포스터

프랑스에서 소극적으로 소개되던 망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만화영화 아키라가 소개된 이후부터이다. 1990년부터 글래나(Glenat) 출판사는 아키라를 소책자와 하드커버 형태로 출간했다. 이후 시험적으로 출간했던 드래곤볼이 성공하자 글래나(Glenat)는 애플시드, 란마2/1, 크라잉 프리맨, 건암 등을 연이어 출간한다. 2008년까지 드래곤볼의 누적판매부수는 1천5백 만부에 이른다.
망가의 예상밖의 성공은 다른 출판사들도 본격적으로 만화출간에 뛰어들게 만드는 데, 카스테르만(Casterman)은 건암(gunM) 다니구치의 걷는 인간 등을 프랑스에 소개했고, 통캄(Tonkam)출판사는 최초로 순정만화를 일본의 독서방향인 우에서 좌로 읽는 형태로 출시한다.

프랑스 망가판매부수 1위의 나루토
최근의 망가붐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 망가판매부수 1위의 나루토

최근의 망가붐을 대표할만한 시리즈는 나루토이다. 나루토는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망가인데 권당 대략 22만부가 팔려나가서 총 판매부수는 현재 5백만부에 이른다. 이정도의 판매부수는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모든 책 중의 최고라고 말할 수 있으며 나루토의 판매부수는 인기소설가인 마크 레비나 막스 갈로의 판매부수를 앞지른다. 이 책의 상업적 성공은 이 책의 출판사인 카나(Kana)의 다른 망가 판매에도 영향을 미쳐서 이제 청소년을 위한 망가는 프랑스 도서시장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중 하나가 되었다. 카나(Kana) 출판사는 여세를 몰아 데스노트를 출간하고 이 약진덕택에 최초로 망가를 출간했던 글래나(Glanat) 출판사를 앞지른다. 피카(Pika) 출판사 또한 지티오(GTO)나 겟 배커스(Get Backers), 그리고 클램프 그룹의 만화들을 출간함으로써 판매부수에서 글래나(Glenat) 출판사를 앞서는데 성공한다. 이 모든 망가들이 평균적으로 2만 5천부에서 6만부 정도가 팔려나가는데, 데스노트 9권 같은 경우는 13만 7천부까지 팔려나갔다.

이들 출판사들 말고도 다른 4개의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망가들도 높은 판매부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아카타(Akata)와 통캄(Tonkam) 라벨을 가지고 있는 델쿠으(Delcourt) 출판사와 쿠로가와(kurokawa) 빠니니(Panini) 솔레이으(Soleil) 출판사등이 그것인데, 지금까지 소개한 7개 출판사의 책들이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아시아 만화시장의 9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망가 열풍은 나루토나 아키라에서 시작되었지만, 몇몇 작가주의 망가가 소개되면서 비평적으로도 주목받게 되는데 그것은 다니구치 지로가 2003년 앙굴렘 페스티발에서 최고앨범상을 수상하면서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꽤 많은 수의 작가주의 망가가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망가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소년만화와 순정만화이다.
망가의 이런 큰 성공덕택에 2008년의 파리북살롱에는 망가 빌라지라는 큰 부스가 마련되었고, 2007년 파리근교의 빌빵뜨에서 열린 일본엑스포에는 8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대단한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2008년의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몇 년 사이에 망가는 출판업계 종사자들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고, 요즈음은 대부분의 서점들에서 망가를 돋보이게 하기위해 서가를 재배치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엄청난 망가시장의 성장을 가져왔을까?
그것은 우선 망가필(Mangaphile)들의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특별히 만화팬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들은 일본문화상품을 접하면서 망가팬이 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망가는 유럽만화와 달리 비디오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카드 게임, 피겨인형 등 파생상품 코스프레를 포함한 완전한 하나의 세계의 일부이다. 망가필은 대개 소년만화나 순정만화를 읽는 청소년 독자로서 한 개나 두 개정도의 시리즈를 열심히 읽고 사모으며 서점의 망가코너에 쭈그리고 앉아 나머지를 읽어대는 이들이다. 특히 서구의 독자들은 유럽만화에서 볼 수 없는 점을 망가에서 발견하는데 그것은 독자와의 근접성이다. 즉 독자들은 망가라는 오브제 자체와 망가작가가 자신들과 가까이 있고 접하기 쉽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망가는 부피가 작아서 어디든지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고 유럽만화에 비해서 권당 가격이 훨씬 저렴해서 경제적 부담 없이 사볼 수 있다. 망가의 작가들은 책표지의 날개부분이나 책의 뒤쪽 몇 페이지를 할애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통해 독자는 작가와 더 친숙해졌다고 느끼게 된다. 망가에서 다루는 주제도 소년만화에서는 우정과 의무, 순정만화에서는 사랑과 미래에 관한 것들로 청소년들이 스스로 많이 하는 질문들이다. 하드커버가 주류인 유럽의 시리즈 만화의 경우 다음권이 나오기까지 적게는 몇 달, 많게는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반해, 망가는 일본에서 이미 출간이 이루어진 상태라면 1달에 한번 꼴로 다음권이 출간된다. (최근에 프랑스에서는 이런 일본만화의 특징들을 도입한 예들이 보이는데, 시리즈를 각권이 완성될 때마다 출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시리즈자체를 거의 끝낸 시점에 출시해서 각 권간의 출시간격을 줄인다거나, 60에서 80여 페이지에 이르던 한권분량을 120페이지에서 180페이지 정도까지 늘리고 판형을 줄이거나 하드커버대신 소프트 커버를 사용하는 것이다. 요즘은 일본만화체로 그림을 그리는 프랑스 작가들을 모아 라벨을 만드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망가필들은 이런저런 다운로드를 많이 하는 부류이긴 하지만 망가는 그들이 망가필임을 증명하는 오브제이므로 그들은 망가를 사모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망가 출판사들이 영화나 음반회사들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망가시장의 성장요인중 하나이다.

망가팬의 두번째 부류는 베데필(BDphile)인데 이들은 에르제(Herge)부터 미국의 코믹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만화를 고루 섭렵하는 진정한 만화팬들이라 볼수 있다. 이들은 특히 망가의 그래픽과 시나리오적 요소를 높이 평가한다. 베데필들과 망가와의 첫 만남은 대게 ‘뭐 이렇게 못난게 다있나!’ 라는 부정적인 반응에서 시작되지만, 오토모나 다니구치, 이케카미 료이치, 우라사와 나오키 등의 망가를 접하면서부터는 망가역시 위대한 만화 작품의 반열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고, 이런 베데필들의 시각전환은 망가가 서구에서도 주류만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망가팬의 마지막 부류는 그냥 만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출간되는 망가시장의 절반정도를 9개 정도의 시리즈가 점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반절은 2천부에서 6천부 정도가 판매되는 수백여종의 망가들이 차지한다. 이 만화들은 낚시나 요리, 코믹부터 에로틱 만화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어서 관심사나 연령이 다른 모든 독자층을 끌어모을 수 있다.

최근들어 프랑스의 망가출간형태는 두가지의 상반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일본에서 출간되는 모든 소년만화와 순정만화를 찾아 출간하는 것인데, 일본에서 약간의 성공만 거두었다하면 무조건 판권을 사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만화는 그리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접근은 함량미달의 시리즈들이 범람케할 위험성이 크다.
두번째는 소형출판사들이 비교적 판권료가 싼 오래된 망가들이나 특이한 소재들을 다룬 망가들을 출시하는 것이다. 망가의 역사는 50년 이상이나 되지만 망가가 프랑스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기 때문에 오래된 수작들을 발견해 출간하는 것은 잠재적인 독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데스카 오사무의 작품들이 출간되었고 북두신권역시 재출간을 앞두고 있다. 순정만화의 감수성을 갖춘 남자청소년을 위한 망가나 에로틱만화 동성애적 주재를 다룬 순정만화도 소형 출판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다.

일본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
일본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

프랑스의 망가붐은 함량미달 작품의 무분별한 출판과 지나치게 선정적인 만화의 범람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가시장의 성장이 쉽게 멈출 것 같지는 않다. 망가의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프랑스 만화계에서 망가의 출현 때문에 베데가 위협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아마도 프랑스의 만화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고, 다양한 취향을 가진 독자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만화책을 사모으는 것이 취미인 나이 지긋하신 공대교수를 알고 있고, 만화를 취미삼아 그리다가 출간을 생각하는 변호사들도 만나본적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만화 그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프랑스에서는 나이든 사람과도 오랜 시간 얘기할 수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만화를 접하고 자라온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만화에 대해 할 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 보인다.

이제 한국만화도 프랑스 시장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폭력성과 선정성이 일본만화에 비해 덜하고 작가주의 성향의 만화도 유럽만화팬들의 입맛에 맞는것 같다. 프랑스에서의 일본만화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서구에 망가가 소개되기 이전부터 일본자체의 만화시장이 커서 좋은 작품과 좋은 작가들이 많이 출현할 수 있었던 토양이었기 때문에 가능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층의 만화독자가 출현하는 동시에 만화시장이 더 커져서 좋은 작품 좋은 작가가 더 많이 나오고 한국만화가 서구만화시장에 굳건히 자리 잡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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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