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 출판사의 현실과 편집부의 고충을 다룬 가와사키 쇼헤이의 만화 <중쇄 미정>의 표지. 만화에 등장하는 도서출판 ‘표류(漂流)사’의 말단 편집자인 주인공이 왼팔을 테이블 위에 턱, 걸친 채 모든 것을 초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책이 팔릴 리 없어.” 그런데, 사실 책이란 정말 팔릴 리 없는 물건이다. 더구나 지금은 해가 갈수록 더욱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이제 책은 팔리지 않을 걸 각오하고 내는 어떤 의지의 산물이다. 만화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출판업계 종사자들로부터 먼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난 마츠다 나오코의 <중쇄를 찍자! 重版出來!>(2013)가 일본의 만화 편집부의 일과 출판 과정을 리얼하게 다루되 주인공 ‘쿠로사와’의 성장을 그려 어느 정도 ‘열혈’과 감동과 희망이 있는 반면(그러니까 이 만화는 일종의 만화 편집자 버전 <바쿠만>이다), 이 단권 만화 <중쇄 미정>은 시종일관 냉소적일 정도로 현실적이다 못해 절망적일 지경이다. 여기에선 가끔 나오는 실낱같은 의지가 도리어 열혈보다 강하다.
△ 가와사키 쇼헤이 <중쇄 미정 – 말단 편집자의 하루하루> 김연한 옮김, GRI.jOA 2016
1화부터 “편집은 지옥이야.”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인쇄소 입고 시점에 부랴부랴 하고 있던 편집/교정 일을 몇 시간 연기시키자 손을 놓고 담배부터 피운다. “애당초 출간 계획이 터무니없었어.” 이러한 장면 옆에는 친절하게 용어와 개념 설명이 붙는다. ‘출간 계획 : 중요한 계획이지만 터무니없는 게 보통. 대개 계획대로 안 됨.’ 솔직히 책을 서둘러서 내봤자 반품 폭탄을 맞을 게 뻔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일을 대충 마쳐 디자이너에게 떠넘기곤(내일 아침까지 부탁드려요!) 편집장에게 확인을 받는다. 훌훌 넘겨 확인하는 편집장은 묻는다. “너, 무슨 생각 하면서 이 책을 편집했어?” 으음, 하고 잠시 생각한 주인공은 답한다. “오로지 일정에 맞추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오는 말. “OK. 보내.” 몇 시간 뒤 편집장은 먼저 퇴근하고 이미 막차는 끊긴 시간, 회사에서 자려는 주인공은 사무실 한쪽에 놓인 종이 박스 안에 들어가 눕는다. “끝나면 목욕하러 가야지” 중얼거리는 그는 노숙자나 다름없고, 옆에 붙는 설명. ‘약소 출판사 대부분은 택시비가 따로 안 나옴. 야근을 하든 회사에서 자든 야근 수당은 보통 안 나옴. 그러나 편집자에게는 흔한 일상.’ 벽 한쪽에 붙은 표류사의 슬로건은 이렇다. “휩쓸리지 마, 휩쓸어” 박장대소하며 다음 2화로 페이지를 넘기면 주인공이 말한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일을 해?” 이 만화는 이런 식이다. 극화체가 아닌 만화체로 그린 만화가 현실을 다루고 있을 때의 힘. 극화체로는 견디기 힘들었을 현실의 무게감이 ‘웃픈’ 개그로 승화된다.
의욕 없고 대충 일하고 늘 깜빡하고 오자 같이 큰 실수를 내기 일쑤인 주인공은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라”던 편집장에게 사직서를 내민다. “제 무능함에 질려 그만두겠습니다.” 과거 베스트셀러를 냈던 명편집자이지만 현재는 편집에 깊이 관여하는 대신 최종 확인만 하고 뭔가 도통한 듯한 분위기의 편집장은 말단 직원의 사직서를 보자 “불위야 비불능야(不爲也, 非不能也)” 맹자의 말이 나온다.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뜻. 편집장이 ‘유능한 편집자’란 무엇인지 묻자 주인공은 답한다. “중쇄를 팍팍 찍는 책을 편집하는…” 편집장은 대화를 멈추고 주인공을 데리고 술을 마시러 간다. 그리고 중쇄의 허상을 깨는 진실을 말한다.
실제로 일본의 소규모 출판사 편집자인 저자는 머리말에 한국판 출간 제안을 받고 기쁨보다 먼저 ‘무모하다’고 생각했단다. 중쇄는커녕 얼마나 책의 흥행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인가. 그런데 그것은 실제로 출판사 편집인들에게서 듣고 느꼈던 그들의 현실 인식과도 닮았다.
소규모 독립 출판과 1인 출판사에 대한 관심이 있어 창업 강의를 찾아 들은 적이 있다. 나름 견실한 장르 출판사 대표께서 먼저 수강생들에게 말한 것은 이 사업의 희망찬 미래보다 업계의 냉엄한 현실이었다. 그가 들려준 통계에 의하면 출판업은 3년 안에 망할 확률이 높고, 신생 출판사 10곳 중 9곳은 책을 한 권도 발행하지 못한다고 한다. 책을 내면 확실히 망하는데, 그 전에 이미 망한다고 할까? 기본적으로 대중은 책을 안 읽고, 출판계는 항상 어렵다. 도서정가제로 영업이익마저 감소했다. 일단 책을 내도 ‘첫 책이 팔리는 건 이상한 일’이다. 책이 안 팔리면 제작비는 고스란히 사라진다. 예전에는 덤핑시키는 꼼수라도 쓸 수 있었으나 이젠 법으로 막혔고, 책은 킬로그램 단위로 값을 매기는 폐지 신세가 되어도 단품이라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출판사 창업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죠.” 강사의 시니컬한 웃음, 수강생들의 침묵.
그가 예로 든 장르 문학의 경우 초판을 3000부 찍었다고 가정하면(이만큼 찍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라 요즘은 1500부에서 1000부, 인문학은 몇 백 부 안 찍는다고 한다), 어떻게 초판 3000부가 소진된 이후에는 더는 팔리지 않는다. 장르 문학의 기본 수요자, 책을 사서 읽는 독자가 시장에 3000명 있는 셈이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곧 책을 안 읽는 사람도 그 책을 사서 읽는다는 뜻이다. 중쇄의 고민은 곧 단종, 절판에 대한 고민이다. 책을 더 팔 자신이 없기에 품절시키고 나면 꼭 출판사에 전화가 온다고 한다. 반드시 이 책을 사야하는데 재고가 없는지 묻는 독자의 전화. “이 책을 사려는 사람이 더 있나보군, 찍을까?” 그래서 1000부 더 찍었더니, 안 팔린다. 이미 희소성의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어쨌거나 이 경우는 행복한 고민이다. 중쇄 시점에 책을 더 팔기 위해 광고를 하는 건 더욱 무모한 짓이라고 한다.
이러한 업계의 현실에 더하여 출판사 업무는 급여와 처우가 열악하면서 늘 마감에 시달리는 괴로운 직종이다. 그러나 고학력의 인재들이 열악한 근로 조건을 감수하고 일한다. 작가에 대한 동경, 사회적인 의식, 어쨌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버티는 것이다. 필자는 한때 별 고민 없이 출판사발(發) 기획 아이템을 물었다가 끝내 흑역사가 된 책을 만든 적이 있다. 나중에는 생계를 위해 대필 작가(책에 적힌 저자와 실제로 글을 쓴 사람이 다르다)와 유령 편집인(건당 프로젝트별로 기획/편집에 참여하고 책이 완성될 시점에 빠진다, 역시 책에는 이름이 안 들어가거나 ‘고마운 분’ 등으로 언급된다), 윤필 아르바이트(저자의 정신 나간 문장과 엉망진창 비문을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간결한 문장으로 다듬는다) 등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항상 사기꾼들만 만났던 건 아니다. 출판 업계에는 악덕 기획자에게 고통 받을지언정 의미 있는 책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훌륭한 분들이 더 많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으로 돌아오면 늘 이기적이게 된다. 번역의 질, 북 디자인, 오탈자 등 책의 완성도 정도야 굳이 세세하게 따지고 싶지 않다. 내준 것만 해도 고마운 책들이 많으니까. 문제는 ‘안 나오는’ 책들이다. 나오다 갑자기 안 나오는 책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출판 만화의 세계에서 자주 겪었다.
날마다 일본에선 새로운 만화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직 정기 간행물 만화가 건재한 그 쪽에선 웬만히 인기가 없는 작품이 아니라면 단행본 출간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수입, 번역해서 보는 우리 입장에선 자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가 ‘정발’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어쩔 수 없다. 인기 만화가 정발의 우선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니까. 소수만 아는 작품이 정발되려면 그 작품성이나 대외적 명성, ‘컬트’에 해당할 정도의 관심도가 필요하다.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국내 정발을 기대하기엔 그림의 떡인 만화들이 꽤 많다. 필자가 1인 출판업을 궁금해 한 이유에는 내가 보고픈 만화를 아무도 안 내줄 것 같으니 직접 수입해서 내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크게 있었다. 물론 주변에서 반드시 망할 거란 말은 많이 들었다.
예전엔 국내의 몇 개 만화출판사가 외국 만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유일한 루트였다. 지금도 정식 출판에 있어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이 도래했다. 외국에서 지금 어떤 만화가 나왔는지에 대한 정보는 출판사 편집부보다 독자가 훨씬 잘 안다. 불법 스캔본이 큰 문제였던 저작권의 사각지대는 역자와 식자의 세계에 돌입했다. 독자가 국내에 정발되지 않은 만화를 직접 번역하여 인터넷에 공유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소개와 전파의 주체는 역전된다. 먼저 전문 애호가의 블로그, 커뮤니티, 불법 공유 사이트 등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알려진 후에 정식 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만화를 수입,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이미 알고서 정발을 기대하는 만화를 수입하는 식으로 역전된 것이다. 물리적인 형태가 필요한 산업이 무형의 정보로 전파 가능한 인터넷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발생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분명히 기형적인 상황이다. 출판사 입장에선 기대 수입이 감소하지만 어쩌면 기획과 편집의 고민도 덜어진 것은 아닐지 의심스럽다. 이젠 독자가 반드시 사겠다는 책만 정발하면 되니까. 출판물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음반, 영상물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은 국경도, 막을 방법도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 정발이 안 된 특정 작품이 궁금한 경우 언제든 열어볼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바로 손 안에, 눈앞에 있다. 저작권과 해적질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거부감이 있는 독자라 해도, 이미 직구하면 편한 세상이다. ‘아직 안 나온’ 만화는 기대할 여지가 있고, ‘분명 안 나올’ 만화는 포기하면 편하다 해도, 정말 슬픈 것은 ‘나오다가 만’ 만화다. 독자에게는 절판보다 더 원통한 상황. 단권에 끝난다면 상관없지만 만화의 경우 압도적으로 시리즈물이 많다. 정발 단행본을 꼬박꼬박 기다리다가 갑자기 도중에 끊기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정발 단행본이 이후로 끊겨 필자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대표적인 만화들.
아라이 히데키 <더 월드 이즈 마인>(국내 5권에서 중단. 일본 2001년 전14권 완결),
아사노 이니오 <잘자 뿡뿡>(5권에서 중단. 2013년 전13권 완결),
치아이 나오유키 <죄와 벌>(2권에서 중단. 2011년 전10권 완결).
정발 단행본이 중간에 끊기는 경우는 흔히 다음과 같은 이유라고들 한다. 1. 단행본 판매량이 예상을 훨씬 밑돌아 간만 보고 발매 취소.(단행본 끊어먹기로 악명 높은 모 출판사 브랜드가 자주 그런다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2. 원저자나 본사 사정의 판권 재계약에 따른 문제.(이 경우는 사실 여부를 독자들에게 공지만 정확히 해준다면야 눈물을 머금고 이해할 수 있다) 3. 작품의 이후 전개가 국내 정서와 검열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경우.(요즘에도 이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의심이 가는 몇몇 작품들이 있다. 선정성과 그에 따른 논란이 한편으로는 돈을 벌어줄 것 같지만, 출판업은 은근히 몸을 사리는 보수적인 업계이기도 하다. 책 때문에 작가와 편집자가 잡혀가는 일이 잦았던 과거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정발이 끊긴 작품을 그래도 혹시, 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난 연인을 언제 돌아올지 모르잖아, 하며 마음속 빈자리를 남겨두는 일만큼 슬프다. 중쇄는커녕 금방 절판되어 모진 ‘책테크’ 업자들의 인질이 되어도 좋으니 기존 독자 대상 ‘스타트업’ 비슷한 거라도 해서 제발 끝까지 내주었으면 싶은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하다못해 전자책으로라도 내주면 안 된단 말인가! 심한 경우 결국 참다못한 어느 독자가 직접 역/식자가 되어 불법 공유의 주체가 되는 일도 있다. 서로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밖에 없는 다른 독자는 고마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며 그가 행한 불법의 동조자가 된다. 결말을 확인하고 나니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아름다웠다면, 저작권을 수호하려 나머지 단행본의 직구 주문을 한다 하더라도 찜찜한 기분은 독자의 것으로 남는다. 이런 기분은 영혼에 썩 좋지 않다.
<중쇄 미정>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자. ‘표류사’의 편집장은 주인공에게 묻는다. “중쇄를 못 찍는 책은 나쁜 책일까?” 그는 말한다. “만 명을 위한 책을 편집하면 천 명을 버리게 돼.” 주인공은 그 말에 술잔을 탁, 하고 내려놓는다. 편집장은 계속해서 말한다. ‘천 명에게 만 명 안으로 들어가라고, 만 명과 같은 취향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책의 목적이 아니다. 책이란 그 만 명이 되고 싶지 않기에 읽는 것이고, 만 명을 위한 책만 편집하다 보면 천 명을 위한 책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천 명은 천 권의 대가밖에 안 준다. 돈은 못 번다는 얘기다.’ 편집장의 마지막 말은 책이 사라지는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의미 있는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다. “독자로부터 돈을 받는 시대는 지났어. 책을 위한 책을 편집해.”
만화책이 엄청난 인기작들을 제외하면 과연 몇 부나 팔릴까 싶다. 1인 1디바이스 이상을 가지고 노는 이 시대에도 끝내 구시대의 산물인 종이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오직 종이책만을 책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독자들이 출판업계의 불투명한 미래에 얼마나 시장성 있는 고객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마우스로 긁어서 복사와 붙여넣기를 할 수 있는 정보와 텍스트를 두고 책의 효용가치 자체를 묻는 이도 있을 거다. 하지만 책을 통해 울고 웃고 깨달아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끝내 책을 포기하고 나면 다음엔 독자도 작가도 끝내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을 공감하지 않을까? 만화란 앞뒤로 광고를 달고 한번 휙 스크롤로 내려 보고 마는 것이 아닌, 하드에 담겨 언제 에러날지 모르는 jpeg과 압축파일 무더기가 아니라 종이에 인쇄되어 책장에 꽂혀 있어야 하는 아름다운 그림책이고, 전자책에서 텍스트를 바로 메모해두는 일이 너무너무 편리하긴 하지만 책이란 종이에 찍힌 활자로서만 영혼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우기고 싶다.
의미 있는 책은 은근히 수명이 길다. 저자와 독자보다, 출판사보다 더 길다. 그러니 중쇄를 찍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우선은 미정일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이 항상 먼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