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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의 사진으로 보는 만화야사 36 : 김민, 고유성, 이정민

1944년 경북 출생(본명 : 김무웅). 영남대를 졸업한 재원이다. 1968년 경제 주간지 등에 시사만화를 연재한 것이 수습기간에 속한다.

2017-11-21 박기준



김민

1944년 경북 출생(본명 : 김무웅). 영남대를 졸업한 재원이다.
1968년 경제 주간지 등에 시사만화를 연재한 것이 수습기간에 속한다.
1970년 인기만화가 임창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스토리만화를 배우면서 특히 스토리 부분에 더 열중했다. 그러나 성급하게 독립할 것을 결심, 계속 스토리작가로서 도와주길 바라는 스승의 요청을 뿌리치고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가 극도의 빈곤에 빠진 경험도 있다.
1970년 무렵은 홍콩의 검객영화가 들어와 상영되면서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에 서부활극이 있다면 일본에는 사무라이, 중국에는 무협이야기가 있다. 모두 총이나 칼, 주먹이나 쓰임새, 기법과 인물 배경이 다를 뿐 스토리는 대동소이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시대를 사는 인간의 삶의 얘기를 엮어 가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재미와 감동을 주느냐 하는 차이일 뿐이고 그것이 경쟁력이 되어 살아남거나 도태되는 작품을 가름할 뿐이다.
김민은 바로 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기로 작정한다. 극장에서 이런 류의 영화를 몇 편 보고 그 여흥이 사라지기 전에 곧장 스토리를 써 보면서 작품에 들어가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이렇게 해서 중원을 배경으로 한 무협극화 ‘불나비’가 출간된 것은 1972년의 일이었다. 이 작품은 발간되자마자 1973년 ‘소년 조선일보’에 연재하며, 크게 히트를 쳤다.
이 인기에 편승하여 그는 ‘검왕’ ‘탈옥’ 등을 시리즈물로 연속 펴내면서 만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초기에는 검술로 상대를 이겼으나, 나중에는 독자들이 식상해지지 않도록 싸우지 않고도 승부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인 아이디어를 구사한다. 가령 무예가로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심리를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 더욱 인기가 높아진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무려 5년간이나 연작으로 그려 나갔다.
그의 인기에는 만화체와 사실적 그림체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독특한 그림체로서도 한몫을 하였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일본 열도를 휩쓴 고미가와 준페이의 소설, ‘인간의 조건’을 응용해서 ‘인간 제로 지대’ 란 제목으로 편작 만화화한 것 또한 인기가 있었다. 물론 연속편으로 이어갔다.
그는 외국 영화와 소설광으로 불릴 정도로 옆구리에는 언제나 소설 한권이 끼어져 있었다.
1980년 만화에 회의를 느끼고 창작을 중단, 외유로 시간을 보내다 10년 만에 돌아오지만 그때는 이미 시대의 감성은 변하여 그의 독자들은 자취를 감추고 일본 만화 시대가 된 것이다. 경력 1990년 강남지역 시의원 역임.
지금은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없지만 그의 무협물을 섭렵한 그때의 독자들은 중원의 ‘불나비’가 아직 뇌리에 생생할 것이다.


△ ‘소년 한국 일보’에 처음 선보여 대성공을 거둔다. 
 그 무렵, 홍콩의 무협영화가 아시아를 휩쓸고 있어 운도 좋았다.

△ ‘불나비 시리즈’(1977년)

△ 김민의 걸작만화들 
 김민은 무협, 극화, 명랑만화, 성인극화, SF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좌: 1979년, 1975년, 1976년 한국도서)

△ ‘학병’, ‘인간 0지대 시리즈’ 
 김민이 한때 임창 선생의 착품일을 돕던 때,
 ‘학병’이라는 반전 군인극화 스토리를 사용한 적이 있다.(1963년, 국제문고),
제2차 대전 중 일본군으로 끌려가 처참하게 희생된 젊은이의 인권유린을 고발한 
 일본 고미카와 준페이 반전 소설 ‘인간의 조건’을 김민이 극화해 한국에 소개했다. 
 (1974년 문일출판사)

△ ‘헬로우 놀부형’ 
 고전 흥부와 놀부를 우수꽝스럽게 변형 비꼬아 풍자한 연재 시대 에로틱 코믹물 
 (1990년 스포츠 조선 4쪽 연재)

△ ‘걸레 방자젼’ 
 고전 춘향전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구성 풍자한 에로틱 코믹물. 
 (1991년 주간만화 2쪽 연재)


△ 국군 장병 위문 (앞 좌: 김영하, 박진우, 임수, 이재화, 이덕송,  
둘째 좌: 이상무, 한분건너 김민, 박기준(만화가협회회장), 김인홍(국장), 
김기옥, 이우봉, 배봉규, 옆: (아동 문학가들) 이원수(아동문학가협회장), 
 끝: 이향원, 윤소영, 김창원, 강철수, 이우정, 김기태, 황정희, 김찬, 노석규, 김원빈) 
 (1975년 문화인 단체 최전선 위문)

△ 야유회 4인 
 (좌: 김민, 이상무, 강철수 등) 
 (1989년 10월 수유리)

△ 김민 편안한 자세로 잠시 휴식(1989년 10월 수유리)


고유성

1948년 경기도 출생(본명 고재훈).
1967년 홍익대학 상경학과 중퇴. 경제학도에서 만화계로 전격적인 진로를 바꾸어 진출한 이색 학력의 소유자다. 말하자면 직업과 취미가 바뀐 격이다.
1973년 청소년만화 ‘고박사의 탐정소동’으로 작품 활동 시작.
1974년 ‘공포의 유령산장’을 포함하여 4×6판으로 64쪽짜리 3권 발행.
1977년 월간지 <우등생>에 SF 만화 ‘로보트 킹’을 발표하여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인기에 힘입어 대 장편으로 연재하게 된다.
이어서 ‘해저마녀’ ‘우주의 침입자’ ‘괴인제국’ ‘지하로 가다’ ‘왕녀’ ‘우주 전사대’ ‘시간여행’ 등을 계속해서 연재했다.
1978년 <소년신문>에 ‘우주에서 온 왕자’ 연재.
1979년 ‘우주탐정 고박사’ 연재. <어깨동무>에 ‘남극 대모험’ ‘번개 기동대’ 연재.
1981년 <보물섬>에 ‘혹성 로봇 델타’ 연재. ‘복제인간’ ‘우주의 늑대 혼’ ‘우주패트롤’ 연재.
1984년 <학생과학>에 ‘기갑경찰 타이푼’ ‘우주 특공대’ 연재.
1984년 <새소년>에 ‘전격제로 작전’ 연재.
1986년 <소년경향>에 ‘전광인간’ 연재. 고유성의 작품에서는 시종 일관 공상과학 극화가 함께하고 있다.
그가 장기간에 걸쳐 잡지 연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독자들의 인기가 꾸준하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미국의 수퍼맨, 일본의 아톰, 철인 28호의 인기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SF붐에 대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공상과학 만화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작가들이 손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독자들의 상식을 능가할 만큼 과학적 상식도 풍부해야 하지만 그것도 언제나 새롭고 신선하며 의외의 감성을 자극할만한 발상이어야만 식상함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SF 작품을 잡지에 계속해서 최장 연재를 달성하는 기록을 가진 것은 단연 고유성 뿐이다.
권선징악의 단순 이분법으로 인기를 끌고 가거나, 황당무계한 전투 씬 등으로 한 몫 보았던 로봇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 이제는 우주의 변화, 앞으로의 세계 환경,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모든 이야기들도 과학의 원리에 어느 정도 근접해야, 아니, 근접을 넘어 안내해야 할 만큼 독자들의 질이 높아진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후반기의 공상과학 만화는 외국의 공상과학 소설, 영화 등에 관한 연구 분석도 꾸준히 하면서 각종 과학서적을 통해 폭넓은 지식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1977년 <한국만화가협회> 이사 역임.
1980년 <하이텔 SF만화 연구모임> 회원.
만화계에서는 별명이 고박사로 통하며 온화한 성격을 가진 그는 모든 작가들과 친화적인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 ‘로보트 킹’ 
 조국을 위해서 제2의 생명으로 태권을 선택한 배달,  
수많은 시련과 생과사의 갈림길에서도 기어코 임무를 완수.(1977년 어문각)

△ ‘로보트 킹과 해저마녀’ 
 우주인이 지구의 위기를 막기위해 선물한 무적병기 ‘로보트 킹’을 이용해 조종사 ‘유탄’과 
IQ300의 천재소년 ‘고박사’, 그리고 사이보그 미소녀 ‘효연’이 
 지구정복을 노리는 악당들의 공격을 막아낸다.(1977년 월간 우등생 연재)

△ ‘로버트 킹’ 
 극장 애니메이션 개봉, 완구의 프라모델이 판매될 정도로 마케팅 펼친 작품. 
 박진감 넘치는 로봇 공격동작과 아군과 적군의 전투가 흥미롭게 묘사되었다.

△ ‘애니메이션 로보트 킹’ 
 극장가에서 화제 일으켜(배영랑 감독. 선 프로덕션 제작)

△ 고유성 걸작 만화들과 고유성의 캐릭터 팬싸인(1989년 10월) 
 (첫째 줄 좌: 1985년 5월 성심도서 만화왕국 86, 12, 
 둘째 줄 좌: 1986년 12월 요요코믹스, 1982년 대룡출판사, 팬싸인)

△ 카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1975년 만화선집 게재)

△ 고유성 축결혼 주례 박기준(1977년)(만화가협회 회장)

△ 작업장에서

△ 한국 만화 100주년 전시관에서 
 좌 맹상수와 함께 고유성(과천 국립 미술관 2009년 6월)


이정민

1941년 충북 단양 출생.
학창시절부터 재담과 그림에 소질이 있어 친구들이 항상 모여들고 있었다.
친구들의 노트에는 이정민의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목표를 위해서 상경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화가를 꿈꾸었다.
명랑 만화는 물론 모험과 용기를 북 돋우는 통쾌한 내용의 청소년 만화를 출판해 줄 곳을 찾아다녔다.
인기 만화를 많이 펴내는 크로바문고와 인연이 되어, 작품을 보여주고 상담했다.
출판사의 요구는 S.F줄베르느의 ‘바다 밑 2만리’를 현대판 명랑물로 재구성 하라는 것이었다. 1970년 ‘해저왕 상어호’가 출간 인기가 있어 ‘상어호타고 세계일주 등’시리즈로 본격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스토리의 특징은 즉흥적이다.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듯 항상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한다.
1972년 도돔바 행진곡 시리즈로 만화방 시대에, 가장 각광 받는 젊은 작가로 등장했다.
‘대추 검객’시리즈, ‘뜻대로 멋대로’시리즈 ‘코메디 똘랑이’시리즈 ‘척척박사 이야기’시리즈 후반기에는 ‘마술의 나라’시리즈에 이어 ‘마술학교’, ‘마술의 세계’시리즈로 인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만화가 협회 임원으로 봉사활동에도 많이 참여했다.
요즘 건강이 안 좋아 수원에서 요양 중에 있다. 하루빨리 쾌유하여 작품을 다시 보여주길 독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 마술의 세계(1997년 제2회, 아시아 만화 대회 출품작)

△ 대추검객 대추라 불리는 조그마한 꼬마검객이 아버지를 찾아 유랑한다. 
비록 몸은 작지만 비범한 검술 실력은 당해낼 자가 없다.(1964년 크로바 문고)

△ 주인공 똘랑이가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 여러 가지 사건, 사고에 휘말리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기술과 도구로 상황을 헤쳐 나간다.(1965년 크로바문고)

△ ‘뜻대로 멋대로’, ‘코메디 똘랑이’ 
 언제나 어디서나 뭐든지 알아맞히는 척척박사 이야기, 명랑만화.(1964년 크로바문고), 
체구가 작을뿐, 뭐든지 잘 해내는 똘랑이와 그의 친구들 이야기(1966년, 진선미문고)

△ 카툰 ‘형 놀려주기’ 
 개구쟁이 동생 똘랑이가.

△ ‘동물 행진곡’ 
 동물들이 인간세계에 들어와 얽히고설키는 배꼽 잡는 명랑 물로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았다.(1972년 1월 7일 소년한국일보 장편 연재)

△ ‘뒤죽 박죽 야구단’ 
 누구도 못말리는 말괄량이 꼴레는 골목대장으로 동네애들을 모아 야구단을 조직. 아랫동네 팀과 겨눈다. 요절복통 코믹 만화(1999년 새소년 크로바문고)

△ 카툰 주제: ‘바르게 살기’ 
 한국만화 산업 예술전 출품작(1994년 10월)


△ 춘천 국제 애니타운 페스티벌 이정민 전시관 
 (좌: 권오성, 필자, 이정민) 
 영상만화 산업으로 출발했으나 시장이 바뀌어 스포츠산업 쪽으로 변경되었다.(1999년 9월)

△ 만화가 협회 부설 만화 문화 연구소 운영위원회가 임홍조 위원 사회로 열렸다. 
(앞 좌: 권영섭(회장), 임홍조, 이정민. 한국만화가협회 1995년 11월)

△ 일본 불법 만화 퇴치운동 벌린 만화가들 
 중앙: 이정민 등 
 (1995년 10월 파고다공원 인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