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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만화 : 김도훈, <뉴욕 뉴욕 (라가와 마리모 작)>
라가와 마리모는 정말 위대한 일을 이 만화로 해냈다. 그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굳이 이성애자들의 사랑과 똑같은 것이라고 묘사할 생각도 없다. 굳이 그들의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할 생각도 없다(그렇게 봤다면 당신은 오해한 것이다). 진짜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수집한 것이 분명한 라가와 마리모는 90년대 당대의 독자들이 꽤
2017-03-23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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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뉴옥 (라가와 마리모 작)
만화방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니,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오열을 했다. 꺼이꺼이 우는 소리에 옆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허영만의 대본소 만화를 읽던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을 느끼고도 나는 도무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마도 90년대 중반 즈음의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읽던 만화는 <뉴욕 뉴욕>이었다. 뉴욕에 가고 싶어서 눈물은 흘린 것은 아니었다.
90년대는 남성 동성애자 캐릭터들을 내세운 일본 BL(Boy’s Love) 만화가 만화방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다. 대부분은 해적판이었다. 이 BL 만화라는 건 도무지 웃기기 짝이 없었다. 대부분 여성 동인들을 중심으로 한 언더그라운드 만화였던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거기에 진짜 피와 살을 가진 동성애자 캐릭터는 없었다. 비뚤어진 성적 환타지만 가득했다. 나는 여성들이 대체 왜 BL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나의 이해가 딱히 필요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욕망이 있게 마련이고, 그 욕망들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고백하자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BL 만화들을 꽤 탐독했다. 90년대 중반에는 동성애자를 소재로 한 컨텐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만화는 더욱 드물었다. BL은 만화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동성애자 컨텐츠였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가진 것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한다. 다만 BL 만화를 만화방에서 빌리는 건 꽤 두려운 일이긴 했다. BL 만화들은 모두 하나의 책장에 모여 있었다. 그 앞을 서성이는 자는 누구든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만화 애호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물론, 누구도 그 앞을 서성이는 나에게 관심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리고 뻔뻔하지 못했다.
조심조심 책장에서 빼낸 BL 만화를 모두 섭렵해가던 어느 날, 나는 <뉴욕 뉴욕>이라는 제법 근사한 책 표지를 발견했다. 심지어 만화를 그린 사람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아기와 나의 라가와 마리모였다. ‘이런 유명한 작가가 BL을 그렸을 리 없어!’라고 생각했다. 책을 펼쳤다. 어랍쇼. 빼도 박도 못할 BL만화였다. 해적판으로 나온 이 만화를 빌려서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오후 강의는 모두 빼먹을 생각이었다. 주전부리를 탁자 위에 세팅해 놓고 담배를 피며(그때는 만화방에서 담배를 필 수 있던 시절이다!) ‘뉴욕, 뉴욕의 첫 장을 넘겼다. 나는 이것이 지금까지 본 BL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두 번째 장을 넘기는 순간 깨달았다.
‘뉴욕 뉴욕’은 뉴욕 경찰 ‘케인'이 게이바에서 ‘멜'이라는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케인과 멜은 아주 다른 인물이다. 케인은 스스로 게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경찰이라는 직업 때문에 커밍아웃은 꿈도 꾸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싫어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한 명의 파트너와 오래 사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멜은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받았던 그는 오히려 그 때문인지 단 하나의 사랑을 찾아서 영원히 정착하고 싶다. 그들은 사랑하고 오해하고 싸우고 다시 사랑하고, 심지어 동성애자를 노린
범죄자에게 납치를 당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게 힘겨운 커밍아웃의 과정을 거치고, 그러면서 일생을 함께 살아간다.
라가와 마리모는 정말 위대한 일을 이 만화로 해냈다. 그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굳이 이성애자들의
사랑과 똑같은 것이라고 묘사할 생각도 없다. 굳이 그들의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할 생각도 없다(그렇게 봤다면 당신은 오해한 것이다). 진짜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수집한 것이 분명한 라가와 마리모는 90년대 당대의 독자들이 꽤 불편해할 수 도 있는 이야기들까지 용감하게 담아낸다.
이를테면 유부남 게이의 존재다. 케인의 경찰 동료 중 한 명은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여성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게이다. 케인은 그를 게이바에서 우연히 만난다. 그 동료는 비밀을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 어느 날 케인은 멜에게 경찰 동료를 소개시켜준다. 멜은 “그런 건 싫어. 모두가 상처를 받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동료가 왜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고 여자와 결혼했는지 이해한다. 사람은 복잡하다. 한 개인의 선택에는 수 많은 인생의 변수들이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모든 이성애자들의 삶의 방식이 다르듯이, 모든 동성애자의
삶의 방식도 다를 수 있다. 라가와 마리모는 가장 아름답게 사랑을 완성해낸 게이 커플의 일생을 담아내면서도, 다른 것들은 결국 다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뉴욕 뉴욕'은 시대가 변해도 결코 낡아서 사라지지 않을 걸작이다.
지난 2015년 미국 대법원은 결혼 평등 판결을 내렸다.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법제화한 것이다. 동성애자
부부의 자녀 입양도 허락했다. 이 놀라운 날에 버락 오바마의 백악관은 성소수자들의 상징인 레인보우 색 조명을 쐈다. 세상은 바뀌었다.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법제화 판결이 내려진 날 서울의 퀴어 퍼레이드에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모여들었다. 한국도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동성결혼 법제화의 시대를 맞이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만 정부는 이미 동성결혼 법제화로 나아가고 있으며, 일본 역시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동성커플 파트너십 제도를 신설하고 있다. 그 물결은 한국으로 곧 들어오고야 말 것이다.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빠르게 진화한다.
십여 년 전 나는 서점에 갔다가 ‘뉴욕 뉴욕' 라이센스 정식 발매본을 발견했다. 만화방에 앉아서 몰래 해적판을 읽으며 꺼이꺼이 오열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이 근사한 만화를 주문해서 볼 수 있다. 나는 정식
발매본을 구입하며,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이미 멋진 신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씨익 웃었다. ‘뉴욕 뉴욕'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입양 딸의 가족과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생을 마친다. 라가와 마리모가 이 만화를 그렸을 시대에는 케인과 멜이 결코 법적으로 결혼하거나 자녀를 입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라가와 마리모를 직접 만난다면, 지금이 ‘뉴욕 뉴욕'의 속편을 그릴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존경을 듬뿍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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