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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4회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수상작 소개

매년 1월 마지막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커다란 만화 축제가 앙굴렘 국제 만화축제 (Festival International de Bande Dessinee dAngouleme - 약칭 FIBD)이다. 74년부터 시작되어 그동안 여러 가지 이슈와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어 낸 이 축제에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앙굴

2017-02-16 윤보경
매년 1월 마지막 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커다란 만화 축제가 앙굴렘 국제 만화축제 (Festival International de Bande Dessinee dAngouleme - 약칭 FIBD)이다. 74년부터 시작되어 그동안 여러 가지 이슈와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어 낸 이 축제에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앙굴렘 축제의 그랑프리 수상자와 다양한 부분의 수상작들이다.


△ 그림 1. 2017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수상작들.
에디터와 작가들 뿐 아니라 만화에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이 수상작을 유심히 살피는 이유는 차기 축제에서 기획 전시나 초대 작가, 컨퍼런스 등으로 수상자와 수상작의 콘텐츠가 사용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수상의 이슈와 축제 콘텐츠로서의 재가공은 만화 소비 증진으로 이어진다. 축제가 끝나고 난 후에도 지역 도서관, 지역 서점, 지역 만화 축제 등에서 수상작들은 계속 조명되고 읽힌다. 수상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좋은 작품에 대한 보상의 차원만이 아니라, 그에 얽혀지는 다양한 이슈들을 만들어내고 만화 소비를 향상시킨다.

앙굴렘 만화 축제의 그랑프리 (Grand Prix) 수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를 선발해 수여한다. 수상자는 대부분 이미 오랫동안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이다. 차기 만화 축제에서는 수상자의 특별 전시가 기획되고, 그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차기 만화 축제의 포스터가 제작된다.
△ 그림 2, 3. 2015년 그랑프리를 수상한 오토모 가츠히로의 2016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포스터와 2016년 그랑프리를 수상한 에르만의 2017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포스터.
축제가 시작되기 2~3주 전부터 프랑스의 작가들과 에디터들, 만화 관련 인사들은 그랑프리 선발을 위한 투표를 온라인상에서 시작한다. 2017년 그랑프리 후보로 좁혀진 세 명의 작가는 스위스 작가인 코제(Cosey), 프랑스 작가인 마누 라흐스네(Manu Larcenet), 미국 작가인 크리스 웨어(Chris Ware) 였다.
그랑프리는 다른 상들과 다르게 축제 첫날 가장 먼저 발표된다. 최종 후보로 올랐던 작가들 가운데 최종적으로 코제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2018년 앙굴렘 만화 축제에서는 그의 특별전과 그의 예술적 감성이 묻어있는 포스터가 선보여질 것이다.
그랑프리 수상자 코제의 본명은 베르나르 코정데(Bernard Cosendai)로 스위스의 유명 만화가 데립(Derib)의 문하생으로 활동하면서 만화작가 경력을 쌓아 나갔다. 60년 후반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기고하였고, 75년에 잡지 땡땡(Tintin)에서 연재를 시작한 그의 작품 조나단(Jonathan)은 큰 성공을 거뒀다. 그는 이 작품의 단행본인 <케이트 Kate>로 82년 앙굴렘 페스티벌 ‘최고 작품상’을 수상한다. 이후에도 작품을 계속 이어갔는데, 대표작으로는 <이탈리아 여행, Le Voyage en Italie (1988년작)>, <강을 바다로 이끄는 것, Celui qui mene les fleuves a la mer (1997년작), <있었던 것, Celle qui fut (2013년작)>, <월트 디즈니 헌정작 미스테리한 멜로디, Une mysterieuse melodie dapres Walt Disney, (2016년)> 등이 있다.
△ 그림 5. 은색의 야수 트로피를 거머쥔 코제
△ 그림 6, 7. 코제의 대표작 <케이트, Kate>과 최근작 <있었던 것, Celle qui fut>
그랑프리를 제외한 상들은 모두 작가가 아닌 작품에 수여되며, 축제가 가장 무르익은 토요일 저녁 축제 시상식이 열린다.
△ 그림 8. 시상식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야수 트로피들 : 금색은 황금 야수상, 파란색은 큘투라 독자상, 바바리코트와 모자 차림의 트로피는 탐정추리물상, 녹색은 문화유산상, 주황색은 대안만화상, 그 외의 상에는 검정색 트로피가 수여된다.
올해 최고의 책으로 뽑힌 황금야수상 (Le Fauve d’Or - Prix du meilleur album) 은 에릭 렁베 & 필립 드 피에르퐁(Eric Lambe & Philippe de Pierpont)의 <전투 이후의 풍경, Paysage apres la bataille (악트 슈드 출판사, Actes Sud)>가 수상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표지와 4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로 눈길을 끈다. 책을 펼치면 미니멀한 작풍이 흑백과 회색의 뉘앙스로 표현되어 있는데, 칸의 크기가 대부분 일정하게 반복되고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적 연출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파니(Fanny)는 무언가에 쫓기듯 차를 운전해 눈 내리는 캠핑장까지 대피한다. 차 안의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블랙버드(Blackbird)는 그녀가 피하고 싶은 고통, 죽음 등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캠핑장에서 머무는 동안 그녀는 검정 새를 사냥하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려 애쓰는 것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 그림 9. 황금 야수상의 <전투 이후의 풍경> 표지와 내용
심사위원특별상 (Le Fauve dAngouleme - Prix Special du Jury)은 마르탕 베롱 (Martin Veyrond)의 <사람에게 필요한 지구의 것, Ce quil faut de terre a l’homme (다르고 출판사, Dargaud)>에게 돌아갔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자신의 재산과 이득, 땅 넓히기에만 관심을 갖는 19세기의 농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도덕적 이야기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곳곳에 블랙 코미디가 스며져 있다.
△ 그림 10. <사람에게 필요한 지구의 것>의 표지와 내용.
시리즈상 (Le Fauve dAngouleme - Prix de la Serie)은 일본 작품인 <치이사코베, Chiisakobe (르 레자르 누아 출판사, Le Lezard Noir)>에게 돌아갔다. 작가는 미네타로 모치즈키(Minetaro Mochizuki)다. 일본 쇼와 시절의 소설가, 슈고로 야마모토(Shugoro Yamamoto)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호러 만화 <드래곤 헤드 (Dragon Head)>로 큰 성공을 거뒀던 미네타로 모치즈키는 이 작업을 위해 연출 방식과 그래픽 스타일에 최대한의 변신을 주었다.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인간적, 감동적 드라마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 그림 11. 미네타로 모치즈키의 <치이사코베>
새로운 발견상 (Le Fauve dAngouleme - Prix Revelation) 수상작은 한국 만화계에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인 최초로 앙굴렘 수상작에 그 이름을 올린 앙꼬(Ancco) 작가의 <나쁜 친구, Mauvaises filles (꼬르넬리우스 출판사, Editions Cornelius)>가 본 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숨기고 있는 어둡고 환멸스런 부분을 청소년/젊은 여인의 시각으로 솔직하고 먹먹하게 그려낸 감성이 큰 호응을 받았다.
△ 그림 12. 앙꼬의 <나쁜 친구>
문화유산 상 (Le Fauve dAngouleme - Prix du Patrimoine)은 86년에 작고한 카즈오 카미무라(Kazuo Kamimura)의 <이혼자 클럽, Le Club des divorces (카나 출판사, Editions Kana)>가 수상했다. 이 수상을 기념하며 앙굴렘 축제에서는 그의 작품을 기획전으로 선보였다. 일본의 엔카가 울려 퍼지는 전시장에는 카즈오 카미무라의 원고 작품, 일러스트 작품 등이 테마로 나뉘어 소개되어 있었다.
수상작 <이혼자 클럽>은 70년대 초 연재된 작품으로 술집 바를 운영하는 젊은 이혼녀 요코를 주인공으로 하여 바를 찾는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과 어려움, 부끄러움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 사회에서 이혼녀가 가져야만 했던 불명예, 치욕을 고발했다.
△ 그림 13, 14. <카즈오 카미무라 - 망가의 판화가> 전시 포스터와 전시장 내부 전경
△ 그림 15. 카즈오 카미무라의 <이혼자 클럽>
탐정 추리물 상 (Le Fauve Polar SNCF)은 알렉상드르 크레리스 & 티에리 스몰드렌(Alexandre Clerisse & Thierry Smolderen)의 <악랄한 여름, L’Ete Diabolik (다르고 출판사, Dargaud)>가 받았다. 15세의 주인공, 앙투완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비밀요원과 관능적인 여인의 등장, 아버지의 실종 등 드라마틱한 다양한 사건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1967년 여름, 그 시절의 향수를 살리는 여러 장치들을 배경으로 한 탐정 수사 장르의 이야기로, 신랄하고 강렬한 색의 이미지로 미니멀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 그림 16. 알렉상드르 크레리스와 티에리 스몰드렌의 <악랄한 여름>
독자 투표를 통해 진행된 큘튜라독자상 (Le Prix du Public Cultura)는 마튜 본옴(Matthieu Bonhomme)의 <럭키 루크를 죽인 사람, L’Homme qui tua Lucky Luke (다르고/럭키 코믹스, Dargaud / Lucky Comics)>가 받았다. 벨기에 작가 모리스(Morris)의 40년대 후반 작품인 서부극 <럭키 루크, Lucky Luke>를 바탕으로, 고독한 카우보이 이야기를 새로운 사건들을 등장시키며 이어나갔다.

△ 그림 17. 마튜 본옴의 <럭키 루크를 죽인 사람>
△ 그림 18. 큘투라 독자상 후보작 소개와 투표를 독려하는 큘투라 부스, 수상작인 <럭키 루크를 죽인 사람>의 책 표지 (세 번째 줄 가장 왼쪽 위치)도 보인다.
어린이 만화상 (Le Fauve dAngouleme - Prix Jeunesse)은 작가 테보(Tebo)의 <미키의 젊은 시절, La jeunesse de Mickey (글레나 출판사, Editions Glenat BD)>이 수상했다. 미키 마우스가 결국 (혹은 드디어) 늙어, 어린 조카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된 모습으로 만화에 등장한다. 조카 손자가 미키의 젊은 시절의 모험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미키는 그에 답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디즈니 캐릭터들의 재가공 방식이 주목받았다.
△ 그림 19. 테보의 <미키의 젊은 시절>
마지막으로, 대안만화상 (Le Fauve dAngouleme - Prix de la BD Alternative)은 만화 잡지 (혹은 만화신문), <비스코토 에디션, Biscoto editions>이 수상했다. 젊은 작가들이 단편 만화를 선보이는 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16페이지의 상업광고가 없는 월간지이다. 새로운 이야기와 방식을 선보이겠다는 순수하고 진솔한 목적으로 2013년에 창간되었다.
△ 그림 20, 21. <비스코토 에디션>

△ 그림 22. 2017년 44회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수상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