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간만에 큰 히트작이 나와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제목도 굉장히 자극적인 ‘식량인류食糧人類 -Starving Anonymous-’라는 작품이다. 2017년 7월 현재 단행본 제 3권이 발간되었으며, 발표된 부수는 120만부이다. 권당 40만부에 가까운 발행부수는 최근 침체일로를 걷는 일본 만화시장에서는 일거에 주목을 받을 만한 부수이다. 스토리를 쿠라이시 유우(藏石ユウ), 작화를 이나베카즈(イナベカズ)가 맡았다. 물론 일본에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위시하여 수많은 히트작들이 있다.
△ 작품 ‘식량인류’ 스토리/쿠라이시 유우(藏石ユウ), 작화/이나베카즈(イナベカズ)
식량인류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이에와 카즈 두 사람은 학교에서 버스로 귀가하던 중 차 안에 최면 가스가 뿌려져 기절하고 납치되고 만다. 깨어나자 그곳은 사람이 깔린 트럭 위. 주위에는 냉동된 알몸의 인간들이 나란히 늘어서고, 살아있는 인간들에 의해서 해체되고 있었다. 이후에 작품의 제목과 관련된 끔찍한 진실이 묘사되고 주인공들의 탈출과 도피가 시작된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보면 자주 보아온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에 ‘소일렌트 그린’과 같은 소제를 엮어 넣은 그런 작품으로 보인다.
작품에서 가장 크게 주목할 부분은 작품이 팔려나간 배급 방식이다. 이 작품의 실재 단행본 성적은 3권까지 10만부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성적은 모두 디지털 배급이다. 즉, 전자책으로 결제된 성적을 단행본으로 환산했을 때는 이정도 부수라고 발표한 것이다.
심각한 불황의 잡지만화 업계
최근 일본만화 업계는 심각한 불황에 빠져있다. 1990년대 후반, 주간 소년점프의 만화 ‘슬램덩크\', ‘드래곤 볼’ 두 만화가 연재 종료되었고, 마치 이를 신호탄처럼 일본 만화잡지는 심각한 불황의 터널로 들어선다. 당시 주간 650만부라는 신화적인 부수를 기록하던 소년 점프는, 이후 부수의 하락 일로를 걷다가 ‘원피스’, ‘나루토’ 등의 작품으로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가 하다가 2017년 지금은 200만부라는 심리적인 저항선도 무너져 여전히 하락세가 그치지를 않는다. 다른 잡지들도 엄청난 하락세를 겪고 있다. ‘이누야샤’, ‘H2’ 등을 만들면서 일본만화의 한축을 만들어온 쇼카쿠칸의 주간만화잡지 ‘소년 선데이’는 이미 예전에 100만부 이하의 부수를 발행하면서 메이저 지위를 잃었다고 흔히 이야기 된다. ‘강철의 연금술사’를 만들면서 한때 월간 30만부에 가까운 부수를 인쇄하던 월간 ‘소년 간간’은 이제 단 13,000부의 인쇄부수를 가지고 있다.
시장 전체 규모를 보자. 한때 일본 만화는 1조엔 정도 규모라고 흔히 이야기 되었다. 이것이 지금은 약 4,300억 엔 규모라고 이야기되어 진다. 이중에 단행본 시장의 규모는 약 2,200억 엔 정도이며, 이정도 수치는 일본의 만화산업이 전성기를 누리던 규모와 비슷하다. 즉, 지금의 감소폭은 전부 잡지판매 감소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이 전체 시장규모 추산에는 전자서적 판매가 합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일본만화의 전자서적 판매규모는 약 1,200억 엔 정도로 추산된다. 이를 생각하면, 잡지가 얼마나 파격적인 판매율 감소를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전자서적의 판매가 10년 정도 전에 시작되어 크게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러한 신장률은 놀라운 것이라고 하겠다.
△ 일본 여성만화 발행부수 추이
지금 벌어지는 거대한 잡지몰락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어지고 있다. 어린이 숫자의 감소나 전체적인 만화 문법이 어려워진 점 등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입을 모으는 진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동이다. 종이 인쇄 매체와 방송을 통해서 이루어지던 커뮤니케이션이 이제는 인터넷환경으로 바뀌고 특히 스마트 폰이 보급되면서 미디어 상품의 유통이 스마트 폰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전에는 다들 신문을 보았다. 잡지를 통해서 젊은이들은 지금 세상의 정보들을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당연히 휴대폰의 인터넷을 통해서 소통한다.
일본의 만화산업은 너무나 거대해서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급변에 미처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 펼친 두페이지를 전제로 한 만화 문법을 하루아침에 세로로 긴 스마트 폰의 화면에 맞추는 문법으로 전환하라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최근 한국의 웹툰 체제를 일본에 이식한 ‘comico’가 큰 성장세를 보이거나, 여러 회사들이 내어놓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큰 약진을 하면서 회원을 늘려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막대한 작품 아카이브를 보유한 일본의 기존 출판사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크다.
작품 ‘식량인류’의 히트와 그 성적 이면에는 이러한 일본만화의 전체적인 사정이 숨어있다고 하겠다. 종이매체를 대변하는 잡지판매의 극적인 하락과 전자매체의 대두와 그것을 통해서 유통되는 상품이 더욱 팔리는 현상이다.
얼핏 보면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이 현상을 파악할지도 모르겠다. 잡지는 몰락하겠지만 이제 전자매체가 발달해간다면 문제는 없지 않을까? 이는 섣부른 속단일지 모른다.
일본 만화 전체의 거대한 교체에 대해서 생각할 문제들
일단 작가들에게는 과연 이런 교체현상이 바람직한 문제인지 생각해볼만 하다. 기존의 잡지 체제 하에서는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이 분명하게 자리 잡아 있었다. 즉, 작가의 경우 잡지 연재의 원고료는 1장당 얼마씩 계산한다. 또한, 잡지 연재한 만화가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면 찍은 부수가격의 10를 인세로 받는다. 출판사의 경우, 잡지를 운영하는 인건비나 작가 분 원고료 등의 유지비용은 잡지를 팔아서 마련한다. 실질적인 수익은 이미 투자해서 나온 콘텐츠를 2차로 가공한 형태인 단행본을 팔아서 마련한다.
전자출판은 이미 수십 년간 유지된 이 체제도 흔든다.
작가의 수입을 마련하는 단행본 판매의 경우, 책을 인쇄하는 순간 인쇄한 분량만큼 하나의 자산이 마련되는 것이며 이 자산가격의 10는 작가에게 지불되어야 한다. 보통 책을 인쇄하고 그 다음 달에 지급되는 이 인세는 작가에게 큰 목돈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디지털 유통은 실시간으로 매출이 집계되는 특성상 작가는 지속적으로 매출에서 얼마를 조금씩 받게 된다. 또 원고료 측면에서도 다른 논리가 등장할 확률이 크다. 이전에는 잡지시장과 단행본 시장을 별개로 판단했기 때문에, 이중으로 작가에게 대가를 지불한다는 논리가 당연히 통용된다. 하지만, 디지털은 통합된 환경으로 운용된다. 이렇다면 대가에 대해서 지불하는 형태에 대해서도 당연히 다른 논리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기존의 인쇄, 편집 등의 숙련된 고급인원을 항시 유지할 필요성이 많이 줄어든다. 그러니 경상비용 자체를 당연히 아끼려고 든다. 작가의 원고료도 이런 경상비용으로 당연히 생각되고 운용에 대해서 합리적인 입장을 견지하려 들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고품질의 작품이 나오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기 십상이다. 생각해야 할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만화 '식량인류’는 일본 디지털 만화 상에서 주목해야할 한 이정표를 마련해준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지금 막 어떤 전환기를 맞이한 한국 만화도 같이 생각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