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첫만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갈 수는 없으니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만화로 이야기 드리려고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삼국지 10번은 읽어봐야 세상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소설로 되어있는 10권짜리 삼국지를 다 읽는 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 나이또래의 친구들 중에서 만화로 된 60권짜리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거라 생각합니다. 특이한건 읽은 사람은 많은데 집에 이 책을 구비해두고 있던 집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습니다만 그때만 해도 도서대여점이 활성화 되어있어서인지, 지금보다는 그때의 시대상황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도 집에 그 60권을 책장에 꽂아두고 있지는 않았는데 이모네집이라 부르는 어머님의 친구 집에서 자연스럽게 들고와 몇 번을 읽었습니다. 물론 소설 삼국지도 그렇지만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앞부분의 내용과 제갈공명이 사망한 이후의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1권부터 60권까지를 읽었다기보다는 10권부터 50권까지를 주로 읽었다고 하는 게 솔직할 것 같습니다.
사람의 뇌라는 것이 초기에 인식된 정보가 각인되기에 그 만화 삼국지의 스토리가 실제 삼국의 정사인 것으로 너무 깊이 자리매김해버리는 역사적 우를 범하기도 하지만 만화를 통해서 이미지화된 주인공들의 얼굴모습과 시대적 소품, 중국이라는 나라의 자연환경 등이 없었다면 중, 고등학교 시절 읽은 소설 삼국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아직도 왜 삼국지를 읽어야 인생을 알 수 있고,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책을 볼 때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달라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유비,관우,장비의 우정이 멋있어 보이고, 어느 순간에는 제갈공명의 지식이 멋있어 보이고, 어느 시기에는 실제 세상에서의 영웅은 유비보다는 조조같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또 마음 허전한 어느 시기에 다시 읽으면 그런 유명한 주인공들의 삶이 아니라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내 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해 전투를 치르고는 다시 전쟁이 종식되자 마을로 돌아가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진짜 영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법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법 이야기를 조금 첨해볼까 합니다. 요즘은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등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출퇴근 시에 핸드폰으로 만화를 보는 직장인의 모습도 흔하기는 하지만 내 아이가 방과 후에 만화책을 보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만화책도 책인건 분명한데 그것을 독서라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을까요? 비슷한 질문으로 만화는 ‘예술’일까요?
제가 일하던 19대 국회에서 이 논쟁이 있었습니다. 저도 “한국 만화를 사랑하는 의원모임”이라는 곳의 멤버로 활동했었는데 지금 문화관광부장관이 되신 도종환의원이 ‘만화도 예술이다’라는 주장을 담은 법을 발의하신 것이죠. 그전까지 우리 법에 문화예술이라고 함은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 출판으로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는데 만화도 예술이니 예술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진흥기금도 받아야하고,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도 예술가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던 것이지요.
만화가 하나의 ‘산업’이라는 것에는 많이들 동의해왔고, 이미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이나 ‘출판문화산업진흥법’상에 문화산업의 일부로 만화를 포함하고는 있었지만 만화를 독서라고 할 수 있는지, 만화를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논쟁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1년후인 2013년 그 법은 본회의를 통과해서 이제 우리 법에 만화도 어엿한 예술로 인정받게 되었지요. 만화를 그리는 분도, 유통하는 분도, 그리고 만화를 읽는 우리도 예술활동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