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큐슈시(北九州市)는 일본 동남쪽 규슈 최북단에 있는 후쿠오카 현의 소도시로 인구 90만, 면적 486.8km²의 규모이다. 60년대 고도성장기 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공업지대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쇠락한 공단을 걷어내고 새로운 산업과 문화로 변신을 꿈꾸는 도시이다. 얼추 규모를 한국과 비교한다면 인구는 성남시, 면적은 경남 양산시, 도시의 특징은 포항쯤으로 가늠할 수 있겠다. 생소한 이 지역에 대해 그나마 알려진 것이라곤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1)가 사사키 고지로와 결투를 벌인 무인도가 있다는 전설 정도일 것이다.
△ 기타큐슈의 위치 (구글 지도 편집)
이 작은 도시에서 단순한 만화박물관 이외에 자력갱생 만화문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도쿄로부터의 거리만큼이나 의문일수 있다. 하지만 앞선 칼럼(일본의 만화박물관 톺아보기)에도 소개했지만 민간과 콜라보를 통해 개관한 기타큐슈만화뮤지엄을 비롯해 만화가, 동아리, 회사까지 매우 알찬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오늘의 만화생태계를 안착시킨 가장 큰 공로는 지역을 지킨 향토만화가와 이곳 출신의 만화가들이다. 이들은 애향심을 발휘해 만화뮤지엄 유치, 지역 만화동아리 후원, 지자체와의 협업 등 바람직한 만화공간을 만들고 있다. 먼저 출향 인사들 중에서 만화가들은 대략 50여 명이 넘는데, 대표적 작가가 마츠모토 레이지( 松本零士, 1954~)이다. 그는 SF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은하철도 999〉의 작가로 고향에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의 상설전시관이 기타큐슈만화뮤지엄 내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 자신이 만화뮤지엄 명예관장이기도 하다. 또 한사람 하타나카 쥰(畑中純, 1950~2012)은 1979년 고향을 무대로 한 작품 〈만다라 옥의 류타이(まんだら屋の良太)〉의 인기 작가이다. 도쿄공예대 만화과 교수를 거쳐 고향에 만화시설과 문화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외에도 유명 만화 일러스트레이터 와타세 세이조우(渡?政造,1945~), 〈시티헌터〉의 작가 호우죠 츠카사(北?司 ,1959~ ), 호시사토 모치루(星里もちる, 1961~ ), 스즈미야 와유(鈴宮和由, 1963~ ), 야마구치 카즈미(山口かつみ, 1965~ ), 마에카와 료우(前川?, 1978~ ) 등도 힘을 보탰다고 한다.
△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 하타나카 쥰의 <만다라 옥의 류타이>, 만화일러스트레이터 와타세 세이조우의 그림
이어 지역을 지켜 온 풀뿌리 만화가들의 노력이 가장 큰 힘이다. 그것도 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어느 단체의 저력이 숨어있다. 2016년 반백년 기념파티를 마친 ’아즈만화연구회(アズ漫??究?, http://asmanken.web.fc2.com)‘가 그 주인공이다. 이 동아리가 생긴 것은 1966년 다나카 도키히코(田中時彦, 현 만화뮤지엄 관장) 씨가 포함된 6인의 멤버들이 회람용 회지 《아즈》를 만들면서부터. “1966년 가을 모 중학교 교실에서 시대극 만화 동인 그룹들이 자체 신문 《아즈》가 만들면서 시작됐다. 영어의 ‘as~as’의 의미인 ‘모두 같은 레벨’이 우리의 정체성이다”라고 현재 회장 이토 아키오(伊藤明生)씨는 설명한다. 회원은 고등학생부터 70을 바라보는 노인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이들은 점차 회원을 늘려가며 회지 외에도 전시회, 스케치 여행을 하고 있다.
△ 아즈 홈페이지 로고, 《아즈》의 회지 14호 (2012)
1970년엔 데즈카 오사무가 만든 실험잡지 《COM》에서 시상하는 만화동아리상도 받았다. 특히 신인을 위한 회지 《As》도 창간할 정도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아직도 꾸준히 전국 코믹마켓에도 참가하고 있으며 해외 전시도 가끔 참가한다. 이토 씨는 “아즈 멤버는 현재 130여명 정도이며, 50주년 기념전시는 기타큐슈만화뮤지엄과 도쿄 메이지대학 요네자와요시히로기념관(明治大?米?嘉博記念?書館)에서 두 차례 열렸다”고 한다. 동아리 활동에 대해 요즘은 추세가 개인 창작, 개인회지 판매가 많아 활동이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동아리 출신의 프로작가를 물어 보니 〈星空の切人ちゃん〉의 후미츠키 쿄코(文月今日子, 1953~ ), 〈리본〉의 7∼80년대 간판작가 무츠 에코(陸?A子, 1954~ ), 마츠시마 유코(松島裕子, 1974~ ), ‘시추에이션 호러의 여왕’으로 불렸으며 낙향해 작품을 계속 창작 중인 세키 요시미(?よしみ, 1957~ ) 등을 추천했다. 소년만화가 많은 것이 <아즈>의 특징인 듯 싶었다.
그리고 최근 기타큐슈엔 의미있는 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났다. 지역에서 쉽지 않은 만화 전문회사가 창립된 것이다. 만화 에이전시, 출판사가 모두 수도권에만 몰려있는 일본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주식회사 콜트(株式?社COLT, 2015년 자본금 5백만 엔으로 시작했으며 현재 직원은 6명의 소규모 회사이다.
△ 콜트 회사 내 부스
그 콜트가 자랑하는 이른바 ‘TOKIWA 創‘ 프로그램은 유명한 데즈카 오사무의 창작공간인 도쿄의 ‘도키와소(トキワ創)‘를 본 떠 만든 지역 신진작가 양성 기획이다. 회사의 일정공간에 작업실을 주고 작가를 키우고, 콘텐츠로 회사가 사업을 벌이는 전형적인 협업관계이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 중인 작가 레지던스와 유사하다. 대표 오노 코지(大野光司)씨는 “본인에게 있어 기타큐슈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이자 인맥도 풍부한 고향의 터”라며 가장 어려운 점을 물었더니 역시 “지역민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무슨 관계냐고 하는 몰이해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만화의 유효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며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활동적인 영업력과 콘텐츠 제작능력, IT 그리고 ‘열정’이라고 말했다.
일본 지자체의 만화 이벤트, 사업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만 해 놓고 방기하거나 관광객 유치에 실패한 곳도 있다. 기타큐슈가 보여주는 고향에 대한 출향인사들의 후원, 자생 동아리의 활동, 뮤지엄 개관, 관련 산업의 자생 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성과가 크지는 않지만 이것이야 말로 유효한 클러스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조용히 지역에 만화문화를 뿌리내리는 기타큐슈의 작가, 행정당국, 연구자, 시민들의 노력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이자 하나의 사례로 충분히 인용될 만하다 하겠다.
<편집자주>
1) 미야모토 무사시(1582~1645), 일본의 검객, 화가. 13세 때부터 무사의 길로 나섰으며, 평생 60여 차례의 결투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어 일본에서 검성으로 불리움. 1612년 간류 섬에서 사사키 고지로와 대결해 승리를 거두고, 이를 끝으로 더는 결투를 벌이지 않았다는 전설이 내려옴. 그러나 사사키 고지로는 실존인물인지 창작된 인물인지 그와 관련된 자료는 모순된 것이 많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