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4일. 충격적인 이야기가 일본 열도를 휩쓸었다.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스튜디오 지브리]가, 주주총회에서 제작부문의 해체를 발표한 것이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의 애니메이터 들이 감수해야하는 가혹하고 유동적인 노동환경이 애니메이션의 제작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인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애니메이터를 완전 고용제로 고용하여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하는 제작사를 지향하면서 탄생하였다.
이런 회사가 제작부문 해체를 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8월 6일, 기사를 쓰는 현재 시점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니코니코 동화]등을 합병한 거대기업인 [드왕고] 산하에서 관리된다는 이야기도 떠도는 형편이다. (이 소문이 맞을 경우 영상 스트리밍으로 유명한 회사인 드왕고는 사실상 카도카와 그룹과 경영을 통합하고 있어서, 스튜디오 지브리는 카도카와 그룹 산하로 들어간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필두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모노노케 히메]와 같이 세상을 뒤흔드는 작품을 발표해서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이나 보는 저열한 매체가 아니라 인간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문예매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회사가 왜 사실상 해체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강력한 리더가 만들어내는 높은 작품성의 애니메이션. 그러나…
스튜디오 지브리는 사실상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천재 감독을 위한 회사라고 보는게 맞았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의 거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토에이에서 가혹한 노동조건과 처우에 시달리다가 노동운동을 같이 한 두 감독이 만들어낸 회사답게 사원 복지와 처우가 좋기로 유명했다. (기본급여가 여타 애니메이션 회사의 두배에 달했다고 하여, 신인 애니메이터가 가장 들어가고 싶은 회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지브리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 비판이 계속 나왔다. 지브리는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는 의견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니, 모든 스텝들의 그림 제작 성향등이 그에 의해서 판단되고 오로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족하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전락해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각 지브리의 각 스텝은 유능하지만, 그것은 배경을 그린다든지 조연 인물만 그린다든지 하는 자신의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을 전체적으로 완성하는데 필요한 종합적인 능력은 전혀 개발할 수 없는 사내 환경이었다고 한다. [공각 기동대]등을 발표하여 일본을 대표하는 또 다른 감독으로 손 꼽히는 오시미 마모루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사나운 백수의 왕이며, 지브리는 그 백수의 왕을 기르기 위한 인공 사바나”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이유도 이때문이다.
이는 일본식 영상물 제작 방식이랄까, 일본 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낳은 결과로도 보인다. 미국의 디즈니 같은 경우는, 제작에 임하는 감독의 의사도 매우 중요하지만 일선의 애니메이터들이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하는 현장 의견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가진다고 한다. [토이 스토리]등을 만든 픽사의 경우는 잘 알려졌듯이 철저한 현장의 사람들이 전체 스토리를 철저히 이해하고 작품의 부분을 제작하는데 임하는 공동제작 체제를 갖추고 있다. 반면, 일본은 감독이라는 지도자를 두고 부하들은 상부의 의견을 기준삼아 철저히 상명하복하는 특징을 보여주는 제작 체제다. 이것은 작품성을 높이는 것에는 분명히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런식의 체제가 길게 유지되면 어쩔수 없이 후계자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감독의 그정도 수준의 작품을 계속 원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은 분명히 다른 작품이니까. 물론, 지브리가 후계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힘을 쏟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시이 마모루와 협업체제를 구축해 보기도 하며, 후일 [섬머워즈]등으로 유명해지는 감독 호소다 마모루를 초빙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미야자키 하야오 체제가 너무나 공고하던 지브리에서 이런 외부출신 감독들은 수월하게 일을 하던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다보니, 결국 미야자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에게 감독을 맡기는 궁여지책까지 등장했지만, 결과는 [게드전기]라는 지브리의 명성에는 한참 모자라는 작품의 등장이었다. 게드전기의 원작을 쓴 저명한 환타지 소설 작가 어슐리 르 귄이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몹시 실망했다고 말할 정도 였으니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퇴진은 어찌보면 강력한 리더쉽의 지도를 받으며 각 소속원은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고 그것에 따르는 효율적 조직이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는 한 전형이 아닐까 한다. 결국 소속 인적 자원들이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고, 이는 인적 자원의 순환에 큰 장애를 준다는 것이다.
어쨋든 1980년 대 일본 애니메이션 황금기를 선도한 스튜디오 지브리가 역사 속으로 지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은 유감스럽다.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만화가/애니메이션 작가 지망생들에게 뚜렷한 지향점이 되어 주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