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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만화 : 강석철, <꺼벙이 (길창덕 작)>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에서 웹툰 만화작가로 활동 중인 ‘기안 84’의 작품 활동 일부 방영내용이 갑자기 떠오른다.

2018-06-25 강석철

최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에서 웹툰 만화작가로 활동 중인 ‘기안 84’의 작품 활동 일부 방영내용이 갑자기 떠오른다.

매번 마감시간에 쫒기며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고심하는 모습, 거의 마감 직전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작업한 그림과 원고를 초조하게 송출하는 광경 그리고 고객들에게 서비스 된 후에 인기순위 변동에 촉각을 세우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회상되면서 한편 으로는 옛 만화가들이 종이에 한 컷씩 그림과 줄거리를 써가며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건 꾸겨서 버리며 원고 작업을 해 가는 모습을 대조해 보며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장면들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의 첫 만화는 무엇이지?’라는 생각 속에 잠시나마 과거를 회상해 본다. 초등학교 시절 엄격한 아버지의 성격상 집안에서는 감히 만화책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만화를 보기위해서는 친구들과 모의(?)를 하여 만화가게에 들러서 희미한 등불과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기침하며 가끔은 연탄난로에 오뎅을 구워 먹으면서 만화책을 즐겨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최근에는 만화가 한 주류의 문화 장르가 되어 이제는 실생활에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만화 콘텐츠는 웃음을 자아내고 재미와 쾌락, 판타지, 무협 등 단순한 흥미를 유발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며 확산 되어왔지만 한편으로는 크게 성장한 한 문화의 장르로서 사회 저변의 중요 이슈들을 다루며 대중을 계몽하는 형태의 역할은 거의 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의 변함없는 암기식 교육과 청년층의 장기 실업과 심각한 취업난,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시니어 계층의 노후 삶을 위한 처절한 투쟁 등 지쳐가는 많은 이들에게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긍정적이고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해주는 주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내 인생의 첫 만화“ 의 소회를 나누어 보기로 한다.

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당시 가장 유명한 만화가로서의 양대 산맥은 길창덕 선생과 고우영 선생이었다고 생각한다. 길창덕 선생은 ‘꺼벙이와 꺼실이’, ‘순악질여사’, ‘나원참여사’ 등과 같은 실생활과 관련된 스토리를 중심으로 연재한 한국형 명랑만화의 선구자적 개척자였고 반면에 고우영 선생은 ‘임꺽정’, ‘수호지’, ‘삼국지’등 무협소설 위주로 성인만화의 장을 열면서 고객들의 많은 사랑은 받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내 인생의 첫 만화?” 정확히 기억하기에는 석연치 않지만 1970년에 아동 월간잡지 ‘만화왕국’에 2년간 그리고 월간 ‘소년중앙’에 4년간 연재한 ‘꺼벙이’로 기억난다. 유년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꺼벙이’는 잠시나마 볼 때마다 웃음과 희망을 주는 당시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는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주인공인 꺼벙이의 인상은 더벅머리에 이마에는 큼지막한 부스럼 자국이 있고, 자주 놀라서 눈이 툭 튀어나온 모습, 다소 멍청해 보이지만 순진한 초등학생, 후반에 등장한 여동생인 꺼실이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힘이 무척 센 장사(?)로 오빠 꺼벙이와 잘 조화를 이루면서 재미와 엉뚱함으로 많은 웃음을 선사하였다. 꺼벙이의 대부분의 소재들을 보면 1970년 당시 우리나라가 공업 국가로 진입하는 초기로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소재들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삼았다.


스토리 중에 꺼벙이는 막 개통되된 서울 지하철을 타본 후 자랑하듯 “너희들은 지하철을 타보았는가?” 라고 자랑하는 광경, 그리고 공부하기가 싫어서 꾀병을 부리면서 동네 한약방을 다녀왔는데 당시에 매우 귀한 음식인 피자와 바나나 등을 친지가 사왔으나, 가식적인 배탈로 인해 먹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등 옴니버스식으로 꺼벙이의 학교와 집에서의 일상을 기반으로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다양한 화풍으로 흥미를 고조시키는 매력을 주었다.

당시 나에게 다소 아쉬웠던 부분은 월간지에 연재하다보니 자주 볼 수도 없었고 어린 시절 집안 형편으로 월간지를 사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달리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차월호가 발간되는 시점에 백방으로 남이 본 것을 구해 보는 노력을 하곤 했으나 특별한 방법이 없었던 터라 포기 하고 기다리면 우연히 한두 달 지난 만화를 운 좋게 얻었고 그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몇 번씩 읽고 각 장면마다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회상하는 버릇도 생기곤 했다. 그 때는 복사기도 없었고 일단 돌려주면 언제 또 다른 월간지를 구할 수 있을지 몰라 아쉬워서 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꺼벙이의 매력은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아무생각 없이 단순한 재미로 읽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찌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꺼벙이를 읽다보면 순간에 모든 시름이 없어지고 저절로 웃음이 나오며 재치 있고 다양한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그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과 잘 조화되어 묘사되었다. 꺼벙이 시리즈의 마무리는 그 당시 어려운 국내 여건을 극복하고 해외 건설, 특히 중동 건설 붐 시대에 아버지가 취업을 하여 중동으로 가족 모두가 이사를 하며 이야기가 끝이 나며, 이후에는 꺼벙이 후속으로 ‘꺼벙이 2’가 등장하는데 다소 우악스러운 꺼벙이 여동생인 ‘꺼실이’가 등장하며 더욱 재미와 웃음을 자아내며 독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다.

△ 꺼벙이의 엉뚱한 만원 이야기

또 하나 즐겨 보던 만화는 ‘순악질여사’이다. 신문, 잡지에 무려 18년 동안 최장수 연재만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 선물과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며 사랑을 받은 본 만화는 1980년 장미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199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싼값으로 빌려주는 만화 대여점이 만화유통의 중심이 되어 전국단위로 크게 확산되었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야기하며 국민들에게는 그리 좋은 이미지를 형성 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에 접어들면서 컴퓨터, 인터넷의 확산과 2000년 후반 휴대폰의 대중화와 연계하여 일대 큰 변화가 생겼다. 책자형태의 만화가 퇴조하며 ‘웹툰’이라는 새로운 만화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린블루스를 필두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각종 포털, 온라인 스포츠 신문사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웹툰이 제작되어 배포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크게 애독하고 있는데 현재 온라인에서 운영 중인 웹툰 만화로는 판타지, 코믹, 순정, 액션, 일상, 공포, 탐정, 스릴러, 성인, 무협, 스포츠, 미스터리, 에피소드, 옴니버스, 퓨전 등 다양한 장르의 연재 만 화들이 성황리에 운영 중에 있다.
△ <부산 글로벌웹툰센터에 있는 웹툰카페>

그러나 앞서 기술한 꺼벙이가 그 당시의 생활상을 유머스러운 삽화와 표현, 문장으로 표현하여 위안을 주었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은 더욱 사회가 복잡하고 심한 경쟁으로 인한 갈등과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감 등 이 시대 소시민의 고민을 해소하고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사회 계몽적 만화의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 등이 부족함은 매우 아쉬운 형편이다.

故 길창덕 선생은 생전에 2003년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만화계에서는 문화훈장 이 최초이자 매우 뜻깊고 경사스러운 사건이 되었다. 우리사회에 본격적인 만화보급이 되면서 만화가게들이 우후죽순 식으로 퍼지고 많은 청소년들이 불미스러운 일들을 발생시키면서 한때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웹툰이 주류를 이루면서 과거의 만화방들은 많이 사라지고 모바일 기기 중심의 콘텐츠 보급으로 만화를 즐기는 방식도 대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故 길창덕선생이 문화훈장을 받은 후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불량 만화니 뭐니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보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만화가가 훈장을 받습니다. 세상 많이 달라졌지요.”라고 고백하며 이제부터는 사회적인 대접이 달라진 만큼 “만화의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다고 하는 인터뷰를 하였다. 이제부터는 만화의 사회적 대중화에 따른 적합한 역할 기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즈음에 만화가 사회에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바램을 정리해본다.

최근 5천만대 이상 보급된 휴대폰이 만화의 대중화 보급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웹툰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기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통용되는 웹툰은 단순한 흥미와 즉흥적인 쾌락을 즐기는 다양한 영역의 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일부 정책적 계몽만화와 학습만화들도 있으나 정책적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홍보 부족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악화되어 가는 다양한 이슈들을 연령대별로 만화 콘텐츠로 제작하여 보급되어지기를 바란다.

첫째, 유년기, 초등학교 수준의 연령대에서는 과학, 특히 이 연령대가 향후 성인이 될 시점에서 우리사회가 완전히 4차산업혁명 시대의 정점에 진입하여 이와 관련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 주행차, 스마트공장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전문가의 자문을 통한 유익한 ‘학습만화’의 제작 보급을 제안한다.

물론 과거에도 다양한 학습만화를 만들어서 보급한 적이 있었으나, 대부분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과도하게 재미를 유발하기 위해 핵심정보는 중간 중간 한두 쪽 다 루고 우수개로 일관하면서 본 만화가 주장하는 정체성을 잃어 독자의 흥미를 얻는데 실패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단순히 몇 회 연재하는 형태의 생색내기 식 만화 가 아닌 충분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핵심 내용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전문가와 심층논의를 통해 해결하고 해학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림과 터치로 전체적인 스토리를 전개하며 개발, 보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 청소년기 학생 대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의 개발, 보급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도래에 따른 사회구조적 변화, 직업의 큰 변화 등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미래사회에 대한 비전과 꿈, 직업관, 사회관 등을 이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 개발과 연관되는 심층적인 콘텐츠 개발과 보급, 확산이 매우 중요하며 이 나이대의 청소년들이 많이 접하는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보급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되기를 희망한다.

현재 우리 청소년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졸업 까지 일관되는 주입식 교육, 암기식 교육, 경쟁적 교육 등으로 가정과 함께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은 등한시 되고 대학입시가 모든 목표가 되고 있다. 미래사회에 대한 본인의 재능, 적성과 어떻게 자기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주체도 없고 막연한 입장에서 대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두고 살아가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친근한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의 보급이 필요하다.

셋째, 청장년 계층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도전에 처해 있다. 이들 대상에게 가장 심리적인 고통은 청년은 점차 사라져가는 일자리들과 급등하는 주택가격, 결혼이후 가정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장년기에서는 전방산업의 장기 침체와 경기침체 지속 등으로 지속적인 기업의 수익성 악화, 생존 여부의 불확실성으로 계속적인 구조조정으로 항상 불안감에 사로잡혀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과거 30여 년 간 한국 경제를 견인해 왔던 중공업, 철강, 화학, 조선, 자동차 산업 심지어는 IT산업까지 하나씩 중국추격에 무너지기 시작하며, 이러한 중후장대한 산업의 전진기지인 지방 경제는 심각한 침체와 두려움에 쌓여있다.

2016년 KT 경제연구소에서는 웹툰이 연간 4000억 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고,“웹툰 작가의 원고료와 콘텐츠의 영화화 등 부가가치를 따지면 경제적 효과가 1조원은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웹툰 작가는 약 5,000여명으로 20~30대가 가장 많고 독자는 10대에 이어서 20~30대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20-30대 독자에서는 구매력이 있는 미혼 여성인데, 많은 작가들이 로맨스 작품을 주요 작품으로 출시하는 이유라고 한다.

웹툰은 종이 만화보다 공정은 많아졌으나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컴퓨터로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다. 제작에는 포토샵, 클립스튜디오 같은 프로그램이 사용된다. 웹툰 작가들은 성공하기는 쉽지 않지만 도전해 볼 만한 직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상에 작품을 연재하는 것 자체가 데뷔라고 한다.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만화왕국인 일본에서도 국내 만화계와 애니메이션 분야의 기술과 웹툰 작가의 능력과 재능은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재능을 보유한 웹툰 작가 중에서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인정을 받고 활동하는 작가는 5~10%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이런 재능 있는 웹툰 작가를 활용하여 다양한 이슈별로 전문가와 웹툰 작가가 협력하여 유익한 만화 콘텐츠 개발과 보급을 통해 사회적 계몽에 앞장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청년계층과 장년계층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사회적 갈등과 고뇌 가운데 다시 용기를 심어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양한 계층의 의견수렴과 수요조사를 통해 주체를 선정하고, 관련되는 콘텐츠의 개발과 다양한 화법과 아기자기한 스토리 전개를 기반으로 한 만화 보급이 확 대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