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프랑스 글로벌리포트에서는 프랑스의 만화검열과 그 바탕이 된 1949년 7월 16일 법에 대해 다룬다. 박경은 필자에 따르면 "1949년 7월 16일 법은 입법 취지가 청소년 대상 간행물 법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남용되어 프랑스 간행물 전체에 대해 영향을 미치므로 ´1949년 7월 16일 법´이 갖는 상징성이 남다르며, 프랑스 만화 관련 언론에서도 ´1949년 7월 16일 법´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전하는 바, 본 글에서도 현지의 표현대로 1949년 7월 16일 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편집자 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라고 알려진 프랑스이지만, 작가들이 항상 검열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만화 역시 이에서 예외적일 수는 없었다. 1949년 7월 16일 프랑스 의회에서 통과된 <청소년 대상 간행물 법>은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만화와 정기 간행물, 소설 등이 수정되고 금지되었다.
전부 16조로 구성된 이 법은 2조에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정기 혹은 비정기적 간행물은,
≪조직범죄나 거짓말, 절도, 게으름, 비겁함, 증오, 방탕함, 범죄나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것들, 혹은 어린이 청소년을 타락시키고, 인종차별적 성적인 편견을 품게 하거나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들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어떠한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이야기, 기사, 항목, 추가설명들도 담아서는 안 된다.≫
는 것이다.
이 법은 국가 자문위원회 위원, 법무부 관료, 상하원의원, 교사, 출판사 관계자, 노조 조직 등에 의해 임명된 작가 등으로 구성된 감시 위원회에 의해 운영되었는데 5, 60년대에 가장 악명이 높았으며 현재까지 6,900여 차례의 조치를 취해왔다고 한다.
△ 그림1. LES VOLEURS DU MARSUPILAMI의 표지 이미지. 만화주인공 막쉬필라미(Marsupilami)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검열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1950년부터 적용된 이 법은 주로 성적인 것과 과도한 노출에 대해 검열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한 이유로 검열의 철퇴를 맞은 것도 많았다. 벅 다니(Buck danny) 라는 만화는 주인공이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내용 때문에 문제가 되었고, 푸른 매(l’epervier bleu)라는 만화는 사람을 달로 보내는 내용이 말도 안 된다며 검열 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몇년 후에 실제로 사람이 달에 갔는데도 말이다!)
만화가 프렝캉의 만화주인공 막쉬필라미(Marsupilami)는 <엉뚱한 상상의 존재가 불분명한 소리를 질러댄다.>며 경고를 받았다.
작가 베르나르 쥬베르(Bernard joubert)는 <금지된 이미지(images interdites)>라는 책에서 이 법률로 인해 금지되거나 수정된 만화 이미지들을 소개했다.
△ 그림2. 만화 <뷸과 빌(Boule et bill)>의 수정 전과 수정 후. 동물학대란 이유로 수정 명령을 받았다
△ 그림3. 만화 바라렐라. 성인용 만화였지만 검열을 피해가지 못했다.
△ 그림4. 수영복이 덧그려졌다.
명목상 1949년 7월 16일 법의 적용은 아동 청소년 대상의 출간물에 한정되었지만, 점점 남용되기 시작해서 소설, 잡지, 에세이 등과 성인 대상의 만화 간행물을 제한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50-70년대의 프랑스 주요 출판사 중 이 법률의 칼날을 피해간 출판사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테러 사건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샤를리 앱도의 전신인 하라키리(Hara-kiri) 잡지도 이 법률의 적용으로 폐간되었다.
일부의 사람들은 이 법률이 전제적이고 이념적인 이유로 생겨났으며 그 적용으로 비롯된 검열과 금지조치들은 프랑스 문화와 경제에 큰 해악을 주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검열에 관한 법률이 프랑스 만화를 지켜내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서슬 퍼런 감시위원회 때문에 수많은 프랑스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곤욕을 치렀지만 어떤 프랑스 만화사가들은 이 법률의 바탕은 프랑스 만화를 보호하는데 일조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학자 파스칼 오리(Pascal Ory)는 ≪미키 고 홈 !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만화의 반미국화(Mickey Go Home ! La desamericanisation de la bande dessinee (1945-1950)≫ 라는 책에서 이에 관련된 내용을 설명한다.
1930년대 프랑스 만화는 이미 미국 만화에 비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 그림5. 폴 윙클러가 미국식의 신디케이트 시스템을 이용해 프랑스에서 펴낸 잡지 <쥬그날 드 미키(Journal de Mickey)>
그 시작은 1934년 폴 윙클러(Paul winkler)라는 사람이 디즈니사와 협력해 프랑스에서 <쥬그냘 드 미키(Journal de Mickey)>라는 만화잡지를 발행하면서부터였다. 헝가리계 이민자였던 윙클러는 처음에는 헝가리 이민자 커뮤니티를 위한 간행물들을 만들던 사람이었다. 미국여행 중 미국의 신디케이트 시스템(일종의 만화 에이전시와 비슷한 것으로 한 만화를 여러 개의 신문과 잡지에 동시에 싣는 방법)을 알게 되고 그 미국 신디케이트를 통해 많은 미국 만화를 프랑스에 들여온다. 미국에서 가져오는 그의 만화잡지 제작비는 프랑스 잡지의 5분의 1에 불과했다고 한다.
2차 대전 동안 전쟁을 피해 미국에 머물렀던 폴 윙클러는 전후에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 자신의 회사인 오페라 문디(operamundi)를 통해 더 많은 미국 만화들을 들여왔다.
이미 세계의 중심은 미국으로 이동했다. 마샬 플랜을 통해 미국의 달러가 유럽으로 유입되었고 미국 대중문화가 프랑스에 자리 잡았다. 미국만화의 프랑스 점령 역시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파는 국수적인 정치적 바탕과 가톨릭 성향의 도덕을 청소년에게 가르칠 목적으로 , 공산주의와 좌파는 미국만화의 침략에 대항해 프랑스의 창작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뜻이 맞았다. 그래서 1949년 7월 16일 법이 탄생했다고 한다.
역사가 파스칼 오리의 주장에 따르면 이 법은 사실상 미국만화를 팔던 폴 윙클러와 그의 회사 오페라 문디를 견제할 목적이 제일 컸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폴 윙클러는 법률이 투료에 붙여지기 전 모든 상원의원들에게 이 법률에 반대하는 진정서를 보냈다. 이 법률은 청소년 잡지 안에 프랑스 작가 비율에 관한 쿼터를 둠으로써 프랑스 만화와 작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주는 역할도 했다. 미국에서 들어온 만화 <타잔>은 여러 차례 검열위원회의 제재를 받았고 덧칠해지고 수정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타잔의 프랑스판 짝퉁인 <라한(Rahan)>은 벌거벗은 남녀와 잔인한 장면이 난무해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법령이 실행된 후 프랑스 시장에서 미국만화는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아동 청소년 간행물법은 미국만화뿐 아니라 이탈리아, 벨기에 만화에 대한 견제도 겸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만화는 이 법의 타격을 그대로 입었지만, 벨기에의 만화 출판사들은 이 법을 주로 운용하던 가톨릭적 우파와 정신적 바탕이 같았기 때문에 이에 재빨리 적응하며 프랑스 시장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검열 위원회가 문제를 제기하면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넘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스카르 데스탱*이 대통령이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고 검열 위원회도 점점 힘을 잃었다. (68 혁명 후 바뀐 프랑스의 분위기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 지스카르 데스탱 : 발레리 마리 르네 지스카르 데스텡. 제23대 프랑스의 대통령(1974년~1981년), 편집자 주.
등장한 지 거의 70년 이 다 되어가는 이 법은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만화가 조안 스파는 2004년, 출판사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동료작가 히아드 사트푸의 만화를 펴냈는데, 검열위원회가 만화속의 ≪아랍인(arabe) ≫ 이란 단어가 인종차별적이라며 수정요구를 했다고 고백했다.
△ 그림6. 조안 스파가 검열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언급한 히아드 사투프의 만화 <나의 할례(ma circoncision)>
오늘날 대부분의 만화전문가는 이 법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한다.
문제가 되는 간행물이 있으면 재판을 통해 해결을 하면 되는 것이지, 내무부 장관이 수정,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유명무실하지만 이런 법은 언제든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