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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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만화 : 김현수, <도박묵시록 카이지 (후쿠모토 노부유키 작)>

일본에서 접한 문화 중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당연히 만화였다. 너무나 다양한 장르,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한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소재들이 만화화가 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본인들 사이에 읽히고 있었다.

2016-11-28 김현수



△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한국, 일본판 표지 이미지.

나는 대학생활 그리고 첫 직장생활을 일본에서 보냈다. 돌을 씹어도 소화할 수 있다고 불리던 그런 나이에, 인생에서 가장 흡수력이 좋았을 그런 시절에 나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에 스펀지처럼 흡수되어 살았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경험한 이 문화적 충격은 내가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자연스럽게 몸에 밴 행동으로 이어졌다. 일본인과 중국인으로 대명사화 된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시선에서 나 역시도 그 범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에서 접한 문화 중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당연히 만화였다. 너무나 다양한 장르, 디테일한 묘사, 그리고 한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소재들이 만화화가 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본인들 사이에 읽히고 있었다. 그런 시절에 내 인생 최고이자 첫 만화를 꼽는다면 단연코 <도박묵시록 카이지> 라는 만화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21살의 무직.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주인공 이토 카이지. 
어느 날 친구의 연대보증인이 된 후, 3000만 원의 빚을 지게 된다. 당연히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주인공 카이지는 그 금액을 마련할 수 없었고, 조직폭력배의 빚 독촉에 인생을 건 비합법적인 갬블(gamble; 도박)에 자신의 몸을 맡기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평범한 갬블 만화의 내용처럼 보이지만 이 만화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만화는 몇 년 전 일본에서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화화되었으며, 이 만화를 인용하여 비즈니스, 경제경영 서적 등 다양한 장르의 형태를 컨버전스 돼 읽히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하다. 이렇듯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단순히 갬블 만화가 아니라, 갬블 안에서 강한 힘을 가진 자와의 이야기를 통해 이긴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또 패배한다는 것 또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배워갈 수 있게 해주는 철학 만화다.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에는 무엇보다 심장을 파고드는 명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세상 누구도 이 진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야기 해주지.”
“돈은… 사람의 목숨보다 무거워.”
“그 사실을 얼버무리는 무리들은 일생, 땅만 기어 다니게 될 거야.”
<도박묵시록 카이지 6 권>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에 나오는 대사 중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유명한 이 대사. 비즈니스와 투자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으며, 그런 류와는 거리 멀었던 나에게 도덕적 부정을 부추기는 이 대사는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아울러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인생철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유는 임팩트 있는 어떤 단어나 문장을 이야기 한 후 그 근거를 해설해 주는 대사 장치가 압권이기 때문이다. 
위의 대사에 관해서도 다음과 같이 부언하는 대사가 치고 나온다. 

“좋든 싫든 사람은… ”
“자신의 인생의 많은 부분을 돈을 벌기위해서 시간 보내지.”
“다시 말하면, 자기의 존재” 
“자신의 수명까지 단축시키면서 말이야.” 
<도박묵시록 카이지 7 권>

“서른이 되던 마흔이 되던 너희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지.”
“내 인생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라고” 
“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니 지금은 이 정도라고”
“그렇게 계속 지껄이지.”
“결국은…”
“늙고…”
“죽음을 맞이해.”
“그 순간 깨닫게 되겠지…”
“지금까지 숨 쉬며 살아왔던 모든 순간이 바로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것을…”
<도박묵시록 카이지 7 권>

대다수의 카이지 팬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이 대사. 특히 “내 인생의 황금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니 지금은 이 정도지…” 이 부분은 남자 팬들의 가슴에 더욱 파고드는 문장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말 지껄이지 마라. 쓰레기들!”
“너희들과 같은 쓰레기들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몇 번이고 이런 말을 토해냈을 꺼다.”
“아직도 모르겠나?”
“세상은 너네 같은 쓰레기들의 엄마가 아냐!”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의 결심을 언제까지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중략)
“평생을 그렇게 헤매고 다녀라.”
“그리고 계속 잃어버리며 살아라.” 
“그 귀중한 기회를…”
<도박묵시록 카이지 7 권>

갬블에 참가할까 말까의 결단을 계속 미루는 채무자들에게 말하는 이 대사.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 이야기를 듣고 금방 알아차렸을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신속한 결단’ 과 ‘신속한 행동’은 대단히 중요한 어드밴티지이기도 하다. 
“내일부터 열심히 하자 라고 하는 발상에서는”
“어떠한 씨앗조차도 자라나지 않는 법이지” 
“그런 쉬운 이치를 스무 살이 넘은 아직까지 모르는 건가”
“내일부터 열심히 해야지! 가 아니라”
“오늘… 오늘만 열심히 한다 라고 생각해라”
“오늘을 열심히 산 사람… 오늘을 열심히 시작한 사람에게만…”
“내일이 오니까.”
<도박묵시록 카이지 1권>


이런 틀에 박혀 있는 정형화 된 문장은 다른 여러 곳에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생각을 뒤집어본다면 “오늘은 안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내일이야말로… ”라는 해석에 도달하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오늘을 열심히 산 사람”으로 특별하게 취급되는 것이 바로 ‘오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진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 인생은 어떻게든 되겠지… 절대로 이렇게 비참하게 끝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단지… 막연하게…”
“아냐! 막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돼!”
“이기지 못하면 끝나는 거다.” 
“이기지 못하면… 비참해지는 건 당연해.”
“내가 이기지 못하면 결국 나는 다른 누군가의 영양분로만 쓰이겠지.” 
“이건 이 배에서든 밖에서든 같은 이치야.” 
<도박묵시록 카이지 3 권>

불법적인 갬블이 행해지는 배 안에서 카이지는 점점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의 순간에, 그의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외친다. “나는 막연하게, 내 인생은 비참하게 끝나진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 “막연하게” 이 단어는 늘 사람들을 괴롭히고 몇 년 전부터 유행처럼 번졌던 “희망고문”이라는 단어로 변용되어 널리 회자되었다. 나 역시도 이 만화를 보며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좀 더 책임감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더 이상 배팅을 할 수 없었던 주인공 카이지가 자신의 손가락을 걸고 했던 승부. 결국 갬블에 패배한 카이지가 던진 대사이다. 

“결국… 내가 졌다.” 
“게임에서 진 사람은 무엇인가 잃게 된다.” 
“그걸 부정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패배를 인정하는 일”
“패배자의 의무다. ” 
“난… 이 패배에 승복한다.” 
<도박묵시록 카이지 13 권>

카이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합리화를 많이 해가며 살아간다. 좋아하던 연인에게 차였을 때,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지, 취직을 위해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다가 가장 희망했던 회사의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사실 다른 곳에 더 흥미가 있었다고 둘러댄다든지, 친구와의 농구시합에서 졌을 때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았다 말하든지……. 이런 핑계나 변명 등등의 것들이 ‘사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잘 안 되었다’라고 하는 현실도피형 행동 패턴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한 노력 그리고 패배한 일 자체를 과소평가하며 아예 없었던 일로 삼으려는 심리다. 
모든 인간은 미성숙하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안에서의 승부는 압도적으로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큰 성공을 이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듯이, 패배를 해야 ‘자기반성의 시간’ 즉, ‘자가발전의 시간’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과 승부를 해야 한다. 이겼을 때는 온 힘을 다해서 기뻐하고, 패배했을 때는 온 힘을 다해서 울면 된다. 이 단순하고 간단한 순리만 알고 살아간다면 인간은 아주 순조롭게 ‘자가발전’의 성장을 해나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카이지 뿐만 아니라 많은 만화에서 패배를 언급하고 있다. 만화 <슬램덩크> 역시 그러하다. 
“패배는 언젠가 커다란 재산으로 남는다.”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의 내용은 여러 가지이지만, 전체적으로 공통된 부분은 과정에서의 패배는 절대 마이너스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인가에 성공하고, 누군가를 이기고 하는 이런 기쁨을 넘어서는 것은 별로 없겠지만, 그럼에도 패배가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 퇴적물이 되고 더 나아가 영양분이 되어 자가발전을 이뤄내는 것이다.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일상에서 작은 패배에 얼마나 인정하고 사는지 다시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만드는 인생철학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