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속 과학은 얼마나 이뤄질 수 있을까? <하이브> 거대 곤충이 현실에 등장할 수 있을까? 상상력 과학으로 훑어보기
“으악! 징그러워!!! 그런 걸 왜 가지고 놀아?!"
어릴 적, 제가 작은 사마귀를 손 위에 올려놓고 노는 걸 본 사촌 동생이 항상 하던 말입니다. 반응이 재미있어 살짝 사마귀를 내밀기라도 하면 사촌 동생은 기겁을 하며 도망치곤 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곤충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곤충은 인간과 공통된 부분을 찾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생물체들입니다. 기괴한 관절과 여러 개의 다리, 수백 개의 안구가 연결된 형태의 눈, 낯선 질감과 소리에 우리는 징그러움과 공포를 느낍니다. 이 때문에 곤충과 절지류 생물체들은 종종 불청객 취급을 받습니다. 집 안에서 등장했을 때 특히 더.
△ 작은 사마귀는 은근히 귀엽다
덕분에 다수의 SF 문화 매체들에서는 벌레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등장합니다. 기괴한 외형과 거대한 덩치, 사람을 능가하는 완력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봤던 가장 인상 깊었던 벌레 괴물 중 하나는 바로 웹툰 하이브에 등장하는 흑벌들이었습니다.
△ 웹툰 하이브의 흑벌
하이브는 북극항로 개척으로 인해 지구의 대기 산소 농도가 높아져 곤충들의 거대화가 이뤄졌다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거대되어 공포스러운 흑벌들은 총알을 몇 발 쏟아부어도 죽지 않습니다. 거기에 지능도 높고 떼로 무리지어 다니며 전차포탄으로 자폭 공격을 할 줄도 압니다. 꿀벌같이 무리지어 사는 습성을 갖고 있어 압도적인 숫자에 군대가 애를 먹기도 합니다. 그럼 실제로 이런 거대한 곤충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곤충의 거대화는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보통 우리가 말하는 '2배가 커졌다'는 표현은 사실 절대 2배만 커진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크기가 두 배 커졌다는 뜻은 높이, 너비, 길이가 모두 2배로 늘었다는 뜻이며, 우리가 '2배 커졌다'고 표현 하는 것은 사실 8배가 커진 것이죠.
그렇다면 10cm의 곤충이 1m로 거대화된다고 생각해볼까요? 이때 곤충의 질량은 원래 크기에 비해 몇 배가 된 것일까요? 10배? 100배? 아닙니다. 길이, 높이, 너비까지 10배가 되었으므로 10x10x10, 즉 1,000배의 무게가 나가게 됩니다. 1,000배 중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000배 강한 근육이 필요하고, 1,000배의 음식섭취가 필요하게 됩니다. 1,000배의 음식물을 운동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또 뭐가 필요하나요? 바로 산소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호흡 시스템과 달리 곤충은 매우 단순한 호흡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순환계를 통해서 폐로 빨아들인 산소를 온몸에 전달하는 데에 비해 곤충들은 온몸의 관들을 통해 산소를 직접 조직으로 전달하는 개방 혈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나 포유류 등 다른 척추동물들은 산소 소비가 많아져도 그만큼 숨을 더 많이 쉬는 능동적인 대처를 하면 그만이지만, 곤충들은 표면의 숨구멍과 접촉하는 공기에 산소 공급을 의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호흡이 이루어져 산소를 흡수 하는 것조차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 길이가 2m에 달했다는 아르트로플래우라
이 곤충의 거대화는 사실상 어려워 보이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 지구는 거대 절지동물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한번 거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고생대에 실존했던 날개폭 75cm에 이르는 거대 잠자리인 메가네우라부터 2m가 넘는 노래기인 아르트로플래우라가 거대 절지동물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거 지금과 달리 거대한 절지동물들이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대기의 산소 농도가 현재보다 현저히 높았기 때문인데요, 35%에 달하는 엄청난 산소 농도로 인해 한계점에 가까운 크기까지 덩치를 키우고도 충분한 호흡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석탄기에서 페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산소 농도가 낮아져 이 거대 절지동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산소 농도만 높아진다면 지금이라고 저렇게 큰 절지동물들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한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산소 농도를 다르게 조절한 환경에서 각기 다른 곤충들을 사육한 결과 산소 포화도가 높을수록 곤충들의 몸집이 커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퀴벌레와 같은 몇몇 종들은 고농도 산소의 대기에 노출되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31%의 산소 농도에서 사육된 잠자리와 딱정벌레 같은 종들은 일반적인 잠자리와 딱정벌레들보다 몸집이 15%나 커졌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따로 돌연변이나 눈에 띄는 유전적 변화가 없었음에도 몇 세대 만에 그 정도의 차이가 생겼다는 것은 산소 농도가 곤충들의 크기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으며, 인위적인 유전 조작이나 사육환경을 조작한다면 슈퍼 곤충은 하이브같은 SF웹툰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생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겁니다.
△ 웹툰 하이브에 나오는 기갑병기들은 벌레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한다
다만 하이브에 등장하는 흑벌들처럼 인간이라는 종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한 종이 등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곤충이 그 정도로 거대화가 된다면 그 거대한 몸뚱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상도 못 한 만큼의 음식과 열량이 필요할 것이고, 그 때문에 당연히 지금과 같은 엄청난 개체 수를 유지하기도 힘들게 되겠죠. 강력한 외골격도 유지하기가 힘들 가능성이 큽니다. 단단한 키틴질 외골격은 그 크기가 커진다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려 장기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만약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는 종이라고 해도 인간이 가만히 둘지는 모르겠군요.
결론적으로 거대곤충의 등장 자체는 현실성이 있으나,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 절지류의 등장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하이브처럼 인간을 잡아먹고 숙주로 삼는 거대곤충종들이 지배하는 시대는 인간이 번영하는 동안은 오지 않겠지만 혹시 모릅니다. 수천만 년 뒤 거대한 잠자리들이 다시한번 하늘을 뒤덮는 장관을 연출할지도.
참고자료
High oxygen super-sizes dragonflies, ASU study reports, Margaret Coulombe, 2010 ;
https://sols.asu.edu/news-events/news/high-oxygen-super-sizes-dragonflies-asu-study-rep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