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이길 원하는 만화의 힘 : 《오민혁 단편선 화점》
웹툰의 큐레이션이 중요한 시대.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오민혁의 단편만화를 통해 만화의 본질적인 힘에 주목한다.
우리나라에서 웹툰이 영상 매체에 원작 IP를 제공하는 주요 공급원이 된지는 오래다. 그래서 웹 플랫폼 ‘코믹스’가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꾸어 자체 영상화 기획과 제작의 확장성을 꾀하거나, 거대 포털의 웹툰 브랜드가 영화 제작 스튜디오를 자사로 두는 사례가 이제는 전혀 놀랍지 않다. 항상 새로운 이야기에 목마른 영화와 드라마에게 웹툰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문제는 워낙 방대한 까닭에, 이중에서 영상화에 용이하고 변환한 결과물의 성공 가능성이 큰 작품을 고르기는 어렵다. 방대한 양이 개별 작품의 고른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 웹툰을 고르는 다양한 취향은 계속 변화하는 대중의 성향을 고려해야하는 영상 매체에선 특히 까다로운 문제다. “웹툰의 시대”는 옛말이다. 지금은 웹툰의 ‘큐레이션(Curation)’이 더 중요하다.
시나리오 작가 데뷔 무렵, 당시 유행한 웹툰 원작 영화화 각색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10년의 이력으로 쌓인 나는 어쩌다보니 만화와 영상 사이 ‘변환 젠더(converter)’ 노릇을 자주 해왔다. 클라이언트가 고른 웹툰을 영상으로 옮길 때 중요한 원작 테마의 본질과 각색의 난이(難易) 요소를 프로듀서/작가 입장에서 미리 조언하는 일이다. 즉, ‘리뷰’를 하는 것이다.
영상화 기획이란 리뷰와 회의의 반복이다. 업계 내부의 리뷰는 개인 취향이나 작품의 가치를 따지는 비평적 리뷰와 다르다. 이 리뷰는 오로지 원작이 매체 변환에 실제로 적합한지 여부와 흥행 가능성만을 검토한다. “실사화 각”이라는 댓글에 다들 공감을 표한 웹툰이 영상화로 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반대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 뒤늦게 웹툰 원작이었음을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인과 업계 실무자가 보는 영상화의 가능성은 비슷하면서도 꽤 다르다.
물론 인기작부터 먼저 영상화 고려 대상이 되겠지만 결정은 쉽지 않다. 만화는 그림과 대사로 이루어져 영상으로 옮기기 용이해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의 스토리텔링은 보는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거의 현실에 가까운 핍진함을 기본적으로 요구하는데, 만화에선 이해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요소가 영상으로 옮기면 문제투성이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특히 주류 웹툰에서 스토리텔링과 연출 방식이 획일적인 경우가 많아 이런 문제는 빈번하다.
예를 들어 중요한 구간을 그림이 아니라 대사나 글로써 넘기는 연출은 영상으로 넘어올 때 모조리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글로 쓴 화자의 내면 같이 웹툰에서 타성적으로 만연한 ‘비(非)만화적’ 연출이 영상 변환의 흔한 걸림돌이다. 이런 문제들이야 본격적인 영상화 검토 때 해당되고, 우선은 가능성 있는 작품을 찾아 골라내는 것이 첫째 관문이다. 영상화 각색에서 마주했던 실무적인 문제들은 나름대로 노하우가 더 쌓인다면 언젠가 제대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밥벌이를 위해 거의 만화-영상 변환기계(?)처럼 살다보니, 웹툰 에이전시에서 영상화 기획 프로듀서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수천 편에 달하는 자사 보유 IP 중 영상화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분류하고 선별하는 일부터가 숨 쉬듯 하는 기본 업무. 만화가 아무리 좋아도 매주 수십여 장편을 세세하게 검토하며 보는 업무는 고달프다. 애호가 마인드만으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애호가와 프로듀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편협한 취향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좀 더 보편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감식안이 필요하다. 프로듀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애호가인 동시에 반드시 객관을 목표로 하는 큐레이터여야 한다. 원 매체보다 더 적은 소비자를 목표로 하는 미디어 믹스는 없다. 영상화는 원작의 팬을 넘어 더 많은 대중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취향에 직격한 주관적 걸작보다 누구에게든 공감을 얻어낼 만한 객관적 수작이 영상화에 더 합당하다. 소명의식을 가져볼 정도로 굉장한 작품을 만난다면야, 개인적인 실사화 욕망을 객관적 목표치와 일치시켜 진행해볼만 하다. 성공한 작품은 프로듀서가 고심한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 <오민혁 단편선>
짧은 시간의 프로듀서 생활을 마치고 다시 작가로 돌아온 나는, 이제 웹툰을 좀 덜 봐도 되려나 해방을 기대했으나 잠시뿐이었다. 각색을 주업으로 하는 시나리오 작가는 원작 리뷰를 꼼꼼히 잘해야 일할 기회를 얻으니까. 대신 어디 가서 누가 무슨 웹툰을 좋아하냐 물으면 PD의 입장이 아니라 작가로서 순진한 척 맘대로 답할 수는 있다. 영상화 가능성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고 취향과 팬심만으로. 몇 년 전 언젠가 ‘N’(이렇게만 적는다)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모회사 플랫폼 보유 웹툰 중에 뭘 좋아했냐 묻기에 단번에 말했던 게 바로 오민혁의 만화였다.
왜 이 만화들을 여태까지 가만히 내버려두고 계세요? 그의 단편 만화가 혜성과 같이 등장한지도 벌써 5년 전이다. 당시 만화 좀 본다고 하는 이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이었다. 천재 신인이 등장했다는 소문에 의심했는데, 첫 작품 <화점>을 보고 놀랐다. 단편의 소재가 바둑이었다. 바둑이라고? 아직 이세돌이 AI와 매치를 벌이기 1년 전이다. 승부의 세계에 찌든 젊은 프로 기사가 세상을 떠난 스승과 초자연적 수담(手談)을 나누며 잊었던 바둑의 참의미를 깨닫는 내용에 나는 노재승 감독의 단편영화 <창호는 누구에게 물어보나?>(2004)가 떠올랐다. <화점>은 과거 만화대상 같은 공모의 당선작으로 어울릴만한, 준비된 작가의 만화였다. 나는 이후 이어진 그의 단편 만화들을 보며 이 만화들 전부를 영상화하면 정말 근사하겠다고 생각해왔다.
오민혁 단편선을 국내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각 한 작품씩 맡아 영화화한다면? 옴니버스 영화 형태의 앤솔로지라면 썩 멋질 것이다. 단편을 꼭 단편 분량으로 옮길 필요도 없다. 오민혁의 단편들은 더 긴 이야기의 원형으로도 쓸 만하다. 특히 <매듭>은 단편의 모티브를 장편으로 확장한다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1972)로 시작해서 존 카펜터의 <괴물>(1982)로 끝나는 무시무시한 SF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군중 속에 홀로 고독한 자가, 만약 그 고독을 군중과 공유하고자 한다면? 게임 <괴혼>을 뜬금없이 떠올렸던 <매듭>의 결말은 감히 말하건대 21세기 한국 만화 중 가장 소름끼치는 엔딩이다. 나는 영화감독으로서 첫 번째 작품을 변변찮게 만든 탓에 차기작을 선택할 권력을 못 가져본 걸 한탄한다. 언젠가 네임드 작가나 감독이 된다면 영화화하고픈 웹툰의 목록이 가슴 속에 있는데, 오민혁의 <매듭>은 늘 상위에 있다.
N에서 뭐든지 당장 할 수 있을 것처럼 영업을 하고 영상화 검토와 리뷰를 요청받은 몇 작품의 목록을 받고 돌아와서, 나는 작가로서 내 현실을 자각하다 그만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웹툰 각색 시나리오 작가가 업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거물 클라이언트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쪽에서 권한 작품들에서 영상화의 객관적 가능성은커녕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어야 할 나 자신의 의욕조차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내 신변과 건강에 여러 문제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리뷰는 결국 전달하지 못했다. 나를 알고서 불러준 담당자 분에게 특별한 미안함과, 만약 정말로 오민혁의 작품을 각색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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