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금혼령-조선혼인금지령》 속 곤룡포 이야기 - 2편 웹툰으로 보는 우리나라 복식 이야기
권병훈(복식사 전공 <오례> 대표/영화 '남한산성' 복식 자문)
남은 어진(御眞)을 통해 바라 본 조선 시대 곤룡포의 변화 남아있는 조선 시대 임금의 모습을 그린 어진 중에서 조선 시대 곤룡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게끔 대략 3분기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은 어진들로 나눌 수 있다.
필자가 제시한 세 가지 어진은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태조 어진 복원품, 영조 어진, 순종 어진 복원품이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인물로서 조선 초기 복식의 특징을 엿볼 수 있고, 영조의 경우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이끈 군주로서 넉넉하고 화려한 조선만의 특징을 가진 복식을 볼 수 있다. 끝으로 순종의 경우 구한 말의 암울함 속에서도 복식에 대한 사치를 자제하고, 무너져가는 대한제국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애쓴 군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먼저 태조의 어진을 보면 청색 곤룡포를 입은 모습이 그려진 것과 홍색 곤룡포를 입은 모습 두 점이 남아있다. 색의 차이와 연령의 차이를 묘사한 것을 제외하곤 서로 흡사한 모습을 갖고 있으므로 이번에는 홍룡포본만 놓고 설명하겠다. 손을 공수(拱手) 자세로 하고 있어서 소매가 자세히 보이진 않으나 좁은 소매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깨와 가슴, 등에는 용이 수놓아진 흉배(胸背)가 보이는데 용이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머리와 몸을 틀어놓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엔 높이가 낮은 익선관을 썼는데 뒤쪽에 달린 뿔이 비죽 솟은 형태임이 확인된다. 옥대의 옥은 비취색 옥을 아로새겨서 장식한 것을 사용했으며 속에는 옥색의 답호와 남색의 철릭을 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으로는 협금화(挾金靴)를 신었는데, 앞코가 올라온 형태임을 알 수 있다. 현전하는 어진 중 이 다음 시대를 보여주는 어진으로는 김은호 作 세조 어진 초본이 남아있으나, 이번 글에서는 생략한다.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영조의 어진은 아쉽게도 반신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반신상만으로도 복식의 특징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먼저 머리에 쓴 익선관의 높이다. 태조의 것과는 달리 익선관이 매우 높아졌는데, 이는 동시대 관료들의 관복 초상화를 봐도 그 당시 모체가 높은 사모와 익선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뿔 또한 태조의 것과는 달리 둥글게 바뀌고 몹시 커졌음이 확인된다. 또한 곤룡포의 흉배는 모두 정면을 바라보는 형태로 변형되었으며 옥대는 백옥을 아로새긴 형태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흑화는 어떤 것을 신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안에는 비취빛 받침옷을 입은 것이 넓은 소매 끝을 통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이 옷은 관복의 받침옷으로 즐겨 사용한 창의(氅衣)일 가능성이 있다.
끝으로 순종의 경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곤룡포의 색깔이다. 1897년 10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르면서 조선의 복식은 모두 황제국의 등급으로 상승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전까지 입던 홍색 곤룡포가 아니라 황색 곤룡포를 입음으로서 자신의 신분이 왕에서 황제로 상승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황색을 황제의 색으로 표현하는 까닭은 오방색(五方色:청,홍,황,백,흑) 중에서 황색이 가장 중앙을 나타내는 권위의 색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천자(天子), 즉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다. 그만큼 서구 열강이 가득한 국제 정세 속에서 스스로 자주적인 국가가 되었음을 천하에 드러내고자 애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순종의 경우엔 높이가 낮아진 익선관을 머리에 쓰고 작아진 흉배와 백옥으로 꾸민 사각형의 옥대, 앞코는 평평하게 된 흑화를 신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받침옷으로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 확인이 어려우나 짐작하건대 두루마기(周衣) 위에 전복(戰服)을 입은 차림이 아닐까 한다.
이 외에도 무와 단령 깃의 변화 및 다양한 부분을 두고 세세하게 다뤄야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논하기보다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비교적 단순하고 간략하게 기술하고자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