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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웹툰 기획 단계에서 놓치기 쉬운 것

웹툰을 살리는 '기획서', 왜 중요하고 어떻게 써야할까? '기획서' 쓰기에 대한 단상

2021-02-11 고동동



웹툰 기획 단계에서 놓치기 쉬운 것
웹툰을 살리는 '기획서', 왜 중요하고 어떻게 써야할까? 
'기획서' 쓰기에 대한 단상

   고동동(작가)



  이야기의 첫 관문으로써의 '기획'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그의 필생의 역작 <역사의 연구>에서 ‘인간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 말했다.

유기체적인 문명은 주기적으로 흥하고 망하는데 이것이 역사이고, 문명의 추진력을 고차 문명의 저차 문명에 대한 도전과 대응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스토리 역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이야기이다. 이 스토리가 시작되는 첫 관문이 바로 기획이다. 기획이 잘될수록, 글을 쓰는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내내 옆길로 새지 않고,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만들 수 있다. 기획이 허술하면 작가는 글을 쓰며 엄습하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가능성의 바람과 해류 속에서 방황하다 결국 암초를 만나고, 태풍을 만나 좌초하게 된다. 이 긴 항해에서 등대와 별자리, 나침반이 되어주는 게 바로 기획이다. 그렇기에 기획은 작품을 시작하는 첫 관문이면서 동시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렇다면 좋은 기획이란 무엇인가?

좋은 기획엔 작가가 하고자 하는 바가 녹아있고, 캐릭터 간의 딜레마와 구성이 보이고, 작품의 주요 갈등과 정서, 주제가 한눈에 보이며, 군더더기 없는 강렬한 이미지 즉 심상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위에서 열거한 모든 걸 충족하는 강렬한 기획을 쓰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 대부분은 우리 웹툰 작가들은 기획을 스토리와 콘티로 나가기 위한 부수적인 과정이라 생각하고, 대충 짜거나 아예 무시하기도 한다. 왜냐면 작가의 결과물은 작품이고, 그 결과물 어디에도 기획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며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겉만 본 이야기다. 좋은 기획은 작품의 첫발이고, 나침반이 되기에 이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 완성되면 이 보이지 않는 기획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강렬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런 것이라면 이미 머릿속에 있고, 다 알고 있으니 자연스레 작품 속에 녹아든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작품을 왜 글로 쓰는가? 그 작품도 머릿속에서 나왔고 작가가 다 아는 것 아니냐 이 말이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그것, 그 아이디어와 창작의 에너지들은 그들이 모여 얼개를 이루고 전후를 가지며 서로 보완하며 섞일 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한다. 이 모든 게 그냥 머릿속에서 완성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린 이 모든 걸 끄집어내, 그것과 다투어 응축시키고 하나의 문장이나 문단으로 만든다. 그렇기에 기획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진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좋은 기획서의 예를 보고 싶어질 것이다. 작가는 주로 잘된 드라마들의 기획안을 보고 참고하며 연구해 본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오 나의 귀신님”,”키스 먼저 할까요”의 기획안을 찾아보면, 글의 서두에 있는 기획안만 보고도 그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인지 드러나고,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보인다. 호감이 생기고 어서 빨리 뒤에 전개될 스토리를 보고 싶어진다. 그 기획안을 이글에 올리고 싶지만, 그건 그들의 지적재산이니 올리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한 번씩 찾아보길 권한다.



기획서의 효용

이제 만화 즉 ‘웹툰’의 이야기로 돌아가, 십 년 전만 해도 연재를 위한 작품을 준비할 때 기획은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잘 쓰인 그럴듯한 시놉시스와 1화나 2화 원고만 있으면 작품은 선택되었고 연재가 가능했다. 완성된 스토리가 아닌 시놉시스에 의지해 연재를 진행하고, 연재 중 독자의 반응에 따라 그때그때 스토리를 바꾸기도 했다. 


현재는 경력 작가의 경우 플랫폼과 에이전시에 작품을 제안할 때 기획서를 먼저 보내는 경우가 많다. 경력 작가의 경우 이미 실력과 그림체 및 스타일이 검증되었기에 기획서만으로 작품이 어찌 전개될지 대략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획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잘 보여주는 기술도 중요하게 되었다. 작가 입장에서도 경제적이다. 작품의 1화를 만든다는 것, 새로운 걸 창조해 내는 것은 즐거운 일인 동시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소위 잘 팔리는 1화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몇 달을 고생해 1화를 만들고 시놉시스을 완성했는데 연재를 해줄 플랫폼이, 혹은 연재를 도와줄 에이전시가 부족한 부분이나 시의성을 이야기하며 혹은 장르를 이야기하며 이 작품을 살리려면 대대적 수정이 필요하다 할 때 작가는 소위 ‘멘붕’에 빠진다. 정신적, 신체적 데미지가 상당하다. 



하지만 이 모든 위험부담을 기획서 한 장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기획서를 잘 쓰는 기술을 연마하는 건 꽤 중요해진다. 또한 보이기 위한 용도만이 아닌 위에서 설명한 작품 전체의 기준점이 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중요해진다. 앞에서 설명했던 대로 과거의 경우 시놉시스가 통과되고 연재가 시작될 때 회차마다 달리는 독자들의 댓글은 작가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들이다. 작가보다 똑똑한 독자들의 주문 혹은 아이디어 제안은 퍽 매력적이어서 그렇게 바꾸고 싶은 욕망이 강해진다. 이런 유혹이 들 때 나를 잡아주는 것, 이 이야기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니 이 아이디어는 도움이 되고, 이 아이디어는 독이 될 거라는 방향성이 바로 이 기획에서 생기는 것이다. 또한 좋은 기획을 쓰기 위해 고치고 고치다 보면,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중요한 걸 강조하고, 또 그중 중요한 걸 가리고, 중요한 줄 알았으나 사실 동어반복이었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아직은 흐릿했던 내 이야기, 내 아이디어, 나의 보석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내기 시작한다.





마치며

이 글을 보는 분들이 작품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창작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기획이라는 나침반을 마련해 길을 잃지 않고 연재라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