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심비(價心比)_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
최선아(웹툰 기자)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가성비(價性比)를 추구해왔다. 전쟁과 급격한 산업 발달로 내 집 마련도 개천에서 난 용도 꿈이 아니었던 20세기 상황은 윗세대로 하여금 ‘돈’에 대한 어떤 맹목적인 지향을 심어 주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말하는 단어 가성비는 필요한 물건에 최대한 적은 돈을 쓰고자 했던 이전 세대의 소비를 대변하는 말이었다.
몇 년 전부터 등장한 ‘가심비(價心比)’는 오랜 세월 한국인들을 지배했던 가성비 문화에 대척하는 단어이다. 주로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로, 조금 비싸더라도 돈을 쓰는 당사자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된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가심비 소비는 특히 덕질 문화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애정을 쏟는 대상에 대한 물건이라면 가성비가 어떻든 사람들은 아낌없이 돈을 쓴다. 4만원이 넘는 봉제인형, 2만원이 넘는 핸드폰 케이스, 6만원대 후드티 등,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보다 저렴하고 성능 좋은 상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구매자에게 있어 ‘덕질 굿즈’만큼 예쁜 것은 없다. 가성비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백화점에서 사는 것보다 싸니까’,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으니까’. ‘되팔 때 비슷한 돈으로 팔 수 있을거야’ 등 온갖 이유를 대며 가심비를 추구하게 된다.
△ 아이돌을 아주 귀엽게 재현하는 아이돌 봉제인형
덕질 문화의 일부인 만화와 웹툰 소비 경향도 마찬가지이다. 재미있으면 팔리고 캐릭터성이 있으면 팬들을 모아진다. 팬들이 많아지면 웹툰 판매는 물론 굿즈 등 2차 산업도 활발해진다. 덕질 문화에서 금액은 2차적인 고려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덕질 대상을 어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재현해내는가에 있다.
가심비를 추구하는 이런 문화적 경향은 판매자 입장에서는 고급화 전략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같은 콘텐츠를 가지고 흑백 모조지에 인쇄한 만화책을 4천원에 파느니 컬러 인쇄한 양장 도서를 1만 오천원에 파는게 훨씬 이득이다. 전세계적으로 만화 산업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지갈이’ 전략도 가심비를 노린 전략에 해당한다.
△ 화장 지워주는 남자 단행본
△ 표지 빼곤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샀다. 왜냐? 표지가 다르니까!
고급화 전략은 어쩌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다만 가심비를 좇는 트렌드가 퀄리티 낮은 제품을 비싼 값에 팔아 넘기려는 판매 전략으로 사용되면 몹시 곤란하다. 가격이 비싸도 팔린다는 태도로 저퀄리티의 상품만을 내세우면 언젠가 팬들을 떠나게 되어 있다. 가심비 소비의 포인트는 조금 비싸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