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 《야화첩》 속 한량들의 복식 이야기 (하) 웹툰으로 보는 우리나라 복식 이야기
권병훈
이외에도 신윤복의 그림을 살펴보면 한량으로 추정되는 양반들의 화려한 복식을 볼 수 있는데 그림 4는 《청금상련》이라는 작품으로 기녀 셋과 양반 셋이 마당으로 추정되는 곳에 나와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또 여성을 희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맨 왼쪽의 남성의 경우 상투까지 드러낸 모습으로 기녀를 끌어안으며 희롱하고 있는데, 겉에는 백색의 소창의를 입고 있고, 그 옆 바닥을 보면 모자가 보이는데 머리에는 아마도 방건을 썼던 것으로 짐작된다.
방건은 말총을 이용해 짠 모자로, 탕건 위에 쓰던 평상시의 쓰개였다. 방건의 경우 그 명칭이 방건·사방건·사방평정건 등으로 불리며 형태는 그림 5에서처럼 위가 뚫린 형태도 있고, 위가 막힌 형태 두 가지가 남아있는데 《청금상련》 속에서 방건은 위가 막힌 형태로 추정된다. 그림 6의 이인엽 선생 초상을 보면 사방건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금상련》 에서는 소창의 차림이지만 중치막, 대창의, 도포, 학창의 등 양반들의 다양한 옷차림에 사용된 쓰개였다.
또 눈여겨 볼 것은 뒷짐을 지고 서있는 양반의 차림새다. 챙이 넓은 갓을 쓰고 미색米色 빛깔의 포를 갖추고 있으며, 허리띠는 다회를 매고 있는데, 갓끈이 눈에 띈다. 갓의 턱끈은 보이지 않고 상투 위에 위태롭게 얹은 갓에는 주렴珠簾 같은 패영을 배꼽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린 모습을 볼 수 있다. 갓끈의 경우 비단끈을 턱끈으로 쓰는 사영紗瓔이 있고, 보석류를 꿰어서 턱끈으로 사용하는 패영貝纓이 있는데 이 그림 속에서는 패영만 보인다. 어찌 보면 거친 바람 한번에 갓이 벗겨져서 대단히 불편할수도 있을텐데도 옛 그림 중에서는 이렇게 직물로 된 턱끈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보인다.
그렇다면 저 긴 패영이 어떻게 직물로 된 턱끈의 용도를 대신했을까? 같은 그림에서 기대앉아 노래를 듣는 양반을 자세히 보면 해답이 드러난다. 길게 늘어뜨린 턱끈을 왼쪽 관자놀이 쪽으로 보내어 턱에 바짝 조이게 하고 남은 부분은 빙빙 감아서 옆에 늘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갓끈 매는 양식의 유행은 영조 대 인물인 조현명이 먼저 시작하고,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그를 보고 따라함으로서 유행처럼 번지게 됐다는 내용이 문헌에서 보인다. 다소 실리적이진 않으나 가지고 있는 장식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취한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외에도 《주유청강》을 보면 기녀를 희롱하는 한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한량은 넓은 갓이 비뚤어진지도 모르고 온 정신을 그녀에게 쏟고 있다. 특히 갓의 크기가 매우 넓은데,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정조시대인 1779년에도 ‘노비와 같은 천민들이 도포와 갓을 쓰고 다닌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니 정치·경제적으로 중흥기를 이끌던 영조,정조 시대인 18세기 조선의 사치스러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된다.
아마도 조선시대 귀한 집의 도련님으로 태어난 《야화첩》의 캐릭터들이 별감처럼 화려한 색감까진 따라하지 못 했어도 겨울엔 여러 겹의 따뜻한 비단옷, 그리고 더운 여름엔 얇고 부드러운 옷감에 등토시나 등나무 배자, 그리고 한양가 속 별감들의 복식에서는 언급되진 않았으나 화려한 선추가 달린 부채 등 그들이 사치스러운 복색을 누렸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는 더 많다고 여겨진다.
본 작품의 경우 작가가 인터뷰 중에서 고증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있다는 답변을 한 바가 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작품의 시대연도 측정이나 고증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보다는 캐릭터들이 착용한 옷이 어떤 옷인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먼저 《야화첩》 속 한량들의 차림새는 3가지 스타일로 정리된다. 1번째는 대창의 차림이다. 대창의는 창옷 중의 하나로 도포와는 엄밀히 형태가 다른 옷이다. 대창의는 관복의 받침옷이나 양반들의 겉옷으로 착용되었던 옷이기도 한데, 특징은 옆의 트임이 없고 진동선을 기준으로 아래가 트여있는 형식의 옷을 말하며, 도포와의 차이점은 뒷자락에 전삼展衫이라는 부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한다. 사실 대창의의 경우 소매가 넓은 것도 특징이지만, 《야화첩》에서는 그리 넓은 소매로 연출하진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급 캐릭터들은 화려한 옷차림을 보여주는데, 이 대창의 위에 2,3번째 스타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바로 대창의 위에 답호나 방령의를 갖춰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답호는 관복의 받침옷으로 활용했는데, 주로 철릭이나 직령포 위에 입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학자들마다 분석하는 결과는 다른데, 답호가 17세기 창의의 등장 이후 착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고, 답호는 다른 형태로 변화해서 관복 안의 받침옷으로 꾸준히 착용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단 그림 9 속 지화가 착용한 주황빛의 답호는 지화의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성격이 엿보인다. 형태는 소매가 어깨선에서 살짝 더 내려가는 양식이며, 목깃은 y자 형태인 직령으로 확인된다. 이외에도 무와 같은 세부적인 장식도 살펴봐야하나 앞서 언급한 고증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있어서 생략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림 10에서 윤승호가 입은 옷은 방령의다. 방령은 곧 네모반듯한 형태의 깃을 말하는데, 이응해 장군의 무덤에서 출토된 방령포, 방령의 유물이 가장 유명하다. 방령의의 경우 앞이 길고 뒤가 짧은 형태도 있고, 앞과 뒤가 같은 길이인 것도 있으며, 방령포의 경우 소매와 전체 길이가 일반 포처럼 매우 긴 형태도 있다. 그 중 윤승호가 입은 것은 소매가 짧고 대신 전체 길이가 긴 형식으로 착용했는데, 작품의 초창기에는 일반 사대부와 같이 옥색과 같은 연한 빛깔의 옷을 입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어두운 색감의 옷을 착용함으로서 어두운 윤승호의 성격과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갓끈의 경우 묘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이 보이긴 하지만, 한량들에게 있어서 부채와 선추, 주머니, 향낭, 패영 등 화려함을 뽐낼 수 있는 것들은 더욱 많았다. 그러나 작품 속 윤승호의 성격이 음침하고 화려하기보다는 깔끔한 색감과 스타일의 한복을 많이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에서 더 화려하게 연출할 필요는 없겠으나, 지화와 같은 다른 한량들의 경우 지금보다 더 화려한 옷감과 장신구를 선보임으로서 부각시키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로서 《야화첩》에서 등장하는 한량들의 복식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한량들은 조선시대에서 봤을 땐 대단히 한심스럽고 부모를 잘 만나서 세상물정 모르는 왕자님들로만 봤겠으나,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의 컨텐츠로 활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춤을 추던 모양새를 따와서 만든 한량무閑良舞와 같은 춤으로 남기도 했으며, 시시콜콜하고 재미 없던 양반들이 지배하던 사회를 맘껏 누비고 다니며 풍류를 즐긴 가식없는 인물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아직 연재중인 작품이고 동성애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일부 매니아층의 관심이 집중된 작품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대만을 비롯해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을만큼 《야화첩》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사극 컨텐츠의 밑거름이라고 볼수도 있을 듯 하다. 해당 작품의 무한한 건승을 기원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