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빚은, 기존과 많이 달라질 제 48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윤보경
매년, 만화 관련 다양한 전시, 행사, 대담, 시상식을 열었던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Bande dessinée/FIBD)이 지난 11월 중순, 축제 공식 경쟁부문의 작품들 (총 75작품)을 발표했다.
지난 1월과 비교해 이번 48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은 코로나 전염병 사태가 불러온 다양한 제약들 때문에 기존의 ‘정상적’ 방식으로는 치러지지 못할 것이라고 축제 측은 미리 밝혔다. 수상작 발표, 만화계 종사자나 전문가 등을 위해 진행되는 소규모 행사들만이 내년 1월 28일과 29일, 이틀간 치러질 예정이며, 그 외의 대중들을 동원해야 하는 규모가 큰 행사, 전시, 작가 사인회 등은 내년 6월 24일~27일로 미뤄질 것이라 설명했다. 첫 번째 축제는 프로페셔널들을 위한, 두 번째 축제는 대중들을 위해 치러지게 되는 것이다.
다만, 프랑스 철도청과의 협업으로 만화 관련 소규모 전시들이 프랑스 곳곳의 50여 개 기차역에서 마련될 것이고, 성탄절 연휴와 겨울방학을 맞아 기차를 통해 이동하는 대중들에게 선보일 것이라 밝혔다.
△ 48회 앙굴렘 만화 페스티벌 공식 포스터
△ « 패닉에 빠지지 말고, 만화를 읽으세요! » 코로나 사태에 맞춘 축제 슬로건
프랑스 만화 축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책 소개 및 작가 사인회’는 6월로 예정되어 있지만, 이 기간은 파리 도서전 (Salon du livre)과 그 시기가 겹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두 주최 측 사이의 줄다리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규모가 큰 앙굴렘 만화축제와 파리 도서전 이외에 다른 축제들도 비슷한 기간에 열릴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리옹의 만화축제(Lyon BD)와 아미앙의 만화축제 (Les rendez-vous de la BD d’Amiens) 등, 그 외에도 다양한 소규모 축제들이 본격적인 여름 방학 시즌을 앞둔 5~6월에 열렸다.
대부분의 메이저 출판사, 작가들은 가능한 행사 모두에 참가해 왔었다. 다양한 이벤트에 의존하여 매출을 보장받았던 소규모 출판사나 프리랜서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부분 행사의 기간이 겹쳐버린다면, 참가자들은 어느 한 쪽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일반 독자들도 시기가 근접한 행사들에 굳이 다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앙굴렘 만화 축제 측에서 6월 날짜를 발표하자마자, 업계에서는 다양한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소규모 축제를 주관하는 측에서는 ‘규모가 큰 축제들에 출판사와 작가들, 독자들도 몰릴 것이고 이는 소규모 축제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라고 항의하고 있다. 그들은 ‘대규모 축제들의 이번 선택(날짜를 겹쳐 미루는)이 소규모 축제들을 위협하여, 나아가 다양한 에디터와 작가들에게 주어졌던 축제 참여의 기회를 박탈하게 될 것을 염려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평소와 다른, 비정상적인 축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파리 도서전, 사르바칸 출판사 부스
△ 리옹 만화축제에서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들
△ 아미앙 만화축제에 참여한 작가들
기존과 많이 다르지만, 앙굴렘 축제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공식 경쟁부문의 75개의 작품 (아동 만화 부분에 선정된 8개 작품과 어린이 만화 부문의 8개 작품, 탐정/수사물 (폴라/Polar)부문의 7개 작품, 문화유산 부문의 7개 작품과 일반 경쟁부문의 45개 작품)들은 그 심사와 수상작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월 28일부터 드디어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없는 상점’들의 휴점 명령이 해제되었다. 11월 초에 이동 제한령이 내려지고 약 4주 만의 영업재개였다. 한 숨 돌리게 된 다양한 상점들 가운데에는 서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1년 매출 가운데 가장 높은 매출을 불러오는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두고 상점 문을 열 수 있게 된 것에 출판계와 서점 관계자들은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라는 반응이다.
만화 책 매출과 작가 알리기에 항상 긍정적 영향을 주었던 앙굴렘 만화 축제는 내년에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나 작가 사인회가 없이 치러질 내년 1월 축제를, 만화 관계자들은 걱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