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툰 웹툰 《내시실격》 속 내관 복식 이야기 하 웹툰으로 보는 우리나라 복식 이야기
권병훈(복식사 전공 <오례> 대표/영화 '남한산성' 복식 자문)
그렇다면 조선 시대 내시들의 복식은 어땠을까? 항상 사극이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내시들은 흉배 없는 녹단령에 뿔이 없는 사모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조선 시대 내시들도 위와 같은 차림을 했을까? 사실 내시들의 복식이 어떻다는 규정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하고 초상화나 반차도와 같은 그림에서 내시들의 복식을 살펴볼 수 있다.
△ 임우(1562~1631) 초상,傳 김새신(1555~1633) 초상
위의 두 그림은 조선 시대 내시들의 대표적인 공신도 功臣圖로써 가치가 매우 높은 그림이다. 두 사람 모두 16세기 중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사람인데 얼굴을 자세히 보자. 수염이 없다. 이 두 사람 모두 내시였다. 이 두 사람은 임진왜란 당시 충성을 바치면서 임금을 모시고 전란을 극복했다는 의미로 각각 호성공신 3등에 책록되는 영예를 얻은 인물들이다. 김새신의 경우 흑단령에 백한 흉배를 하고 삽금대를 하고 있어 정 3품의 벼슬에 올랐던 것으로 보이고, 임우의 경우 마찬가지로 흑단령에 운안 흉배를 하고 소금대인 학정대를 하고 있어 종 2품 벼슬에 올랐던 것으로 짐작된다.
다소 충격적인 것은 이들의 옷차림이 우리가 사극에서 보던 녹색에 흉배 없는 관복 차림이 아니라 흉배가 달린 관복 차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시들의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사모의 양쪽에 달린 뿔이 없지 않고 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수염만 달려 있지 않을 뿐, 갖춤새를 봤을 땐 다른 공신 관료들의 초상화와 차이점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를 통해서라도 조선 시대 내시의 관복 차림새는 일반 관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림 엘리자베스 키스 作 - 내시
(출처 : Old Korea (1919) 中)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내시들은 문반의 흉배를 사용했을까? 아니면 무관의 흉배를 사용했을까?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문반의 흉배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 그림은 스코틀랜드의 화가인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구한 말 궁중 내시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단학 흉배가 달린 단령포에 학정대로 추정되는 품대를 두르고 양쪽 뿔이 달린 사모를 쓴 모습이 보인다. 흉배로 봤을 땐 그의 품계가 당하관인 것으로 보이나 품대는 당상관의 것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확한 품계를 짐작하긴 어렵지만 임우, 김새신의 초상화와 더불어 이 그림을 토대로 봤을 때 내관들이 날짐승을 주로 사용하는 문관 관료들의 흉배 제도를 따랐음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궁위령의 조복 차림새
이외에도 내관들은 종묘의 제례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궁위령宮闈令이라는 역할을 맡은 제관祭官들이 보인다. 이들의 주 업무는 종묘의 제향, 국상, 부묘祔廟, 존호가상 등의 의례에서 왕비 혹은 세자빈 등의 신주를 출납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례에 있어 대체로 맡은 일이 큰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재미있게도 이 궁위령이라는 직책은 세종 3년인 1421년 이후 보편적으로 환관들이 맡는 것이 상례였다. 이때 궁위령을 맡은 내관들은 2년뒤인 1423년부터는 일반 제관들과 같이 제복 차림으로 제례에 임했다. 비록 영조 때 내시들이 제복에 이어 조복까지 갖춰 입는 것에 대해 심히 경계하며 여러차례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정조 때 편찬된 《부묘도청도감의궤祔廟都監都廳儀軌》 속 반차도를 보면 궁위령 4인이 조복을 갖춰 입고 말을 타고 행렬에 참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 의례에 참석하는 소수의 내시들에 한해 조복 차림이 허용됐던 것이다.
△ 그림 서대 재현품(필자 소장)
이외에도 내관들의 복색은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특히 환관의 정치 참여가 두드러지는 중국과 고려 시대 일부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국왕의 최측근이자 오른팔로서 대단한 신임을 얻었던 내용들이 확인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시대 의종(毅宗, 1127~1173) 임금 때 환관이었던 정함(鄭諴, ?~?)의 서대 犀帶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정함은 의종의 신임을 받았던 덕분에 의종으로부터 서대를 하사 받았다. 정함은 이를 자랑하고자 자신의 관복의 허리띠로 차고 연회석상에 나타났다. 이를 본 왕식이 대간 臺諫들을 꾸짖었는데 환관이 자신의 직급에 맞지 않는 허리띠를 차고 연회장에 나타났는데 임금이 총애하는 환관이라고 해서 그 누구도 이를 비판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 골자骨子였다. 이를 본 어사잡단 이작승이 이빈을 시켜서 정함이 하고 있던 서대를 빼앗아 오게 했다. 이빈이 다가가 정함에게 서대를 풀고 내놓을 것을 요구하자 정함은 국왕의 하사품이기 때문에 내놓지 못하겠다며 몸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이빈이 정함의 서대를 강제로 빼앗으면서 사건이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에 앙심을 품은 정함이 임금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고하자 국왕이 노하여 이빈을 붙잡아오게 했다. 그러나 이빈은 관청에 숨어서 붙잡지 못했고 대신 아전 민효정을 잡아다가 집단 구타 후 결박해서 궁정소에 가두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건이 더더욱 커지는 모양새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의종은 정함에게 다시 서대를 하사 하면서 위로하고 구타 당한 민효정은 옥에 갇히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간 것을 확인한 이빈이 정함에게 빼앗은 서대를 반환하려 했으나 받지 않았고 결국 여러번 사정을 하면서 돌려준 덕분에 정함이 못 이기는 척하고 돌려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뒷일은 더더욱 환관과 대간 간의 정치 투쟁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로 격화된다. 자신이 신임하는 신하의 허리띠가 압수되자 다시 허리띠를 하사하고, 공정하게 일 처리를 한 신하를 죄주는 것을 봐도 그만큼 왕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경우 앞선 고려 시대의 정함과 같은 기록, 그리고 이웃 나라인 중국의 여러 시대에 국정을 문란 하게 했던 환관의 모습을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에 환관들의 정치 참여를 극도로 배제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 내시는 비록 남성성을 제거당하여 우습게 치부했어도 엄연한 관료로서 화려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편복 차림에서는 정확하게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아보긴 어려우나 조선 전기 국왕이 신하들에게 복식을 하사한 내역 중에서 내관들에게도 복식을 하사한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하사받은 복식을 놓고 비교했을 때 다른 문무백관들이 하사받은 것과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결국 내관들이 문무백관과 평상시 차림도 같은 차림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그림 《내시실격》 속 내시의 모습(출처 : 봄툰 《내시실격》 1화 中)
그렇다면 웹툰 《내시실격》에서 내시들은 어떤 모습으로 연출됐을까? 비록 화연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로 연출하긴 했으나 직제와 복식은 조선 시대의 것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 시대와 연관 지어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보던 모양과 같이 뿔이 없는 사모와 녹색의 단령, 그리고 품대를 착용하고 흑화를 신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그렇다면 왜 내시는 위와 같은 모습으로 연출되곤 할까? 떠도는 설로 남아있고 현재까진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근래 들어서 사극을 연출하던 모 연출가가 내관과 신하들의 복색에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우니 내시들은 사모의 뿔을 제거하고 흉배를 사용하지 않는 모습으로 연출하자는 의견을 내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유행처럼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난 날 언급했던 홍,청,녹색의 관복이 신분 구별을 뚜렷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극 중 장치로서 활약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근래 사극에서는 꽃미남 배우들이 주연을 많이 도맡게 되면서 그들이 나이를 먹어도 수염 분장하는 것은 되도록 삼가는 편이다. 잘생긴 외모를 그대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깔끔하게 수염이 없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런 상태에서 내관과 주인공이 모두 같은 관복 차림을 하고 있다면 주인공도 내시로 볼 가능성이 있다. 그런 구분을 위해서라도 현재까지 위와 같은 뿔 없는 사모, 흉배 없는 관복 차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KBS 사극 《대왕세종》 내시 엄자치의 모습, JTBC 사극 《인수대비》 속 내시 전균의 모습
그러나 근래 모든 사극에서 그렇게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 사극이지만 《대왕세종》, 《인수대비》, 《징비록》 등의 사극에서는 비록 관복의 색이나 흉배가 없는 모양새에서는 큰 변화가 없으나 사모에 뿔을 다는 모습으로 연출되기도 했다. 점차 원래대로 회귀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글을 통해 이번에는 조선 시대 내시들의 복식과 웹툰 《내시실격》 속 내시들의 복식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조선 시대 내시라는 특별한 계층이 갖고 있던 한계성을 뛰어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 작가님에게 찬사를 보낸다. 필자와 같이 머리가 굳은 사람들은 옛 것을 박제시키려고 애쓰지만, 이 아이디어를 갖고 다시 말랑말랑하게 생기를 불어주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완결 작품이긴 하지만 위 작품은 봄툰을 통해서 구매가 가능하니 많은 관심 바란다.
끝으로 이렇게 길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을 약 7편의 글을 통해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웹툰 속 인물들의 복식과 실제 조선 시대 복식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글을 쓰면서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혹시나 웹툰을 작업하는 작가님들에게 해가 되거나 그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최대한 고증 오류를 지적하고 꾸짖는 내용이 아니라 실제 조선 시대와 어떤 차이점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애썼다. 비록 분량이 짧아 모든 내용을 싣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글에 관심 가져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코로나 19 시대에 모두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