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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 웹툰"은 가능할까?

예상보다 급진적인: 감각 번역과 배리어프리한 웹툰

2021-04-20 안희제

"배리어프리 웹툰"은 가능할까?



종이, 전자, ‘책’


나는 책을 좋아한다. 한 페이지에 담긴 생각의 흐름이나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나서 페이지의 끝을 살짝 잡아 넘기는 그 느낌을 사랑한다. 어려운 페이지를 오래 붙들다가 손가락 끝의 땀과 열기에 종이가 울어서 거슬리는 것까지도 사랑한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사랑하는 건 ‘종이책’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전자책 리더기를 산 지는 이제 겨우 두 달 정도 되었다. 부족한 책꽂이 공간과 책값을 생각하면, 어차피 평생 책을 읽으며 살 테니 전자책 리더기가 확실히 효율적이었지만, 나는 몇 년이나 고민하고 포기하길 반복했다. 아무래도 책은 종이여야 한다는 내 안의 ‘아날로그 꼰대’가 자꾸만 고개를 들이밀었다. 

종이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대학에서 장애 인권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종이책은 오로지 눈으로만 읽을 수 있는 매체인 동시에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범위만큼 움직이는 손과 팔을 전제하고 있었다. 

장애인권동아리에 들어간 이후 친해진 사람 중에 지금 함께 대학원 수업을 듣는 형이 있다. 그 형은 책을 정말 많이 읽는 것 같다. 읽는 걸 본 적은 없지만, 그 형의 머리에 든 지식을 고려하면 거의 책만 읽으며 지내는 게 분명하다. 대학 안의 장애인권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할 때, 나는 자주 그 형과 함께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그러면서 형의 상체는 거의 전동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형은 핸드폰을 쓰고 싶을 때 나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자신의 두 팔을 책상 위에 올려달라, 그리고 두 손 사이에 핸드폰을 놓아 달라. 그러면 형은 손가락을 움직여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이북은 언제쯤 나와? 나도 얼른 읽어보고 싶어.” 


내 첫 책이 나왔을 때, 형은 물었다. 출판사와 이북의 출간 시기를 미리 논의하지 못했던 탓에 접근성이 확보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지만, 다행히 점자정보단말기용 대체자료와 TTS(Text To Speech)에 필요한 대체 텍스트는 종이책이 나오기 전부터 꾸준히 논의된 사항이었다(대체자료 제작도 쉽지는 않았다). TTS 기능은 이름 그대로 ‘글자를 소리로’ 번역해주고, 점자정보단말기는 문서를 청각 및 촉각으로 번역한다. 대체 텍스트는 시각 자료인 그림이나 사진, 지도, 그래프를 글자로 묘사함으로써 앞의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짧은 글을 의미하고, 대체자료는 장애 유형에 따라 적절한 형태로 원본을 변환한 자료이다. 전자점자도서, 수어영상도서, 발달장애인자료와 같은 대부분의 대체자료는 제작 과정부터 사용까지 모두 기술 발전을 중요한 변수로 한다. 


배제하는 플랫폼, 배제하는 콘텐츠


이 글을 읽으면서도 알 수 있듯, 접근성을 고민할 때는 계속 다양한 기술이나 프로그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는 한편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접근성의 개선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종이책에서 전자책과 대체자료로의 전환을 만화책에서 웹툰으로의 전환에 그대로 대응시킬 수 있을까? 

만화 감상은 분명 디지털화되었고, 이제 만화방에 가지 않고도 사람들은 편하게 만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소외된 것은 만화방 사장님들만이 아니다. 나는 현재 웹툰 시장에서 가장 지배적인 두 플랫폼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페이지’ 애플리케이션에 있는 버튼들이 얼마나 잘 인식되는지 아이폰의 TTS 기능인 ‘VoiceOver’를 켜고 테스트했다. 기준은 크게 두 개다. 인식 영역이 넓은지, 인식된다면 담아야 하는 정보가 제대로 음성으로 나오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애플리케이션 모두 상태가 심각하다. 카카오페이지는 메인 화면에 나오는 버튼의 절반 이상이 ‘버튼’이라고만 음성으로 나오고, 네이버 웹툰은 하단에 고정된 버튼 5개가 모두 ‘gndbtn1off’, ‘gndbtn2off’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카카오페이지의 한 버튼은 ‘버튼’이라고만 읽히다가 갑자기 ‘권총, 리볼버, 호수, 흐림’이라고 인식되어서 심히 당혹스러웠다. 대놓고 ‘no description available’이라는 말까지도 나왔다. 

작품을 찾아서 들어가기도 어렵다. 플랫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각 작품의 버튼에는 대표 이미지(thumbnail), 작품 제목, 작가 이름이 기본으로 포함되고, 플랫폼에 따라 별점, 조회 수 등이 작은 글씨로 함께 적혀 있다. 그런데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모두 대표 이미지는 버튼으로 인식조차 되지 않았으며, 작품 제목과 작가 이름 등의 요소가 모두 개별적으로 인식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몇 주 전의 업데이트로 해결되었지만, 음성 기반 소셜 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에 들어가면 한 사람당 그의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함께 나오는데, 프로필 사진은 아예 인식조차 되지 않고, 이름은 아주 작게만 인식이 되었다. 수많은 문제 제기가 쌓인 이후에 프로필 사진과 이름은 한 덩어리가 되었고, 이는 버튼의 인식 영역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페이지는 모두 클럽하우스의 업데이트 이전에 존재했던 문제를 지금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을까? 음성 기반 소셜 미디어인 클럽하우스에는 시각장애인 사용자가 적지 않다. 내 지인 중에서도 매일같이 클럽하우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 분명 클럽하우스도 기본적인 애플리케이션 접근성에는 문제가 많았지만, 그 핵심 콘텐츠 자체는 ‘음성 대화’라는 점에서 웹툰 플랫폼과 다르다. 일반 통화보다 음질이 훨씬 개선된 클럽하우스였기에,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은 플랫폼에 애정을 갖고 장애 중심적으로 플랫폼을 “재설계”할 수 있었다1). 즉, 애플리케이션의 접근성이 문제가 있더라도,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당사자의 참여가 전면 배제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 지금의 웹툰에 내재한 근본적인 배제다. 기본적으로 만화는 그림이 중심이고, 글자도 종종 그림의 분위기나 이야기 흐름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고 글씨체 자체가 바뀌는 등 일반적인 텍스트와는 거리가 있다. 말풍선의 배치도 (기본적인 순서는 있지만) 꽤 유동적이라서, 아직 PDF 파일의 OCR(Optical Character Reading) 기능도 종종 에러가 나는 수준에서는 말풍선 안의 글자들도 순서에 맞게 인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웹툰을 보면 글자는 시스템상으로도 그림의 한 부분일 뿐, 따로 글자로 인식되도록 입력된 것이 아니며, 올릴 때 OCR을 따로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 나은 경험을 위한 감각 번역


그렇다면 배리어프리한 웹툰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 번역’이다. 감각 번역은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들)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변환하는 과정으로, 나는 이를 대체 텍스트나 미술관의 음성해설이 단지 보이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걸 넘어 “시각적 스펙타클을 청각적 스펙타클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처음 언급했다.2) 여기서 ‘스펙타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감상 경험에 방점을 찍기 위함이다. 감각 번역의 목표는 단지 ‘원본과 비슷한 설명’이 아니라, ‘원본을 경험하는 것과 더 비슷한 수준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선 웹툰 속의 그림과 글을 생각해보자. 그림의 경우 대체 텍스트를 입력해야 할 텐데, 대체 텍스트와 화면해설 사이에서 타협이 필요할 수 있다. 대체 텍스트는 그림 한 장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하기에 앞뒤 맥락과의 연결은 크게 고려하지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화면해설은 빠르게 변화는 화면들 속에서 시각 정보를 그 속도에 최대한 맞추어 음성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칸과 칸이 이어지는 웹툰의 구성은 ‘그림의 연속’이므로, 그림들의 청각 번역은 이 둘 사이에서 적정한 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中

만화가이자 만화이론가인 스콧 맥클라우드(Scott McCloud)는 만화에서 ‘칸’을 조절함으로써 시간, 사건, 정서에 연속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내러티브에 변화를 주고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칸과 칸 사이의 공백인 ‘홈통’에서 독자의 상상력이 발휘된다는 것이다.3) 여기서 우리는 청각 정보와 마찬가지로 만화에도 시간성과 공간성의 개념이 있으며, 동시에 그림들의 청각 번역에는 그림만이 아니라 그림들 사이의 공간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글은 비교적 청각 번역이 어렵지 않다. 대사, 지문, 의성어·의태어는 각각 (음성) 대사, 내레이션, 효과음으로 번역해낼 수 있다. 소리는 단지 소리만이 아니라, 맥락과 결합할 때 그 소리의 원인이 되는 행동까지 유추할 수 있도록 해주므로, 의태어 또한 많은 경우 효과음으로 번역이 가능할 것이다. 이미 웹툰에 효과음이나 배경 음악을 도입한 시도들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각적 경험의 ‘보완’이었지 ‘대체’는 아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웹툰을 청각적으로 변환하여 스푼라디오에서 제공하는 ‘오디오툰’이라는 서비스도 존재하지만, 여기서도 아쉬운 점이 남았다. 효과음이 전체적으로 분위기에 맞게 변하는 점은 적절했지만, 장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내가 들은 오디오툰 작품에는 한 뱀파이어가 길 가는 청년의 돈을 뜯겠다고 할머니 행세를 하고 그의 집에 따라갔다가 거기서 혼자 잠들어 버리는 황당한 장면이 있었다. 이때 만화였다면 그가 누워 있는 모습이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서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겠지만, 오디오툰에서는 단지 ‘여기서 주무시면 어떡해요!’라는 청년의 대사만이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청각 번역의 근본적 한계는 아니다. 여기서 웃긴 코골이 소리나 이상한 잠꼬대 같은 것을 효과음으로 삽입했다면 청각적 방식의 유머도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각 정보, 의성어, 의태어를 대체할 수 있는 더 구체적인 효과음이나 적절한 설명이다. 4D 영화의 구현처럼 스마트폰의 경우에는 진동을 넣을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들


글, 그림, 칸이 한 덩어리라는 점에서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이미지에 음성과 운동이 없다는 점에서 고유한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영화나 드라마의 화면해설을 만드는 것은 이미 있는 청각 정보를 보완하는 정도지만, 만화는 오로지 시각만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전제로 하므로 웹툰을 청각적으로 변환하는 작업은 그보다 훨씬 급진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핵심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웹툰’이라는 범주나 개념 자체를 재고해야만 한다. 그건 단지 온라인 플랫폼에 있는 만화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는가? 오디오툰은 라디오 드라마와 어떻게 다른가? 각 작품이나 장르의 ‘분위기’는 그것의 토대가 되는 감각의 유형과 얼마만큼 관련될까? 우리는 다른 감각으로 같은 분위기를 얼마만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어느 웹툰의 청각 번역본은 과연 원본과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번역의 결과물은 여전히 ‘웹툰’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우리에게 남겨진 수많은 질문의 답을 찾고자, 나는 감각 번역가의 도입을 제안한다. 감각 번역가는 작가와 처음부터 함께 일하며, 칸의 배치와 그림체, 말풍선의 디자인과 의성어의 글씨체를 통해 어떤 분위기를 전하고 싶은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어떤 성우와 어떤 음악 감독을 섭외할지 논의한다. 배리어프리는 마감 기한과 같은 수준에서 고려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웹툰은 성우, 화면해설, 음향 디자인 등과 만나며 훨씬 복합적인 산업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리어프리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영화에 화면해설을 넣으면 대사 사이에 빈틈이 없어서 해설과 부딪히거나, 해설을 충분히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정이 배리어프리하지 않다면, 결과도 배리어프리하지 않다. 이런 조건들을 마련하고 과감한 번역을 시도함으로써 우리는 앞서 던져진 질문들을 유의미한 방향으로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1) 김초엽, “세계를 재설계하는 사이보그”, 김초엽·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2021, 178~223쪽

2)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 동녘, 2020, 121쪽

3) Scott McCloud, Understanding Comics: The Invisible Art, New York: HarperCollins Publishers, 1993


안희제: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의 칼럼니스트이자 객원기자. 아픈 사람으로서 질병권을 고민하며, 질병과 장애 사이의 경계를 살피고 연대를 모색한다. 『난치의 상상력』(동녘, 2020), 『식물의 시간』(오월의봄, 2021)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