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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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대한 오해를 풀려면 : 법과 도덕 사이

만화계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표절 논란.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기란 가능한가? 더 나은 논의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2021-04-15 김성주



‘표절’에 대한 오해를 풀려면 : 법과 도덕 사이


‘표절’에 관한 글을 시작하면서, 직관적인 접근법을 사용해보고자 한다. 여기 두 장의 사진을 보자.



왼쪽 사진은 2007년도에 마이클 케나라는 영국의 사진작가가 촬영한 ‘솔섬(Pine trees)’이라는 제목의 사진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2011년도 대한항공 여행 사진 공모전에서 입선한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아침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사진이다.

위 두 사진을 비교했을 때, 직관적으로 보기에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풍경을 바라보는 위치, 섬과 주변 환경의 비율, 물에 투영되는 솔섬의 그림자 라인 등, 비슷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다. 때문에 위 사진이 공개되었을 당시, 세간에는 어김없이 ‘표절’ 논란이 일었다.

실제 왼쪽 사진의 주인인 케나라는 작가는 위 대한항공 공모전 출품작이 자신의 작품을 허락 없이 모방했다고 하면서, 대한항공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따른 3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위 작가도 승소를 자신했고, 승소를 점치는 여론도 상당했다. 그러나 위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자연 경관은 만인에게 공유되는 창작의 소재로서 촬영자가 피사체에 어떠한 변경을 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양한 표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전체적인 콘셉트(Concept) 등이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고, 양 사진이 각기 다른 계절과 시각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이를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면서, 위 케나 작가의 저작권 침해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주었다(서울중앙지법 2014. 3. 27. 선고, 2013가합527718 판결).

피해를 주장하던 케나 작가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수 있는 결과다. 그러나 법원은 위와 같이 작가에 대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위 공모전 출품 사진을 촬영한 아마추어 작가나 공모작을 광고에 사용한 대한항공 입장에서도, 분쟁 과정에서 ‘표절’행위라고 지탄을 받으며 그 이미지가 적잖이 실추되었다.


‘표절’은 법적 개념이 아니다

만화·웹툰계 역시 언제나 표절 문제가 있었다. 웹툰 작가들이라면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논란이 바로 “표절” 의혹이다. 요새 웹툰은 인터넷을 통해 빨리 퍼지고, 쉽게 읽힌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대하여 SNS상에 “어, 이거 표절인데?”라며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 곧 수백 수천 개의 반응이 나오고, 의혹은 삽시간에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된다. 하루아침에 ‘스타 작가’에서 ‘표절 작가’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있다.

‘표절’ 논란이 계속되면, 변호사들도 바빠진다.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거나, 표절 의혹을 제기 받았다면서 상담을 요청하는 작가들이 종종 있다. 작가들의 결론적인 궁금증은, 표절행위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할 수 있는지(또는 당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절행위’는 민·형사 소송의 대상이 되는 법적 개념이 아니다. ‘저작권 침해행위’가 민·형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표절(剽竊)의 ‘표’는 표(票)와 도(刀)를 합친 말이다. 좀 더 풀어보자면, 도적이 칼을 들이대어서 글 등을 뺏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어원 자체에서 보듯, ‘표절’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작품을 허락 없이 베꼈다’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반면 저작권 침해행위는 저작권법의 해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판례 등에서 제시하는 특정 요건을 갖추어야 그 침해가 인정된다.1) 즉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① 침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저작물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을 만한 ‘창작성’이 있어야 하고, ② ‘의거성’, 즉 상대방이 그 저작물을 이용해야 하며, ③ 상대방의 저작물과 저작권을 침해당했다 주장하는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 요건을 살펴보면, ‘의거성’은 ‘내 작품을 보고’ 베낀 것인지를 보는 것이다. A 작가가 B라는 작품에 대해 ‘표절’을 주장하였는데, 알고 보니 B 작품이 A 작가의 작품보다 시기적으로 먼저 공표된 작품이라면, 의거성, 즉 ‘먼저 공표된 A 작가의 작품을 보고 베낀 것’이 부정되어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실질적 유사성’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 복제행위가 무엇인지를 가려내기 위한 기준이다. 핵심은 구체적인 표현 형태에서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만 참고하고 실제 ‘표현’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면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

특히 ‘실질적 유사성’을 판별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심지어 우리 법원도 판결문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만화 “바람의 나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면서 제기된 민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저작권 보호의 범위, 그 내용으로서 실질적 유사성의 비교가 문제 되는 사건에서 정확한 권리 보호의 범위를 판단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문제”라고 토로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6. 6. 30. 선고, 2005가단197078 판결 참조).

그러면서도, ‘태왕사신기’와 ‘바람의 나라’ 두 작품 사이에 줄거리와 캐릭터 성격에 있어 일부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유사성만으로는 두 저작물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태왕사신기’ 시놉시스에 의해 ‘바람의 나라’ 만화 저작자의 저작권이 침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이러한 법원의 기각 판결에도 불구하고, 위 드라마 ‘태왕사신기’ 역시 한동안 ‘바람의 나라’를 표절했다는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이처럼,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그 평가의 기준과 방향이 다르다. 사진 ‘솔섬’, 그리고 만화 ‘바람의 나라’ 사례에서 보다시피, 작가와 사람들이 ‘표절’이라고 의혹을 제기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 저작권법 등을 위반하여 법적인 책임을 지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창작에 더하기가 되는 기법과 침해 사이

어떠한 저작물도 완전한 무(無)에서 창조되지는 않는다. 웹툰 작가들이 그리는 이미지, 창작해내는 스토리들도 다양한 기존 창작물들, 주변 사람과 사물,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창조된다. 여러 창작물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이를 기반으로 더 나은 창작물들이 탄생할 수 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표절을 근절함으로써 작가의 창작 의지를 고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 작품에 대한 보호 범위가 과도하여 그 소재 및 내용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서 더 나은 창작물이 탄생하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 트레이싱 기법의 예시 (출처=연합뉴스)


다만, 일반 독자들이 작가의 웹툰을 보고 기존 다른 저작물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의 요소가 포함된다면, 표절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웹툰에서는 기존 창작물의 이미지를 작가 자신의 방법으로 윤곽선을 따서 그리는 이른바 ‘트레이싱’ 기법이 많이 이용되는데, 특히 창작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공표한 저작물로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의 트레이싱이라면, 이는 ‘기법’ 여부와 관계없이 이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표절 또는 저작권침해 시비에 휘말린 후에는, 변호사라고 해도 모든 사태를 되돌릴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저 앞선 침해 또는 논란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원론적 메시지에 불과한 경고를 반복해줄 수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럼 ‘표절’에 대한 의혹 제기 자체를 차단할 방법은 없을까? ‘표절’에 대한 의혹 제기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들에게 헌법상 ‘표현의 자유’, 조금 더 좁게 들어가면 ‘창작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어 있듯이, 독자들 또는 다른 창작자들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독자들 또는 다른 창작자들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작가가 누리는 창작의 자유의 반대급부이며,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 노출하고 널리 유통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욱이 창작자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다만, 근거 없는 표절 주장은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여지도 있다. 앞서 ‘솔섬’ 사례에서도 보았다시피 저작권 침해에 있어서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생각 외로 복잡하고 사안마다 다르다. 때문에 ‘표절’을 주장하는 사람도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가 반드시 진실일 것이라는 자기 확신을 경계해야 한다. 합리적인 문제 제기와 비방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 유포의 경계는 항상 모호하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와 반대급부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표절을 판별하는 기준을 만들어낼 수는 있을까? 사견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표절”이라는 표현 자체에 주장하는 사람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거한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표절에 관하여 누구나 납득 가능한 도덕적 기준을 합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법적으로도 ‘표절’과 별개로 저작권 침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별도의 판단 기준(의거성, 실질적 유사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슬램덩크> 역시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NBA 스틸사진을 활용해 작품을 그린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5년 당시 국민일보에 따르면 일본의 사진가협회는 "사진을 똑같이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는 복제"에 해당된다"2)고 봤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을 기초로 그림을 그려 2차적 저작물로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원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경우는 저작권 침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노우에 다케히코를 고발한 사진기자나 잡지사는 없었다. 그러나 <슬램덩크>를 트레이싱한 의혹을 받은 <에덴의 별>은 발간이 중단되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만화·웹툰계에서 ‘표절’ 논란은 언제든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계속 ‘표절이냐 표절이 아니냐’는 논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창작 과정에 있어서 어디까지를 표절로 볼 것인지에 대한 여러 사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작가들에게 적어도 ‘표절 의혹’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

 


1) 이하, 저작권 침해 요건과 관련해서는 윤영환, 김성주 외, 「웹툰작가에게 변호사 친구가 생겼다」, 바다출판사, 2020, 54쪽 이하를 참조 및 인용하였다.

2) ‘슬램덩크 표절?’ 韓日 대 논쟁…日 사진가협회는 “복제권 침해”, 국민일보, 김상기 기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143&aid=0000002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