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 정당한 피드백인가 온라인 폭력인가
4월 말,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만화 <바른연애길잡이>의 댓글난에 그야말로 불이 붙었다. 남성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이 <바른연애 길잡이>를 '남혐웹툰'으로 낙인 찍고, 악성댓글·별점 테러를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남초 커뮤니티 사용자의 공격으로 촉발된 이 사이버테러는 여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방어전으로 이어지면서, 댓글난은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되었다.
‘남혐웹툰’으로 ‘좌표’가 찍힌 <바른연애 길잡이>는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장르 웹툰이다. 이 웹툰에 ‘남성혐오’가 포함되었다는 주장은 작품 속 캐릭터나 서사를 근거 삼지 않는다. 그보다는 <바른연애 길잡이>의 연하남 캐릭터의 이름 ‘하남’이 ‘한남’을 연상시킨다는 것, 그리고 하남이 작중에서 취한 손 제스처가 메갈리안 로고와 비슷하다는 것이 ‘남성혐오’의 근거로서 지목됐다. <바른연애길잡이>를 그린 남수 작가는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사과문이 게재된 회차의 댓글난조차 페미니스트를 향해 조롱하는 댓글로 도배됐다. 해당 사과문을 마지막으로, 현재 웹툰 <바른연애 길잡이>는 휴재에 들어갔다.
<바른연애길잡이>와 함께 타깃이 된 건 웹툰 <성경의 역사>다. 웹툰 <성경의 역사>도 <바른연애 길잡이>처럼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다. <성경의 역사>의 주인공은 ‘성경’으로, 성경 주변의 남성들은 이성적 호감을 빌미 삼아 성경을 감정적으로 몰아붙이거나 스토킹하는 등 그녀를 괴롭혀왔다. 여학우들은 성경이 남자들을 꾄 거 아니냐며 성경을 고깝게 보고 은근히 따돌린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되면서 성경이 휘말린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이와 동시에 성경의 억울함도 차츰 해소되기 시작한다.
문제가 된 건 성경이 연루되었던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장면이었다. 알고 보니 사건은 한 남성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사진을 단톡방에 유포한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사건의 시발점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연출은 여성 엑스트라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독자들에게 정보를 건네는 방식이었다. “그 사진 뿌린 새끼가 대학 와서 만난 남친이래!” “아 미친…남자들 제발 죽었으면…”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분노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용자들은 ‘남자들 제발 죽었으면’이라는 대사가 남성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하며 <성경의 역사> 웹툰 댓글난을 점거하여 또다시 악성 댓글과 별점 테러를 쏟아부었다. 현재 <성경의 역사>에서 해당 대사는 “아 미친…그런 새끼들 제발 없어졌으면…”으로 수정된 상태다.
남성 유저들의 '총공'과 플랫폼의 반응
‘남성혐오’라는 이름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 웹툰은 비단 <바른연애 길잡이>와 <성경의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두나!>, <소녀의 세계> 등 작품과 상관없이 특정 표현이 쓰인 웹툰들은 모두 '남혐 웹툰'으로 명명되어, ‘총공(총공격)’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이들 남성 유저들의 총공'에 대한 네이버 플랫폼의 반응은 2020년 8월에 있었던 <복학왕> 논란 때와 사뭇 다르다.
2020년 8월 웹툰 <복학왕>의 '광어인간' 에피소드는 특정 장면이 여성혐오라고 지적받으며 도마에 올랐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복학왕>의 오랜 여성 캐릭터인 '봉지은'이 '(취업난에서)귀여움으로 승부를 본(기안84 사과문 중)'다는 설정을 토대로 지은이 식당에서 배 위에 조개를 놓고 깨는 모습이 그려졌다. 독자들은 이 연출이 성관계를 은유한다고 지적하면서, 동시에 반드시 성관계를 지칭하는 게 아니더라도 여성들이 매력을 통해 취업한다는 내용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언행이라며 비판했다. 이에 기안84와 네이버웹툰은 각각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당 장면을 수정한 바 있다. 아래는 <복학왕> 논란 당시 네이버웹툰이 발표한 사과문 전문이다.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고 있으나 네이버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작품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커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작가들에게 환기하고, 작품에 대해서도 계속 긴밀하게 소통하겠습니다." 1)
그러나 이번 <바른연애길잡이>에서 네이버웹툰은 사과하는 대신 사용자에게 경고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 웹툰 <바른연애길잡이> 145화 작가의 말 중
<복학왕>과 <바른연애길잡이> 사건 사이에서 네이버웹툰의 대응이 상반된 건 왜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복학왕>과 <바른연애 길잡이>의 댓글이 각각 어떠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먼저 <복학왕>에서 이용자들이 남긴 주요 댓글은 아래와 같다(<복학왕> 중 '광어인간' 2화 베스트 댓글 캡처). "배 위에 조개 깬다고 합격은 어느 나라 헛소리지" "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냐" "봉지은 같이 능력 없고 머리에 든 게 없는 애가 뽑히는 건 에반데" 등 작품 내용에 대한 비판이 줄을 잇는다. <복학왕>에서 문제가 된 '광어인간' 2화 별점에 참여한 이용자 수는 약 53,000명으로, 바로 직전 에피소드의 별점 참여자 대비 2만 명 정도가 증가했다.
△ 웹툰 <복학왕> 304화 광어인간 2화(2020.08.11.) 베스트댓글 캡처
그에 반해 <바른연애길잡이>에 남겨진 댓글은 "윤지선 교수 한남유충 논문 공론화" "페미들을 상대할 때" 바른연애길잡이 댓글 갤러리" 등 정작 작품 내용과는 상관없는 댓글들이 상위에 채워졌다. <바른연애길잡이>도 <복학왕>과 마찬가지로 별점 참여자가 3~4만 명을 웃돌았지만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총공으로 145화에는 약 12만 명, 146화에는 약 24만 명이 별점에 참여했다. 기존 연재분 대비 4~6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 웹툰 <바른연애길잡이> 145화(2021.04.12.) 베스트댓글 캡처
△ 작가의 사과문이 게재되었던 웹툰 <바른연애길잡이> 146화(2021.04.19.) 베스트댓글 캡처
댓글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살필 필요가 있다. 웹툰 <바른연애길잡이>의 베스트댓글들은 작품에 대한 피드백보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를 향한 발화가 더 눈에 띈다. 그러나 정작 웹툰 <바른연애길잡이>에서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가 다뤄진 적은 없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문제가 된 건 작중 남성 캐릭터가 “조금만”이라며 취한 손가락 제스처와 ‘허버’라는 표현 등이 전부다.
여기에서 <복학왕>과 <바른연애길잡이>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복학왕> 논란이 해당 회차의 기획 의도 제반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면, <바른연애 길잡이> 논란은 작품의 맥락과 무관하게 특정 제스처를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전자와 달리 후자에서는 정작 작품의 해당 장면을 비판하는 댓글보다 페미니스트나 여성을 비하하는 댓글이 눈에 띄게 많았다. 이를 통해 볼 때 네이버 플랫폼의 '경고'가 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는 비단 유저들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벗어나 그 이상의 혐오 발언을 도배하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촉구이다.
'총공'이 향하는 곳
특정 컷만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비판이 유효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웹툰 <성경의 역사>의 대사 “남자들 제발 죽었으면”은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런 새끼들 제발 없어졌으면”으로 수정되면서, 발화의 목적과 대상이 보다 분명해졌다. 이는 2015년에 있었던 웹툰 <뷰티풀 군바리>의 성적 대상화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뷰티풀 군바리>에서 특정 컷이 여성을 과도하게 성적 대상화 한다며 독자들이 청와대 사이트에 연재중단 청원까지 게시한 사건이다. 이 같은 독자들의 공격으로 인해 <뷰티풀 군바리>의 향후 캐릭터 연출에서도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성적 대상화는 상당히 수정되었다.
이처럼 합리적인 비판은 생산적인 피드백으로서 작품에 반영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합리적 비판에 한해서다. 웹툰 <성경의 역사> 대사가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은 <성경의 역사> 댓글난에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내용을 가득 채웠다. 네이버웹툰 운영 정책으로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을 저격한 저열한 수준의 비하와 혐오 발언이 상당히 많았다. 그 댓글들은 작품을 비판하는 목적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의미 없는 반복문, 지속적인 댓글 도배는 특정 웹툰의 댓글난을 자신들의 점유지처럼 마구 사용하면서 기존 작품 독자들의 작품 향유를 방해한다.
그런 데다 웹툰의 댓글난은 모든 주제를 담아내야 하는 사회적 공론장이 아니라, 독자들과 작가가 작품에 관하여 소통하는 공간이다. 개별 웹툰 작가에게 이곳은 일터이자 사업장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웹툰 댓글 총공은 작가의 노동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작품과 상관없는 혐오 발언을 도배하고, 맥락에 상관없이 연출을 따로 떼어 비난하는 ‘총공’은 독자가 갖는 피드백의 권리가 아니라 웹툰 작가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사이버불링)이다.
'독자'와의 소통을 위한 댓글난, 독자는 누구인가?
독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는 건 웹툰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웹툰 <고수>의 작가들은 후기에서 타이틀 이미지와 폰트, 스토리라인까지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상당히 많이 수정했다고 밝히고 있다.2) 댓글에 남긴 독자의 의견을 수용하여 본래 계획했던 분량과 방향을 수정하여 연재한 것이다.
이렇듯 웹툰에서 작가와 독자의 소통은 작품 연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 작품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묻어두었던 질문이 있다. 소통 주체의 한 축으로서 많은 몫을 감당하고 있는 ‘독자’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단지 ‘로그인한 사용자’인 것뿐일까.
독자에 비해 작가는 그 주체가 명료한 편이다. 물론 작가들도 웹툰을 그린다고해서 그 자체로 소통의 주체로서 인정받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2019년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된 <돼지만화>의 경우, 독자들의 악성댓글과 비방이 그치지 않아 결국 연재가 중단됐다. 독자들은 그들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작가에 대해서는 소통의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웹툰이 소비되어온 흐름을 살펴봤을 때, 독자들이 요구하는 작가의 자격은 비단 작품의 만듦새에만 있지 않다. 독자들은 연재하는 컷 수, 지각 횟수, 작가의 SNS 포스팅 내역과 팔로우까지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작가를 감시한다.
그에 반해 ‘독자’는 누구든 언제나 될 수 있다. ‘총공’의 지령을 따라 해당 웹툰에 접속하기만 하면 단 한 컷도 보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댓글난에 자유로이 의견을 남기며 ‘독자'가 될 수 있다. 설령 만화의 단 한 컷만 보았어도, 아니 그조차 보지 않았어도.
그런데 이번 총공을 주도한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흥미로운 게시물을 발견했다. 한 게시물 작성자가 총공에 참여하며 일부 회차를 정주행했는데, 작품의 재미에 빠져 악플을 멈췄다고 고백하고 있다. 작품을 보지 않고 악플을 달던 때에 이 사람은 ‘독자'가 아니었지만, 재밌어서 악플 달기를 그만둔 현재의 이 사람은 지금 명실상부 웹툰의 ‘독자'다. 악플 달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작품을 읽었기 때문이다.
△ 디씨인사이드 국내야구갤러리 중 게시물 캡처(게시물과 무관한 사진은 삭제함)
독자는 작품을 소비하는 이다. 단순히 해당 웹툰 페이지에 접속한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읽고 따라가는 이가 바로 작품의 독자다. 이 게시물을 보고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 작가와 독자의 더 좋은 만남을 위해, 작품을 읽은 이들이 의견을 남길 수 있다면 어떨까. 작품 회차별 완독율이 일정 수치 이상 되는 사람들만 댓글을 남긴다면, 지금 같은 ‘총공'에서도 오히려 ‘독자'가 늘어나는 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이 지나친 낙관일 수 있겠지만 ‘독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를 조금 더 쌓는 작업은 지금 웹툰계에 분명 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댓글을 남기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에 대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개별 웹툰의 댓글난은 작품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소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단지 감정을 쏟아붓기 위해 작품을 이용하는 곳이 아니라.
1) "하루 이틀 일이 아냐"…여성단체, '네이버웹툰' 찾아가는 이유, 김남영 기자, 한국경제, 2020.08.19.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08191156i
2) 웹툰 <고수> 후기, 네이버웹툰, 2021.05.04.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62774&no=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