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여서? 만화니까? 웹툰의 IP확장을 들여다봤다
1. 웹툰 IP의 확장 현황
웹툰 IP를 활용한 영상화 케이스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가령 2010~2015년 사이에 <미생>과 <송곳>을 포함해 약 25건이었던 드라마화는 2016~2021년 사이에는 50건을 훌쩍 넘겨 2배 이상 늘었다. 웹드라마를 빼고 논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영화도 비슷하다. 2006년부 <다세포 소녀>로부터 시작된 웹툰의 영화화는 2015년까지 10년간 15건이지만, 2016년부터 현재까지 <신과 함께>를 비롯한 5년간의 개봉작이 이미 17건이다. 애니메이션도 2015년까지 10건, 그 이후 약 30건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1) 게임화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25종 이상이 만들어져 서비스했으며, 네이버웹툰의 ‘22개 원작 IP 활용 원작 게임 공모전’과 같은 움직임을 고려할 때 앞으로 공개될 웹툰 IP 기반 게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번역과 같은 동일 매체의 타문화권 확장을 제외하고 다른 매체로의 확장만 따져도 이러하니, 웹툰의 글로벌화에 발맞춰 웹툰 IP의 확장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례로 올해 초 류정혜 카카오페이지 부사장은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된 IP 확장 사례가 65건인데 “2021년부터 향후 3년동안 진행될 프로젝트 수도 65개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2) 글로벌 웹툰 구독자 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웹툰IP를 활용한 매체 확장 콘텐츠의 흥행 전망도 밝게 점쳐진다. 이런 이유로 드라마와 영화 제작사의 웹툰IP 확보 경쟁은 인수합병, 제휴의 형태로까지 드러난다. 2008년부터 10년간의 주요 인수합병, 제휴가 20건인데 반해, 2018년부터 2020년 9월말까지 3년간은 27건으로 늘어났으며 그중에서도 웹소설, 웹툰IP 확보 및 활용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확연히 늘었다.3)
2. 웹툰 IP 확장의 배경과 의문
웹툰 IP의 확장이 이처럼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두 전문가의 견해를 경유하자.
“원천콘텐츠로서 웹툰의 미덕은 ① 만화라는 대중적이고 접근이 용이한 미디어를 상호작용성이 강화된 웹 공간에서 결합하고 있다는 점, ② 텍스트 그 자체가 스토리보드와 같은 기능을 함으로써 영상화에 용이하다는 점, ③ 비교적 분명한 1318, 2030의 타깃층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 ④ 활발한 상호작용성을 기반으로 향유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 ⑤ ICT와의 생산적 결합을 통하여 다양한 표현 기제를 다채롭게 수렴할 수 있는 고도의 개방성을 지향한다는 점, ⑥ 추천, 공유, 댓글, 비평 중심으로 커뮤니티 기반의 충성도 높은 팬덤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4)
“Q. <미생> 이후 등장하는 국내 콘텐츠들을 보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랜스미디어 제작에 있어서도 만화 또는 웹툰이 많이 활용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창민. 만화가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원작으로서 만화의 장점은 첫째, 팬덤 확보에 유리(소비자 확보)하고, 둘째, 브랜드 인지도가 상승하는데 유리하고, 셋째, 만화 원작이 있으면 영상화할 수 있는 화면 설정에 유리하며, 넷째, 배우 캐스팅, 작가, 감독 패키징이 쉬우며, 다섯째, 원작만으로도 수익발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화가 가장 효율적인 원작으로서의 가능성 때문에 트랜스미디어 콘텐츠 기획에 중점을 둡니다. 또한 만화는 문화적 장벽이 낮기 때문에 만화 원작 활성화에 집중합니다.”5)
여기서 박기수와 김창민이 공유하는 이유는 ㄱ) 웹툰 연출과 영상의 유사성에 기반한 영상화의 용이성(②-셋째) ㄴ) 팬덤 확보에 유리한 점(⑥-첫째) 두 가지다. 그런데 ㄱ)의 경우는 웹툰 일반에 대체로 적용될 수 있는 강점이지만, ㄴ)은 팬덤이 있는 작품, 즉 인기 웹툰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강점에 해당한다. 김창민의 둘째, 넷째 이유도 인기 웹툰에 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6)
웹툰 일반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매체적-형식적 특성(①, ②, ④, ⑤; 셋째)과 주요 향유층(③) 등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지적한 자리에서 개별 인기작에 해당할 항목이 언급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것을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으로 해석한다.7)
인기와 인지도처럼 개별 작품마다 다른 자질을 지닌 항목이지만, 착시에 의해 그 작품이 속한 장르 전반에 기대되는 것으로 과잉 일반화한 것을 ‘장르 고정관념’이라 부르자. 이후 한국 웹툰의 강점을 물었을 때 김창민이 언급한 “참신한 소재”8)도 개별 작품의 자질이건만 웹툰 일반이 지닐 것으로 기대하는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에 해당한다. 이러한 웹툰에 대한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은 웹툰 IP의 확장에 있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장르 고정관념은 없을까? 이를테면 또다른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 혹은 부정적 장르 고정관념 같은 것 말이다. ‘완성도 높은 서사’나 ‘높은 작품성’, ‘흥미로운 캐릭터’와 같은 것을 웹툰 장르에 대한 긍정적 고정관념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웹툰에 대한 부정적 장르 고정관념은 없는가? 이에 답하듯 박기수는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다음처럼 썼다.
웹툰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숱한 논란, 즉 그림의 질 하락, 콘셉트 중심의 단발적 배설, 서사적 완성도 미흡, 연재 주기에 종속된 텍스트 호흡 등등 웹툰의 완성도나 텍스트적 결함에 대한 숱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웹툰이 현재와 같은 충성도와 대중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즐거운 정서적 체험이 가능한 향유의 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후략)9)
즉, ‘서사적 완성도 미흡’과 같은 단점-부정적 장르 고정관념-들에도 불구하고 다른 미덕들 때문에 원천콘텐츠로서 각광받고 있다는 해석이다. 여기서 잠시, 꽤 오래전 글을 다시 인용하며 논의를 이어가 보자. “문학 작품을 각색, 영화화한 것이 문예영화다. (중략) 그러면서도 통속대중소설이나 극히 전위적인 문학 작품이 영화화된 것을 문예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본격 문학 작품 가운데서도 다분히 멜로드라마틱한 것을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10) 「문예영화는 우수 작품인가」라는 제목의 이 글은, 지금 웹툰 IP가 주목받듯 과거 문학 IP가 주목받았던 시절에 쓰였다.
그 시절에는 문학 원작 영화에 ‘문예영화’라는 이름까지 붙이고 있었는데, 이는 ‘문학’에 대한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을 영화로 옮겨오는 방식으로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 이를 인정하듯 글쓴이는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경우 전기한 소위 ‘문예영화’ 붐이 일면서 한국 영화의 수준이 종래보다도 높아졌다는 평가도 할 수 있다”고 쓰면서도,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지도 않은 <만추>(이만희 감독, 1966)가 ‘문예영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것에 분노한다. “<만추>는 ‘문예영화’ 이상의 수준이며, 보다 더 영화의 본무(本務)를 지향하는 작품이었다.” ‘수준 높음’과 ‘우수함’이라는 장르 고정관념이 문학 IP로부터‘만’ 오는 것처럼 여기는 것에 대한 분개이자, 당대 한국영화사 최고의 명작에 난데없이 ‘문예’가 묻어있는 것에 대한 울분이었을 것이다.
정리해 보자. 1960년대 문학 IP가 영상화의 재료였던 시절, 문학 장르에 대해 ‘수준 높음’, ‘우수함’ 등의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이 이야기되었다. 웹툰 IP의 확장에서는 다른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이 붙는데, 웹툰이 ‘인기와 인지도’ 확보가 유리하다는 점이나, ‘참신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서사적 완성도가 미흡’하다는 부정적 장르 고정관념이 붙기도 한다. 궁금한 것은 이것이 만들어낼 효과다.
3. 웹툰 IP는 영상화의 방향성
기왕 ‘문예영화’를 얘기했으니, 문예영화와 웹툰IP를 활용한 영화 및 드라마를 짧게 비교해보려 한다. 질문은 ‘장르 고정관념’이 어떻게 영상화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다. 원작과 시나리오 차원에서 문예영화 네 편의 각색 과정을 분석한 김남석은 “1960년대 문예영화의 시나리오는, 원작의 문학성과 완성도를 보존하고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각색되었다”11)고 평가했다. 또한 서사적 정보를 영상 미학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정보 전달 방식을 대개 존중하는 경향을 보인다”12)고 논한다. 1960년대 문예영화는 “문학적 영향력의 강한 잔영과 그 극복 방안의 실패”13)가 한계였다는 것이 그의 총평이다.
김남석의 논의는 문학에 대한 장르 고정관념이 문학 작품의 영상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무척 간명한 답변이 된다. 그에 논의에 따르자면, ‘수준 높음’, ‘우수함’, ‘문학성 (있음)’, ‘완성도 (높음)’과 같은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이 상당한 정도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실제 영상화 과정은 개별 작품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수준 높음’, ‘우수함’, ‘문학성 (있음)’, ‘완성도 (높음)’은 반드시 장르 고정관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별 작품에서 추출할 수 있는 자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또한 1960년대의 영상화에 대한 규범이나 인식, 개념 등이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 해석해야 할 것이다. 현재 주목받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14)에서는 ‘원작’이라는 개념도 경우에 따라 무용할 수 있기에 ‘각색’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며 용인되지만, 1960년대는 그런 자유도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웹툰은 어떻게 영상화되는가? 웹툰에 대한 장르 고정관념은 어떻게 영상화에 영향을 미치는가?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추출된 바, ‘인기와 인지도’ 확보가 유리하다는 점이나 ‘참신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 장르 고정관념으로, ‘서사적 완성도의 미흡’을 부정적 장르 고정관념으로 가정하고 생각해 보자.
<이끼>, <이웃사람>, <신과 함께> 등의 영화와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 대한 연구를 내 감상과 함께 종합한 결과, 장르 고정관념의 작용을 추측할 단서는 얻을 수 있었다.15) 해당 영화들은 웹툰 원작의 캐릭터성을 단선화하고, 압축하는 경향이 있다. 주제의식의 변화는 세 영화 모두에서 나타났으며, 세부 장르의 변화도 때로 나타났다. <신과 함께>의 경우가 가장 큰 변화가 가해진 예다. 인기 캐릭터 진기한을 삭제해 강림으로 압축하고 김자홍의 직업을 소방관으로 변경해 ‘귀인’이라는 설정을 더했으며, 전체적인 서사를 대폭 변경해 신파성을 극대화했다.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의 경우는 매체 변환에서의 차이와 팬덤 반응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초중반부까지는 호평을 얻다가, 주인공 유정이 아닌 서브남자주인공 백인호로 서사의 중심점이 이동, 서브여자주인공 백인하의 비중 상승, 삼각관계의 강화 등 웹툰에서 드라마로의 매체변환에 대한 서사의 적합성이 낮아진 시점에서 악평으로 돌아선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로맨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던 원작이 후반부에서 “흔하디 흔한 삼각로맨스”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는 원작 팬들의 분노가 장르 변화에 따른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합하면 100건을 훌쩍 넘어서는 웹툰의 영상화 가운데 단 네 편을 확인한 것이므로 성급하다고 할 수 있지만, 확인한 작품들의 영상화에서는 대체로 원작에서 벗어나는 지점들이 캐릭터와 서사 및 장르적 측면에서 드러났다는 요약이 가능하다. 원작 웹툰 작품들이 완성도 높은 서사로 호평 받았던 작품들임을 고려하면 개별 작품에 대해 ‘서사적 완성도 미흡’이라는 영상화 주체의 판단이 작용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척 저어되는 일이다. 또한, 이를 개별 작품이 아닌 웹툰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매우 성급한 일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1960년대 문예영화가 문학 원작을 대하던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은 제한적이나마 말할 수 있겠다.
이 칼럼이 제시한 웹툰에 대한 장르 고정관념은 몇몇 필자들의 글에서 추출한 것일 뿐 실제로 많은 이들이 웹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장르 고정관념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또한 본격적인 연구가 아니라는 핑계로 비교대상도 적확히 잡지 못했으며 명확한 의미에서의 분석에도 이르지 못한 채, 질문만을 던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웹툰 IP가 어떻게 전환되고 있는지, 그 방향성을, 웹툰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과 연계하여 분석하는 일은 던적스럽더라도 차후 연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