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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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뱀파이어가 함께 사는 사랑스러운 세계, <마음의 숙제>

2021-05-28 윤지혜



사람과 뱀파이어가 함께 사는 사랑스러운 세계, <마음의 숙제>


‘가족’이라는 단어가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혈연 집단을 가리키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함의를 가지는 시대가 왔다. 최근에는 친구와 친구가, 또는 완전히 낯선 타인이 여러 사연과 목적에 이끌려 서로의 삶의 영역을 겹치는 것에도 ‘가족’의 이름을 붙이는 데 스스럼없다. 사람 사이에서뿐만 아니다. 다양한 동물들이 ‘반려동물’이란 이름으로 사람과 함께 생활하며 삶에 깊이 관여하는 것이 흔해진 것을 보면, 이른바 가족이라는 이름이 ‘혈연’과 ‘종족’을 넘어서 더 많은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뱀파이어’ 사이에 가족이라는 이름은 성립할 수 있을까? 우선은 뱀파이어, 즉 흡혈귀란 것이 이야기 속이 아닌 현실에서 실존하겠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는 있겠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실존 유무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뱀파이어’라고 했을 때 생각하는 특징을 가진 어떤 존재와의 공생이라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공생하기에는 문제가 한둘이 아닌 관계이다. 인간은 낮의 시간에 생활하고, 뱀파이어는 밤의 시간에 생활한다. 인간의 시간에 비하면 뱀파이어의 시간은 한정 없이 길다. 무엇보다도, 피를 먹어야만 하는 뱀파이어에게 인간은 ‘먹이’가 될 수 있다. 언젠가 자신을 식량으로 삼을지도 모르는 상대와 밀접하게 삶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까?

다소 황당하게도, <마음의 숙제>에서 이경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자마자 이 문제와 마주한다. 집값이 싸서 모르는 동네 ‘이원동’으로 이사했더니, 그 동네가 뱀파이어들이 모여 사는 동네란다. 어쩐지 동네에 식료품점도, 식당도 변변히 없더라니. 알고 보니 옆집 사는 여자도, 이사해서 처음 들른 동네 유일한 술집의 주인도 뱀파이어다. 그리고 13년 전 실종되어버린 첫사랑도. 이 기이한 ‘뱀파이어 공동체’는 마을에 유일하다시피 한(다른 한 명의 사람은 옆집 여자의 동생이다)이경의 삶에 마음대로 침범한다. 정에 굶주린 뱀파이어 이웃들과 그들의 접근이 당황스러운 까칠한 이경은 잦은 마찰을 보이며 동네를 소란스럽게 한다.



재밌게도 <마음의 숙제>에서 보여주는 뱀파이어는 포식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밤에만 활동할 수 있고, 햇빛을 보면 타버리는 것은 여타 뱀파이어를 활용하는 서사들을 통해 알려져 있는 뱀파이어의 속성과 비슷하다. 칼로 심장을 찔러도 죽지 않는다. 뱀파이어가 된 이후로는 나이도 먹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오랜 세월을 지루하게 보내야 해서, 삶을 즐기는 데 적극적이다. 기나긴 밤을 보내기 위해 화투를 치고, 루미큐브를 하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돌려 햇볕 냄새를 맡고, 춤과 노래에 환장하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뿐인가, 사람의 곁에서 무해하게 살기 위해 축산업자로부터 동물의 피를 공급받는 뱀파이어라니. 평소엔 희게 눈을 까뒤집고 다니는 것조차 우스꽝스럽다.

이원동의 뱀파이어는 포식자로서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원래는 사람이었지만 더 이상은 사람일 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된 존재들일 뿐이다. 이질적이고 낯선 존재.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만 하는 존재. 외로운 뱀파이어들이 그나마 서로에게 기대기 위해 모인 곳이 이원동이어서인지, 이곳의 뱀파이어들은 약하고 애처롭다. 사람 이웃 이경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녀에게 하나하나 반응한다. 개인적이고 파편화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흔한 요즘 ‘사람’과 달리, 이원동의 뱀파이어는 프라이버시랄 것도 없다. 심지어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관습인 ‘이사하면 팥 시루떡을 이웃에 나눠주는’ 행동을 하는 뱀파이어라니. 영생의 시간을 살아 시간의 흐름에 둔감한 듯한 이들 복고적인 뱀파이어의 존재는 이원동이라는 공간을 다소 환상적으로 만든다. 여기에 조아라 작가 특유의, 섬세한 연필선과 수채화로 이루어진 작화가 작품에 포슬포슬한 질감을 더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기자기한 소동극 같지만, <마음의 숙제>는 그 안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숨겨두고 있다. 각자의 인물들에게는 어느 정도씩 ‘숙제’가 있다. 이경은 ‘13년 전에 고백한 후 호선이 실종된 일’이, 호선에겐 ‘13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뱀파이어가 되어 주변 사람과 단절된 일’이, 술집 주인 봉원에겐 ‘13년 전의 사건으로 호선을 뱀파이어로 만든 일’이. 이외에도 자잘히 산재해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마음의 ‘숙제’는 갈등과 잡음을 만들어 낸다. 굳이 들추고 싶지 않고, 잊은 듯 마음속에 묻고 싶은 일들도 수면 위에 떠오른다. ‘숙제’의 중심에는 호선이 있다. 17살의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 채 30살이 되어버린 호선의 상황 자체가 13년 묵은 그들의 숙제이다.

‘마음의 숙제’가 생긴 것이 서로의 존재 때문이라면, 그 숙제를 풀어나가는 것도 서로가 있어서이다. 이경과 뱀파이어들이 조금씩 짜낸 솔직함과 오지랖이 서로에게 생채기를 만들더라도, 그것이 실마리가 되어 얽힌 숙제를 풀어낸다. 조금씩 부딪히고 속내를 깎아내며 사람과 뱀파이어, 뱀파이어와 뱀파이어가 아닌, 각자의 자신으로 서로를 만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있을 장소’가 되어줌으로써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의 세계는 부러울 정도로 따뜻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었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동네 친구”가 되어가는 것. 사는 시간이 달라도, 떨어져 있어도,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도, 그럼에도 어딘가는 이어져 있어 서로를 생각하게 하는 관계. 다소 기묘하고 선명하지 않지만, 이런 모습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종족의 차이 따위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무시하는 이경과 봉원의 몽글몽글 달달한 로맨스도 이 작품의 중요 포인트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마음의 숙제>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인류애를 충전하는 흐뭇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