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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벨기에 만화의 장수비결

유럽만화에서 벨기에 만화가 차지하는 위치는 프랑스와 동등하거나 오히려 우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땡땡, 스머프, 스피루 등의 만화주인공은 물론이고 카스테르만(casterman)이나 뒤피(dupuis) 같은 거대 만화 출판사도 모두 벨기에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2009-05-13 박경은


              벨기에 만화의 장수비결


                                     감춰진 만화강국 벨기에

벨기에인들의 투박한 불어 엑센트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벨기에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기 때문인지 프랑스인들은 벨기에인들을 덜떨어진 사람들인 냥 조롱하는 농담을 종종 하곤 한다. 하지만 유럽만화에서 벨기에 만화가 차지하는 위치는 프랑스와 동등하거나 오히려 우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땡땡, 스머프, 스피루 등의 만화주인공은 물론이고 카스테르만(casterman)이나 뒤피(dupuis) 같은 거대 만화 출판사도 모두 벨기에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현재는 많은 프랑스작가들이 벨기에 출판사들과 같이 일을 한다.)

스머프 이미지

페요(peyo)의 작품 스머프(schtroumpfe)


에르제의 땡땡 이미지

벨기에 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인 에르제(Herge)의 땡땡(Tintin)


유럽에서는 프랑스 만화와 벨기에 만화를 따로 나누지 않고 프랑코 벨쥐 만화(BD franco-belge)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두 만화 사이의 그래픽적, 내러티브적인 유사성과 더불어 수많은 유명한 벨기에 만화가들이 벨기에의 불어권 출신이여서 그렇기도하고 많은 벨기에 만화가 프랑스 판매를 염두에 두고 출판되어서 그렇기도 하다.

「프랑코 벨쥐만화(BD franco-belge)」 그리고 만화가 「제9의 예술」이 되기까지.
프랑코 벨쥐만화 라는 단어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 단어는 프랑스인들이 아닌 벨기에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1966년 교수, 만화가, 출판사 관계자들과 함께 벨기에 만화친구 클럽(Club belge des Amis de la Bande dessinee)을 결성했던 안드레 르보른(Andre leborgne)은 같은 해 『란 탄 쁠렁(Ran Tan Plan)』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그리고 르보른이 이 잡지를 통해 처음으로 벨고 프랑세즈 만화(BD Belgo-Francaise)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프랑스로 넘어오고 여러 매체를 거치면서 점점 프랑코 벨쥐만화(BD franco-belge)라는 단어로 바뀌어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가 먼저 나오고 벨기에가 나중에 나온다.)

프랭캉의 주요인물 가스통 이미지

만화가 프랭캉(Franquin)의 주요인물 가스통(Gaston)


1960년대 중반 벨기에 만화는 프랑스의 모든 가판대와 서점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그 성공만큼 벨기에 만화가들의 프랑스에서의 인기도 대단했다. 프랑코 벨쥐만화라는 단어의 창시자 르보른은 프랑스의 앙굴렘 만화페스티발에 프렝캉(Franquin), 모리스(Morri), 뻬요(peyo), 틸뤼(Tilleux)같은 벨기에 만화가들을 보냈고, 이들의 인기덕에 앙굴렘 페스티발은 큰 성공을 거둘수 있었다.
벨기에 만화는 인기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것 뿐만이 아니라 만화를 「제9의 예술」로 만드는 것에도 크게 기여했다. 만화가 「제9의 예술」의 지위를 부여받은 것은 1964년 파리1대학 팡데옹 소르본의 교수이자 영화평론가였던 클로드 베일리(Claude Beylie)에 의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널리 사용되게 된 것은 앞서 소개한 벨기에 만화친구클럽의 멤버였던 모리스(Morris)와 벤커(pierre Vankeer)가 『르 주그날 드 스피루(Le journal de Spirou)』라는 잡지를 통해 1964년부터 1967년까지 90여 차례에 걸친 기사를 쓰면서 이 단어를 일반화시켰기 때문이다. 이 시절에 프랑스는 청소년을 유해 출간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정된 1949년의 법령 때문에 미국만화의 출간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벨기에에서는 미국만화가 대량으로 출간 유통되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벨기에인들에게 세계의 만화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 만화의 예술성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벨기에 만화의 성공이유

2000년대에 들어서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매해 약 4000만권 가량의 만화가운데, 75퍼센트 가량이 벨기에 출신의 만화가나 출판사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에 일본만화가 판매량을 늘려가면서 판도를 조금 바꿔가고 있긴 하지만 XIII, 라그고 빈치(Largo Vinci), 세드릭(Cedric), 키드페달( Kid peddal) , 쁘띠 스피루(Petie spirou), 루키루크(Luky Luke), 르 샤(Le chat) 같은 벨기에 출신 시리즈들이 여전히 프랑스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벨기에 만화는 팔리는 부수뿐만이 아니라 그 명성까지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파 제니 이미지

벨기에의 아방가르드 만화출판사 르 쎙끼엠 꾸쉬(le 5e couche) 에서 출간된
그자비에 로펜탈(Xavier Lowenthal)의 작품 이피제니(Iphigenie)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벨기에 만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대략 4가지 정도로 분석했다.
첫번째, 2차세계대전중 벨기에를 점령했던 나치는 미국만화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에르제나 제이콥스 지제 프랭캉 같은 벨기에 작가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두번째, 프랑스의 검열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벨기에 만화는 교훈성과 부루조아적 가치 특히 카톨릭에 관련한 부분에 주의하고 법령에 알맞게 적응해가면서 프랑스시장에 접근했다.
세번째, 선견지명이 있었던 벨기에 기업인들은 1950년대부터 만화콜렉션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4년부터는 텔레비젼용 만화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머천다이징의 필요성을 이해 했을뿐만 아니라, 만화캐릭터를 이용한 원소스멀티유즈(OSMU) 전략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그들의 만화는 자동적으로 2개 국어로 출간되어져 외국시장에서도 널리 판매될 수 있었다.
네번째는 프랑스와는 다른 벨기에의 만화문화이다. 지금은 프랑스에서도 만화는 예술로써의 지위를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지만 한때 프랑스의 교육자들은 ‘삽화가 곁들여진 것 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또한 외국만화에 대한 열린 태도 때문에 벨기에 만화는 아방가르드 만화나 그래픽 노블 등 세계만화의 굵직한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아 쉬브르(a suivre), 르 뇌비엠 헤브(Le neuvieme Reve), 메직스트립(Magid-Strip, 프레옹(Freon),라 쎙끼엠 꾸쉬(La 5e couche), 렁플로와이예 뒤 무아(L’Employe du mois) 등이 이런 움직임을 대표하는 벨기에 출판사와 정기간행물들이다.)


벨기에 왕립미술관 만화에 자리를 허락하다.

벨기에 만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 포스터 이미지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벨기에 만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Regardes croises de la BD belge)』의 포스터


벨기에의 르브르에 해당하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는 2009년 3월 27일 부터 6월 30일까지 『벨기에 만화를 보는 다양한 시각(Regardes croises de la BD belge)』이란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다. 왕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최초의 만화관련 전시이기도 한 이 행사에는,20여명의 벨기에 만화를 대표하는 생존 작가들의 작품이 브뤼겔이나 틴토레토 루벤스 고갱같은 거장의 그림들과 같은 전시장에서 소개된다. 쉬텐(schutien), 에르만(Hermann), 이슬레어(yslaire) 등의 전시 작가들은 각각 10점의 자작품과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선배작가들의 작품 5점을 전시한다. 이 전시는 벨기에 만화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끼쳤던 만화들과 벨기에 만화의 다양한 현재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벨기에 만화관련자들의 노력으로 만화는 「제 9의 예술」의 자리를 획득할 수 있었는데, 그 노력에 보답하듯 왕립미술관은 전시를 통해 그 예술에 걸맞는 자리를 마련해준 셈이다.


벨기에 만화와 한국만화

벨기에와 우리나라는 강대국사이에 끼어있어서 자주 외세의 영향을 받았던 점이나 영토가 작은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지역감정이 있듯이 벨기에에서도 불어권 사람들과 네덜란드어권 사람들간의 약간의 반목도 있다. (작년에 벨기에에서는 불어권과 네덜란드권이 분리 독립한다는 가상뉴스를 내보내고 분리 독립이 나라의 운명에 미치게 될 영향을 심각하게 논의한 적도 있었다.) 유럽 여행자들이 중국이나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를 잘 거치지 않듯이 아시아의 여행자들도 프랑스에 도착해서 벨기에를 잘 거치지 않고 네덜란드나 독일 영국 등으로 향한다.
그러나 역사적-지리적 유사성은 있으되 만화사에 있어서는 두나라가 상당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벨기에 만화가 자국만화가를 발굴하고 외국만화에 열린 태도를 보이며 검열에도 자유로왔던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비정상적인 도서시장의 형성 때문에 만화가들의 사기가 꺾이고, 검열문제로 만화가가 법정에 서기까지 했었다.
2개 국어로의 자동 출간이라던가, 이웃나라의 법률을 이해하고 거기에 효과적으로 적응해 나간 것, 새로운 마케팅방법의 계발에 적극적인 벨기에의 예는 한국만화계에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만,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만화출판사가 많은 것을 보면 출판사들에 대한 벨기에의 세제혜택이 프랑스보다 나을 가능성도 있다. (벨기에 출판사들이 현재는 벨기에 작가보다 프랑스작가들과 더 많이 작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를 아직 벨기에에 두고 있는 것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세계적인 문화강국이라 자부하는 프랑스에서 벨기에 만화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벨기에 만화모델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한국만화를 좀 더 일으키기 위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