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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타잔은 프랑스 청소년들을 타락하게 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미대륙의 원주민들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파리의 깨 브렁리 미술관(Musee du quai Branly)에서는 6월 15일부터 9월 27일까지 타잔의 만화전시회가 열린다. 프랑스의 만화전문지 「zoo」는 최근호에서 전시에 관련된 정보들과 타잔을 받아들이던 각국의 태도 그리고 타잔을 둘러싼 프랑스에서의 논란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필자가 5월에 벨기에 만화에 대한 소식(☞바로가기) 을 전하면서 잠깐 이야기했던 프랑스의 만화검열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 많아, 이 기사들을 바탕으로 타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다.

2009-06-11 박경은




                 타잔은 프랑스 청소년들을 타락하게 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 그리고 미대륙의 원주민들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파리의 깨 브렁리 미술관(Musee du quai Branly)에서는 6월 15일부터 9월 27일까지 타잔의 만화전시회가 열린다. 프랑스의 만화전문지 「zoo」는 최근호에서 전시에 관련된 정보들과 타잔을 받아들이던 각국의 태도 그리고 타잔을 둘러싼 프랑스에서의 논란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필자가 5월에 벨기에 만화에 대한 소식(☞바로가기) 을 전하면서 잠깐 이야기했던 프랑스의 만화검열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 많아, 이 기사들을 바탕으로 타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다.

타잔의 탄생과 만화화.

타잔은 작가인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즈(Edgar Rice Burroughs)가 1912년 10월, 올 스토리 매거진(All story magazine)에 소설을 연재하면서 탄생했다.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여러 차례 텔레비젼 시리즈와 영화로 제작되었던 타잔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고 2010년에도 또 하나의 영화화 프로젝트가 준비 중이다.

타잔 포스터

최초로 타잔 만화를 연재한 해롤드 포스터(Harold Foster)의 작품중 일부.

타잔의 최초 만화화는 1929년 해롤드 포스터(Harold Foster)에 의해서였다. 1년 후인 1930년, 렉스 맥슨(Rex Maxon)이 이 만화를 이어받았지만 1931년부터 1936년까지 다시 포스터가 이 작업을 맡았다. 1937년부터는 미술해부학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번 호가스(Burne Hogarth)가 타잔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의 과장된 그림은 주인공의 영웅적 성격과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잔은 그의 힘과 에로티시즘을 통해 자연을 수호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선정주의적 작품들에 의해서 그 메시지가 사라지기도 하고, 결말을 마음대로 바꾸는 작품들에 이용되면서 품위가 떨어지기도 했다. 타잔의 인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유사작인 아킴(Akim)이나 라한(Rahan)같은 만화들이 생겨났고 어느 정도 성공까지 거두었다. 하지만 정작 오리지날 타잔의 프랑스판은 검열 때문에 덧칠되고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타잔 혹은 루소가 이야기한 선한 야만인

브렁리 미술관 이미지

식물이 덮힌 벽으로 유명한 에펠탑 근처의 깨 브렁리(quai branly) 미술관

전시회 <타잔 혹은 와지리족의 루소>포스터 이미지

전시회 <타잔 혹은 와지리족의 루소
( Tarzan ou Rousseau chez les Waziri) > 의 포스터


원작가 버로우즈 자신이 생전에 한번도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타잔도 이 시절의 다른 모험소설들처럼 다른 인종과 대륙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 관한 비난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어보인다. 만화평론가인 라카쌍(Lacassin)이 ≪ 벌거벗은 숲속의 신( dieu nu des forets)≫ 이라고 별명붙인 타잔은 그리스신화의 헤라클레스와 루소(Rousseau)의 선한 야만인(bon savage)의 후손으로 볼 수 있다. 루소는 기독교에서 말하듯이 인간이 원죄를 타고나는 악한 존재가 아니고, 신이 창조한 모든 존재가 선하며 인간역시 태어날때부터 선한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 본래적으로 선한 존재인 인간이 문명화된 사회안에서 악에 물들게 된다고 전제하면서 자연상태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타락하지 않은 상태를 어떻게 잘 유지할 것인지를 교육의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에 가깝게 살아가고 있고 자연의 본성인 선을 상징하는 타잔은 루소(Rousseau)가 이야기하는 선한 야만인(bon savage)에 잘 부합되는 존재이고. 이번 전시역시 아프리카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기보다는 신화속의 주인공 혹은 루소의 인간형에 가까운 타잔에 초점을 맞추어 ≪ 타잔 혹은 와지리족의 루소( Tarzan ou Rousseau chez les Waziri) ≫ 라고 이름 붙였다. 전시에는 호가스와 다른 작가들의 원화 수십여점과 더불어 깨 브렁리 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는 관련 유물들 , 헤라클레스에 관련된 회화들, 그리고 사냥박물관에서 대여된 박제동물들이 전시된다. 깨브렁리 미술관이 센강가에 위치해있고 에펠탑에서도 가까우니 파리를 찾는 한국관광객들이 전시에 방문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타잔의 수난시대

타잔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동요와 금기를 불러일으켰다. 앵글로 색슨 문화권에서는 순자연주의와 관능적인 측면이 손가락질을 받았고, 나치치하의 독일에서는 야수성이 문제가 되었다. 구 소련에서는 타잔이 프롤레타리아적 가치를 타락시키는 서구의 요원처럼 인식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카톨릭 성향의 사람들이나 공산주의 계열의 사람들이 청소년 대상의 출판물에 대한 조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부당한 검열을 일삼곤 했는데, 이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타잔은 외설스러움 혹은 등장 인물 밑에 깔린 신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이 위원회는 2차 대전 직후에 프랑스 청소년들의 풍기를 문란하게 할 가능성이 있는 출판물들을 골라내어 내무부에 알린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타잔 일러스트레이션 이미지

타잔의 만화가중 가장 유명한 작가의 하나인 번 호가스(Burne Hogarth)의
타잔 일러스트레이션.


1950년대 초반, 이 조정위원회 임원들은 타잔의 출간금지소송을 하겠다는 수많은 협박편지를 당시 프랑스에서 타잔을 출간하던 시노 델 뒤카(Cino Del Duca) 출판사에 보냈다. 출판사 측에서는 위협을 가라앉히기 위해 등장인물의 벌거벗은 몸에 옷을 덧그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계속되는 협박과 등록증명서 취득에 실패해 타잔은 1952년에 연재를 중지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검찰 측에서는 조정위원들의 고소이유가 우스꽝스러운 것이라 판단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조정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타잔의 상대방을 이기고 나서 발음도 제대로 안되는 고함을 지르는데 그것은 순전히 동물적 본능에 의한 행동이며 청소년들이 그들과 타잔을 동일시할까 심히 걱정되고 ,그 행동을 따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인물은 쫒아내야 한다 ”는 내용이 써 있었다고 한다.
비록 타잔을 법정에 끌고가는 것은 실패했지만 조정위원회는 효과적인 강압정책을 통해서 오랫동안 타잔을 괴롭힐 수 있었고 타잔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1960년대 중반에 가서야 끝이 났다고 한다.

타잔을 둘러싼 프랑스에서의 논란은 이 나라에 존재했던 검열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된다. 현재의 프랑스 만화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성적인 표현이 넘쳐나고 심한 폭력성이 드러나는 만화들도 무리 없이 출간되고 있어 타잔을 둘러싼 잡음들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만화들이 별 제약없이 출간되고 있음에도 더 이상 그것이 큰 문제화가 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독자들이 스스로 안좋은 만화를 걸러내는 능력이 생각보다 믿을만 하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