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웹툰, 내일의 창작환경

웹툰 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는 요즘, 그 그늘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불공정 계약과 노동 문제들이 있다.

2021-11-24 웹툰작가노동조합 운영위원회



웹툰, 내일의 창작환경


 한국의 창작자들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만화의 한 형태, ‘웹툰’. 웹툰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이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 웹툰 산업은 현재 1조 2천억 원 규모에 달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콘텐츠 전반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요즈음, 웹툰은 영화·드라마의 원작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물론 원천 IP로만이 아니라 '웹툰' 그 자체로서, 웹툰은 기존의 '만화'와는 다른 독창적인 형식을 일구어낸 새로운 지평으로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면 겉면 뒤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어두운 면이 있다. 거대 플랫폼과 여러 CP(contents provider)사 간 다중 유통 구조와 기상천외한 급여지급 방식인 ‘MG 제도’가 창작자의 의욕을 꺾고 있는 현실이다.


 콘텐츠진흥원에서 매년 시행하는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사업체들의 분야별 분포는 웹툰 플랫폼 40.0%, 웹툰 에이전시 56.7%, 웹툰 기획/제작사 66.7%, 출판 33.3%, 기타 10.0%였다(중복응답). 불과 1년 뒤 2020년 조사에서는 웹툰 기획/제작사의 비중이 88.4%로 늘었고 플랫폼은 11.6%로 줄어들었다.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 1년 사이에 웹툰 기획/제작사는 크게 늘고(빨간색), 플랫폼은 크게 줄었다(파란색).

 플랫폼이 줄고 기획/제작사가 늘었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제작사-플랫폼 구조의 고착화다. 이는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불가피한 진화이기도 했다. 독자들이 더 많은 양을, 더 높은 퀄리티로 즐길 수 있도록 분발한 결과, 2015년 당시 한 회당 45컷 정도였던 평균 컷 수는 이제 회당 70컷이 되었다. 풀 컬러에는 이제 의문조차 가지지 못할 지경이다. 그렇게 웹툰 제작은 이제 혼자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지독한 노동량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 웹툰 작업을 극도로 세분화하여 작업 단계별로 작가를 배치하여 분업 제작시스템을 만든 것이 바로 제작사, 속칭 스튜디오다. 이런 분업 시스템은 콘텐츠 공급의 양적인 팽창에는 유용하지만, 1인 창작자, 즉 프리랜서로 일하는 작가들의 설 자리를 없애고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는 문제적이다. 현재의 시스템에 적절한 보완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산업 전체의 성장은 둔화될 것이다.


 1983년 이전, 북미 비디오게임 시장을 지배하던 한 업체가 있었다. ‘아타리’라는 곳이다. 지금의 우리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업체다. 허나 당시 북미 비디오게임 시장은 약 30억 달러(현재 가치로 약 8조5400억 원) 규모에 달하였고, 아타리는 그 시장의 명백한 지배자였다. 그런데 2년 뒤인 1985년, 갑자기 북미 비디오게임 시장의 규모는 1억 달러(현재 가치로 약 2846억 원) 수준으로 폭락한다. 이른바 '아타리 쇼크' 사건이다. 원인은 수준 낮은 제품의 과잉공급으로 인해 소비자의 흥미가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타리는 당시 게임 산업을 거의 독점하는 회사였고, ‘내놓으면 팔린다’는 착각에 도취되어 저질 게임을 양산했다. 저질 콘텐츠의 시장 과포화 현상이 벌어지자 소비자들은 철저하게 돌아섰다. 미국의 게임 콘텐츠 문화 및 시장은 그 후 몇 년 동안이나 붕괴 상태였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 지금 과연 ‘대여점’이나 ‘만화방’을 찾을 수 있는가? 한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그 체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수많은 ‘양판소’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 시절을 겪었던 작가들은 안다. 망할 길임을 알면서도 그저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과연 지금의 웹툰계는 그와 얼마나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이쯤 되면 혹자는 특정 콘텐츠 산업 분야의 흥망성쇠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헌데 왜 우리 ‘만화’만 매번, 매 세대마다 그놈의 ‘흥망성쇠’를, ‘창조적 파괴’를 되풀이해야 하는가? 그 언젠가의 미래에, 영화·드라마·K팝이 여전히 화려하게 꽃 피고 있을 때, 우리만이 ‘어쩔 수 없었다’며 또 자조할 것인가? 다가올 ‘창조적 파괴’의 시간에 만화를 그만두고 죽어 나갈 창작자들의 인생은, 그 짓밟힌 열정들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우리가 그러한 미래를 바꾸려면 작가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업환경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첫째,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 둘째, 플랫폼 또는 업체와 작가 사이에 공정한 수익 분배 구조 확립을 통해 창작의 정당한 대가 보장, 셋째, 노력의 결실인 작품을 도둑맞지 않게 불법 웹툰에 대한 단호한 척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

작가가 자유롭게 작품을 구상할 수 있으려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안전망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실업급여와 산재보험의 혜택이 그것이다.

 반갑게도 현재는 2020년 12월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고 있다. 사실 예술인고용보험 제도 설계 시초에 ‘MG’는 저작권 수익의 분배일 뿐 급여의 성격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다. 즉 웹툰작가는 아예 고용보험의 대상자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우리 웹툰노조는 준비위원회 시절부터 MG는 프리랜서의 급여처럼 노동의 대가의 성격이 있다고 꾸준히 주장했고, 다양한 증거 자료를 제시하며 관계부처를 설득하였다. 웹툰노조가 영화산업노조, 방송연기자노조, 방송작가노조 등 10여 개 문화예술노동조합이 모인 ‘문화예술노동연대’ 활동을 통하여 예술인고용보험 문제에 적극 발언한 결과, 웹툰 작가들도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이트(http://artinsure.kawf.kr/)에 가면 예술인 고용 보험에 대한 안내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1) 메인 작가와 보조 작가간 책임의 문제 : 메인 작가가 보조 작가의 예술인 고용보험을 가입시키려면 업체(플랫폼, 제작사 등)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 가입용 간이계약서를 배포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심지어는 고용보험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알고 있는 작가부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가 '내 보조 작가와 간이 계약을 해주십시오' 하고 요청하려고 해도 업체에서 흔쾌히 수락해주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작가가 먼저 나서서 요청하기는 더욱 어렵다. 

 메인 작가가 보조 작가의 예술인 고용보험을 직접 들어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액의 문제를 떠나 안 그래도 웹툰 작업으로 고된 작가들이 익숙하지도 않은 행정, 세무 업무 등을 추가적으로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메인 작가가 보조 작가의 예술인 고용보험을 들어주면 메인 작가들은 실업급여를 받기는커녕 졸지에 ‘고용주’가 되어 더욱 큰 불안과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이유들로 예술인 고용보험에 들어있지 않아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수많은 보조 작가들이 있다. 


2) 사업자가 있는 작가의 문제 : 많은 작가들이 외주를 받기 위해 사업자를 내고 있다. 사업자를 가지고 있지만 연재 고료 혹은 MG가 주 수입원인 작가가 예술인고용보험에 가입하여 성실히 납부를 하였다 치자. 만약 이 작가가 연재가 끝나 실업급여를 받고 싶다면 사업자를 폐업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려면 일단 1)의 경우 메인 작가의 통보만 있으면 업체들이 직접 보조 작가와 계약하여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 업체들에 대한 행정부의 강력한 지도가 필요하다. 페널티 부과 혹은 지원사업 선정 시 혜택 등의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2)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자 수입이 일정 기간 없음을 증명하거나 사업자 휴업을 한다면, 폐업을 하지 않아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다치고 병들었을 때 지원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산재보험에 대한 당연가입이 시행되고, 질환에 대한 산재 보상이 용이해져야 한다. 우리 웹툰 작가들은 사고 재해가 많지 않아 산재보험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웹툰노조는 과도한 시간을 앉아서 일하는 근무 형태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 호르몬계 질환 및 암, 감정노동자나 연예인에 준하는 사회적 스트레스와 갇혀 일하는 환경에 따른 정신질환, 이 모두가 노동에 의해 발생하는 산재라고 주장한다. 

2018년 8월에 있었던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발표에 따르면 창작자들의 평균 작업 시간은 1일 10.8시간, 1주일에 5.7일을 일한다. 이 중 12시간 이상을 일한다는 응답이 50%에 달하고, 6일 이상을 일한다는 창작자들도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즉 식사와 수면시간을 제외한 거대 모든 시간을 창작활동에 소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과도한 업무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1~2년 정도의 연재를 거친 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작가들은 생각보다 많다. 작가들끼리 만나면 도대체 안 아픈 사람을 찾기 어렵다. 창작활동으로 인해 야기된 건강의 악화는 대부분 ‘질환’으로 나타난다. 디스크, 터널증후군, 오십견, 관절염, 갑상선 암, 우울증 등의 질환은 산재 상해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 예술인 복지재단을 통한 심리상담, 의료비 지원 사업 등이 존재하나 이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웹툰 작가들의 산재보험 당연 가입은 물론, 웹툰 작가들의 건강에 대한 조사가 시행되어야 한다. 웹툰 작가들이 가진 질환이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실업급여와 산재 보상, 웹툰 작가들이 이 두 가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최소한의 사회적인 안전망은 확보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공정한 수익 분배 구조의 확립을 통한 창작의 정당한 대가 보장

 현재의 저작권법은 단지 저작권을 ‘사고팔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을 뿐, 저작권 양수인, 즉 플랫폼 또는 제작사에 별다른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다. 수익 정산 관련된 정보와 프로모션 광고 노출의 기준 등을 원저작자에게 미공개 하는 것은 물론, 제3자에게 작품이 팔렸을 경우 그 계약 조건을 원저작자에게 알려줄 의무도 없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창작자인데 창작자가 자기 작품에 대한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연하게도 부당한 수익분배 구조로 연결된다. 정보의 불균형 상황에서 작가가 자신을 위한 계약을 제대로 체결할 수 있겠는가? 또 내 계약은 제대로 했지만 내 저작권을 산 CP사가 플랫폼 혹은 해외 업체와 나의 작품 판매에 대한 부당한 계약을 맺었을 때, 내가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이것이 정당한 상황이겠는가? 제작사 또는 플랫폼과의 관계에 있어 계약서에 무어라 쓰여 있든 작가는 언제나 을이지 갑이 아니다. 정보와 힘을 독점한 거대한 세력과 개인의 관계에서 무슨 ‘사적 자유의 영역’에서 무슨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겠는가. 특히 경험이 부족한 신인의 경우는 더욱 철저한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작품의 유통에 관련된 모든 과정과 더불어 작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의 모든 세부 정보는 원저작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또한, 애초에 정보 불균형 상황에서 체결된 계약이 있다면 그것을 추후에 수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저작권법 개정으로 뒷받침될 수 있으며, 웹툰노조는 이미 지속적으로 이를 위해 노력해왔다. 독립 PD 협회, 어린이책 작가연대, 영화감독조합과 함께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법 개정’ 연대를 통해 2020년 노웅래 의원의 저작권법 일부개정안 발의 등에 힘을 쏟았고, 현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문화예술체육위원회와 함께 입법운동을 추진하는 중이다.



정보 공개의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수익 분배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웹툰계에서 MG 제도, 그중에서도 누적 MG 제도가 얼마나 작가에게 부당한 분배구조인지는 부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거되는 형태의 선급금(MG) 외에, 선급금을 갚을 의무가 계약 기간 내내 누적되는 형태나, 2차 저작권 등 모든 권리를 통합하여 갚아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는 형태의 계약은 금지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안전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웹툰노조가 플랫폼 및 CP사들과의 교섭 및 협약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고, 웹툰계에 한한 특별법의 입법을 추진해 볼 수도 있으며, 혹은 문화예술 산업 분야 당사자조직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전체 저작물에 대한 법 개정으로도 해결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방식의 길은 모두 유용하며, 사실 한꺼번에 진행되어야 할 일이다. 다만, 선결과제는 당사자 작가들의 조직된 힘이다.


세 번째, 불법 웹툰 척결

이 문제는 위의 두 가지 문제보다는 해결이 쉬운 편이라 할 수 있다. 플랫폼, CP사, 정부를 비롯한 창작자들까지, 모두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도둑놈들을 잡고 싶어 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다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외국인을 운영자로 두는 꼼수를 부리는 범죄자들을 잡아내기가 무척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가 존재한다.

잡기 어려운 자들을 잡기 위해서는 잡고 싶은 자들이 모두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현재로서는 정부와 업체들, 당사자들 간의 교류가 미흡한 현실이다. 각자의 노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낭비되는 인력과 시간을 줄이고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류하며 범죄자들에게 공격의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로서는 업체 A가 형사 고소를 하여 B 불법 사이트 운영자인 범죄자 B를 잡았다 해도, 피해 작가 C는 그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받아볼 수 없다. 심지어 C 작가가 따로이 다른 지역 경찰서에 고소를 접수하여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수사관들이 B가 잡혔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소재 불명으로 수사 진행 불가 판단을 내리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다행히 2021년 12월에 처음으로 저작권보호원이 주도적으로 마련한 테이블에 업체와 작가들이 한데 모인다. 저작권보호원은 웹툰노조가 만나는 어떠한 정부 부처보다 성실한 자세로 이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이렇게 관련 단위들의 통합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다면 이 논의를 통해 신고-조사-차단-수사-검거가 긴밀하게 연계될 수 있게 원스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보다 특별한 법안이 필요할 수 있다. 

 원저작자가 불법 침해에 대한 신고를 하면 조사-차단-수사가 이루어지고 그 과정과 정보가 원저작자에게 통보되는 원스탑 시스템, 꿈만 같은 이야기다. 사실 2년 전, 웹툰노조의 전신인 ‘불법웹툰피해작가 대책회의’는 차단 심의 기간 단축이라는 성과를 올렸고, 불법웹툰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피해 보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조사-차단 권한 일원화라는 획기적인 법 개정이 추진되었으나, 그것이 시민들에 대한 자유의 기본권 침해, 혹은 감시수단으로까지 활용될 수 있다는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바 있다. 이는 그저 헛웃음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며 사회 구성원 간에 ‘어떠한 자유의 권리를 우선시할 것인가’라는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 지원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저작권보호원 해외사업부에서는 중소기업 대상으로만 바우처 사업이 진행 중인데, 좋은 사업이 있어도 업체들의 참여율은 높지 않다. 바우처 제도 설계 자체가 자부담금을 선입금해야 하는 식이라 부담이 크며 홍보도 미진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에게 직접 지원을 해 줄 수는 없느냐고 혹자는 묻겠지만, 개인의 문제인 민사 소송에 국가가 어디까지 어떤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느냐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만약 불법 웹툰에 대한 소송을 개인이 진행할 때 국가가 소송 비용을 전액 지원해 준다고 하면, 모든 저작권 분쟁에 대한 소송 비용 지원 요청이 다 정부에 몰리게 된다. 이 또한 어디까지가 사적인 자치의 영역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과 적절한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2021년, 불법웹툰피해작가 대책회의의 길고 긴 피해보상 청구소송은 승리하였고, 웹툰 원 저작자에 의한 저작권 침해 피해보상 소송의 첫 번째 판례가 만들어졌다. 햇수로 4년간의 운동이 진행되었고, 성과와 동시에 임의적 모임으로서의 한계점이 노출되었기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앞서 말한 정부-업체-작가단체간 논의와 원스탑 시스템 구축, 소송지원 등의 방책은 이미 오랜 시간 대책회의가 제시해 온 해결책이다. 불법웹툰피해작가 대책회의의 정신을 이어받은 웹툰노조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고통받는 창작자를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을 찾아내어 관철시키고자 한다.

지금까지 웹툰계의 변화하는 창작 환경, 그리고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일목요연한 해결의 길을 살펴보았다. 우리의 청사진대로 제대로 실행만 된다면 더 나은 미래의 창작환경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해결책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였다. 깨어있는 창작자들이 조직되어 힘을 발휘할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웹툰노조는 창작의 자유를 추구한다. 민주주의에 형식적 민주주의가 있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있듯이, 창작의 자유에도 형식적 자유가 있고 실질적 자유가 있다. 단순히 선거에 1인 1표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권리가 형식적 민주주의라면, 투표일에 쉴 수 있는 권리,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의 보장을 받을 권리,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실질적 민주주의다. 창작의 자유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권에 의해 검열받지 않을 권리는 이미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안전한 환경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라 신뢰하며, 도둑맞지 않을 것이라 안심하며 창작할, 실질적 자유는 아직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자유를 보장받는 미래, 그리하여 이 세상을 만화라는 예술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채울 미래를, 우리는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