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자전 공략법 :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은 2012년 ‘대학만화 최강자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웹툰 공모전이다. 독자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공모전으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이며, 상위 입상작은 네이버웹툰 연재가 확정된다는 점에서 많은 웹툰 작가 지망생들이 선호하는 데뷔 루트이다. 이 공모전은 올해 내가 지도한 학생 중 두 명을 예선에서 떨어뜨렸다. 독자 투표는 예선에 통과한 101 작품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셈이다.
그중 한 명이 메일을 보냈다. 본인 작품의 단점을 조목조목 짚어 냉정하게 패인을 분석하는 와중에도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작품을 지도한 사람으로서 '속상하겠다, 힘내라'는 말로 도닥이고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최강자전이라는 공모전은 매우 특수합니다’라는 문장을 적고는 손가락이 멈추었다. 이런 말을 할 만큼 나는 최강자전에 대해 잘 알고 있나? 소위 ‘뇌피셜’이나 ‘느낌적인 느낌’ 말고, 객관적인 분석 결과를 토대로 최강자전의 변별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그날 동료 교수들과 함께 2021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에 제출된 101개 작품 분석을 시작했다. 예선에 진출한 101 작품이 32강, 16강, 8강을 거쳐 결승인 4강까지 좁혀지는 경로를 매주 따라가며 독자들의 반응을 함께 살폈다. 대략적인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독자는 101개의 작품을 읽고 투표하지 않는다
20년 전 누군가가 ‘난 요즘 웹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봐’라고 말했다면 진실일 가능성이 있겠지만, 발화 시점이 지금이라면 신빙성이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카카오페이지 홈에는 884 작품이 ‘오늘 UP’ 되었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국내 웹툰 플랫폼이 카카오페이지 하나뿐인 것도 아니다. 자연히 독자는 까마득하게 늘어선 작품 중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 선택하게 된다. 독자가 작품을 만나기 전에 먼저 만나는 것은 무엇인가? 제목과 작가명, 섬네일 섬네일: 주석이 필요할까요?
이미지와 장르 구분이다.
예선 통과작 101 작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101개나 되는 작품의 1화를 모두 읽을 이유가 없으므로 - 한 작품당 5분씩만 들여도 총 8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 투표에 앞서 읽을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최강자전에서는 위의 세 요소 중 ‘작가명’이 무력화된다. 최강자전은 ‘프로 작가로 데뷔한 경력이 없을 것’이 참가 조건이기 때문에 작가의 명성이나 전작의 후광으로 작품을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르’도 이번에는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최강자전에서는 액션, 학원, SF/판타지, 공포/스릴러, 순정/로맨스, 무협/시대극, 스포츠, 일상/개그, 드라마의 9개 장르를 제시했는데 구분이 모호했던 탓이다. 따라서 제목과 섬네일이 첫 번째 관문이 된다. 읽어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 투표할 수는 없는 법, 작품 자체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제목과 섬네일에 ‘클릭해 볼 만한 매력’이 없다면 결코 32강으로 올라갈 수 없다.
2. 제목과 섬네일은 장르를 명시해야 한다
먼저 언급했듯 공식적으로 주어진 ‘장르’ 탭은 독자들의 선택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액션 비중이 큰 학원물, 로맨스가 중심인 판타지, 개그가 강점인 드라마, 판타지가 가미된 시대극 등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오히려 그렇지 않은 작품을 찾기가 훨씬 어려운 시장에서 단 하나의 키워드로 작품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러나 독자는 ‘내가 읽고 싶은 작품이 무엇인지’를 빠르게 판단하고 싶어 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제목과 섬네일에서 모색한다.
공모전 결승(4강) 진출작 중 두 작품을 살펴보자. <선을 넘은 연애>와 <주작연애!>다. 두 작품 모두 ‘연애’가 제목에 들어있어 서사의 메인 플롯이 로맨스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주작연애!>의 경우 ‘주작’이라는 말을 통해 계략, 속임수 등이 포함된 상태로 시작되었던 관계가 점차 진지한 연애로 발전해나가는 이야기임을 유추할 수 있으며, 섬네일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교복 차림의 여성 주인공이 반측면으로 서서 독자를 바라보고 있는 이미지이다. 이 주인공이 ‘주작’의 주체인 여성 고등학생일 것이다. <선을 넘은 연애>의 섬네일 역시 교복 차림의 여성 주인공이 정면으로 서서 붉은 끈을 두 손으로 쥐고 있는 모습이다. 두 작품 모두 제목과 섬네일을 통해 ‘여성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학원 로맨스’라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최강자전 결승 진출작 <선을 넘은 연애>와 <주작연애!>의 섬네일
3. 섬네일은 전략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출판만화가 만화시장의 주류를 이루었을 때 ‘표지 사기’라는 말이 있었다. 만화 본문의 작화보다 표지 일러스트의 작화가 월등히 훌륭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일단 ‘장사’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어쨌든 구매로 이어져 독자가 내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표지 사기’라는 말을 듣는 쪽이 이익인 셈이다. (물론 후속권의 매출이 급감하겠으나, 1권조차 팔리지 않는 것보다는 그나마 나을 것이다.)
섬네일도 마찬가지로, 우선 독자를 만날 기회를 얻어내야 하므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선 진출작들은 대부분 이 부분을 고려한 듯 한눈에 들어오는 강렬한 색감과 채도 높은 붉은 배경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배경의 디테일은 최소화하고 인물에게 시선을 모으는 전략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작화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두상을 배치하되 장르에 따라 인물의 시선과 카메라의 위치에 다소 차이가 나타났다. 액션을 강조하는 작품의 경우 카메라도 정면, 인물의 시선도 정면을 향하며 손동작 등이 추가되는 식이다. 더블 주인공이나 군상극의 경우 서사 상의 중요도와 관계없이 미형 캐릭터를 의도적으로 앞쪽으로 배치해 독자의 눈에 띄게 하는 것도 유효한 전략이다. ‘로판’처럼 현재 상업적으로 메리트가 있는 장르라면 인물의 머리스타일이나 의상을 통해 세계관을 유추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섬네일을 ‘원고 샘플’ 개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팝업 광고’로서 디자인하는 쪽이 타깃 독자 공략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최강자전에 참여한 다양한 작품들의 섬네일
4. 유불리는 장르보다 주인공에서 비롯된다
왕후장상의 씨는 없다지만 적어도 2021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에 있어서 유리한 주인공의 직업은 명확했다. ‘고등학생’이다. 예선 101 작품 중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은 35 작품으로 35%에 해당했으나 32강에 올라가면 16 작품으로 50%, 16강에서는 10 작품으로 62%를 차지한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고등학생들의 생존률이 월등히 높음을 알 수 있다. 결승인 4강에 이르러서는 주인공 4명 전원이 고등학생이다. 장르 분류는 순정/로맨스, 드라마, 학원으로 각각 다르게 설정되어 있으나 고등학교가 주요 배경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유리한 성별이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최초로 독자의 투표가 반영된 결과인 32강에서 여성 주인공의 비율은 81%(26 작품, 성별 추정 불명 제외)에 달한다. 16강 진출작에서는 11 작품의 주인공이 여성이며, 그 중 다시 9명이 고등학생이다. 즉 2021 네이버웹툰 최강자전에서는 ‘여성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진행한 서사가 가장 많은 독자의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유불리 여부를 장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소 애매해지는데, 똑같이 여성 주인공의 로맨스 서사이더라도 대학생이 주인공인 캠퍼스물과 회사원이 주인공인 오피스물에 대한 평가는 다소 박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로맨스가 유리하다’기보다는 ‘여성 고등학생 주인공이 유리하다’는 쪽이 2021 최강자전의 트렌드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5. 마치며
예선 탈락 소식을 전한 학생에게 보낸 답장의 일부로 이 글의 마무리를 갈음하고자 한다.
“여기까지 ‘최강자전’이라는 공모전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특수성이라는 말을 쓴 것은 모든 ‘요즘 만화’가 저런 잣대로 평가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저 트렌드에 맞추지 않으면 데뷔 못 한다’는 명제 또한 참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상업성의 강력한 한 축이라는 점은 기억해두었으면 합니다. (중략) 너무 흔한 말이지만 창작은 정답이 없고, 소위 ‘트렌드’는 늘 변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이나 작전 없이 던진 작품이 큰 히트를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변수는 인간이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공모전을 앞두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