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우리에게는 이제껏 없었던 마스크의 시대가 닥쳤다. 미세먼지, 황사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달린 방역지침이 매일의 뉴스 메인이 되어버린 일상이 되었다.
학교 수업도 온라인 중심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때문에 온라인은 우리 생활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됐다. 아날로그를 고집하던 나라들도 예외는 없었다. 온라인 네트워크는 반강제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전 세계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택 근무로 인한 업무 소통과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위해 서둘러 인터넷 연결을 신청하였다. 유튜브 영상을 첨부하는 수업이 많아지고1) 아이들은 인터넷을 여행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신세계의 콘텐츠, 웹툰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인터넷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자연히 유튜브에 의존하는 인구, 게임 인구도 상당히 늘어났다. 인간은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끊임없이 원하는 족속이라 유튜브 외에도 인터넷에 있는 또 다른 콘텐츠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중에 웹툰이 있었다.
△ La Croix에 소개된 야옹이 작가의 <여신강림>
프랑스 일간지 ‘라크루아(La Croix)’는 한국 웹툰은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청소년들의 기대를 충족해주는 가볍고 초현대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2) 한국의 웹툰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이며 K-적인 이야기들이 자생적으로 웹에 최적화되며 구축되기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을 거쳐왔다. 그리고 결국 이 독특한 문화 콘텐츠는 은하수처럼 글로벌 시장에 우뚝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윤여정 배우는 최근 제4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장에서 “얼마 전 가디언지와 인터뷰를 하는데, 기자가 물었다. ‘<기생충>이나 BTS는 물론 <오징어게임>까지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가 갑자기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를 알겠느냐‘고”라며 “그 질문에 우리에겐 언제나 늘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갑자기 우리에게 주목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대중예술의 지평이 넓어진 지금, 한국의 웹툰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현상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좋은 콘텐츠들이, 알고 보니 전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콘텐츠였던 것이다. 그것을 전 세계를 휩쓴 비대면 시대가 계기가 되어 깨닫게 된 것이다.
매주 가볍게 찾아보는 스낵컬처의 진수, 웹툰이야말로 스마트폰에 가장 최적화된 콘텐츠다. 그러니 웹툰이 디지털 시대에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이 언택트 세상에 미리 준비를 마친 정예 문화 콘텐츠 부대라고 일컫어도 될 정도로 웹툰은 완전체였고, 막강하고 탄탄했다.
△ 초등학생 희망직업 (출처 : YTN)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웹툰을 찾기 시작했으며 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원한다. 웹툰이 유망사업이 되었고 웹툰 학과도 속속들이 생겨났으며, 집에서 숨어 그리던 웹툰 작가 지망생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웹툰 작가는 많은 아이들의 희망하는 미래 직업군에 순위를 당당하게 올리게 되었다.
뉴노멀의 콘텐츠
코로나 이후 찾아올 뉴노멀의 시대에, 웹툰은 어떻게 달라질까? 웹툰이 글로벌 시장에서 빛을 발하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외면받아왔던 장르들도 빛을 볼 수 있는 길이 새롭게 열렸다. 국내 웹툰은 유료 결제하는 층이 많은 20대 초중반 여성 타깃의 여성향 장르, 그리고 4~5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한 남성향 장르가 우세하다. 하지만 글로벌에서는 꼭 이 같은 장르 외에도 다양한 한국형 스토리에 감동하고 있지 않나.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에서도 한국형 오리지널 스토리를 더욱 갈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공포물, 스릴러물, SF물도 이제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 <방과 후 전쟁활동> 주연으로 캐스팅된 배우 황세인
10년전 쯤이었나, “잘나가는 웹툰을 만드려면 OSMU가 가능한 스토리를 구축하는 것이 좋다. 그 예로 <미생>, <이웃사람>처럼 영화나 드라마화하기 좋도록 일상 배경으로 짜는 것을 추천한다.”라며 “개인적으로 하일권 작가의 <방과 후 전쟁활동>(2012)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런(?) 작품은 아직 콘텐츠 확장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강의 시간에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웬걸, 넷플릭스에서 <스위트홈>을 만들어내면서 국내에서 만들지 못하는 장르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투자를 받지 못했던 환경은 글로벌 OTT가 대신해 주고 있다. 그리고는 결국에 <방과후 전쟁활동>도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드라마로 제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3) 2022년에는 10부작의 오리지널 드라마로 볼 수 있게 된다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고, 이제는 못 만들 것이 없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헐리우드 부럽지 않은 콘텐츠 강국이 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요즘이다.
박수칠 때 살펴야 할 것들
하지만 한창 박차를 가하고 성장에 박수를 보내야 할 때일수록 살펴야 할 것들이 있다. 성장이라는 대의(大義)를 핑계로, 또는 ’어차피 잘 되고 있잖아‘라며 안심하고 있을 때 위기는 찾아온다. ’예전보단 나아졌다‘는 생각은 하던 것을 답습하게 만들고, 안전한 선택으로 빠지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웹툰이 성장했던 것은 안전한 선택을 반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반복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이다. 산업적 성장이 모험의 크기를 줄이는 반 새로운 시도를 위한 뒷받침과 체력을 길러줄 수도 있다. 이제 웹툰 시장이 직면하는 위기는 더 이상 만화에 대한 탄압이나 만화의 정체성을 흔드는 시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던 대로 인기 있는 걸 찍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바로 그곳이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
웹툰은 하나하나가 작가들의 뼈와 살을 깎아 만든 양질의 오리지널 작품들이다. 그렇기에 웹툰은 전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며 확장성도 무한하여 수출시장 최전선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콘텐츠다. 이렇게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웹툰계에, 지금이야말로 웹툰이 쭉쭉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 바깥의 문제들
물론 지금까지 말한 ’내부로부터의 위기‘는 가설일 뿐이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코로나19 이후,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19가 지나갈지, 아니면 우리 곁에 영원히 남는 숙제가 될지는 지금으로선 미지수다. 다만 정책과 관련된 문제들은 지속적으로 웹툰계를 위협하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출판이라는 산업 아래의 카테고리로 웹툰을 포함하려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 매체인 출판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낸 스크롤 방식의 웹툰은 분명히 다른 매체다. 스크롤 연출이 뛰어날수록 단행본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걸 독자들은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글 등 최상위 플랫폼들의 ’인앱 결제 의무화‘를 통한 수수료는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며 결제되는 웹툰에 가장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더군다나 편당 객단가가 낮고 독자들을 오래 붙잡아 두어야 하는 플랫폼 입장에선 수수료 30%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웹툰이 출판과 다른 것을 인정하고 별도의 식별체계 마련 등의 독립적인 산업 형태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또, 온라인에서 결제가 이루어지는 만큼 수수료 정책이 좀 더 합리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내놓아야 웹툰창작자들이 좀 더 마음 놓고 작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1) 초등학교만 놓고 보면 전체 원격수업 활용 콘텐츠의 약 4분의 1(25.3%)이 유튜브 자료로 집계됐다. e학습터 콘텐츠는 12.9%, EBS 강좌는 10.9% 등으로 나타났고 교사가 직접 개발하거나 보유한 자료를 활용한 비율은 16.1%에 그쳤다.
장지훈, 「코로나로 초등생들 '유튜브 중독' 심각…원격수업 ¼이 유튜브」, 『news1』, 2021.02.07
https://www.news1.kr/articles/?4205121
2) Cécile Jaurès, 「Les webtoons, ces BD coréennes qui envahissent les téléphones des ados」, 『La Croix』, 2021.08.09.
https://www.la-croix.com/Famille/webtoons-BD-coreennes-envahissent-telephones-ados-2021-09-08-1201174353
3) 채성오, 「'방과 후 전쟁활동'도 '티빙'으로…CJ ENM 시너지」, 『BLOTER』, 2021.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