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사업이 각광받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기보다, 여러 생산자와 공급자를 포함한 사업 파트너를 연결해 생태계를 만들고, 거기서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뜻한다. 원래 의미인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각자 다른 기차(상품)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승객(구매자)를 연결해주는 곳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산업 관점에서 ‘플랫폼’이란 물류 유통이나 백화점, 아울렛이나 쇼핑몰 등 오프라인 환경에서 상권을 형성하고, 거기서 밀집된 개별 업체를 입점시키는 방식에 가까웠다.
소매업의 혁신을 가져왔다는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평가받는 르 봉마르셰가 1852년 문을 열었고, 이후에도 긴 시간 동안 ‘백화점’이라는 형태는 소매점의 최상위 플랫폼으로 작동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유지 보수하고, 상품의 재고 관리와 판매, 그리고 품질관리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은 돈이 많이 들게 마련이다.
때문에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플랫폼에 들어가기 어려운 산업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콘텐츠는 개인적인 감상이 필요한데, 개인적인 감상을 제공하면 단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 ‘플랫폼’, 즉 백화점, 아울렛, 쇼핑몰 등의 상권에 콘텐츠가 더해지기 가장 좋았던 것이 영화였고, 우리에게 익숙한 멀티플렉스가 ‘콘텐츠 플랫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멀티플렉스에 아케이드(오락실) 등이 더해져 게임이 더해진 것이 현재까지의 오프라인 콘텐츠 플랫폼이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 시장을 점차 점유해가면서, 먼저 ‘온라인 쇼핑’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콘텐츠 제공의 플랫폼화다. 오프라인에서는 다른 것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콘텐츠를 부가적으로 소비한다면, 온라인상에서 사람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인다. 온라인 시대에 콘텐츠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사례: 70년 된 파라마운트법 폐지
2020년 8월, 미국에서는 ‘시대가 변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 있었다. 1948년 제정되어 72년간 유지된 이른바 ‘파라마운트법’이 폐지된 것이다. 파라마운트법은 1948년 헐리웃의 메이저 스튜디오 8곳이 영화관을 직접 운영하며 가격 담합, 자사 영화만을 상영하거나 독립극장을 차별하는 등 반경쟁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이 스튜디오들이 영화관을 계열사로 가지고 있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72년이 지난 2020년, 파라마운트법이 폐지되면서 영화 제작, 배급사도 영화관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OTT 등 스트리밍 콘텐츠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온라인 상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면서 콘텐츠 기업들이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산업적 변화가 작용해, 유명무실하게 된 파라마운트법이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파라마운트법이 폐지되면서 IT기업, 온라인 플랫폼 등 현금을 쥔 기업들이 극장에 투자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다. 온라인 세상이 주목받고 있지만, 반대로 온라인 플랫폼이 아직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못한 오프라인 세상에 진출할 수 있고, 전통적으로 오프라인상에서 활약하던 콘텐츠 제작사들은 온라인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셈이다.
한국과 미국의 주요 콘텐츠 기업의 차이
이 예측은 지금까지 절반만 맞았다. TV, 영화 등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콘텐츠를 만들던 플랫폼들은 온라인으로 이동했지만, 아직까지 오프라인으로 본격적인 이동 행보를 보이는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은 찾기 힘들다. 이건 왜일까? 먼저 미국의 주요 콘텐츠 기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세상에서 강세를 보이던 플랫폼, 즉 디즈니, HBO 등의 플랫폼들은 온라인 진출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디즈니+는 전 세계 3위 OTT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HBO 역시 HBO MAX를 앞세워 글로벌 진출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콘텐츠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이 IP를 직접 관리하고, 콘텐츠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해 콘텐츠로 내는 수익 자체가 기업의 이익이 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는 온,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넷플릭스, 디즈니, HBO 모두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으로 콘텐츠 수익을 직접 올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만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대표적인 기업인 마블과 DC 모두 IP는 회사가 가지고 있고, 창작자가 아닌 제작 시스템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들은 먼저 검색 서비스, 뉴스 플랫폼 등 소셜미디어 성격이 강한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트래픽을 유지하기 위해 부가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의 네이버웹툰, 다음의 다음웹툰 등 포털서비스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콘텐츠 플랫폼들이 크게 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국 모델은 다른 사업에 필요한 트래픽을 모으기 위해 콘텐츠를 제공했고, 거기서 사업이 커지면서 생겨난 다양한 모델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웹툰은 작가 중심에 제작사 모델이 더해져 있고, 서비스를 독점으로 제공하는 한편 매니지먼트를 제공해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고, 카카오페이지의 경우 제작사에게 공급받은 작품을 직접 판매해 수익을 나누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이 아마존을 규제하려는 이유
반면 백화점식 커머스 플랫폼의 온라인 세상의 현신도 존재한다. 바로 아마존이다. 한국에서는 쿠팡이 아마존의 모델을 따라갔고, 두 플랫폼 모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쿠팡플레이를 제공한다. 별도로 구독을 할 수도 있지만, 아마존 프라임이나 쿠팡 로켓와우를 구독하면 부가서비스로 구독이 가능하다.
이 모델은 앞서 언급한 파라마운트법처럼 콘텐츠 기업에 규제가 완화되는 것과 달리, 미국 연방정부의 규제에 직면할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된 리나 칸(Lina Khan)은 ‘아마존 킬러’라는 별명답게 플랫폼이 커머스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리나 칸이 제시하는 플랫폼 기업의 커머스 진출 폐해는 UPS와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존이 커머스를 시작하며 UPS와 배송 계약을 맺었는데, 아마존을 통해 UPS에서 배송되는 상품의 액수만 1조원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 UPS는 아마존에 저렴한 가격에 배송을 해주는 대가로 얻은 손해를 개인 사업자들의 요금을 올리면서 메꾸기 시작했는데, 개인 사업자들의 불만이 올라가자 아마존은 직접 저렴한 가격에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UPS의 쇠락을 가속화시켰다.
‘경쟁을 통한 기업의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첨병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경쟁이 아닌 독점시장 형성을 통해 경쟁과 성장을 저해하는 사업을 규제하겠다는 의미다. 플랫폼 시대에는 모든 서비스가 연결되고 있고, 아마존은 전 세계 2위 OTT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만약 아마존에 실질적인 규제가 가해질 경우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콘텐츠가 온라인 시대에 ‘사람을 모으는’ 가장 확실한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콘텐츠 기업 중에서 웹툰 기업들은 상위 플랫폼에 소속(네이버, 카카오 등)된 경우가 많고, 상위 플랫폼들은 쇼핑 등 커머스 플랫폼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의 최근 플랫폼 규제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의 대표 플랫폼들에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앞으로 주목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