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화제작과 문제작 : <이세린 가이드>, <참교육>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는 웹툰 산업은 2021년에도 호황을 맞았다. 웹툰을 영상화한 <경이로운 소문>, <유미의 세포들>, <지옥> 등 웹툰 원작 영상들이 작년을 이어 올해에도 인기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지옥>은 넷플릭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웹툰에서는 <더 복서>, <도롱이> 등 깊이와 솜씨를 지닌 발군의 작품이 연재되었고, 출판만화 분야에서는 1980년대 연재만화 <북해의 별>(김혜린)·1970년대 만화 <꿈의 건반>(민애니) 등이 재출간되어 인기리에 펀딩 되는 등 새로운 시도가 엿보였다.
만화계 곳곳에 유의미한 성취가 쌓인 만큼, 만화계 안팎에 말도 많은 해였다. <성경의 역사>, <바른연애 길잡이>는 작품과 무관한 이유로 부당한 사이버불링, 악성 별점 테러 등에 노출됐다. 또 어떤 작품은 등장하자마자 열렬한 환호를 받고, 또 어떤 작품은 매화 논란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질타를 받았다. 본고에서는 2021년 가장 환호받은 화제작과 가장 논란이 많았던 문제작을 꼽아보려 한다. 놀랍게도 이 두 작품 모두 같은 화두를 다루고 있다.
2021년 화제의 만화: 《이세린 가이드》
《이세린 가이드》(김정연, 코난북스, 2021)는 <혼자를 기르는 법>으로 데뷔한 만화가 김정연의 2021년 신작이다. 《이세린 가이드》는 전작과 달리 별도의 연재를 거치지 않고, 단행본으로만 출판됐다. 《이세린 가이드》가 등장하자마자 경향신문·한겨레신문·한국일보·씨네21 등 다양한 언론에서 앞다투어 작품이 소개되었다. 특정 웹툰의 영상화 소식을 제외하고, 개별 작품에 대한 리뷰만으로는 2021년 올해 가장 언론에 많이 등장한 작품이 아닐까.
김정연이 전작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세린 가이드》 도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혼자를 기르는 법>의 주인공 ‘이시다’가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지만 정작 자신의 집은 마련하기 어려웠다. 일종의 아이러니인 셈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이세린 가이드》 에서도 십분 활용된다. '이세린'은 와플부터 김치, 라멘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음식 모형을 만들지만, 정작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요리하지 않는다. 주말이 오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몽땅 냄비에 넣어 끓여 먹는 '주말전골', 꽁치와 볶음김치 통조림을 털어 넣은 찌개 등 가능한 간편식을 택한다. 김장철이면 매번 엄마로부터 김장하니 와서 도우라는 전화를 받지만, 세린은 “김치 안 먹어! 보내지 마!”하고 전화를 끊고 나선 배추 모형을 조형해 플라스틱 김치를 김장한다. 그의 음식 모형들은 세린이 지난날들에서 경험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와도 닮아있다. 레진으로 굳히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견고한 것처럼 보일 뿐 어린아이 장난에도 쉽게 깨져버리는 모형 음식들은 가부장제 역시 더없이 나약한 허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세린이 살아가는 현실은 현재 대한민국을 견뎌내고 있는 20대 여성 청년들의 삶 그 자체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르포르타주의 성격마저 띤다. 그러나 《이세린 가이드》가 매력적인 건, 비단 현실을 고발하는 서사여서가 아니다. 세린이 모형 음식을 제작하는 과정과 그 안에 세린의 이야기를 켜켜이 쌓아내는 방식은 기품있고 우아하다. 조익상 만화평론가는 이러한 <이세린 가이드>를 향해 “예술로서 만화가 할 수 있는 일을 갱신”했다고 평하며 “만화의 일을 깊이 궁리해 나름의 답을 찾은 만화”라고 극찬했다. 또한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미슐랭 가이드'를 본떠 만들어진 제목에 빗대 "우리가 다른 가상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평가할 신뢰할 만한 ‘가이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여러 필자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이세린 가이드》의 작품성은 가히 뛰어난데, 이에 더해 대중성마저 겸비했다. 대중들이 계속 김정연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무리 가파른 현실을 보여준다 해도 일단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그 현실을 딛고 일어날 용기가 싹트기 때문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번 연말에라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2021년 문제의 만화: <참교육>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은 만화계 안에도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매년 성적 대상화, 성차별 표현들로 인해 비판받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반대 국면에서 페미니즘 서사라는 이유로 부당한 공격에 노출되는 작품도 있었다. 그 가운데 <참교육>은 페미니즘과 정면 대결을 신청하는 듯한 웹툰이다. <참교육>은 네이버웹툰에서 2020년 11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 부당하게 이뤄지는 성차별과 스토킹, 성폭력 등을 다룬 웹툰 <성경의 역사>와 같은 에이전시에서 기획됐지만, <참교육>은 학생 인권이나 페미니즘에 적대적이다. <참교육>의 주인공은 교육부에 신설된 교권 보호국 소속 나화진으로,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일진 고등학생들이 떼로 덤벼도 모두 제압하고, 심지어 학생이 든 칼에 찔려도 무사하다. 그런 나화진의 임무는 말 그대로 무너진 교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학생 인권 때문에 없어진 체벌을 부활 시켜 일진 무리를 무력으로 다스리고, 어떤 학교에서는 공부 성적으로 신분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생들의 변화를 주도하는데, 대체로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다. 문제 학생이라고 판단되는 이들을 소년원에 강제로 감금시키기도 한다.
<참교육>의 이러한 무리한 전개 때문에 실제로 청소년 인권 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올해 1월, 웹툰 <참교육>에 대해 "학교 폭력을 일삼고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학생은 맞아도 된다는 생각, 학교 내에서 체벌이 금지되면 교권이 약화한다는 논리 등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막는 등 청소년 인권을 후퇴시키는 근거로 작용"했다고 비판했다. 웹툰 <참교육>은 독자들이 웹툰을 향유하며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매화 '사이다' 전개를 일삼는다. 그러나 특정 대상을 '참교육'시키는 '사이다' 서사를 가능케 하기 위해, 매화 상대 캐릭터를 악의적으로 비약한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에 작가의 편향성이 과하게 개입된 결과가 지금의 <참교육>이다. 특히 <참교육>은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편견을 심어주고 되려 차별을 조장하는 악랄한 교사로 그려내는데, 이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연상시키는 등 명예훼손의 여지마저 남겼다. 끊임없이 논란이 이는 데도 불구하고 웹툰 <참교육>은 높은 순위를 점하고 있다. 자극적인 서사와 한껏 꼬인 캐릭터는 여전히 사람들의 말초적인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웹툰 <참교육>을 통해 건져낼 수 있는 의미는, 와이랩이 앞서 언급한 <성경의 역사>를 만든 제작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찾아낼 수 있다. 작품의 스펙트럼에선 양극단에 있을 두 작품이 한 제작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독자들 사이에선 크게 회자되지 않는다는 것. 독자들이 유리(遊離)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화제작도 문제작도 ‘페미니즘'
2021년의 화제작도, 문제작도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의 일치인 걸까? 페미니즘 리부트 원년이라 불리우는 2015년 이래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갈등 구도는 만화계에서마저 유효하다. 그러나 이 흐름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여성 서사 작품은 날이 갈수록 메시지와 연출이 정교해지는 데에 반해, 그 반대 국면에서 안티-페미니즘 작품은 더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은 눈여겨볼 만하다.
2022년에는 어떤 작품이 등장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다만 만화를 통해 서로가 소통하며 더 나은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는다. 연말연시의 특권은 어쨌든 희망을 품어도 된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