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시장, 특히 웹툰 시장이 나날이 커져간다. 국내 시장에서의 성장이 국외 시장에서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과거 서구와 일본에서 한국으로 문학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가 수입되던 것처럼 이제는 한국의 웹툰이 세계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수출된다. <D.P>나 <지옥>처럼 웹툰으로 먼저 선보인 이야기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드라마가 되는 일도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시장의 성장 가도에서 놓치고 있는 점, 혹은 오히려 바로 그 성장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점은 없을까? 아니면 시장의 성장이 생태계를 망치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여러 사안이 기사화되었고, 또 어떤 사안은 국정조사를 통해 다뤄지기까지 했다. 잘 알려지지 않고 곪아가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분명 문제는 도처에 있다. 그리고 이를 성찰할 때 성장의 ‘부수적 피해’를 줄이고 더 많은 생태계 구성원이 제 몫을 나눌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아질 것이다. 이에, 더 다양한 고민들이 있겠으나, 세 가지에 집중해 성찰해 볼 것을 제안한다.
1. 시장의 속도 속 창작 노동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대로, 지금 웹툰 시장에서 수익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노를 젓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 노는 누가 젓는가? 만화 생태계에서 노를 젓는 직접적인 주체는 창작자다. 그래서 웹툰 제작사를 위시한 업체들은 대부분 조금이라도 만화를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속히’ 섭외해 ‘되도록 일찍’ 작품을 런칭하고 ‘최대한 빨리’ 수익을 거두려 한다. 속도감이 강조되는 풍경이다. 선점 효과를 노리는 시장의 속도감 속에서, 작가뿐만 아니라 어시스턴트나 학생을 비롯한 숙련·미숙련 창작노동자들이 ‘산업 역군’으로 활약한다. 이것은 어쩌면 창작자들에게 좋은 일이다.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 하지만 꼭 그렇기만 할까.
현 웹툰 시장의 속도감은 수익성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대부분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시장에서 돈을 벌만 한 이야기를 수단으로 달성될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창작자들의 노동은 그래서, 노블코믹스와 같은 시장 맞춤 노동으로 화한다. (노블코믹스를 즐겨보고 좋아하며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형식이 대표하는 시장성 제일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임을 양해 부탁드린다.) 많은 경우 창작 노동은 창조적 작업이라기보다는 주문 제작이 되어간다. 창작 노동자들은 시장의 속도감에 맞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투입되고 생산 속도를 맞추기 위해 과로를 마다하지 못한다. 이런 흐름을 벗어나 보다 더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작가는 여러 자본과 인력이 만들어낸 작품들과 경쟁해야 한다.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의 경쟁에 가깝다.
이런 여러 문제들이 지금의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만화 시장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너무 단순화한 감이 있으나, 문제의 근원은 역시 시장성 제일주의일 것이라 여전히 생각한다. 이와 연관하여 불거진 창작 노동자의 과노동 문제, 개인 창작자의 곤경 등등 웹툰 시장 안에서 창작자가 겪는 어려움은 올해 만화규장각에서 풍성히 논의된 바 있다. 부디 함께 고민해 주길 부탁드리는 마음으로 아래에 링크를 놓아둔다.
웹툰작가노동조합 운영위원회, 웹툰, 내일의 창작환경 http://dml.komacon.kr/webzine/column/28581
조경건, 네이버웹툰-카카오엔터 대표가 국감장서 분노 산 이유 http://dml.komacon.kr/webzine/cover/28566
박희정,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오래오래 http://dml.komacon.kr/webzine/cover/28328
조경숙, 웹툰 원고의 월화수목금토일 http://dml.komacon.kr/webzine/column/28361
권혁주, 어떻게든 혼자 그려야 한다 : 플랫폼 거대화 속 개인 창작자의 미래 http://dml.komacon.kr/webzine/column/28175
2. 작품 선택과 큐레이션
수백 수천 작품이 난립하는 지금, 독자들은 어떻게 작품을 선택할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질문일 것이다.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부연하지만, 여기서의 선택은 초반 무료 회차를 본 후에 독자들이 계속 읽거나 멈추기를 결정하는 선택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작품들 속에서 어느 특정 작품의 존재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하는 바로 그 선택. 그것은 어떻게 일어나는 일일까? 많은 요인들이 선택에 작용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결정적인 요인을 짚는다면 그것은 ‘플랫폼 내 주목도’(이하 주목도)로 집약된다.
주목도는 플랫폼의 큐레이션에 따른 작품의 가시화라고 환언할 수 있을 정도로 플랫폼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분야다. 요일별 인기 상위권의 주목도는 매우 높은 수준이며 따라서 더 많은 선택을 유도한다. 그런데 만약 플랫폼이 요일별 인기 순위를 노출하지 않거나 여러 옵션 중 하나로 만든다면? 요일별 인기와 주목도의 관련성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렇게 될 때, 인기 순위는 선택의 이유 가운데 비교적 후순위의 것이 되며, 인기 순위를 올려야 더 많은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작가의 부담감도 경감될 수 있다.
플랫폼들은 대부분 인기와 평점을 기준으로 한 전체 및 성별 순위, 그리고 플랫폼 내 작품 홍보 배너나 팝업를 통해 주목도를 조절한다. 전자에서는 인기를, 후자에서는 플랫폼의 선택이 주목 요인이 된다. 더 다변화된 큐레이션은 없을까? 이를 보여준 예들이 네이버웹툰의 미주 법인 웹툰즈(Webtoons)의 알고리즘 추천과 올 8월에 리뉴얼한 카카오웹툰 앱 디자인이다. 웹툰즈는 넷플릭스나 왓챠가 시청자에게 취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하듯 개인화된 추천 시스템을 구현했다. 카카오웹툰의 새 디자인은 아예 카테고리 자체를 다변화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원성을 듣긴 하지만 사실은 무척 의미 있는 변화다.
카카오웹툰에는 크게 세 가지 큐레이션 카테고리가 있는데, 첫 화면의 메인 카테고리 속 추천과 스페셜 탭의 경우 작품 홍보 배너들이 들어간다. 현재는 플랫폼이 선정한 인기작 및 화제작이 담겼지만 앞으로 더 여러 결의 작품들을 공정하고 적절하게 담아줄 수 있다면 주목도 배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머지 두 카테고리인 ‘웹툰 원작’과 ‘소설 원작’은 얼핏 이상하지만 실은 개인 창작 작품과 제작사 작품을 나눠주는 의미 있는 구분이다. 웹툰 원작이라 하여 개인 창작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나, 분명 제작사 주도로 집단 창작되는 작품의 수는 무척 적다.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어 제작된 작품과 개인 창작자의 자율성이 보다 더 투여된 작품 사이의 직접 경쟁을 제한하고, 독자의 취향을 걸러주는 여과 장치로서 의미가 있다. 양자 중 어느 하나만을 계속 선택하는 독자에게 다른 한쪽이 더 외면당하는 문제는 메인 카테고리가 중화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카테고리 모두 요일 외에도 신작과 완결 탭을 두었고, 요일 내에서도 인기순 정렬보다는 업데이트순 정렬을 활용하는 것도 주목도 조절에 신경 쓴 지점이다.
이런 식으로 독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주목도를 한두 가지의 적은 기준보다는 여러 기준을 통해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큐레이션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이롭다. 선택하고 선택받을 가능성이 보다 열려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웹툰 플랫폼이 그저 오픈마켓이 아니라 플랫폼 안의 모든 작품에 대해 가능한 선의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생태계를 위하는 일이다. 큐레이션은 만화 생태계의 작품 다양성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고민이며, 앞으로도 계속 창발적으로 쇄신되어져야 할 요소다.
3. 글로벌화의 방향성
한국 웹툰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등등 대충 세어도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웹툰즈나 픽코마, 카카오페이지 등의 현지법인에서 발표되는 현지화된 웹툰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웹툰의 인기와 시장성을 견인하고 있다. 요컨대 현지화는 현 웹툰 시장의 가장 주요한 전략 거점이다.
그런데 글로벌화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현지화의 면면들을 직접 확인해 보면 몇 가지 우려되는 지점들이 읽힌다. 번역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닌 측면까지 다양하다. 다른 글들(http://dml.komacon.kr/webzine/cover/28383,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6&art_id=202108021126381)에서 이미 다룬 바 있지만, 너무 강한 현지화로 인해 한국인 캐릭터가 일본인이 되는 등 작품의 정체성을 잃는 것은 우선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예다. 도착어권의 독자들에게 한국 작품을 보고 있다는 것을 숨기는 일은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자충수가 되고 말며, 창작자에게도 작품에도 문제만을 야기하는 일이다. 심지어 이런 강한 현지화는 도착어권 독자가 바라는 일도 아닐 수 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일본어판은 김독자 등 메인 캐릭터들의 이름과 명동 등의 배경을 그대로 유지해 현지화한 예인데, 1화의 두 번째 베스트댓글은 다음처럼 쓰고 있다. “한국 만화는 매번 이름만 일본 설정으로 바꿔서 부자연스러웠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원작 그대로 번역한 덕에 몰입할 수 있어서 기쁘다.” 다른 베댓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게 설정을 일본으로 하는 것보다 위화감 없어서 좋아!” 이런 댓글도 있다. “어라, 한국인가. 하고 말할 사람 있을까? 이 앱에서 인기 상위 연재만화 대부분이 한국 작품이잖아. 만화에는 죄가 없어. 국적으로 속단하는 건 그만둬 줬으면.” 앞으로의 현지화에서는 이와 같은 독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문화를 너무 날것으로 내보내는 일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도착어권의 종교와 생활문화를 고려해 적절한 현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현지를 더 잘 배우는 일이 해외에 진출하는 플랫폼의 금과옥조여야 할 것이다. 식민주의적 시장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웹툰을 문화 교류의 장이자 세계 공통의 언어로 전 세계와 공유하기를 바라서다. 서구에서 태어난 영화가, 일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 공통의 미디어가 되었듯 웹툰의 종주국이 한국이었다는 사실이 잊힐 만큼 웹툰이 보편화된 세계가 언젠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헐리웃에서 <기생충>을 즐기듯, 우리가 베트남 웹툰을 즐기는 일도 먼 일이 아닐 것이다.
웹툰의 글로벌화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우선은 문화 교류에 초점을 둔 생각으로 2021년을 마무리한다. 웹툰 글로벌화의 시작은 시장 주도적이었을지라도 앞으로는 웹툰 생태계 내에서 글로벌화와 관련한 여러 의미 있는 성찰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길 바란다. 그리하여, 웹툰이 세계가 공유하는 매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더 깊이 새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