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만화책의 날 |
진열된 미국만화 이미지 |
매해 5월 첫째 주 토요일, 북미지역의 만화 전문점들에서는 특이한 행사가 열린다. 이름부터 이미 설득력 넘치는, “공짜 만화책의 날” (Free Comicbook Day). 이 날은 대단한 상징이나 놀라운 풍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공짜로 만화책을 받아갈 수 있는 날이다. 이 행사는 만화업계에서 지난 2001년에 처음 도입한 이래로 매해 이루어지고 있는 데, 각 만화 전문점에서 공짜 만화책을 나눠주는 것이 행사의 내용이다.
이 행사의 취지는, 북미지역에서 한 때는 사람들의 가장 대중적인 오락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지극히 소수 매니아 집단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 십상인 만화문화를 보다 많은 일반인들에게 확대하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이다.
사실 영화와 티비 등 대중오락 부문에서 만화책보다 늦게 등장한 각종 경쟁매체들과 같은 시장층을 놓고 겨우는 와중에, 미국의 주류 만화는 사회적 압력을 극복하며 새로운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자기혁신을 이루기보다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중심으로 매니아 시장을 깊이 파고드는 방향으로 집중해왔다. 게다가 제작 유통상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만화는 주로 만화전문점에서만 파는 것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져버린 바람에 더욱 일반인들과 유리된 폐쇄적 취향 영역의 늪으로 빠져드는 문제를 겪어온 것이다. 그 결과 이어지는 시장침체 등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대중 일반에게 만화책을 읽도록 권장하는 것이고, 그러한 전략을 위해서 아예 만화책을 하나씩 나눠주는 전국 규모 업계 행사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날 나누어주는 만화책은 주로 각 출판사들이 자신들의 주종 만화 라인업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해주는, 즉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는 작품들을 제공해서 나누어주는 것들이다. 일본만화 수입으로 유명한 비즈나 토쿄팝의 경우는 아예 잡지 형식으로 여러 작품들의 재미있는 화를 묶어내는 ‘샘플러’를 만들어서 나눠주기도 하며, 디씨나 마블 같은 주류 미국만화 회사들은 자사 슈퍼히어로물 가운데 최근 헐리웃 영화화가 되어 개봉 준비중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마케팅 가치가 높은 이야기에 대한 소개 책을 배포한다. 하기야 사실 원래 이 행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만화 원작 메이져 헐리웃 영화의 개봉 타이밍에 맞추어서 날짜를 잡았을 정도라고 하니까 말이다 (2005년, 전문점주들의 투표에 의하여 5월 첫주로 변경).
이렇듯, 공짜만화의 날은 상징적 의미보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의미의 명절이다. 굳이 무슨 투쟁을 기념한다면서 엄숙하게 폼 잡고 기념식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업계의 필요에 의해서 사람들이 서로 합의, 업계와 독자들, 그리고 잠재적 독자들이 같이 만화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날을 하나 만들어낸 것이다. 여하튼 사람들은 공짜로 만화책을 얻어서 기분 좋고, 회사는 마케팅해서 좋고, 중간에 행사를 치러주는 만화전문점들은 많은 사람들을 가게로 끌어들여서 충동구매를 유도하니, 큰 문제만 안 생긴다면 일석삼조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에서도 배울 점이 많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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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vol. 39호 ver02
글 : 김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