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도 2006년 8월 10일 개봉 예정으로 있는 스튜디오 지부리의 최신 극장 애니메이션 『게드 전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남 미야자키 고로 감독이 지부리의 신작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 한일 양국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로서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 감독이 유망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예측도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지난 달 7월 29일 개봉한 『게드 전기』의 평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8월 1일에 기자/배급 시사회가 있었지만 큰 호평을 얻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홍보를 위해 방한한 스튜디오 지부리의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년 11월 일본, 12월 한국 개봉/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한국에서 300만명의 관객을 모아 지부리 작품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흥행 결과를 일구어냈다는 것에 상당한 기대를 거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이번 『게드 전기』는 7월 29일의 일본 개봉 직후인 8월 10일에 한국에서도 개봉하기로 결정했고, 또 그에 발맞추어 미야자키 고로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홍보를 위해 방한하는 등 열의를 보여준 것이다. {*주1}
<*주1 - 즉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이루어낸 300만명의 지부리 작품 세계 최대 관객 동원이란 결과 덕분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제작사로서도 한국 시장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이나 시청자, 독자가 결과를 보여주면 당연히 창작자나 제작자 역시 그에 걸맞는 대응을 해주게 된다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드 전기』와 자주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작품이, 『게드 전기』보다 한 발 앞서 2006년 7월 15일에 개봉된 극장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특별한 경력(?) 탓에 자주 『게드 전기』와 비교 대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본래 스튜디오 지부리의 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감독을 맡기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제작 도중에 제반 사정에 의하여 강판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로 바뀌었고, 결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어 일본 국내에서의 영화 흥행수입 역대기록에서 2위를 기록하는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또한 제 33회 애니상 영화부문 작품상 후보, 제 78회 아카데미상 등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작품을 평가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았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으로서는 뼈아픈 강판이었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는 몇몇 인터뷰에서 지부리에 대해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신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지부리가 선택한 후계자로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이 만들어낸 첫 작품 『게드 전기』와 2006년 여름 동시에 맞부딪히게 된 것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아니할 수 없다.
또한 『게드 전기』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사이에는 다른 측면에서도 비교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게드 전기』는 1968년부터 미국의 작가 어슐러 K. 르 귄 (76세)에 의해 만들어진 서구 판타지문학의 대작{*주2}이다. 그에 반해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967년 간행된 일본의 SF소설가 쯔쯔이 야스타카(筒井康隆)의 인기 쥬브나일 소설{*주3}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즉 두 작품은 1960년대 말에 발표된 미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장르문학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2 - 『어스시의 마법사(A Wizard of Earthsea)』를 비롯하여 6편이 나와 있는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 『게드 전기』라고 번역되어 있으나 국내에서는 주로 『어스시의 마법사』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문학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소설가 어슐러 르 귄은 1929년 미국에서 태어나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중세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장학생으로 파리에서 체류하는 동안 역사학자 찰스 르 귄을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판타지문학에 있어서의 대표작 『어스시의 마법사』 이외에도 SF에 속하는 『어둠의 왼손』과 『바람의 열두 방향』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세계적인 SF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다섯 차례나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어슐러 K. 르 귄 공식 사이트:http://www.ursulakleguin.com><*주3 - 쥬브나일(juvenile)이란 소설 장르의 일종으로서, 아동문학의 대상보다는 조금 연령층이 높은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장르이다. 일본에서는 쯔쯔이 야스타카를 비롯한 SF소설가의 작품을 주로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그 뿐만이 아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제작한 회사는 카도카와헤럴드영화 주식회사인데, 그 전신은 바로 일본 영화계의 일각을 맡아온 영화제작사 카도카와영화이다. 『세일러복과 기관총』, 『전국자위대』, 『하늘과 땅과』 등을 제작한 영화사로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환마대전』, 『카무이의 검』, 『불새 봉황편』 등 많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한 제작사이다. 출판사인 카도카와쇼텐을 모체로 하는 카도카와영화는,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오랫동안 스튜디오 지부리와 라이벌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 지부리는 토쿠마쇼텐이란 출판사의 출자를 받아 설립된 업체로서 그런 면에서도 양사는 곧잘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양 출판사는 각각 애니메이션 잡지를 두고 적극적으로 자사 애니메이션을 지원했는데, 카도카와쇼텐의 애니메이션 잡지 「뉴타입(NewType)」, 토쿠마쇼텐의 애니메이션 잡지 「애니메쥬(Animage)」는 각각 상대방의 작품을 크게 다뤄주지 않는 대신 자사의 작품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제작사로서도 두 작품은 필연적으로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지만,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만들기 전에 지부리로부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감독 자리에서 강판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더욱이나 두 작품의 관계에 흥미가 생긴다. 본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일본의 또 다른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토에이애니메이션 출신으로서, 애니메이터 시절에는 『디지몬 어드벤처』의 1999년도와 2000년도 극장판에서 작화감독을 맡았던 야마시타 타카아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연출가로 데뷔한 이후에는 『소녀혁명 우테나』(1997년 방영/TV애니메이션)의 이쿠하라 쿠니하코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실제로 『소녀혁명 우테나』 TV판에서 하시모토 카쯔오란 이름으로 그림콘티를 맡은 적도 있다.
『비밀의 앗코쨩』 3기(1998년/TV애니메이션)에서는 각화연출을 담당했고, 그 이후 1999년 개봉된 『디지몬 어드벤처』의 첫 번째 극장판에 감독으로 발탁된다. 그가 감독을 맡은 1999년도 『디지몬 어드벤처』와 2000년도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게임!』은 높은 퀄리티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 후 2003년에는 오타쿠를 테마로 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타카시의 청탁으로,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루이 뷔통의 프로모션용 애니메이션 『SUPERFLAT MONOGRAM』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오쟈마녀 도레미 도캉∼!』(한국 제목 『꼬마마법사 레미 비바체』)과 『내일의 나쟈』 등의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했는데, 특히 『오쟈마녀 도레미 도캉∼!』 제 40화 「도레미와 마녀를 그만둔 마녀」{*주4}는 특히 걸작으로 평가가 높았다.
<*주4 - 한국에서는 제 37화로 방영된 「마녀를 그만둔 마녀」편. 관련정보는 케이블TV 애니메이션 전문채널「투니버스」홈페이지(click) 참조.>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의 대안을 찾고 있던 스튜디오 지부리에서는 그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차세대 유망주로서 발탁하여 대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감독을 맡기게 되는데, 2001년 즈음에는 이미 그 제작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호소다 감독 본인으로서는 큰맘 먹고 토에이애니메이션 이외의 작품에 참여했다가 도중에 강판당한 것이니 나름대로 불만이 있었던 듯 하다. 그 때문인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다시 토에이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처음 연출한 작품인 『원피스』 시리즈 6번째 극장판 『ONE PIECE 오마쯔리 남작과 비밀의 섬』(2005년 일본 개봉)에 관한 인터뷰에서 지부리의 배타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WEB 애니메스타일」에 실린 편집장 오구로 유이치로{*주5}와의 이 인터뷰에는 그밖에도 흥미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주5 - 오구로 유이치로. 애니메이션 무크지 「애니메스타일」 편집장. 『소녀혁명 우테나』 제작에서 플래너 및 홍보를 담당.>
오구로:호소다씨에게 동료란 필요한 존재인가요?
호소다:응? 무슨 의미죠? 동료는 물론 필요하죠. ……아, 그 얘긴가? 응, 아마 그 얘길 하는 건가 보군요. 각본 담당자에겐 미안하지만, 제가 그런 내용으로 이 영화를 마무리지은 것은 사실 그저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들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저 자신이 직면하고 있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하울』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죠. 이런 얘길 실어도 괜찮으려나? 하하하하하. (쓴웃음)
오구로:아뇨, 오늘 말씀하신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데요.
호소다:그렇죠. 그러니까, 즉 말하자면 『오마쯔리 남작』이란 영화는 무슨 영화인가 하면, 지부리에서의 제 체험이 바탕이 된 것입니다. (쓴웃음)
오구로:과연 그렇군요!
호소다:실은 진짜입니다. 실은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지만요.
오구로:아아, 알았다. 오마쯔리섬이 지부리인 거군요!
호소다:그래 그래! 바로 그렇습니다. 즉 상대방 내부에 들어가서, 공평하지 못한 싸움을 강요당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내용인 거죠.
오구로:그렇군요.
호소다:제가 지부리에 가서 『하울』을 만들고 있었을 때, 그 당시 지부리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만드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울』 작품 준비를 위해 지부리가 나눠줄 수 있는 스태프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스스로 불러모을 수밖에 없었죠. 작화도, 미술도, 제가 감독으로서 스태프를 직접 모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와달라고 불러모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프로듀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마음만으로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라고. (중략)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졌잖아요.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뭔가를 보증해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거든요. 그러니 그 사람들한테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거죠. 꼭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공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거짓말을 한 셈이죠. (그 사람들을) 배신한 겁니다. 이젠 아무도 날 신용해주지 않을 테고, 영화는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정말로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진짜로요. 앞으로는 큰소리 치지 말고 업계 구석에서 조용조용 비즈니스라이크하게 살아가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 『도레미 (도캉∼!)』 40화에서 세키 히로미씨와 이가라시 타쿠야씨가 기회를 줬던 거죠. 게다가 그런 나한테, 호소다씨가 또 작품을 만들게 된다면 우리도 하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게 스시오씨, 쿠보타 치카시군이었습니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는 제게 있어서의 브리프 선장이 스시오씨, 쿠보다군이었던 거죠.
오구로:아아, 야마시타 타카아키씨는 조로나 상디인 거군요.
호소다:예! 맞습니다.
즉 『원피스』의 이 극장판에서 주인공 루피는 호소다 감독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내용 역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강판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궁금한 분들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ONE PIECE 오마쯔리 남작과 비밀의 섬』을 참조하기 바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한국어판 공식 사이트:
http://www.howl.co.kr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 『게드 전기』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과 지부리에서 강판당한 연출자가 만든 두 작품이 과연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 『게드 전기』게드전기관련이미지들
※본문에 실린 『게드 전기─어스시의 전설』 이미지는 국내 수입사인 대원C&A홀딩스㈜에서 제공된 스틸로서, 보도 목적으로 인용하였습니다.
2006년 8월 vol. 42호
글 선정우[mirugi.com]
(만화칼럼니스트, 만화기획사 코믹팝 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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