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우리는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이 성공하고 있는 이유의 첫 번째 범주를 ‘활기찬 출판시장’으로 꼽았고, 세부적으로 풍부한 작가 군들의 형성, 작가들이 지니는 만화계에 대한 공적 책임의식, 망가 수입의 가속화 및 안정화, 만화관련 담론의 지속적 존재로 정리했다. 이번에 우리는 두 번째 커다란 범주로 앙굴렘시, 도 및 중앙정부, 관련 기관들, 그리고 페스티벌 조직위원회의 노력을 꼽아보려고 한다.
1) 앙굴렘시의 노력
인구 약 4만 3천명의 앙굴렘시는 수도 파리에서 일반 자동차로 약 6시간 거리에 있다. 시의 한 해 예산은 1억1천만 유로(약 1,800억원)로, 이 중 300만 유로(한화로 약 46억원)를 만화와 관련, 즉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조직위원회(이하 FIBD), 국제 만화이미지센터(CIBDI), 만화관련 학교들에 배분한다. 직접적으로 페스티벌에 활용되는 예산은 150만유로(23억원)이다. 실지로 FIBD 전체 필요예산은 그 두 배인 300만유로(46억원)로, 필요예산의 50를 감당하는 셈이다. 이 정도의 예산은 전체 프랑스 출판만화시장규모의 약 1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이를 통해 4일간 모이는 관람객의 숫자는 22만명(2010년 기준)이다.
같은 ‘만화도시’인 부천시의 인구는 약 88만명, 수도 서울에서 1시간 내 거리에 있으며, 1년 예산은 1조 1439억원(2010년 기준)으로 앙굴렘시보다 약 10배 더 큰 규모이다. 그 중에서 문화산업분과가 211억을 활용하며 출연기관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약 43억원을 배정했다. 이 진흥원이 내외부적 상황에 따라 축제예산규모를 결정하는데, 2억에서 4억 정도가 활용된다.

박물관에서 바라본, 저녁의 CIBDI
절대적 지표로 보자면 앙굴렘 축제의 경우 앙굴렘시가 쏟는 예산이 부천시가 비코프에 쏟는 예산에 비해 예산의 약 8배에서 10배에 해당되며, 상대적 지표로 보자면 앙굴렘시의 1년 예산 대비 FIBD에 배정하는 예산은 전체의 약 1.3(만화 전체로는 2.6)인 반면, 부천시의 경우는 1년 예산에서 0.02~0.04(만화전체로는 0.4) 정도를 축제에 투입한다. 이러한 예산 투입은 나름 이유가 있다. 인구 4 만명의 도시에 22 만명이 모이면 어디서 먹고 마시고, 자고 모여서 떠들고 하겠는가? 그 지출은 고스란히 앙굴렘시와 그 주변 도시의 중소규모 사업자들에게 돌아온다. 또한 시는 부족한 잠자리를 위해 자식들이 나가 비어있는 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싼 가격에 방과 식사를 내놓도록 요청하며, 시민들은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최소한 만화라는 영역에 있어서만은, 앙굴렘시가 프랑스 전역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을 앙굴렘 시민들은 지니고 있다. 유일한 국립만화기관, 국립만화박물관, 파리를 제외한 최대의 이미지 클러스터, 최고의 만화관련 교육기관의 풀 등, 이들만 아니라면 국내외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적었을 도시가 그 이름을 축제 덕분에 널리 알린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상징적 이윤이 시민들을 축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만들 수 있으며, 앙굴렘시에서도 많은 예산을 축제에 투여할 수 있다.
2) 중앙과 지자체 공공 행정력의 지지
페스티벌의 성공적인 개최 뒤에는 앙굴렘시를 제외하고도 다른 공공 조직들도 버티고 있다. 물론 첫 번째는 국가의 적극적 협력이다. 1990년에 문을 열었던 ‘국립만화이미지센터(CNBDI)’는, 2009년부터 정식 국립기관인 ‘국제만화이미지시티(CIBDI)’가 되었고, 성격은 ‘상업적 비영리 공공법인(EPCC)’이다. 한 해 예산이 약 4백만 유로(약 62억)로 68명이 일하고 있으며, ‘만화’에 관한한 프랑스에서 그리고 유럽전역을 통틀어서도 양적, 질적으로도 가장 훌륭한 만화문화진흥기관이다. 한번 ‘EPCC’로 정해지면, 운영비와 사업비를 도비(departement) 39, 국비 26.5, 시비 24.5, 레지옹(‘도’와 ‘국가’사이의 행정구)이 10를 담당하도록 고정된다. 중앙정부나 지역정부가 바뀌더라도 이 부분은 손댈 수 없다. 물론 이것이 경제적인 풍족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나머지 사업비는 디렉터가 기타 공공기관이나 사기업들로부터 끌어와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전역에서 100명이 넘은 후보자가 지원을 하고 치열하게 경쟁한 후, 현재 디렉터가 선출되었다.

앙굴렘 시청 앞 광장
1985년 당시 CIBDI를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자크 랑’ 전 문화부장관은 올해 페스티벌을 방문하여 새로 지어진 만화박물관을 극찬했고, ‘포아투-샤랑트 도연합’ 의장인 ‘세골렌 로와얄’은 새 박물관 개관식에 참여했다. 이어서 곧 있으면 시작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페스티벌조직위와 앙굴렘 시장 사이에 벌어진 페스티벌의 존속논쟁의 화살이 사르코지가 속해있는 정당을 겨냥하지 않도록 문화부 장관 역시 축제 폐막식에 발빠르게 행보했다.
다른 한편, 1,400만 유로 예산의 마즐리스(Magelis)’라는 이미지관련 분야의 클러스터가 있다. 이들과 더불어 ’국립게임학교‘ 및 ’유럽만화이미지 학교‘ 등 다양한 교육기관이 앙굴렘에 만화관련 인력을 상주하게끔 만들고 있다.
3)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페스티벌조직위원회는 2007년부터 ‘협회(Association)’로 성격을 바꾸었고, 이들과 앙굴렘시 사이의 3년간 협약이 2010년 1월에 끝나기에 이후 어떠한 형태로 이 관계가 재정의될 것인지 모두 궁금해 하는 중이다. 특히 올해 축제 이전, 2009년 하반기부터 지속된 앙굴렘 시장과 조직위원회 사이의 소음은 시장이 페스티벌 관련 예산지원을 축소하겠다고 해서 촉발되었기에 더욱이나 그러하다. 이 논란은 단지 시의 문제만은 아니다. 페스티벌조직위가 협회가 되면서, 축제업무를 현재의 축제디렉터가 운영하고 있는 9Art +라는 사기업에 맡긴 것 때문에 뒷소문이 꽤 무성했다. 실제로, 앙굴렘 축제의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스탠드를은 거대한 임시천막 안에 만들어진다. 이 천막을 세우고 해체하는 것, 시청의 인력들은 필요한 곳에 배치하는 것, 각종 보험들에 대해 앙굴렘시가 40만유로(6억 6천만원) 가량을 지불해야 한다. 출판사들은 스탠드 대여를 위해 대금을 따로 지불한다. 스탠드의 주된 활동이 만화책 판매인데, 이런 상업 출판사의 상업적 활동을 위해 시에서 세금을 지출하는게 합당한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활동 자체가 행사를 대리하는 9Art+회사에게만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조직위원회는 해마다 적자가 난다고 울상을 짓고 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서서히, ‘아예 CIBDI가 페스티벌 조직위를 흡수 병합하면 어떨까?’라는 의견이 제시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앙굴렘시에서 예산 때문에 머리 아파할 일도 없고, 대부분의 논란을 EPCC의 형태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안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페스티벌측만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래선지 몰라도 축제기간 내내 FIBD는 CIBDI가 주최하는 행사에는 얼굴도 내보이지 않았다.

왼쪽) 박물관입구모습
오른쪽) CIBDI 서점내 작은 전시공간
이런 예산운영문제를 제외하고 나면, 축제위원회 측이 무능력하다고 볼 수는 없다. 축제관람객들은 2003년 이후 계속 20만명을 웃돌고 있고, 전시회와 컨퍼런스, 만화와 다른 매체의 결합, 국제적인 만화가들과의 만남 등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부분은 페스티벌이 전통적으로 가져오던 프로그램들이며 현행 조직위원회는 오랫동안 다듬어 온 프로그램들에 공연이나 스텍터클에 만화를 활용하는 것 하나 장도를 더 얹어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내용적으로 아주 알찬 부분들은 CIBDI의 협조나 기획이라는 점 역시 지적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올해 최고로 찬사를 받은 전시는 발상적인 측면에서나 기획적인 측면에서 CIBDI의 ‘100’전시이지, 조직위원회가 준비한 전시가 아니었다.
자, 우리는 여젼히 앙굴렘 페스티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페스티벌이 만화출판시장의 현황을 가장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며 만화관련 공공정책의 원칙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14년간의 성장을 끝내고 서서히 정체기가 다가오는 만화시장의 상황을, 만화출판사들과 작가들은, 또 공공기관들은 어떤 방법으로 헤쳐나올 것인가 ? ‘무료’의 함정으로 빠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만화제작과 유통의 개척’으로 나갈 것인가? 또는 FIBD가 CIBDI에 병합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늦어도 내년 초면 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