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성공이유

1959년 프랑스 만화잡지 「필로트」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작년에 탄생 50 주년을 맞았다. 프랑스 만화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가 된 아스테릭스 시리즈의 성공비결을 알아보자.

2010-05-15 박경은

1959년 프랑스 만화잡지 「필로트」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던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작년에 탄생 50 주년을 맞았다. 프랑스 만화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가 된 아스테릭스 시리즈의 성공비결을 알아보자.



프랑스 최고 인기 만화 중 하나인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작가들의 재능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를 연재하던 시절, 시나리오 작가인 르네 고니시는 무척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1963년부터 1974년까지 필로트 잡지의 편집장이자 가장 많은 작품을 쏟아내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그는 주중에는 항상 편집장으로서의 일에 열중해야만 했다. 금요일 낮에 퇴근해서 샹젤리제의 극장에서 영화 한번을 보고 나서는, 다시 일하기 시작하여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내내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이렇게 해서 나온 작품들이 「아스테릭스」, 「루키루크」, 「움파파」, 「이즈노구드 」등이다.

매주 일주일에 시놉시스 하나, 한달이면 시나리오 한편이 나왔다. 이런 속도로 일하다 보니 르네 고시니는 일 년에 두세권의 아스테릭스 시리즈와 두세권 정도의 루키루크 시리즈에다가 덤으로 몇 가지 작품까지 더 내놓곤 했다.



아스테릭스 모자를 쓴 고시니와 우데르조.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 시리즈의 작화가인 알베르 우데르조 역시 동시에 세가지 시리즈를 같이 연재해야 할만큼 바빴다. 코믹한 그림체의 「아스테릭스」, 「움파파」는 르네 고시니와 함께였고, 실사풍 그림체의 「탕기와 르베르뒤으」는 시나리오 작가 르샤를리에와 함께 작업했다.

우데르조는 「움파파」의 독자투표결과가 좋지 않자 해당 시리즈를 그만두었고 「탕기와 프베르뒤으」시리즈도 만화가 지제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아스테릭스 시리즈에만 집중한다.


매스미디어의 지원



두 작가의 작업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잡지연재분량이 이미 많았고,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단행본이 출시되기 시작한 1961년부터는 거의 6개월에 한권씩 시리즈가 출간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정도의 출간간격은 예전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거의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짧은 것이다.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가 연재되던 잡지 필로트



라디오 채널 RTL은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가 처음 소개되었던 잡지「필로트」의 창간때 부터 지원을 해왔었고, 당시 50만부 이상을 발행하던 「르 뻴르랑」 신문도 아스테릭스를 연재했다. 이 연재물이 이후에 「르 몽드」신문에서 최초로 발행한 만화인 “시저의 선물”로 출간된다.

1966년 1월, 7월, 10월에 한권씩 모두 3권의 아스테릭스가 출간되었다. 신간은 수십만부가 찍혀 나왔고, 9월에는 렉스프레스 신문에는 “아스테릭스 현상”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해 아스테릭스의 판매부수는 백만부를 넘어섰다.

고시니와 우데르조는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학교의 운동장에서,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만화에 나오는 대사인 “갈리아 사람들은 미쳤어 (ils sont fous ces gaulois!)”를 외치면서 서로 말을 걸기 시작하는 것을 보자 한발짝 더나가서 매스미디어에 자신들이 매일저녁 멧돼지로 저녁식사를 한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언론은 그 시대의 분위기에 맞으면서도 전복적 성격이 있는 이 만화를 좋아했다. 왜나하면 이 만화는 로마 식민통치에 놓인 고대 프랑스를 보여주면서,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시작되는 프랑스 신화의 명성에 조금 흠집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프랑스는 그 식민지들의 해방과 더불어 초기적인 단계의 유럽공동체 건설부터 시작되는 세계화에 의해 조금씩 와해되기 시작한다.

만화주인공들은 오베르뉴와 노르망디 코르시카 등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제르마니(독일), 히스파니(스페인), 스위스 등을 방문하여 유럽을 발견한다.


아스테릭스의 작화가 알베르 우데르조가 아스테릭스와 동시에 작업하던 만화중의 하나인 「 탕기와 르베르뒤으」 . 실사체와 코믹체의 스타일을 동시에 작업할 수 있을 정도로 우데르조는 그림실력이 뛰어난 작가 인듯 하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탕기와 르베르뒤으」시리즈는 많은 인기를 얻었고 tv 시리즈까지 제작되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주인공들처럼 전투기 조종사가 되길 원했고, 만화에 나오던 미라지 전투기의 수출에도 영향을 줄 정도였다고 한다.



제도권의 인정



1965년에는 만화의 팬이였던 과학자들이 프랑스 최초의 인공위성에 아스테릭스라는 이름을 붙이려 했지만 윗사람들에게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유명인들이 자주 공연하는 올림피아라는 공연장에도 두 사람의 작가는 자주 초대되었다. 드골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진행할 때 각 장관들을 만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같이 갈리아식 이름을 붙여서 부르곤 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아스테릭스 만화에서 애국주의의 모습을 찿기도 한다. 유럽 전역을 정복한 강력한 로마군에 대항해 용감이 맞서는 만화속의 갈리아인-프랑스인들의 조상-의 모습이, 미국의 유럽 주도권 장악에 맞섰던 드골대통령 치하 프랑스의 모습과 많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작가는 이 만화에서 프랑스의 영광을 표현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민자에 의해 만들어진 프랑스인의 상징



르네 고시니는 폴란드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대교의 랍비였다. 고시니는 아르헨티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미국에서 청년시절을 보냈으며, 스페인어, 불어,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 알베르 우데르조 역시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이다. 전형적인 프랑스인의 상징인「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는 사실 이민자의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인 것이다.


만화 속에서 주인공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를 비롯한 갈리아(프랑스)인들은 쌈질 좋아하고, 화를 잘내고, 몇사람들 빼고는 별로 영리하지 않을 뿐더러, 논쟁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최근에 영화에서 아스테릭스 역을 맡은 배우 클로비스 코르니악은 이렇게 말했다.

“아스테릭스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가장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고, 고함치기 일쑤죠. 기만적이기도 하고, 흥을 깨기도 합니다, 이 자신 있어 하는 난장이 같은 녀석은 저랑 닮은 데가 있습니다. 고개를 높이 쳐들고 있지만 키는 겨우 1미터 10센티밖에 안되는 거죠”

약간 과장되긴 했지만 두 사람의 작가는 프랑스인들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면 프랑스인들도 자신들의 본질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