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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안만화의 살아있는 역사, 아쏘시아시옹(l’association) 출판사 : 20년의 빛과 그림자.

1990년대 이후의 프랑스 만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아쏘시아시옹 출판사를 빼놓고서는 결코 이야기가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출판사는 프랑스 만화계의 중요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많이 배출해내었다. 그 아쏘시아시옹 출판사가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 출판사가 시작할 당시의 프랑스 만화계 상황과 지금의 만화계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영광과 분열, 최근의 위기와 변화까지 20년간의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의 모습을 살펴보자.

2010-04-11 박경은

1990년대 이후의 프랑스 만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아쏘시아시옹 출판사를 빼놓고서는 결코 이야기가 진행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 출판사는 프랑스 만화계의 중요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많이 배출해내었다. 그 아쏘시아시옹 출판사가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 출판사가 시작할 당시의 프랑스 만화계 상황과 지금의 만화계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영광과 분열, 최근의 위기와 변화까지 20년간의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의 모습을 살펴보자.


아쏘시아시옹의 창립

1980년대, 프랑스 만화계는 꽤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있었다. 만화의 판매는 줄어들고 있었고, 열성적인 만화잡지의 독자들도 흩어져 버렸다. 그 결과로 땡땡이나, 필로트, 서커스, 메탈 위를랑 같은 만화잡지들은 폐간되고 말았다.  주요만화 출판사들은 시장의 판도를 바꿀만한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 작가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시장의 현실에서 등을 돌리고 “해뜰 날”만을 기다릴 뿐이였다. 그들은 오래된 관행처럼 “만화책은 48페이지 분량이여야만 한다.”, “큰포멧, 하드커버 만화만이 팔린다”고 믿고 있었고, 작가들에게도 그런 만화만을 그려줄것 을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쟝 크리스토프 무뉘, 마트 콩튀르, 킬로퍼, 루이스 트롱다임, 다비드 베같은 신진 작가들이 모여 1990년 아쏘시아시옹 출판사를 설립했다.



아쏘시아시옹의 창립멤버들을 묘사한 그림.

왼쪽부터 킬로퍼, 루이스 트롱다임, 쟝 크리스토프 무뉘,스타니슬라스, 마트 콩튀르, 다비드 베

프랑스 만화판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진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 출판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은 당시 비교적 작가의 창작을 중시하는 분위기의 퓨투로폴리스(Futuropolis) 출판사에서 펴내던 「라보(Labo)」라는 잡지와 카랄리(Carali) 출판사의 「피시코팟(psikopate)」 잡지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였다. 아쏘시아시옹(l’association : 협회, 단체라는 뜻) 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출판사라기보다 만화가들의 단체 성격이 더 강했고, 여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아쏘시아시옹,프랑스 만화의 판도를 바꾸다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의 만화책은 우선 겉모습부터 달랐다. 흑백위주의 작품들이 많았고, 500페이지가 넘는 만화책부터, 열댓장에 불과한 만화책, 손바닥만한 크기의 만화책까지 포멧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내용면에서도 무턱대고 넓은 독자층을 노린다기보다 개인적인 이야기,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출간했다. 90년대, 냉전의 종식으로 이념과 대의명분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고, 개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런류의 만화가 프랑스에서도 읽혀지기 시작했다.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의 작품들은 미국독립만화와도 많은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미 6,70년대에 프랑스에서도 미국 유학파였던 이브 고트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이 미국 독립만화의 영향을 받은 작업들을 발표했지만 당시에는 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나 아소시아시옹 출판사는 「우바포(L’oubapo:ouvroir de bande-dessinées potentielles :잠재적 만화실험실이라는 뜻)」 라는 활동을 통해, 자발적으로 일정한 제약을 만들어작업하기 - 예를 들자면 다른 만화의 칸을 빌려다가 만화 속에 집어넣기, 칸과 칸 사이에 내용을 더 집어넣어 이야기를 확장하기, 만화의 페이지를 접으면 다른 이야기가 되게 만들기, 위 아래를 바꿔그리기 등의 대담한 만화적 실험을 주도하기도 했다.

1994년 아쏘시아시옹 맴버들의 예전 활동무대이자, 창조적 분위기를 중시하던 퓨튜로폴리스(futuropolis) 출판사가 문을 닫자, 아쏘시아시옹은 대안만화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출판사의 창립 맴버가 아닌 작가들의 작품으로 출간범위를 넓혀간다.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의 역작 「Comix 200」의 일부.

329명 작가들의 329개의 스타일을 엿볼수 있는 작품이다.


에드몽 보두앙, 조안스파, 기 들릴, 엠마뉴엘 기베르, 블러치 등이 아쏘시아시옹을 통해 만화를 펴냈으며, 특히 수백만부가 팔려나간 마르쟌 사트라피의 「페르세 폴리스」와 29개국 329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한권의 사전형태로 모은 역작 「Comix 2000」과 같은 책도 출간되었다. 아쏘시아시옹 출판사는 앙굴렘 페스티발에서 수많은 수상작과 수상작가들을 배출하고, 비평뿐만아니라 판매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다. 그렇게 아쏘시아시옹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의 가장 큰 성공작중 하나인 「페르세폴리스」



분열의 시대

아쏘시아시옹의 분열은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창립멤버 중 한사람인 작가 다비드 베가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다비느 베는 자신의 작품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아쏘시아시옹의 가장 큰 성공작중 하나인 「페르세폴리스」의 작가 마르쟌 사트라피를 발굴해 낸 사람인만큼 그의 탈퇴가 주는 파장은 컸다. 이듬해에는 또 한사람의 중요한 창립멤버이자 앙굴렘 페스티발의 심사위원장인 루이스 트롱다임이 출판사를 떠났다. 스타니슬라스, 킬로퍼 등의 작가들이 뒤를 이었고, 유명 작가 조안 스파는 “더 이상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에서 책을 펴내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아쏘시아시옹을 둘러싼 모든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쟝 크리스토프 무뉘

이 모든 분열의 중심에는 쟝 크리스토프 므뉘가 있었다. 그는 아쏘시아시옹의 여러 창립 멤버 중 출판사를 가장 역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독선적이고 논쟁을 일삼는 태도는 주변 사람들과의 잦은 충돌을 만들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만화잡지사의 기자가 메일로 기사를 위한 책 표지의 디지털 이미지를 요구하자, 기자를 “돼지”라고 욕하는 답글을 보내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이제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에 남은 창립멤버는 쟝 크리스토프 무뉘와 마트 콩튀르 2사람뿐이다.


시장의 변화 그리고 안팎의 위험요소들

아쏘시아시옹 출범당시인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만화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아쏘시아시옹이 대안만화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해왔지만, 현재는 ego comme X, Vertige graphic, Cornélius, La boite à bulles 등 괜찮은 대안만화를 출간하는 출판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페르세폴리스」 이후로 대안만화 형식의 만화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굵직한 만화출판사들까지 『대안만화 형식』의 콜렉션을 쏟아내고 있다. 대안만화 형식의 만화출간은 오히려 돈이 덜 들기 때문에 대형출판사들은 전혀 이것을 꺼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대형출판사의 대안만화형식 콜렉션 원고료는 일반적인 콜렉션의 원고료보다 낮다.) 아쏘시아시옹은 다른 대안만화출판사들, 그리고 대안만화의 탈을 뒤집어쓴 대형출판사의 컬렉션들과 경쟁을 해야만 한다.

또한 최근의 작가들은 비록 아쏘시아시옹을 통해 발탁이 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출판사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출판사를 옮기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주저하지 않기 때문에 아쏘시아시옹은 성공을 거둔 작가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아쏘시아시옹의 미래

앙굴렘 페스티발에서는 여전히 매년 한 두권 이상의 아쏘시아시옹 책이 수상하고 있고, 재능 있는 몇몇의 신진작가들도 발굴되고 있지만, 지금의 아쏘시아시옹의 이름은 예전보다 훨씬 무게를 잃은 것 같다. 아쏘시아시옹의 이름을 대표하던 작가들이 거의 다 떠나버린 지금, 아쏘시아시옹이 머지않아 과거의 역사로 묻혀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통해 다시 재도약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아쏘시아시옹의 20 주년을 기념해 쟝 크리스토프 무뉘는 100여명의 작가들에게 그들과 아쏘시아시옹 출판사의 역사를 잇는 만화 한 장을 선정하고 그 그림에 대한 오마쥬를 제작해 줄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금년 6월 스위스의 만화페스티발을 통해「XX /MMX」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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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