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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장성만을 앞세운 [만화상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이나 일본 미국에서도 그렇듯이 프랑스에서도 돈되는 만화를 만들기 위한 꼼수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에서 자주 쓰이는 것은 그 시대에 인기 있는 가수, 스포츠 스타, 영화 또는 그때그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슈에 관한 만화들을...

2009-01-07 박경은

                시장성만을 앞세운 ≪만화상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이나 일본 미국에서도 그렇듯이 프랑스에서도 돈되는 만화를 만들기 위한 꼼수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에서 자주 쓰이는 것은 그 시대에 인기 있는 가수, 스포츠 스타, 영화 또는 그때그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슈에 관한 만화들을 단기간 내에 기획, 제작하여 그 관심이 사그러들기 전에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만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만화들은 창작성은 뒷전이고, 한탕치고 빠지는 식의 시장성만을 염두 하여 제작되기 때문에 ≪만화작품≫ 이 아닌 ≪만화 상품(BD produit)≫ 으로 불려지고는 한다. (만화상품이 프랑스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은 아님을 밝혀둔다.)
쉬티의 동네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2천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프랑스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
『쉬티의 동네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Bienvenue chez les Chtis』의 포스터


2008년 무려 2천만명의 관객이 들었던 프랑스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인 『쉬티의 동네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Bienvenue chez les Ch’tis 』의 DVD 출시를 앞두고, 석달 사이에 무려 7권이나 되는 ≪쉬티 Ch’tis≫ 관련 만화들이 출간되었다.
DVD판매에 묻어서 만화판매량을 늘려보려는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극단적인 ≪만화상품≫ 현상의 한 예이다. 쇼핑센터 같은곳의 만화장터 행사를 가보면 6종의 만화 중 4개의 만화가 이렇게 유행에 맞춰 기회주의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만화들이라고 한다.
(“쉬티 Ch’tis”는 연중 우중충하고 서늘한 날씨로 유명한 프랑스 북서쪽의 노으 빠드깔레 Nord?pas-de-calais 지역주민을 이르는 속어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지역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쉬티의 동네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Bienvenue chez les Ch’tis』는 이 지역과 지역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트는 코미디 영화이다.)

영화 『쉬티Chtis』의 DVD 출시에 맞물려 출간된 관련 만화들

영화 『쉬티Chtis』의 DVD 출시에 맞물려 출간된 관련 만화들

≪ 만화상품 ≫ 왜 이렇게 많이 나올까 ?
그것은 대개는 출판사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작가들의 생각보다 훨씬 낫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만화로 보는 ….] 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무엇이든지 잘 팔릴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음식 먹을때 쓰는 포크가 인기 있는 아이템이 된다면, 출판사들은 앞다퉈서 ≪ 만화로 보는 포크 ≫, ≪ 포크에 관한 진실 ≫, ≪ 포크에 관한 농담 ≫≪ 포크, 으이크 찔릴라 ≫시리즈 내지는 ≪ 만화로 보는 포크 사용법 ≫등을 내놓게 될 거란 얘기다.
포크에 대한 책으로 시장이 넘쳐날때 쯤 이면 스핀 오프 시리즈로 ≪ 찻숫가락 시리즈 ≫, ≪ 나이프 시리즈 ≫, ≪ 접시 시리즈 ≫ 등으로 유행 소재에 계속 줄타기를 해서 그 소재가 고갈될때 까지 파는 것이 순수 창작보다 훨씬 수입이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만화계에서 ≪ 만화화 ≫ 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 더 문제될 것이 있을까?
영화 택시시리즈나 마이클 잭슨, 전격 Z 작전에서 부터 600만불의 사나이와 프랑스의 축구영웅 플라티니에 관한 이야기까지 돈 될만한 소재를 만화화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도 수 십년전부터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같은 만화들은 많은 욕을 얻어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랑스 만화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런 만화 제품들이 그럭저럭 잘 팔리고 있기 때문에 마치 독자들이 이런 만화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만화의 문제점은, 이 만화들이 전반적으로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만화 전체에 폐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쓸만한 만화책 한권을 만들려면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화상품들은 이런 저런 이벤트에 맞춰 급히 제작되고, 이런 기회주의 적인 제작방식은 길게 앞을 내다보지 않으므로, 만화상품들의 작가에게는 일반적인 만화 제작기간 보다 훨씬 짧은 3개월 정도의 시간만이 주어진다.
출판사 쪽에서는 이런 만화 작가들에게 다른 작가들보다 많은 보수를 쥐여준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출판사가 작가들에게 원하는 조건은 좋은 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짧은 기간내에 만화를 끝내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죄인은 이런 만화를 그리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작가들이 아닌가 ?
모두들 예술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도 만화가는 그냥 직업중 하나일 뿐이다. 성공하는 작품을 여러개 갖고 있는 만화가가 아니라면,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병행하거나 이런 돈벌이용 만화들도 그려야만 한다. 불행하게도 꽤 많은 프랑스의 만화거장들이 이런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들의 돈벌이용 만화는 잊어버리고 또 그것에 대한 비난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뤽 루와이예의 『쉬티의 어린시절 Une enfance Chti』의 표지

뤽 루와이예의 『쉬티의 어린시절 Une enfance Chti』의 표지


≪ 만화상품 ≫ 현상을 극복할 방법은 ?
이벤트나 유행을 타고 제작된 만화라고 해서 모두 나쁜 만화일 수는 없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후에는 훨씬 훌륭한 작업들이 나올수 있을 것이다.
영화 『쉬티 Ch’tis』의 DVD 출시를 앞두고 한철 장사를 노린 만화들도 쏟아져 나왔지만 , 『쉬티의 어린시절 Une enfance Ch’tis』이라는 장 뤽 루와이예의 만화도 재출간 되었다.
주목받는 이벤트와 관련되는 창작만화를 찾아 재출간하는 방법도 한탕주의적 만화의 범람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진이미지

박경은

만화가, 번역가
『평범한 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