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이면을 안고 사는 고뇌하는 슈퍼 히어로. 마블 코믹스는 언제 어디서나 타의 모범이 되는 완벽한 히어로들이 아닌 저마다의 결함과 고민을 갖고 있는 인간적인 히어로들로 승부를 걸었다. 그리하여 마블은 1960년대 ‘실버에이지’라고 불리는 만화의 새 문을 열어젖히는 주역이 되었다. 그 중심에는 스탠 리, 스티브 딧코, 돈 헥 등 오늘날 레전드로 불리는 작가들이 있었다. 이들이 창작한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헐크 등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당시 마블의 상황은 어떻게 보면 만화의 ‘골든 에이지’를 주도했던 DC 코믹스가 40년대에 처했던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
슈퍼맨의 성공 이후 DC는 슈퍼맨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 마법 히어로인 그린 랜턴, 그리스 신화의 머큐리를 기반으로 만든 플래시, 초자연적 히어로인 스펙터 등 다양한 색깔의 히어로들을 연이어 창작하며, 새로운 장르와 포맷을 실험하고, 유행을 주도했다. 마블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고, 스탠 리는 그 길을 어떤 스텝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걸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폭주할지 모르는 헐크에 필적할 또 하나의 강력한 히어로를 만드는 것. 그것은 마블의 새로운 또 한 걸음이었다.
스탠 리가 슈퍼 히어로 창작을 하면서 애로 사항으로 여겼던 점의 하나는 초능력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기원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예로 엑스맨의 경우는 ‘돌연변이’라는 한 마디로 번거로운 모든 설명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니 헐크에 대적할 히어로를 ‘신’으로 설정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스탠 리가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뻔한 일이다. 그 때까지 신화에 기반한 만화 주인공들은 대개 그리스, 이집트 등의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예를 들면 플래시, 원더우먼 등은 그리스 신화의 머큐리, 헤라클레스, 아마존 등과 관련이 있었고, 호크맨은 이집트 신화, 캡틴 마블(샤잠)의 경우엔 성경의 인물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의 힘이 결합된 형태였다. 그러니 적어도 ‘신’으로 차별화를 하려면 그리스나 이집트 신화와는 다른 신화를 뒤져볼 필요가 있었다.
스탠 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북유럽 신화였다.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기품 있고 근엄하면서도 때론 질투하고, 하찮은 것을 욕망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싸우고 죽기까지 하는 마블의 결함 많은 히어로들과 매우 흡사한 인간적인 신들이었다. 그들에겐 심지어 라그나로크라고 하는 종말의 순간까지도 존재하고 있었으니, 큰 전쟁과 냉전을 겪으면서 세계 멸망에 대한 공포를 몸소 느끼고 있던 당시로선 이보다 공감 가는 신화도 없었다. 영화 <토르 : 다크 월드>의 서두는 전편인 <어벤저스>에서 그 줄거리를 이어오면서도 만화 원작자가 토르를 마블 히어로로 만들게 된 이유를 은근히 짚고 넘어간다. 처음은 쇠사슬에 묶인 로키를 오딘이 심판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오딘은 ‘우리는 신이 아니다. 태어나 살고 죽으니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신들의 종말이라는 라그나로크에 대한 공포는 마블 토르의 세계관에서도 하나의 큰 축으로 이어져 왔다. 로키가 음모를 꾸미고, 불의 악마 수투르가 일어나고, 오딘이 죽고, 토르가 죽는 이야기는 몇 해를 주기로 반복되고 반복되어 왔다. 시대에 따라 작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이 패턴의 이야기가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토르와 아스가르드 신들이 종말의 위기에 맞서 싸우고 다시 부활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독자들의 흥미의 대상이었다. 신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여느 인간과 다름없이 연약하고 흠 많은 슈퍼히어로들과 똑같았다.
오리지널 북유럽 신화 속의 라그나로크가 대충 어떤 식으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잠깐 정리하자. 어느날 발더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꿈을 꾼다. 그가 이 꿈을 다른 신들에게 이야기하자, 프리그가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게서 절대로 발더를 해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둔다. 이 과정에서 딱 하나 빠진 생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겨우살이였다. 프리그가 볼 때 겨우살이는 너무 어려서 구태여 서약을 받지 않아도 발더를 해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사실이 로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로키는 신들에게 제안한다. 발더가 무적이 되었으니 지상의 물건들을 그에게 집어던지는 놀이를 해보자고. 그리고 발더의 형인 호드에게 겨우살이로 만든 창을 쥐어준다. 발더는 호드가 던진 창에 맞아 죽는다. 얼마 후 이 사건의 배후에 로키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분노한 신들은 로키를 붙잡아서 족쇄를 채우고 감금한다. 그러나 로키는 탈출하여 큰 개 펜리르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거인들과 신들의 또 다른 여러 적들을 데리고 전쟁을 시작한다. 이 전쟁의 첫 희생자는 오딘이었다. 오딘이 죽은 후 천둥의 신 토르가 미드가르드 용의 목을 날려버리는데 성공하지만, 용의 독액을 뒤집어쓰고 죽으며, 헤임달과 로키가 서로를 죽인다. 그리하여 모든 신들이 죽고, 얼마 후 새로운 신들이 나타나는데, 그 리더가 바로 부활한 발더가 된다는 것이다.
원작 만화의 경우는 작가들의 성향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다소 차이는 나지만 기본적으로 라그나로크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아스가르드인들의 이야기라는 점은 같다. 토르 원작 만화는 최초의 작가진인 스탠 리와 잭 커비 시대, 로이 토마스 시대, 월트 시몬슨 시대, 로저 스턴 시대, 워런 엘리스 시대, 댄 쥬겐스 시대, 마이클 스트라진스키 시대 등으로 나뉜다. 스탠 리와 잭 커비는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는 초창기 창작기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온 토르의 이야기다. 후기는 잭 커비가 한 동안 마블을 떠나 DC에서 뉴가즈라는 시리즈를 창작하다가 다시 돌아온 후에 창작한 토르 이야기다. 원래 신화상에서는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모든 신들이 죽고 나면 새로운 신들, 즉 뉴 가즈가 나타난다고 되어 있었는데, 잭 커비는 이런 스토리에 깊이 빠져 있었다. 잭 커비의 뉴가즈는 쉽게 말하면 새로운 우주 시대에 걸맞는 우주신들이었다. 그는 DC의 뉴가즈를 마블에서 다시 구현해보고자 했는데, 그 결과 이터널즈와 셀레스티얼이라고 하는 우주 신들을 토르 이야기와 접목시켰다. 아스가르드와 아홉 세상의 신들이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서 그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우주 신들에 맞서 싸우고, 알고보니 아스가르드의 신들보다 더 상위의 신들이 있다는 상상력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판타지의 세계와 SF를 접목시킨 이들과 달리 로이 토마스는 70년대에 마블의 대표 ‘소드 앤 소서리’ 만화인 ‘야만인 코난’을 히트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토르의 이야기를 좀 더 원전의 신화에 근접 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월트 시몬슨이라는 이름이 토르 스토리 전체에서 갖는 영향력은 말하자면 프랭크 밀러가 데어데블에 미친 영향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고 할 정도다. 이번 영화 <토르 : 다크 월드>에 등장하는 주 악당인 말레키스는 바로 월트 시몬슨이 창작한 다크 엘프다. 특히 월트 시몬슨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베타 레이 빌이라고 하는 외계인에게 토르의 망치를 들 수 있는 힘을 주는 한편, 토르를 개구리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와 <반지의 전쟁>을 섞어 놓은 듯한 큰 스케일의 우주 전쟁 장면은 월트 시몬슨의 토르 시리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잘 보여준다.
원작 만화는 이렇다. 한쪽 다리를 저는 돈 블레이크라는 이름의 의사가 있는데, 노르웨이에 휴가 갔다가 우연히 외계에서 온 바위 괴물들을 만난다. 그는 바위 외계인들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어느 동굴 속에서 지팡이 하나를 발견하는데, 그것을 바닥에 두드렸더니 천둥의 신 토르로 변해 외계인들을 물리쳤다. 문제는 이 돈 블레이크라고 하는 인물이다. 영화 1편인 <토르 : 천둥의 신>에서는 한 번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토르는 듀얼 아이덴터티를 갖고 있지 않다. 토르에겐 클라크 켄트(슈퍼맨)나 브루스 웨인(배트맨), 혹은 피터 파커(스파이더맨) 같은 듀얼 아이덴터티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의 토르는 그냥 아스가르드의 왕자요 오딘의 아들인 토르일 뿐이다. 초창기에는 돈 블레이크의 듀얼 아이덴터티를 지닌 토르가 제인 포스터라는 인간 여자를 사랑하고, 그 때문에 아버지 오딘의 노여움을 사 여러 시험을 겪는다는 것이 토르 만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비슷한 패턴으로 몇 번이 반복되면서 돈 블레이크라는 인물이 생각 외로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작가들은 돈 블레이크를 제거하고 지상에서 토르가 겪는 일보다는 아스가르드와 그곳을 둘러싼 아홉 세계를 무대로 펼치는 토르의 모험담을 더 비중 있게 다룸으로써 토르의 인기를 이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무대가 판타지의 세계로 옮겨지는 만큼 아스가르드의 보조 캐릭터들의 비중도 늘어났다. 돈 블에이크가 제거됨과 동시에 제인 포스터를 제거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영화 <토르 : 다크 월드>에서는 제인 포스터의 몸 안에 우주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토르가 그녀를 아스가르드로 데려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원작 만화에서는 오딘이 비로소 토르의 제인 포스터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고 그녀를 아스가르드로 데려와 여신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계에 살던 제인은 갑작스럽게 생긴 신의 능력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은 아스가르드를 떠나 지상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오딘은 제인의 기억에서 토르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우고, 토르에게 아스가르드의 여전사 시프를 짝지워준다.
영화 첫 장면은 몹시 흥미롭다. 로키의 처벌 바로 다음 장면은 시프, 볼스택, 팬드럴, 호건, 토르 다섯 전사가 바나헤임에서 벌이는 전투 장면이다. 원작 만화에서 시프는 토르의 동료 전사인 동시에 토르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토르가 위험할 때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토르를 사랑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한편 볼스택, 팬드럴, 호건은 워리어즈 쓰리라고 불리는데, 이 셋은 토르나 시프와는 달리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인물들은 알렉산드르 뒤마의 ‘삼총사’에 나오는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리더인 팬드럴은 아라미스, 가장 연장자인 볼스택은 포르토스, 아스가르드인이 아닌 호건은 아토스가 아닌가 싶은데, 이들이 아스가르드의 왕좌를 차지하려는 로키의 암투를 막아내는 스토리들을 보면 가히 삼총사의 그것이 쉽게 연상된다. 이를테면 왕좌 찬탈의 음모를 꾸미는 로키와 그를 돕는 마녀 인챈트리스는 삼총사의 리슐리외 추기경과 여간첩 밀라디를, 토르와 시프는 달타냥과 콘스탄스를, 그리고 워리어즈 쓰리는 삼총사라는 구도다. 원작 만화를 보면 닥터 블레이크의 아이덴터티 비중이 상당히 줄어든 이후 토르는 시프와 쓰리 워리어즈와 팀을 이루어 활동하며 아스가르드와 아홉 세상을 모험했다. 워리어즈 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한 토르가 적들을 무찌르는 장면이 처음부터 등장한다는 것은 역시 만화에서처럼 영화의 방향도 인간계의 토르보다는 아스가르드에 닥치는 라그나로크의 위기를 막아내는 천둥의 신 토르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토르 : 다크 월드>의 첫 전투 장면은 토르의 동료들 뿐만 아니라 스탠 리와 잭 커비의 첫 토르 이야기에 등장한 토르의 첫 적을 또한 잘 그려내고 있다. 스탠 리와 잭 커비는 북유럽 신화의 토르를 현대적인 버전으로 변화를 주면서 날개달린 투구에 금발 머리, 등에는 슈퍼맨을 연상시키는 붉은 망토까지 달았다. 망치와 투구를 제외하면 현대적인 슈퍼히어로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스탠 리가 플롯을 구상하고 그 동생 래리 리베르에게 대본을 쓰게 하여 나온 첫 이야기는 ‘토성에서 온 바위 인간’이었다. 영화 첫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위 괴물이 바로 이 바위인간이다. 원작 만화에서는 처음에는 이 종족을 토성인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행성 ‘크로나’의 외계인으로 그려진다. 크로나 행성의 외계인들은 이후에도 종종 등장했는데, 각 캐릭터간의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지는 마블의 특성상 괴력의 크로나 외계인은 <인크레더블 헐크>의 스토리에도 등장해 헐크의 강력한 조력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작 <토르 : 천둥의 신>이 아버지의 명을 거스르고 천방지축 날뛰던 왕자가 여러 고난을 극복하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성장기라면, 이번 <토르 : 다크 월드>는 영웅으로서 지구의 위기와 아스가르드의 질서를 지키는 일을 맡고 있던 토르가 부모와 형제, 그리고 조국에게 닥친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며 비로소 진정한 왕으로 다시 한 번 성장하는 이야기다. 원작 만화에서 토르는 오딘이 불의 악마인 수투르와 단독으로 맞서 싸우는 사이에 아스가르드를 다스리곤 했는데, 영화에서는 수투르가 등장하진 않지만, 오딘이 토르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는 시점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감옥에서 풀려난 로키는 토르의 가장 친한 친구 중의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로 변신하면서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왜 하필이면 캡틴 아메리카가 여기에 등장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영화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나 <어벤저스>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원작 만화의 스토리 라인을 돌아보면 캡틴 아메리카가 여기에 등장할만한 충분한 사연이 있다. 1980년대 아이언맨이 자신의 기술이 사용된 아머들을 추적하여 파괴하는 <아머 워즈>를 일으키고 있을 무렵의 이야기다. 캡틴 아메리카는 토르와 함께 있던 중에 적의 기습을 받는다. 그런데 싸움 중에 토르가 그 손에서 망치를 놓치고 만다. 보통 때 같으면 토르가 손에서 망치를 놓칠 경우 60초가 지나면 토르는 본래의 모습인 돈 블레이크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캡틴 아메리카가 아무 생각 없이 그 망치를 집어 들어서 그의 손에 쥐어준 것이다. 알다시피 캡틴 아메리카는 신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니다. 그는 약물로 슈퍼솔저가 된 인물이니 남들보다 빠르고 강한 정도일 뿐 거의 휴먼 히어로에 가깝다. 그런 인물이 심지어 닥터 둠이나 씽도 마음대로 들지 못했다는 토르의 망치를 들었으니 토르 입장에서는 대단한 존경심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원작 만화 역사에서 토르의 망치를 들었던 인물은 실제로 여럿이며, 이들을 다 더하여 토르 군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첫번째 인물은 레드 노벨이라는 인물로 아스가르드 신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찍으로 왔다가 시프에게 한눈에 반해 있다가 붉은 수염을 가진 북구신화속의 토르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외에 외계인 베타 레이 빌로 토르의 망치를 쉽게 들 수 있자 자신도 자격이 있다면서 망치를 돌려주기를 거부하고 그 때문에 토르와 싸움을 벌인바 있다. 또 에릭 마스터슨이라는 인물로 토르가 죽었을 때 토르를 대신하여 활동했다. 토르의 망치는 그 주인에게 신의 지위를 허락하기 때문에 원작 만화에서도 토르의 망치를 조금의 탐욕도 없이 집어 들 수 있는 자는 사실상 캡틴 아메리카만이 유일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베타 레이 빌이나 에릭 마스터슨도 토르에게 망치를 양보하려고 한 덕에 각자의 망치를 오딘에게 하사받은 케이스이지만 망치를 자신의 소유로 두고 싶다는 욕심을 한 번쯤은 다 품은 적이 있다. 닥터 둠과 같은 슈퍼 악당의 경우에는 망치를 손에 넣고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을 정도이니, 신에겐 평범한 무기일지라도 범인에겐 분수에 맞지 않는 그저 탐욕만 불러일으키는 물건인 것이다.
토르의 망치에 관한 여담으로 처음에 스탠 리와 잭 커비는 북유럽 신화 전체를 제대로 숙지하고 그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토르의 망치라는 말만을 사용했을 뿐 묠니르라는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부르지를 못했다고 한다. 뒤에 이 이름을 되찾아준 사람은 토르를 신화에 근접시키려고 애썼던 로이 토마스다. 스탠 리에게 토르의 망치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는데, 토르는 붉은 망토를 착용한 인물이었고, 슈퍼히어로의 세계에서는 망토를 착용한 주인공은 반드시 하늘을 날 수 있어야 한다는 재미있는 법칙이 있었다.
스탠 리는 슈퍼히어로가 초능력을 갖는 기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면서도 슈퍼히어로의 내면적인 고뇌나 초능력의 활용에 있어서 드러나는 과학성에 있어서는 상당한 디테일을 추구했다. 예를 들면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발사장치의 경우에도 일일이 그 설계도를 독자에게 알려보여줄 정도였다. 스탠 리는 초능력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휴먼 토치는 불의 힘이 있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 있지만 판타스틱포의 다른 멤버들은 아무도 하늘을 날 수 없다. 헐크는 큰 힘으로 높이 점프는 가능하지만 역시 하늘을 날 수 없다. 스탠 리는 토르가 망치를 휘휘 휘둘러 원하는 방향으로 집어던지고 그 힘에 이끌려 하늘을 날아가게 된다는 설명으로 토르의 비행능력을 설명했다. 정확한 과학 계산으로는 말이 안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가상의 스토리에서는 이 정도는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는 나름의 합당한 설명이다.
영화 중간에는 우주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헤임달이 토르가 자신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눈이라는 영화와 신화 그리고 원작 만화를 비교하기에 재미있는 부분이다. 원래 토르 만화에서 오딘은 애꾸눈이 아닌 멀쩡한 두 눈을 가진 신으로 오랫동안 등장했다.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은 자신의 한쪽 눈을 지혜와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블의 토르 만화에서는 오딘의 한 쪽 눈이 어느 날부터인가 스스로 지성을 갖기 시작하면서 오딘이 애꾸눈이 되었고, 토르는 지성을 가진 채로 빠져 나온 오딘의 한쪽 눈알에게서 라그나로크의 비밀을 전해 들었다.
마지막으로 ‘컬렉터’에 관한 이야기다. 마블 우주에는 ‘엘더스 오브 유니버스’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가 자기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들로, 저마다 수집이나 게임 같은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 중 ‘컬렉터’는 우주의 온갖 진귀한 것들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인물로 자신의 수집 목록을 늘리기 위해서 지구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또 행성과 은하계간의 우주 전쟁을 마치 게임처럼 즐기면서 조종하는 ‘게임 마스터’라는 인물도 있다. 컬렉터의 이야기에 얼핏 비치기도 하지만, 이들 엘더스 오브 유니버스는 우주의 악당인 타노스가 수집하는 ‘인피니티 젬’을 제각각 하나씩 보유하고 있는 대단한 존재들이다.
<토르 : 다크 월드>를 보면서 느낀 생각은 이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이 이제 원작 만화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비교들이 원작 만화를 접해본 적이 없는 영화 관객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원작 만화의 경우에는 <어스 616>이라는 세계명으로 분류되어 있고, 그 세계 안에서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와 캐릭터들간의 관계가 형성이 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는 <어스 199999>라는 넘버가 붙어있고, 이 유니버스에 포함되는 영화는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 2>,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 <어벤저스>, <아이언맨 3>, <토르 다크월드> 순이며, 향후 개봉할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그리고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이다. 만화에 있어서는 2000년 이후 신규 독자 유치와 스토리의 현대화를 위하여 개발된 얼티밋 마블 유니버스가 <어스 1610>으로 구분되어 있다.
처음에는 원작과 비교되면서 비판과 찬사 등이 엇갈렸지만, 이제 10여년 이상의 역사를 일구어온 가운데,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중이다. <아이언맨 3>가 <아머 워즈>와 <익스트리미스> 등을 원작으로 삼아서 영화의 스토리를 진행시켜 나갔다면 <토르 : 다크 월드>는 토르 히스토리에 등장하는 말레키스라는 악당을 가져와서 에테르라는 영화만의 새로운 고대 무기를 추가하여 완전히 새로운 스펙타클을 창조해 냈다. 특히 제인 포스터를 돕는 에릭과 달시와 이안 3인의 과학자들의 코믹한 연기는 워리어즈 쓰리를 진화시킨 개그 사이언티스트 쓰리라고 불러도 좋을 듯싶다. 전작 <어벤저스>에서 헐크의 분노에 곤죽이 됐다가 이번엔 ‘내 분노를 믿어봐’라며 돌아오는 로키 또한 이번 영화가 재발견한 새로운 슈퍼악당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더 이상은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살렸느냐의 여부는 이제 이정도로 진행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큰 의미가 없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그동안의 영화와 크로스오버들로 구축된 세계를 어떻게 탄탄하게 잘 발전시켜나가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쪽이 좀 더 의미가 있을 듯하다. 최근 마이클 스트라진스키의 <토르>가 한국어판으로 출판되었는데, 토르와 로키의 오랜 은원관계,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오딘의 부친인 보어왕에게까지 이른 로키의 사악한 계략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