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카툰계의 두 거장: 토니 아우, 스탠 골드버그 별세

1971년부터 풍자 카툰 아티스트로 작품 활동을 하던 토니 아우(Tony Auth)와 1958년부터 코믹스 작품 <스파이더맨(Spider-Man)>,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 <아치>(Archie) 시리즈 등에 컬러, 펜슬러, 잉커로 활동했던 스탠 골드버그(Stan Goldberg)가 별세해 독자들이 안타까워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4-09-29 오필정

1971년부터 풍자 카툰 아티스트로 작품 활동을 하던 토니 아우(Tony Auth)와 1958년부터 코믹스 작품 <스파이더맨(Spider-Man)>,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 <아치>(Archie) 시리즈 등에 컬러, 펜슬러, 잉커로 활동했던 스탠 골드버그(Stan Goldberg)가 별세해 독자들이 안타까워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둘은 각자 활동한 업계는 다르지만 1970년대부터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예술가였고, 독자를 웃거나 감동시켰다. 특히 두 작가의 작품은 국내 히어로물 독자와 카툰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작품이다. 그들의 작품세계와 인생을 소개한다.


토니 아우 40년의 카툰 활동
40여 년 간 정치풍자 카툰작가 겸 아동 동화책 일러스트작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토니 아우가 지난 2014년 9월 14일 일요일에 작고했다. 토니의 사망 원인은 뇌종양 전이로 약 반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아우는 1971년부터 2012년까지 41년간 작가로서 평생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 된 필라델리아 주요 일간지)에서 카툰을 연재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서 정치 풍자 카툰을 연재했던 토니 아우

토니는 1942년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1965년 UCLA에서 생물도해법(biological illustration)을 전공 후,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그의 카툰 아티스트의 경력은 UCLA의 대학신문 데일리 브루인(Daily Bruin)에서 주 3회 카툰을 연재한 것이 시작이었다. 1971년, 드디어 그의 작품 인생 그 자체가 될 인콰이어러에 채용되었고, 평일 카툰 연재작가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토니의 작품 특징은 대립하는 양측을 바라보는 시선을 평등하게 두는 데 있다. 또한 그는 작품 내에서 월스트리트의 금융 위기, 인종차별과 편협, 총기 폭력 등 사회 비판적인 부분에 대해 과감하고 신랄하게 표출함과 동시에 그만의 예술적 스타일과 위트를 집어넣어 독자에게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였다.


△ 월스트리트 사태를 풍자한 토니 아우의 카툰

인콰이어러의 편집자 윌리엄은 "카툰 작가로 그는 보석이었습니다. 그는 한 명의 저널리스트로 다양한 사람의 분노와 억울한 부분을 확실히 조명하여 독자의 기분을 환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의 작품은 무척 거침없거나 혹은 신명난 느낌을 기발하게 보여주곤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토니의 작품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언론계의 꽃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1976년 수상했다. 이후, 40여 년의 작품 활동 기간 동안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두 번이나 더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그의 작품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퓰리처상 뿐만 아니라 허블럭상(Herblock Prize)을 2005년에 수상하여 그 가치를 증명하면서 63세의 나이에도 현장에서 건재함을 자랑했다.

토니의 친구이자 카투니스트 동료이며 198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풍자만화가 줄스 파이펄(Jules Feiffer)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저널리스트로 신문의 한 코너를 맡은 것을 사랑했습니다. 일주일에 5번, 하루에 5개의 아이디어로 한 주에 25번의 업무였습니다. 토니는 다른 누군가 해왔던 것보다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는 절대 그의 숙제를 중단하지 않았고, 항상 정보 수집을 했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점은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였습니다. 토니의 아이디어는 자신의 사고방식, 정치적 견해, 인류애, 그리고 연민에서 나왔습니다. 작업할 때, 토니는 어리둥절하면서 항상 화나 있지만 웃긴 역사학자 같은 시선으로 관점을 가정했습니다. ‘아이러니’(비꼼)는 미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토니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는 작품 안에서 심술궂게 할 수 있음에도 결코 잘난 척하거나 옹졸하지 않았습니다."

△ 아이들 비만과 건강이 사회문제임에도 정크푸드를 생산하는 회사들의 이면을 비판하는 카툰

2012년, 그는 인콰이어러를 떠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디지털 카툰에 눈을 돌렸다. 당시 디지털 만평 작업에 참여하고자 WHYY(필라델피아 지역에 있는 디지털 방송. TV, FM/AM 라디오 채널을 서비스하고 있음)의 뉴스 작업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만평 작업 이외에도 어린이용 동화책 일러스트 11권을 선보여 카툰 작가 이외의 아티스트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병상에 누워 독자와 영원한 이별을 한 그날까지 예술가로서 쉴 새 없이 달려온 토니 아우. 그의 만화를 40년간 애독한 사람들로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현재 그의 작품은 2권의 컬렉션 모음으로 출간되었으며, 템플대학교는 토니 아우 작품의 아카이브를 위한 기금 모음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 토요타 사태 당시 사건 수습보다 미국 정계 로비가 우선이었던 최고경영자를 비판하는 내용

*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The Philadelphia Inquirer)는 1829년 1월 1일 존 노벨(John Norvell)과 존 워커(John R.Walker)가 펜실베이니아 인콰이어러로 창간했다. 이후, 주인과 이름이 수없이 바뀌다가 1860년 윌리엄 화이트 하딩(William White Harding)이 경영하게 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다. 인콰이어러는 퓰리처상을 17회나 수상한 신문으로 현재 미국 내 5위에 해당하는 발행 부수를 자랑하고 있다.

* 퓰리처상이란 언론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는 상으로 저널리스트는 물론 문학인이나 음악인들에게 수상을 하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 대상은 언론, 문학, 음악 등 크게 3개 분야로 분류 총 21개 종목으로 수상한다. 언론 분야는 인쇄 매체를 통한 저널리즘만이 대상으로 보도된 뉴스나 기획기사, 사진, 만화를 대상으로 14개 분야(공공 서비스, 심층 취재, 해설, 국내와 국제 분야 등)에 상이 수여된다. 최근에는 인터넷 사용의 일반화로 온라인 뉴스 분야도 수상 대상에 포함됐다.

* 허블럭 상(Herblock Prize)은 정치풍자 카툰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것으로 2004년부터 지금까지 11명의 수상자를 기록하고 있다.

아치 코믹스,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그리고 스탠 골드버그
지난 8월 31일 일요일, 아치 코믹스(Archie Comics), 스파이더맨(Spider Man),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 등 북미지역은 물론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품에 참여했던 스탠 골드버그가 뇌졸중으로 82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 생전의 스탠 골드버그

"스탠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예술가이지만, 한 사람의 친구, 사랑스러운 남편, 사랑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수 년간, 많은 팬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의미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략) 그는 친구와 가족을 무엇보다 소중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은총이 그와 함께 하길."

골드버그의 작품 활동과 근황을 공개하던 그의 페이스북에 그의 별세 소식과 함께 조의를 표하는 문구가 올라왔다.

골드버그는 1932년 5월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 맨해튼에 있는 the School of Industrial Art high school을 졸업, 1949년 마블 코믹스의 컬러 담당 스태프로 코믹스 인생을 시작했다. 마블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1960년대 프리랜서로 활동했을 때에도 마블과 긴밀하게 협력했으며, 코믹스 업계의 거물인 스티브 디코(Steve Ditko), 잭 커비(Jack Kirby), 스탠 리(Stan Lee) 등과 가깝게 지내며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그의 작품 수준은 항상 최상이었고, 마감에 충실하며, 내 스토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줬습니다."
2010년 발간된 [Archie: The Best of Stan Goldberg] 컬렉션의 소개 글에 스탠 리가 골드버그에 대한 소개를 적었다.

마블 프로젝트 안에서 그는 주로 컬러 파트를 전담하는 아티스트였다. 컬러 디렉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코믹스업계에서 컬러는 많은 의미와 방대한 파트를 아우르는 직책인데, 그는 캐릭터와 배경, 그리고 타이틀 등의 설정 디자인이 정해지면 그 위에 입혀지는 컬러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특히 스파이더맨과 판타스틱 포에 들어간 컬러 설정은 모두 골드버그가 작업한 것으로, 스파이더맨의 파랑과 빨강,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은 그가 생각하는 영웅의 컨셉이자 상징이 되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슈퍼히어로에게 굉장히 중요한 색입니다.
독자들은 무언가 톡톡 튀는 개성을 원했습니다."

골드버그는 2012년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역시 골드버그의 작품을 논한다면 1958년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 작업한 1960년대의 <아치 코믹스>와 <펩 코믹스>(Pep Comics), 그리고 <아치와 그의 친구들>(Archie Series)]이 단연 최고지 않을까 한다.

△ 아치가 처음으로 등장한 최초의 펩 코믹스 22호 표지(좌), 22호지 내부 밥 몬타나의 아치 시리즈 최초 페이지

일단 아치와 골드버그를 이야기 하기 전 아치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아치 코믹스의 시작이 어땠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1939년 설립된 아치 코믹스는 1940년 1월 <펩 코믹스>를 창간했다. 당시 발매된 <펩 코믹스> 1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가 등장하는 등 전형적인 히어로 장르나 호러 장르 등의 만화책으로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어느 순간부터 틴에이저 연애물을 동시에 출간했다는 점이다. 이후, 이 연애물이 큰 인기를 끌게 돼서 독립된 시리즈가 되었고 바로 이것이 1941년 아치 시리즈의 시작이다. 당시 초창기 아치는 카툰니스트 출신 작가 [밥 몬타나(Bob Montana, 1920-1975)]가 그 시작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아치와 그의 친구들>로 알려져 있으며, 소량이지만 번역돼서 출판이 되었다고 한다(소량으로 시리즈가 몇 차례 나오다 만 것으로 현재 소장하고 있는 독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치 시리즈의 내용은 금발 베티와 흑발 베로니카 사이에 있는 남자 주인공 아치의 삼각관계를 그린 연애물이다. 간단히 말해 남자 주인공을 차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으로 미소녀의 주인공 쟁탈전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시리즈물이 연재되면서 동성애자 문제, 인종문제, 물가 등 사회문제 등이 다양한 이슈로 활용되어 당시 미국의 생활상과 사람들의 생각을 살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 1958년부터 1991년까지 286편이 출간된 아치 시리즈 중 첫 편과 후편

골드버그는 아치 시리즈를 정기 연재하며 타이틀 디자인, 캐릭터디자인, 잉크, 컬러 등 모든 것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968년 아치 쇼(The Archie Show)라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 1960년대 말에 오면 베트맨을 제치고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만화로 우뚝 성장한다.

△ 1994년 아치 코믹스 표지 . 골드버그와 헨리(Henry Scarpelli)가 합동 작업.

골드버그의 마지막 작품은 아치의 결혼 시리즈였다. 당시 아치가 베로니카에게 청혼하는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고 예고편이 홍보되자 CNN 뉴스에 나올 정도로 전미가 들썩이기도 했다.

△ 당시 독자들의 논란이 되었던 아치 결혼 시리즈 1호

"나는 우리가 해냈다고 생각돼 너무 기뻤습니다. (아치의 결혼 시리즈에서)베로니카의 결혼이 첫 번째로 보여지게 했는데, 왜냐하면 그게 독자를 매우 흥분되게 할 스테이지 세팅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쏠리게 했습니다."
당시 골드버그는 독자들의 격분이나 흥분된 반응을 무척 즐겼다고 전해진다.

골드버그는 1994년 샌디에이고 코믹콘 인터네셔날 잉크팟 어워드(Comic-Con International Inkpot Award)를 수상했고, 2012년 만화가협회 골든키 상(National Cartoonists Society’s Gold Key Award)]을 수상해 명예의 전당에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