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섬 1985년 1월호 표지
1985년 1월이 아직도 기억난다. <보물섬>에 허영만의 <제7구단>과 김동화의 <요정핑크>가 연재되기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만화들은 이제 막 ‘국민학교’ 3학년에 올라가던 내게 무언가 충격적이었다. <제7구단>은 실제로는 아직 6개 팀으로 운영되던 한국 프로야구 팀에 일곱 번째 구단이 등장하는데, 이 팀이 승리를 위해 고릴라를 선수로 기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황당한 내용이지만, 허영만은 이 작품을 통해 프로스포츠로 대표되는 쇼비즈니스를 풍자했다. 고릴라 선수가 성공하자 다른 팀에서는 코끼리, 치타 등 온갖 동물들을 기용하기도 하고, 구단은 성적이 시원찮은 선수에게는 해고 위협을 하거나, 어린이들로만 선수를 꾸미기까지 한다. 이것은 정말 ‘어른들의 세계’였고, 이런 풍자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알 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요정핑크>는 연애에 대해 알려주었다. 물론 요정의 세계에서 건너온 핑크와 사진작가인 빈은 서로 연인으로서 사랑하는 관계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핑크는 빈 앞에서는 아이의 모습으로 있었고, 빈은 이런 핑크를 보호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실은 성인인 핑크가 빈에게 갖는 미묘한 감정, 후에 핑크의 정혼자 레인보우가 핑크를 찾아와 보여주는 절절한 감정은 무언가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계속 응원했던 빈과 핑크가 요정과 인간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감정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각자 다른 사람과 함께 하게 된다는 것도 왠지 마음을 아리게 하는 이유였고. 그러니까, <보물섬>의 1985년 1월호로부터 나는 세상을 배웠던 것이다. 고약해 보일 수도 있는 풍자나 간질간질한 연애 감정을 이 만화 잡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는 <아기공룡 둘리>가 있었다. 시트콤이라는 단어가 아예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진짜 제대로 된 시트콤을 보여준 걸작. 생각해 보면 공룡과 외계인을 등장시켜 가장 고길동의 비애를 보여준 그 작품 말이다.
△ 제7구단(보물섬 1985년 1월호 - 1회)
△ 요정핑크(보물섬 1985년 1월호 - 1회)
<보물섬>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아이의 상상력으로 어른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망원경 같은. 창간 당시부터 ,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처럼 해외 SF영화들을 만화로 옮겼고, 고교야구를 배경으로 한 이현세와 허영만의 만화들은 틴에이지물과 무거운 비극의 세계를 함께 경험하게 했다. <요정핑크> 이전부터 김동화를 비롯한 만화가들이 순정만화의 세계를 알려준 것은 물론이다. <내 짝꿍 깨몽>과 <내 사랑 깨몽>으로 이어진 이보배의 작품들은 순정만화+변신소녀물이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 TV를 통해 변신로봇 만화들만 봤었던 아이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막대한 정보량이 들어온 것이라고 할까. 만화잡지라는 것이 원래 그랬고, 그 뒤로도 그랬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창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보물섬>은 동시대의 다른 만화 잡지들과 비교 해봐도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 만화 <땡땡>을 연재하거나 SF영화를 만화로 옮겼고, 금영훈이 각색한 <셜록홈즈>는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입구였다. 먼저 창간한 <소년중앙>과 <어깨동무>나 이후 나온 <소년경향>과 달리 만화만 묶어서 내놓은 이 월간지는 묘하게 장르물을 많이 넣었고, 어린이 독자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요정핑크>처럼 나보다 내 누나들이 더 열심히 읽었던 만화들을 넣었으며, <제7구단>처럼 지금이라면 네이버 같은 곳에서 20~30대에게 가장 많은 댓글을 받을 것 같은 풍자를 집어넣었다. 조선의 역사를 야사중심으로 엮었던 <맹꽁이 서당>도, 이후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김진태의 기이한 명랑/풍자 만화였던 <대한민국 황대장>의 속편 <신한국 황대장>도 <보물섬>에서 나왔다.
△ 맹꽁이서당(보물섬 1985년 1월호 - 28회)
만화는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편견이 팽배하던 그 때, <보물섬>은 어린이들이 훅 빠져들 공룡, 요정나라의 공주, 야구를 잘하는 고릴라 같은 존재들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조용히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당시 아이들은 가기 어려웠던 만화가게에 있던 어떤 성인만화도 <아기공룡 둘리>나 <제7구단>에 담겨 있는 시니컬한 유머감각은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요정핑크>에서 빈의 직업이 사진작가고, 아버지와 불화 후 혼자 살면서 생계를 담당하는 1인가구였다는 점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이것은 한 어린이에게 다가올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SF를 비롯한 장르물의 개념을, 시니컬한 풍자를, 때로는 속편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판타지의 세계가 여기 모두 있었다.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같은 메가 히트작이 있었지만 <보물섬>은 당시로서는 은근히 비주류인 취향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했고, 이것은 서브컬처로서의 만화가 가진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만화 잡지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했을 것이고 말이다. 만화는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하던 시대에 만화로만 채워진 월간지는 당연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이미 불법 복제된 일본만화를 통해, 대본소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공포의 외인구단> 등으로 성인들도 만화를 즐기고 있었다. <보물섬>은 그 모든 취향들을 모두 만족시키면서도 기막히게 하나의 분위기로 통일했다. 아직 만화가 연령과 취향에 따라 세분화되기 전, <보물섬>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두가 읽는 만화 잡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 달려라 하니(보물섬 1985년 1월호 - 1회)
△ 아기공룡 둘리(보물섬 1985년 1월호 - 22회)
<아기공룡 둘리>는 <보물섬>의 그 만화들 중에서도 단 한 편을 골라내라고 할 때 곧바로 떠오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헌사는 더 이상 반복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둘리는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이 작품이 이후 한국의 명랑만화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만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데 있다. <아기공룡 둘리>가 처음 나왔을 때는 그저 아이를 대변하는 둘리를 비롯한 캐릭터들의 모험담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기공룡 둘리>의 독자들이 자란 뒤에는 둘리를 집에서 키우는 고길동의 가장으로서의 비애가 드러났다. 갑자기 늘어난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 고길동이 하는 고민들은 그 당시 어린이 대상 만화로서는 볼 수 없었던 설정이었다. 둘리가 마법을 이용해 프로야구 선수로 활약하자 고길동이 둘리가 받을 연봉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모습은 속물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의 어른들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기도 했다. 둘리를 통해 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한 최규석의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이런 시선을 바탕에 둔 것이리라. 그러나 다시 또 시간이 흐른 지금, <아기공룡 둘리>는 일종의 대안가족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애초에 김수정이 아이가 반말을 하거나 하는 것 때문에 심의에 걸릴까봐 둘리를 공룡으로 묘사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어쩌면 <아기공룡 둘리>는 고길동과 아무런 혈연도 없는 아이들이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아기공룡 둘리>는 정체성이 각자 다른 사람들이 모여 대안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둘리의 옆집에 사는 마이콜은 흑인과 같은 외모를 가졌다. 하지만 둘리와 그의 친구들은 누구도 마이콜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또한 고길동이 둘리를 먹여 살리면서도 약간의 악역이 된 것은 자신의 조카 희동이를 제외한 둘리와 친구들을 골칫거리로 취급하며 구박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생판 몰랐던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대단하다. 하지만 <아기공룡 둘리>는 고길동의 이런 면모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어떤 존재든 가족처럼 지낼 수 있고, 누구도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길동과 그의 아내 박정자는 둘리 일행뿐만 아니라 램프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지내다 할아버지가 된 램프의 요정도 받아들인다.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무리일수밖에 없겠지만, 이것이 국가 같은 큰 집단의 문제라 생각한다면 <아기공룡 둘리>는 그 당시는 물론 지금 봐도 시대를 앞서간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길동이 둘리를 구박하면서도 결국 받아들이고 같이 사는 모습들은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을 받아들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아닐까.
△ 악동이(보물섬 1985년 1월호 - 18회)
그래서 <아기공룡 둘리>를 비롯한 <보물섬>은 10대에게 재미와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이상적인 방향이었던 것 같다. 초창기 <보물섬>의 편집진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이 좋은 어른이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라는 이유로 독자 수준을 낮춰 잡지 않았고, 독자들에게 거짓으로 가득 찬 환상만 주지도 않았다. 독자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만들어내되, 그 곳에는 당시 세상의 풍경이 보였고, 그 안에서 독자들에게 무엇이 더 좋은 세상인지 말하려 했으며, 세상에 보다 다양하고 즐거운 취향들이 있음을 제시해주었다. 이희재가 동명 소설을 만화화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와 <악동이>가 모두 <보물섬>에서 연재됐다는 점을 기억하자. 두 편은 모두 어린이가 겪을 수 있는 가정과 사회의 문제들을 때로는 무서울 만큼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내고, <악동이>에서는 악동이를 부당하게 괴롭히는 아이들에 대해 ‘어린이니까’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는 대신 그것이 나쁜 행동임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보물섬>은 정말로 좋은 만화 잡지였다.
<보물섬>은 1996년 폐간되었다. <보물섬>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가 지나고, 1990년대에는 더 많은 만화 잡지가, 월간이 아닌 주간이나 격주 간으로 연재되기 시작했다. 일본만화가 정식으로 수입되고, 만화 잡지는 10대와 20대, 남성과 여성 등으로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 만화라는 근간을 바탕으로 다양한 색깔의 만화들을 소화하던 <보물섬>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웹툰의 시대에 이른 지금, 이런 만화 월간지가 다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지금은 대형 포털 사이트, 또는 웹툰 전문 사이트에서 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서비스하면서 독자가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드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보물섬>은 대중문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정치적 문제로 인해 대중문화에 계몽적인 성격을 넣고자 했던 1980년대의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좋은 방향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도 <보물섬>과 같은 잡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이 시대에는 이미 10대, 또는 그보다도 어린 아이들에게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만화들이 있다고 본다. 다만 그 때 <보물섬>을 1982년 10월 창간호부터 읽었고, 1985년 1월의 충격을 잊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그 때 <보물섬>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즐거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아기공룡 둘리>를 보지 않은 채 <심슨> 같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어렴풋이나마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차별이 나쁘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어느 시대에나 어린이에게는 좋은 만화가 필요하다. 어른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30여 년 전에는, 그 이름이 <보물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