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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김정일의 생일(l’anniversaire de kim jung-il)>의 표지
2016년 가을 프랑스의 델쿠으(Delcourt)출판사에서는 만화 김정일의 생일(l’anniversaire de kim jung-il)이 출간되었다. 이 만화는 김정일과 생일이 같은 9살 소년 ‘준상’의 시선을 통해 북한의 일상과 고난의 행군 시기의 식량부족, 요덕의 강제 수용소 생활, 중국에서의 탈북자 생활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책속에 등장하는 세세한 묘사들을 보면 작가들이 상세히 자료조사를 했음이 드러난다. 북한의 일상과 탈북자에 대해서 새로 발견하는 부분도 있다. 아주 작은 고증 문제(약간 어색한 한글표현, 중국식의 이름을 가진 몇몇 등장인물, 한복 옷고름 모양 등)가 보이긴 하지만 독서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며 작가들에 다르면 다음 인쇄본부터는 여러가지를 수정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밝은 색상과 귀여운 인물 그림체는 자칫 무겁고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을 주제를 상쇄시켜 독자들이 부담 없이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김정일의 생일>은 이런 장점들 때문에 프랑스에서 그렇게 인기 있지 않은 북한 의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비평가들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시나리오를 쓴 오렐리엉 뒤꾸드레(Aurelien ducoudray)는 프랑스의 중견 만화 시나리오 작가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전 그는 포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동유럽, 구 유고 연방 등에서 취재기사와 tv용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사회적 인도주의 적 주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보스니아 내전 이야기를 다룬, 체첸 내전에 관한 만화, 노숙자들의 이야기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작화를 맡은 멜라니 알락(Melanie Allac)은 아동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여러 권의 아동서적을 출간했고, j’aime lire, astrapi등의 잡지에 정기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싣고 있다. <김정일의 생일>은 그녀의 첫 만화이다.
필자는 작는 12월 몽트뤠이으 아동 도서전에서 두 작가를 만나 작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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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작가 오렐리엉 뒤꾸드레(Aurelien ducoudray / photo : florian belmonte)와 작화를 맡은 멜라니 알락(Melanie Allac)
Q. 북한에 관한이야기는 만화로서 별로 인기 있는 주제는 아닙니다. 북한 난민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오렐리엉 : 우연히 <14호 수용소로부터의 탈출(불어제 : rescape du camp 14)>를 읽게 되었습니다. 요덕 수용소에서 태어나서 14~15살 정도까지 살다가 탈출한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상당히 강렬한 증언이었죠.(‘14호 수용소로부터의 탈출’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 신동혁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블레인 하든이 쓴 책이다. 신동혁의 증언은 2014년 유엔총회를 통과한 북한인권 결의안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2015년 1월 19일 뉴시스 기사에 의하면 신동혁씨는 이 책의 내용 중 일부 오류를 시인하고 북한 인권 운동 중단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고 한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방송과 기사들이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그것을 보다가 왜 이렇게 그 주제에 관심이 많아진 것일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들에서 책의 내용과 관련해서 공포스러운 부분을 다루는 일종의 ‘경쟁’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저 체제의 공포를 보여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차라리 저곳에 사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디어에서 시나리오가 출발했습니다.
Q. 주인공을 어린 소년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A. 오렐리엉 : 김정일이 이런 얘기를 했더군요. “북한은 어린이의 나라다. 그래서 북한 주민을 어린이처럼 대해야 한다.” 고요. 자신의 국민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9살짜리 어린아이가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우리 일상을 바라보듯이 자신의 일상을 바라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여행하면 그곳이 신기해서 사진도 찍고 놀라기도 하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그게 일상입니다. 저는 그런 일상의 부분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어떤 것들을 일상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만화 <김정일의 생일> 일부
Q. 김정일의 생일과 주인공 준상이의 생일은 같습니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A. 오렐리엉 : 북한에 관한 책에서 북한 사람들은 생일 파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저는 주인공에게 특별한 생일이 있기를 바랬습니다. 김정일과 생일이 같은 것은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흥미로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Q. 오렐리엉, 왜 멜라니가 이 만화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나요? 멜라니, 만화 <김정일의 생일>의 작화를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오렐리엉 : 멜라니는 아주 부드러울 수도, 때로는 아주 잔혹해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멜라니가 그린 <헨젤과 그레텔>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제 친구를 통해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한 그림에서는 굉장히 친절해 보이는 등장인물이 다음 페이지에서는 아주 두려운 인물로 변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진짜 겁이 나도록 그렸더군요. 저는 같은 스타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체를 원했습니다. 만화의 주인공은 어린 소년입니다. 저는 모든 이야기가 그의 시각을 통해 보이길 원했습니다. 어린 소년의 시각임을 알려줄 수 있는 그림체를 원했기 때문에 멜라니의 그림이 적합했습니다.
A. 멜라니 : 오렐리엉이 오래 전부터 만화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었습니다. 그가 저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왔을 때 저는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만화작업을 하게 된 것이죠. 이미 아동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면서 많은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좋지 않았다면 저는 굳이 만화를 할 필요가 없었겠죠.
Q. 만화를 준비하면서 필요한 정보나 기타 자료들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
A. 오렐리엉 : 탈북자들의 책이 적지 않게 나와 있습니다. 그책의 전부는 아니지만 95퍼센트 정도는 읽은 거 같습니다. 기자들의 책이나 다큐멘터리 , 영화 등도 보았습니다. 아주 큰 정보보다는 일상의 티테일한 부분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했습니다. 탈북자의 책 중 한권에 어떤 놀이를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친구와 부모와는 어떻게 지냈는지 등에 대한 아주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었습니다. 거의 금맥 같았죠.
Q. 이 만화를 출간하려는 출판사를 찾기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출판사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까 ?
A. 오렐리엉 : 출판사들은 ‘내용은 어른들을 위한 것인데 그림체는 어린이용 그림체여서 이 만화를 가지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만화가 될 줄 알았어요.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런 방식이 되어야 할 정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델쿠르 출판사 편집장을 만나서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는 내용과 그림체 간의 간격이 책을 더 흥미롭게 할 수도 있다는 제 의도를 이해했기 때문이죠.
Q. 멜라니, ‘기 들릴’의 만화 <평양> 보다도 한글을 잘 쓰셨더군요. 배경이 북한인데 자료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
A. 멜라니 : 이미지를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인터넷에 적지 않은 것들이 있었거든요. 북한 여행을 갔다온 사람들이 버스 차창을 통해서 찍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수용소 장면에 대한 이미지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수용소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한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어찌됐던 북한의 선전선동에 관련하거나 그곳의 일상에 관한 이미지가 적지 않았다는 것은 저도 조금 놀랐었어요.
Q. 전에 해왔던 작업보다 훨씬 슬프고 어두운 장면들이 많았었는데, 그림 스타일에 변화가 있었나요? 색 선택의 변화라든지?
A. 멜라니 : 네 무척 슬픈 이야기죠. 하지만 그림스타일을 이야기에 맞춰 변화시키려 하진 않았습니다. 색은 이야기에 비춰보자면 좀 밝은 편이였죠. 색 선택은 제가 발견한 이미지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건물 색깔이라든지 선전물 같은 것 말이죠. 작품 초반(주인공인 소년이 수용소에 가기 전에)의 색은 꽤 알록달록한 편입니다.
△ 만화 <김정일의 생일> 일부
Q. 작품을 하면서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나요?
A. 멜라니 : 정말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전엔 북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으니까요 .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 과장된 이미지만을 알고 있었어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병사들이 서로 친해지는 이야기를 담은 한국 영화를 보았는데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 만화의 주제하고도 맞는 면이 있었던 거 같아요.
△ 북한에 여러차례 방문한 프랑스의 언론인이 시나리오를 쓴 프랑스 만화<실수(la faute)> 실수로 김정일 뺏지를 차고 나오는 것을 잊은 북한인 관료의 이야기이다.
Q. <김정일의 생일>은 비평이나 판매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멜라니 : 우선 ‘기 들릴’의 <평양>과 <실수(la faute)>라는 만화를 빼놓고서는 이 주제를 다룬 만화가 거의 없었고요.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참신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진한 어린이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선악 판단자적 시각이 아니었습니다. 슬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애감을 멀리하려했고 눈물을 쥐어짜는 방식은 피하려 했습니다. 여러 요소들이 이 책을 일종에 증언으로 받아들여지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A. 오렐리엉 : 저도 이 책이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을 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하루 중에 북한 얘기를 가장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나라에 대해서는 약간의 환상이 있습니다. 푸틴의 러시아, 다에시(편집자 주 : IS의 아랍어 약어)와 함께 북한은 세상의 가장 주요한 적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프리카에도 독재자들이 엄청나게 많고 카자흐스탄도 독재국가입니다만 이들은 좀 덜 보여지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Q. 이야기 속에서 비애감(pathos)을 피하고 있습니다. 의도된 것인가요?
A. 오렐리엉 : 저는 이 이야기가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생존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생존자는 생존하려 하고 전진하려 하죠. 슬픔은 그 이후에 오는 것입니다. 늙어서 손자에게 그 얘길 해줄 때나 슬퍼지겠죠. 그 순간에는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겠죠. 저는 보스니아 난민 캠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생존을 위한 순간에는 슬퍼하고 감정을 가질 여유가 없어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린 아이입니다. 저는 저널리스트 시절 내전이나 학살에서 살아남은 어린 아이들의 증언도 많이 들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에게는 없는 생존의 에너지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그만 두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계속 나아갑니다. 일종의 생존의 힘 같은 것이 부차적으로 있는지도 모르죠.
△만화 <김정일의 생일> 일부
Q.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에서는 북한의 독재상황과 그것으로 비롯된 비극에 관한 저작물들은 나오고 있습니다만, 남한의 실질적인 통일노력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나 다큐멘터리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생각이 있으신가요?
A. 오렐리엉 :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북한은 가장 큰 악입니다. 만화로 따지자면 캡틴아메리카의 붉은 해골과 같은 악당이라고 생각되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런 관념을 떨쳐 버리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악당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곳>같이 이미 정형화되어진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 나라를 바라보려 했습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실험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강화되는 측면도 있죠. 왜 사람들이 그 이상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그 정도로 폐쇄된 나라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닫혀있으면 미스터리가 생기니까요.
A. 멜라니 : 일종의 ‘연출’이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외국이나 북한 자체에서도요. 북한의 ‘연출’은 대단합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고요. 모든 나라들이 북한의 ‘커다란 악’에 관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북한 자체도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믿게 하려는 것 같고요. 누구도 그 나라의 진짜 이미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그 나라의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면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만화를 그리면서 그래픽 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이 있었나요?
A. 멜라니 : 많은 이미지들이 선전, 선동 이미지들에 바탕한 것들이었습니다. 선전이미지들의 코드를 이용하는 것이 흥미로웠고요. 북한의 선동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선동이미지의 일반적인 부분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중국이나 구소련에서 하던 것을 포함해서요.
△ 만화 <김정일의 생일> 일부
Q. 표지 이미지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습니까?
A. 멜라니 : 북한의 마스게임 이미지를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이 이미지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수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소년을 표현했습니다. 커다란 김정일의 이미지에 덮인 다수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밖을 보려하는 것이죠.
Q. 언젠가 이 책인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신가요?
A. 멜라니 : 이 책이 한국에도 소개되길 바랍니다. 이미 한국 대사관 분들이나 한국 기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작품에 대한 인상을 들을 수 있었는데 무척 만족하셨습니다. 오히려 우리 만화를 통해서 배웠던 것도 있었다고 얘길 했었어요.
A. 오렐리엉 : 책이 번역되어 한국 독자를 만난다면 아주 기쁜 일일 겁니다. 우리와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 바보 같은 실수가 없었는지 걱정했었는데 만나 뵌 한국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행입니다. 몇몇 부분은 개정판에서 바로잡을 예정입니다. 한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탈북자 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