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타니 시노부의 <라이어 게임>]
그런데 이런 종류의 서바이벌 형식은, 단지 도박이나 생존게임 등을 그린 만화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니 서바이벌이라는 주제는, 만화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들을 생각해 보자. 그 만화들은 대체 어떤 내용, 주제였던가. 차례로 상대팀을 이기고 우승을 하는 스포츠 만화, 끊임없이 강한 상대와 싸우면서 성장하는 격투와 모험 만화, 거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것을 바쳐 나아가는 드라마틱한 만화 같은 것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런 만화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앞에 나타나는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잡지는 주간 《소년 점프》다. 1968년 창간된 《소년 점프》는 가장 인기가 좋았던 1995년에는 무려 650만부가 넘는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당시 《소년 점프》의 대표작은 <드래곤 볼> <슬램덩크> <유유백서> <타이의 대모험>이었다. <드래곤 볼>은 서유기의 인물을 끌어들인 코믹 판타지로 시작하여 격투만화로 빠진 사상초유의 히트작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일본 만화의 재미를 알린 <드래곤 볼>에서 손오공은 끊임없이 강한 적과 맞서 싸워 이긴다. <슬램덩크>는 약체팀 북산 고교가 성장하는 내용의 농구만화다. 격투 판타지 <유유백서>와 판타지물인 <타이의 대모험>도 비슷한 성장담을 보여준다. 즉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점점 강한 상대와 맞서 싸우고 이겨내는 일종의 성장물들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소년만화의 모든 것, 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년 점프》의 편집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화의 주제는 우정, 노력, 승리이다. 주인공이 노력을 해서 점점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 심지어는 적들과도 우정을 쌓아간다. 그 우정이야말로 주인공이 승리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다. 주인공이 그런 노력과 우정을 통해서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는 이야기들이야말로 《소년 점프》가 추구하는, 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만화의 주제다. 《소년 점프》의 히트작들을 한 번 살펴보자. <캡틴 츠바사>, <북두의 권>, <바람의 검심>, <원피스>. <헌터X헌터>. <나루토>. <데스노트>.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테니스의 왕자님> 등등. <소년 점프>의 작품들만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거인의 별> 같은 스포츠만화는 어떤가. <20세기 소년>은 또 어떤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슬램덩크>, 오다 에이치로의 <원피스>]
대중성을 지향하는 만화의 대부분은, 보통의 독자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간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노력과 우정과 승리다. 노력과 우정이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즉 살아남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 노력과 우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승리하는 것으로 결말을 지어,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 다만 소년만화와 어른들을 겨냥하여 만들어지는 만화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년만화는 그래도 부드럽게, 노력과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한다. 우정과 노력이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 강한 적과 싸워도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로 승리할 수 없어도, 그 노력과 우정이 있기에 너는 모든 것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세계는 결코 노력과 우정만으로 승리가 보장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서바이버>가 보여주는 것은, 때로 비열한 권모술수가 오히려 생존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공정한 규칙이라는 것은 사실 게임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다. 동일한 규칙 하에서, 한껏 승부를 겨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슈퍼스타 K>와 <나는 가수다>에서도 그런 열정과 노력을 본다. 동일한 규칙 안에서, 그들이 열정을 다해 도전한 후에 탈락하거나 승리하는 것을.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을 사람들 역시 알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으로 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절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공정한 규칙이 지배하는 저 세계의 서바이벌 판타지에 빠져드는 것이다. 소년만화가 주는, 긍정적인 판타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