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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만화, 그 끈끈하고도 원초적인 관계 1 : 서바이벌을 보고 싶다면, 만화를 봐라

대한민국 예능계를 사로잡은 서바이벌!! 대표적인 서바이벌의 보고 만화를 통해 서바이벌이 재미있는 이유, 만화에서의 서바이벌을 속속들이 알아본다

2011-07-25 김봉석
1. 서바이벌이 한국을 사로잡은 이유
 
케이블 방송에서 <슈퍼스타 K>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한국을 장악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2를 맞은 <슈퍼스타 K>, 즉 슈스케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대중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던 40대, 50대들도 허각, 장재인, 강승윤 같은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노래 경연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 같은 것들 말고 뭔가 큰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시청자들은, 젊은 가수 지망생들이 모여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 위하여 경쟁을 벌여 최후의 1인을 뽑는 과정에 기꺼이 동참했다. 함께 웃고 울고, 안타까워하고 기뻐했다. <슈퍼스타 K>는 케이블방송이 공중파를 능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히트작이 되었다.
 
그러자 공중파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다. 전통의 <일요일 일요일밤에>가 몰락했던 MBC에서 초강수를 두었다. 아나운서를 공개 서바이벌로 뽑겠다는 <신입사원>과 김건모, 이소라, 김범수 등 그야말로 최고의 실력을 가진 가수들을 불러 <나는 가수다>를 시작했다.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나는 가수다>였다. 첫 탈락자로 김건모가 결정되었지만, 이소라 등 후배 가수의 반발로 번복되었다. 그러자 네티즌이 들고 일어났다. 게임의 규칙을 왜 마음대로 바꾸냐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김건모가 물러나고, 김영희 PD마저 교체되었다. 그런 논란 속에서도 <나는 가수다>는 점점 힘을 발휘했다.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의, 탁월한 노래 경연에 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중은, 그들의 노래에 매혹당했다. 그것이야말로 <나는 가수다>의 힘이었다.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은 논란거리였지만, 최고의 가수들이 어울려 경연을 벌이는 무대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에 대중은 만족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 K>] 
 
그리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한국사회를 장악했다. <슈퍼스타 K>를 베낀 것 아니냐는 <위대한 탄생>도 멘토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여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김연아가 이끄는 피겨 서바이벌 <김연아의 키스&크라이>, 밴드들이 경연을 벌이는 <밴드 서바이벌 탑 밴드>, 스타들의 춤 실력을 보여주는 <댄싱 위드 더 스타>, 보통 사람들이 자신만의 장기를 가지고 나와서 겨루는 <기적의 오디션>, 전통적인 서바이벌 형식인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 등과 이미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던 해외 프로그램의 한국판인 <도전! 슈퍼모델>과 <프로젝트 런웨이> 등 각양각색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개성적인 경연방식을 통해 관심을 끌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해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기를 업고 국내에서도 <꼴찌 탈출> <악동클럽> 등이 방영되었지만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라진 적이 있었다. 당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송을 장악했던 해외의 열광적인 인기와는 달리 국내의 반응은 잠잠했고, 이후 일반인보다는 연예인들의 일상이나 모험을 보여주는 <무한도전> <1박 2일> 등이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다. 일반인이 출연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그리고 때로는 권모술수까지 동원하며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한국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그야말로 폭풍처럼 밀어닥쳐 모든 것을 휩쓸었다. 일부에서는 한국사회가 치열한 경쟁사회로 돌입했음을 증명하는 현상이라고도 말하지만, 어쨌건 분명한 것은 서바이벌이 갖는 엄청난 에너지와 매력이다. 세계를 장악하고 마침내 한국까지 뒤흔든 서바이벌의 재미는 대체 무엇일까?
 
 
2.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왜 재미있을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효시는 1999년에 시작된 네덜란드의 <빅 브라더>다. 여러 명의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그대로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포맷의 <빅 브라더>는 다른 나라로 판권이 팔리면서 대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무대가 되기도 한 서바이벌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도 대성공을 거두자, 점차 리얼리티와 서바이벌을 묶은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백미는 역시 열대의 오지에 16명의 남녀를 모아놓고 경쟁을 통해 최후의 1인을 뽑는 <서바이버>였다. 한때 미국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서바이버>는 10년이 넘게 인기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 <서바이버>]
 
수 만명의 지원자 중에서 16명을 오지로 보내고, 그 곳에서 투표를 통해 하나씩 탈락되어 마지막에 남은 ‘최후의 1인’이 백만 달러를 챙긴다. 출연자들은 두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함께 의식주를 해결한다. 협동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경쟁자다. 부족 간의 게임이 벌어지고 진 팀은 한 명을 내부투표로 탈락시켜야 한다. 그러면 부족원들은 ‘약한 사람’들을 먼저 탈락시킨다. 게임에서 진 이유가 그의 ‘약함’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적당히 사람들이 줄어들면 하나로 합치는데, 그 때부터 상황이 변하게 된다. 개인 간의 경쟁이 전면에 드러나면 타겟이 바뀐다. 신체적 능력이 월등한 사람은 모두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탈락한다. 전체의 화합을 해치는 사람도 탈락된다. 능력이나 인간성이 너무 뛰어나도, 너무 처져도 ‘최후의 1인’은 될 수 없다. <서바이버>는 야생에서의 생존게임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생존게임을 반영한다.
 
<서바이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문명이란 옷을 벗겨내자 드러난 맨얼굴과 똑같다.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 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건 언제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내치는 것, 집단의 힘으로 소수를 밀어내는 것, 결국은 ‘최후의 1인’을 향하여 눈돌리지 않고 뛰어가는 것. 그냥 쿨하게, ‘산다는 게 다 그렇지’ 라고 생각하면 <서바이버>는 아주 흥미로운 게임이다. 하지만 조금 사선으로 비껴나면, <서바이버>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지독한 ‘고발’이다. 인간은 타인을 짓밟지 않고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리얼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서바이버>를 보면서 우리들의 감추어진 본능을 대리만족한다. 싸워서 이기는 치열한 경쟁의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영화나 드라마도 물론 그런 대리만족을 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리얼’이라는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는 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과 스타들이 춤 실력을 겨루는 <댄싱 위드 더 스타>다. <아메리칸 아이돌>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공감이다. 아직은 보통 사람들인 출연자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장기인 노래와 춤 실력을 보여준다. 경쟁을 통해서 한 계단씩 밟으며 마침내 최후의 1인이 될 때, 그것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된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노력하고 전진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그래서 시청자는 자신이 응원하는 출연자와 공감을 하게 되고, 하나가 된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영화와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들이 춤 실력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볼거리는 충분하고, 이미 성공을 거둔 스타들이 다른 분야에 도전하여 성취를 이루는 모습에 열광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이미 10년이 넘었고, 그동안 수많은 형식으로 변형되어 왔다. 한 여자를 놓고 25명의 남자가 겨루는 <배철러렛>, 요리와 디자인 등 각 분야의 신인들이 작품으로 승부를 겨루는 <톱 디자인> <프로젝트 런웨이> <마스터 셰프> <워크 오브 아트>, 다이어트 과정을 통해 승자를 뽑는 <더 비기스트 루저>, 생존의 과정 그 자체인 격투기 서바이벌 <아메리칸 글래디에이터>와 <얼티밋 파이터> 등등.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은 치열한 서바이벌, 그야말로 희로애락의 모든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생존 경쟁의 과정에 더욱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우리의 현실과 동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전하게, 자신이 치열하게 뛰어들 필요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야생동물의 거친 싸움을 보는 것처럼, 시청자는 안전하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다. 더욱 자극적으로 꾸며진 쇼이면서 다큐멘터리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3. 만화야말로 서바이벌의 보고다
 
카이타니 시노부의 <라이어 게임>은 시종일관 속고 속이는 게임을 통해서 사람의 심리를 읽어낸다. 첫 게임은 30일간 다른 참가자의 돈을 빼앗는 것이다. 서로 속고 속이는 과정을 통해서 1억엔을 훔쳐 살아남는 것. 그저 사기를 잘 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라이어 게임>은 계속하여 의자 뺏기 게임, 감염 게임 같은 단순한 규칙의 게임을 통해서 사람들의 본능적인 심리를 끌어낸다. 사람들은 팀을 짜고, 배신하고, 음모를 꾸민다. 이유는 단 하나, 살아남기 위해서. <라이어 게임>은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처럼 아주 단순한 게임을 통해서, 살아남으려는 사람의 욕망이 어떻게 분출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만화다.
 

 
 
 
 
 
 
 
 
 
 
 
 
 
 
 
 
[카이타니 시노부의 <라이어 게임>]
 
그런데 이런 종류의 서바이벌 형식은, 단지 도박이나 생존게임 등을 그린 만화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아니 서바이벌이라는 주제는, 만화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들을 생각해 보자. 그 만화들은 대체 어떤 내용, 주제였던가. 차례로 상대팀을 이기고 우승을 하는 스포츠 만화, 끊임없이 강한 상대와 싸우면서 성장하는 격투와 모험 만화, 거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것을 바쳐 나아가는 드라마틱한 만화 같은 것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런 만화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앞에 나타나는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만화잡지는 주간 《소년 점프》다. 1968년 창간된 《소년 점프》는 가장 인기가 좋았던 1995년에는 무려 650만부가 넘는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당시 《소년 점프》의 대표작은 <드래곤 볼> <슬램덩크> <유유백서> <타이의 대모험>이었다. <드래곤 볼>은 서유기의 인물을 끌어들인 코믹 판타지로 시작하여 격투만화로 빠진 사상초유의 히트작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일본 만화의 재미를 알린 <드래곤 볼>에서 손오공은 끊임없이 강한 적과 맞서 싸워 이긴다. <슬램덩크>는 약체팀 북산 고교가 성장하는 내용의 농구만화다. 격투 판타지 <유유백서>와 판타지물인 <타이의 대모험>도 비슷한 성장담을 보여준다. 즉 주인공이 성장하면서, 점점 강한 상대와 맞서 싸우고 이겨내는 일종의 성장물들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소년만화의 모든 것, 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년 점프》의 편집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화의 주제는 우정, 노력, 승리이다. 주인공이 노력을 해서 점점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동료 심지어는 적들과도 우정을 쌓아간다. 그 우정이야말로 주인공이 승리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다. 주인공이 그런 노력과 우정을 통해서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는 이야기들이야말로 《소년 점프》가 추구하는, 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만화의 주제다. 《소년 점프》의 히트작들을 한 번 살펴보자. <캡틴 츠바사>, <북두의 권>, <바람의 검심>, <원피스>. <헌터X헌터>. <나루토>. <데스노트>.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테니스의 왕자님> 등등. <소년 점프>의 작품들만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거인의 별> 같은 스포츠만화는 어떤가. <20세기 소년>은 또 어떤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슬램덩크>, 오다 에이치로의 <원피스>]
 
대중성을 지향하는 만화의 대부분은, 보통의 독자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간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노력과 우정과 승리다. 노력과 우정이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즉 살아남을 수 있는 전제조건이 노력과 우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승리하는 것으로 결말을 지어,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 다만 소년만화와 어른들을 겨냥하여 만들어지는 만화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년만화는 그래도 부드럽게, 노력과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한다. 우정과 노력이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 강한 적과 싸워도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로 승리할 수 없어도, 그 노력과 우정이 있기에 너는 모든 것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세계는 결코 노력과 우정만으로 승리가 보장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서바이버>가 보여주는 것은, 때로 비열한 권모술수가 오히려 생존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공정한 규칙이라는 것은 사실 게임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다. 동일한 규칙 하에서, 한껏 승부를 겨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슈퍼스타 K>와 <나는 가수다>에서도 그런 열정과 노력을 본다. 동일한 규칙 안에서, 그들이 열정을 다해 도전한 후에 탈락하거나 승리하는 것을.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을 사람들 역시 알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으로 보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절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공정한 규칙이 지배하는 저 세계의 서바이벌 판타지에 빠져드는 것이다. 소년만화가 주는, 긍정적인 판타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