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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 만화 집중탐구] 키워드로 살펴본 학원 만화 - 일상, 액션, 로맨스

학원 만화는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만화를 통칭한다. 장르 만화에서는 공통점을 지닌 특정한 관습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2016-09-23 전현주

학원 만화는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만화를 통칭한다. 장르 만화에서는 공통점을 지닌 특정한 관습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순정물은 순정물의 관습을, 영웅물은 영웅물의 관습을, 학원물은 학원물의 관습을 반복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특정한 장르의 주요 독자층이 되기도 하고, 또 장르 만화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장르에 비해 학원 만화는 그 장르에 고유한 서사, 내러티브가 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학원 만화라는 장르 구분은 내러티브의 요소보다는 배경과 등장인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은 학생이라는 특수한 소비 계층을 반영하고 있다. 따지고 보자면 독특하게도, 학원물에서 배경이나 독자 구분이 기준점이 되는 것은 그만큼 학창 시절의 즐거움이나 반항심, 호기심 등이 그만큼 보편적이며 동시에 그 시대에 고유한 문화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88년《아이큐점프》창간 이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만화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또한 같은 해 창간된 《르네상스》는 순정만화잡지의 시작을 알리고, 이후 순정만화는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진짜 사나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짱> 등 90년대 전성기를 누린 학원 만화들은 세상사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학교를 중심으로 녹아내었다. 오늘날 더욱 다양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국내의 학원 만화를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자.

일상 - 어른들은 잘 모르는 우리들의 이야기
학생들의 관점에서 일상을 담은 만화는 1960년대 방영진 화백의 <약동이와 영팔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온 약동이가 자존심 강한 영팔이를 만나면서 그려내는 일상은 서울의 가난했던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 당시 대본소를 중심으로 한 만화 시장에서 학원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약동이와 영팔이>는 학생들의 모험과 우정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서 성숙함과 미성숙함 어느 쪽을 드러내어도 마냥 창피하지만은 않은 시기, 그 세대만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은 주로 유머와 함께 성장을 향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순정만화의 독자들은 이빈의 <걸스>에서 여고시절에만 만날 수 있던 개성 강한 친구들과 그 세대에만 즐길 수 있었던 재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김은희의 <소년별곡>에서 궁금했던 남자학교에 몰래 잠입해보기도 했다. 서영웅의 <굿모닝 티처>는 소년 만화 중에서도 격투물이 주류를 이루었던 학원물에서 보다 현실적인 고민과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다루면서도 인기를 얻었다.
웹툰이 새로운 만화 형식으로 등장하면서, 만화는 보다 더 다양해지고 작가들의 개성도 강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일상을 다룬 작품들은 감정을 보다 더 섬세하게 묘사하며, 소통되지 않은 마음을 달래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소녀의 세계>(모랑지)는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의 고민과 친구 사이의 갈등, 심리적 폭력과 같은 문제를 그린다.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피상적인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상 학원물의 강점이다. <더 퀸 :침묵의 교실>(김인정)은 여학생 일진, 왕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고, <가식걸>(이뽀삐)은 특별한 이유 없이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 좌측부터 <소녀의 세계> 中, <더 퀸 : 침묵의 교실> 中
<여중생A>(허5파6)에서는 주인공의 내면을 중심으로 일상적인 내용을 덤덤하게 그리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중3의 여학생인 주인공은 게임에 빠져 있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소통하지 못한다.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만나고 우정을 쌓아가며, 자신감과 행복한 일들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특별한 욕망이나 대단한 사건 없이도 현실감을 바탕으로 강한 여운을 전달한다.

액션 - 이 세계에서는 내가 짱이야!
학원 만화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학원 액션물이다. 1992년 <진짜 사나이>, 1996년 <짱> 등이 초창기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인데, 부조리한 학교의 권력 구조나 적들의 폭력에 대항하여 싸움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는 소년 독자층들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정통적인 학원 액션물들은 격투와 힘을 동경하고, 친구들 사이의 의리 있는 우정을 강조하며 학교를 배경으로 화려한 액션들을 묘사하였다. 에피소드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적들과 싸워 이기는 액션이 주요 내용이었던 <짱>은 18년 6개월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인기를 얻으며 연재되었다.
최근에도 <독고>, <최강전설 강해효>, <대가리> 등 정통 학원 액션물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웹툰의 환경에 맞춰 좀 더 속도감 있는 액션씬을 연출하기도 하고 심리묘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판타지에 속하는 <갓오브하이스쿨>(박용제)은 아예 전국적, 세계적 대회를 열어 격투 능력이 초능력 수준으로 뛰어난 고등학생들의 대결무대를 그린다. <프리드로우>(전선욱)는 소위 싸움짱 한태성이 주인공이지만 오히려 중학교 시절 일진 생활을 청산하고 조용한 고등학교 생활을 꿈꾼다. 본의 아니게 싸움에 얽히게 되는 이야기는 시트콤에 가까운 개그물이라는 독특한 혼합장르를 선보인다. 한태성을 만화부로 영입하려고 하는 구하린은 여자지만 싸움을 잘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등, 학원 액션물은 성별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소녀더와일즈>(훈/제나)나 <애프터눈 히어로즈>(구자윤)는 뛰어난 격투실력을 가졌거나 초능력을 가진 여자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학원 액션물이다. 주로 애니메이션에서나 시도되던 마법소녀물이 웹이라는 공간에서 학원 액션물과 교차되어 새로운 성격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만화잡지 기반의 시장에서는 여성독자를 고려한 액션물이 등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러 독자에게 열려 있는 웹이라는 공간의 특성은 이처럼 독자층과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로맨스 - 빠질 수 없는 청춘의 달콤씁쓸함
대표적인 학원물들을 살펴보았지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로맨스이다. 대부분의 학원물에서도 로맨스가 등장하지만 일상을 그린 작품이나 액션물에서 로맨스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특히 일상 학원물에서 로맨스는 대개 실패로 끝나며 주인공의 성장을 돕는 도구로 등장할 뿐이다. 로맨스는 순정을 지향하는 작품에서야말로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 밀도 있게 그려진다. 나예리의 <특명! 1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는 쌍둥이 남매와 친구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 10대에만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드라마화되기도 한 박소희의 <궁>은 대표적으로 성공한 학원 순정물로, 대한민국을 입헌군주제 국가로 설정한 판타지물이다. 평범한 여고생과 황태자의 사랑을 그린 전형적인 순정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최근 <너의 HEART를 나에게 줄래?>(비아이)는 잡지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화로 순정 만화 특유의 감성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비밀스러운 짝사랑>(정)은 독특하게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 짝사랑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소년소녀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좋아하는 이의 마음일 것이다. 좋아하거나 밀어내는 이들 사이의 긴장감이야말로 순정 학원물이라는 장르의 핵심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 등 감각적인 순정물을 선보였던 천계영 작가는 최근작 <좋아하면 울리는>에서 이런 테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0m 반경에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스마트폰에 꽉 찬 하트가 켜지는 ‘좋알람’이라는 어플은 이야기 전체를 긴장감 있게 이끌어간다. 마음을 전달하고 확인하는 도구로, 때로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로까지 이용되는 ‘좋알람’은 10대들의 문화와 욕망을 시의성 있게 반영한다.


그리고 - 경계를 넘나드는 장르들
학원 만화의 세계는 넓고 끝이 없다. 여기서 미처 다루지 못한 장르도 있고, 앞으로 시도될 수 있는 다양성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 학교는 액션, 순정, 판타지, 스릴러, 일상, 개그, 공포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의 무대가 된다. <입시명문사립 정글고등학교>, <국립자유경제고등학교 세실고>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학교가 이름을 얻기도 하며, <3단합체 김창남>, <버프소녀 오오라> 등의 경계 없는 판타지가 실현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입시제도로 인한 스트레스를 잘 반영한 <공부하기 좋은 날> 같은 학원 공포물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대학 생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치즈인더트랩>, <패션왕>, <에피소드 칵테일>, <스퍼맨> 같은 만화도 있다.
출판 시장에서 웹으로 옮겨오면서 독자 중심으로 구분되던 만화 장르는 점점 더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내러티브 중심의 장르들도 타 장르의 관습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하나의 만화를 단지 하나의 장르만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이런 다양한 변화 속에서 내러티브와 인물 구성, 연출을 적절하게 잘 선택하는 것이 웹툰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건드리며,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잘 반영하면서도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다채로운 학원 만화가 앞으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