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있어 장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장르의 개념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적은 비용을 투자하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봐서 큰 수익을 얻기를 바랐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짧은 시간에 영화를 만들어 내는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한 후 관객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조사하여 표준화시켰고, 이런 검증된 요소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다량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반복된 경험을 통해 검증된 기존의 정형화된 이야기들을 ‘장르’라고 부른다.
이렇게 형성된 장르는 만화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장르는 독자들이 만화를 고를 때 중용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만화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르만화가 존재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르 만화는 학원물일 것이다. 학원물은 학교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각종 애니메이션, 드라마, 소설 등의 총칭1)하는 말로 학교를 배경으로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운동회, 이성 간의 연애, 시험, 일진 문제 등이 주요 소재로 삼는 게 특징이다.
학원물은 김성환의 <꺼꾸리군 장다리군>이나 방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 그리고 조흔파의 소설 《얄개전》등에서 시작되고 발전되어 온 전통적인 장르이다.2) 그러므로 다양한 장르만화가 생성되고 사멸되는 현실에서 만화방 시대부터 웹툰 시대까지 걸치면서 사랑받고 있는 학원물의 생존요인과 변화 요인들을 살펴본다면 학원물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학원물은 만화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몇 안 되는 장르 중에 하나지만, 학원물이 만화의 중심 장르로 떠오르게 된 건 잡지만화가 도래하고부터이다. 1988년 서울문화사에서 창간한 《아이큐점프》는 기존의 아동 중심의 잡지시장을 일약 청소년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하였다.
잡지만화의 특징은 독자의 연령에 따라 잡지를 구분했다는데 있다. 잡지만화는 15세 이하의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소년만화와 15세 이상의 청소년을 겨냥한 ‘영지’3) 그리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잡지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이 시기 순정만화잡지도 활발하게 창간되는데 《화이트》《이슈》《윙크》 등이 대표적인 잡지이다.
잡지만화에는 학원물, 판타지물, 격투물, 호러물, 멜로 개그물 등 독자의 연령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장르들이 잡지에 실렸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것은 잡지만화는 이전 시대보다는 다양한 독자층을 존재했지만 주 독자층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남녀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학원물이 자연스럽게 인기 장르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학원물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첫 번째 만화를 보는 주 독자층인 학생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인 학원물에 쉽게 공감하고 소비한다.
두 번째 이유는 작가가 쉽게 기획하고 창작할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은 누구나 공통으로 겪는 과정이고, 그 시절에 겪는 추억도 모두 비슷하다. 학원물을 창작하는 작가들 입장에서는 별다른 취재 없이 본인의 경험담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런 학원물의 성장은 잡지만화가 쇠퇴하고 웹툰이 만화의 중심이 된 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먼저 웹툰의 이용자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그림 1> 웹툰 이용 경험 조사4
<그림 1>을 보면 10명 중 8명(79.2%)이 한번쯤 웹툰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다고 조사되었다. 또한 응답자의 36%는 웹툰을 자주 이용한다고 응답하였고, 직접 접해 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43.2%였다. 연령대별로 웹툰 이용 상황을 보면 20대 젊은 층이 68.8%, 30대 40%, 40대 20%, 50대 15.2%로 나타나 20대가 주 독자층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조사에서는 빠졌지만, 전통적으로 만화와 웹툰은 소비하는 10대도 20대에 못지않게 웹툰을 즐겨 보는 독자층이다.
결국 웹툰은 기존의 10대 독자층에 20대 독자층이 추가되면서 성장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잡지만화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20대 독자층의 등장은 학원물의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내기 시작한다.
장르의 내러티브 전개에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은 그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어떤 요소에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장르에는 그 장르만의 고유한 장르관습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무협만화 장르는 동양의 판타지라 불리며 종종 판타지 장르로 분류되긴 하지만 판타지와 무협은 전혀 다른 장르에 속한다. 무협만화 장르의 특징은 ‘기, 정, 무, 협’이라 하여 무협만의 독특한 장르 관습을 보여준다.5)
학원물도 무협만화처럼 고유의 장르 관습이 존재한다. 학교를 배경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르 관습은 다양한 독자들이 유입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만화가 각기 다른 장르와 서로 결합되고 재구성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장르 혼종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학원물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학원물은 다양한 형태의 장르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학원물을 창출해 냈다. 이런 현상을 대표하는 작품이 <비바 블루스>이다.
△ <그림 2> <비바 블루스>
모리타 마사노리의 <비바 블루스>는 1988년부터 1997년까지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로 학원물과 폭력물을 결합한 학원 폭력물의 유행을 이끌었다. <비바 블루스>의 인기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박산하의 <진짜 사나이>와 임재원의 <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런 장르의 혼종은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는데, 학원물과 로맨스물이 결합한 학원 로맨스물, 학원물과 스포츠물이 결합한 학원 스포츠물, 학원물과 판타지물이 결합한 학원 판타지물 등이 대표적인 장르혼종이다. 이처럼 학원물은 다양한 장르와의 장르혼종을 통해 분화하는 독자들의 욕구들을 채워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학원물이 다양한 장르와 혼종을 거듭하면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건 잡지만화 시대가 저물고 웹툰 시대가 열렸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 <그림 3> 네이버 요일별 웹툰6)
<그림 3>은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 중 상위 35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그림 3>을 보면 중복된 작품 2개를 제외한 33개 작품 중 학원물은 <소녀의 세계>, <연놈>, <연애혁명>, <외모지상주의>, <갓오브하이스쿨>, <프리드로우>, <공복의 저녁식사>, <스피릿 핑거스>, <소녀더와일즈>등 총 9편이다. 전체 작품에서 학원물로 27.2%로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다음 웹툰의 주간 순위7)를 보면 <좋아하면 울리는>, <대세녀의 메이크업 이야기>, <홍도>, <일진의 크기>, <레드스톰>, <연애는 싫어>, <트레이스>, <무장>, <우리집에 왜 왔니>, <가내수공업 Ent> 총 10작품이다. 이중에서 학원물은 <좋아하면 울리는>, <일진의 크기>, <연애싫어> 세 작품으로 3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학원물은 웹툰에서도 확실한 인기장르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림 3>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한 가지 더 있다. 리얼한 대학생활을 보여주는 <대학일기>나 지방 사립대학인 기안대학교 패션학과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복학왕>을 어떤 장르로 봐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두 작품 모두 작품 배경은 대학교이고,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모두 대학생활 중에서 벌어진 일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학원물이 학교를 배경으로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정의할 때 <대학일기>와 <복학왕>은 학원물로 분류되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대학일기>와 <복학왕>을 학원물로 분류하는데 동의하기 힘들다면 학원물이라고 하면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선입관 때문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학원물로 봐야 한다. 학원물이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이유는 학원물을 소비하는 독자층이 중·고등학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림 1>에서 보았듯이 웹툰을 소비하는 주 연령층은 20대들이다. 20대들은 10대 못지않게 웹툰을 왕성하게 소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웹툰은 10대를 주 소비층으로 삼았던 잡지시대에 달리 20대의 욕구를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학원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경향성은 지금까지 한국만화에서는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학원물로 나타나는데 성인 웹툰이 그것이다.
물론 잡지만화에서도 《투엔티세븐》《빅점프》《미스터블루》《나인》같은 성인잡지가 존재하였고, <아색기가>, <구르물 버서난 달처럼>, <황토빛 이야기> 같은 성인 취향의 만화들이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하지만 잡지만화 시대보다는 더 다양한 계층의 독자가 존재하는 웹툰 시대에서 학원물 이전의 성인물보다는 소재도 다양하고 표현수위도 더 과감해지고 있다. 특히 기존만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학원을 배경으로 한 성인물들이 출현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그림 3> <사랑니S> (좌측) <그림 4> <학원물>(우측)
<그림 3>은 레진 코믹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사랑니S>로 대학교를 배경으로 연애 경험 없는 스무 살 다홍은 교양 수업에서 만난 오빠와 사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성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그림 4>의 <학원물>은 폭스툰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으로 좋아하는 아이와 같은 반이 된 민오의 짝사랑 이야기를 다룬 BL물이다.
레진코믹스가 유료 플랫폼을 성공 시킨 이래로 많은 플랫폼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또한 이들 유료 플랫폼의 수입 대부분은 성인 웹툰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료 플랫폼들은 유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20대와 30대를 위한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대학교를 배경으로 한 성인 웹툰이나 지금까지 터부시되었던 학원을 배경으로 한 BL물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웹툰이 생겨나면서 새로 유입된 독자층, 특히 구매력을 갖춘 20대 독자층의 등장은 기존의 학원물과 다른 새로운 학원물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첫째, 내러티브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중·고등학생들의 이야기에서 대학생의 학교 이야기로 범위가 확대 되었고, 둘째, 장르혼종의 측면에서는 다양한 성인물과 결합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성인물과의 장르혼종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까지는 마이너장르로 남아 있는 BL물과 백합물 등과의 결합이 더욱더 빈번히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잡지만화 시대에서 웹툰 시대에 이르기까지 학원물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학원물은 독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장르 혼종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면서 발전해왔다. 특히 잡지만화에 비해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웹툰의 특성은 다양한 독자층을 만들어 냈다. 이들 중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20대들이 웹툰의 주 독자층으로 형성되었고, 학원물도 이들의 취향에 맞게 변해가고 있다. 또한 최근에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유료 플랫폼들은 이런 현상들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이런 새로운 환경의 등장으로 다양한 장르가 새로 생겨나고 또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학원물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형식의 학원물로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주석
1) http://krdic.naver.com/search.nhn?query=%ED%95%99%EC%9B%90%EB%AC%BC&autoConvert=false
2) 박인하, 《장르 만화의 세계》, 살림, 2008, p.40.
3) ‘영지’의 대표적인 만화 잡지는 《영점프》《영챔프》《부킹》《기가스》등이 있다.
4) www.trendmonitor.co.kr/tmweb/trend/allTrend/detail.do?bIdx=1260&code=0303&trendType=CKOREA&prevMonth=¤tPage=1
5) ‘기’란 생애를 바꾸는 만남이고 ‘정’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말한다. ‘무’는 폭력, 무공, 쌈질, 전쟁을, ‘협’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6) 2016년 9월 8일 기준이다.
7) 2016년 9월 8일 기준이다.